미국 대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음담패설 및 여성 비하 발언이 대선 정국의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이를 반영하듯 주요 여론조사에서는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트럼프 후보와 격차를 벌리고 있고, 일부에서는 이미 게임은 끝났다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결과를 예측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트럼프 후보가 지난 9일(현지 시각) 열린 2차 TV토론에서 예상외로 선전했다면서 실제 지지층을 투표장으로 끌어들이는 데는 트럼프가 클린턴보다 유리하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재미 한인 민간단체 시민참여센터(KACE)의 김동석 상임이사는 "트럼프가 상당히 고전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생각보다는 선방했다. 특히 토론 중 트럼프가 클린턴에게 "내가 대통령 되면 너 감옥 보낼거야" 라는 발언은 어떻게 대통령 후보가 저런 말을 할 수 있냐며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트럼프와 소통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통쾌한 발언"이라고 평가했다.
김 이사는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가능성을 타진해 보려면 경합주, 이른바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에서 기존의 공화당이 아니라 트럼프를 지지하는 중하층 백인들이 어떻게 움직이느냐를 관찰해야 한다"며 "선거에서 이기는 것을 목표로 봤을 때 트럼프는 지지자들을 이끌어내기 위해 나름의 적절한 표현을 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2차 TV토론은 트럼프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고 설명했다.
미국 정치 전문가인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클린턴이 100% 승기를 잡은 것은 맞다. 70대 30 정도로 클린턴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그런데 클린턴은 베이비붐 세대다. 현재 시대가 요구하는 것과 비교했을 때 부조화스러운 인물이다. 이 때문에 갖가지 공백이 생기고 있고 트럼프가 이 공백을 치고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선거가 완전히 끝났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내다봤다.
미국 대선은 한국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치는 관심 사안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 및 한국 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고유의 전략 없이, 그저 미국 대선 결과를 기다리기만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김 이사는 "미국에서는 한국의 의견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엘리엇 엥겔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민주당 간사에게 대북 선제타격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봤다. 그랬더니 엥겔 의원이 이제는 한국의 동의 없이 미국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면서 "수많은 옵션 중 하나인 핵 시설 직접 타격은 한국의 권력이 하나의 옵션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현지에서는 이러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왜 한국은 자기의 의견 없이 미국의 의견만 듣고 맞추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한국이 분단 체제를 관리하고 평화체제로 가겠다는, 굳건하고 초당적인 국가 차원의 입장이나 전략이 있으면 미국의 새로운 권력은 거기에 맞출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김 이사는 "한편으로는 '미국에 한국 입장을 이야기하는 것은 정부가 할 일이니까'라며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야당이 더 답답하기도 하다"면서 "본인들이 절박하면 미국에 가서 외교위, 국방위 소속 의원들을 만나면 된다. 의원들끼리 만난다는데 뭐가 문제가 되겠나? 일본은 이런 활동을 엄청 많이 한다. 이외에도 학자들끼리의 네트워크, NGO, 해외 동포 활용 등 다양한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여러 채널을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다음은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더미래연구소에서 홍일표 사무처장의 사회로 김동석 이사, 안병진 교수와 가진 좌담 내용이다.
홍일표 : 미국 대선 2차 TV토론이 열렸다.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여성 비하 발언에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성추문까지 나오면서, 미국 대선 토론이 어느 때보다 추잡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실 한국에서도 이런 정도의 수준을 상상하기가 힘든데, 트럼프 후보가 워낙 이상해서 이런 토론이 나오는 건지 아니면 미국 정치 자체가 이미 붕괴 또는 전환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나오는 현상인지 의문이 든다.
이제 대선이 한 달도 남지 않았는데, 일각에서는 트럼프 후보의 승리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아직은 승부를 예측할 수 없다는 관측도 있는데 2차 TV토론에 대한 평가와 향후 전망을 해본다면?
김동석 : 토론이 있기 전 <워싱턴포스트>에 트럼프의 음담패설과 여성 비하 발언이 담긴 녹취록이 보도됐다. 이른바 '옥토버 서프라이즈'라고 불리는 '한 방'이었는데, 사흘 뒤에 열린 토론에서 트럼프가 상당히 고전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생각보다는 트럼프가 이 폭로를 잘 넘긴 것으로 본다.
토론 이후 판세에 대해 미국 언론들이 보도를 쏟아내고 있는데 사실 지금은 기존에 형성된 정치권 안에서 주류 매체들이 만들어낸 측면이 있다. 그런데 트럼프는 지금까지 선거 운동을 기존 정치권에서 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1차 TV토론이 끝나고 나서 미국 주류 매체들은 클린턴이 완승했다는 여론조사를 보도했다. 그런데 토론이 끝난 뒤 4~5일 지나고 나서 SNS를 통한 조사에서는 트럼프가 뒤지지 않았다. 이번 역시 토론 이후 시간이 좀 경과된 뒤에 보다 정확한 지지율 추이가 만들어질 것으로 본다.
그런데 지금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는 세력들은 2008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를 지지했던 이들과 양상이 비슷하다. 당시 민주당에 잠자고 있던 마이너리티들을 비롯해 저소득층 중에 민주당 쪽에 있던 유권자들이 오바마 후보를 지지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들은 기동성이 상당히 좋았는데, 지금 트럼프를 지지하는 백인 중하층 계급들은 이들에 비해 기동성이 너무 떨어진다는 데 있다.
어쨌든 트럼프의 대선 승리 가능성을 타진해 보려면 경합주, 이른바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에서 기존 공화당이 아니라 트럼프를 지지하는 중하층 백인들이 어떻게 움직이느냐를 관찰해야 한다. 스윙 스테이트 안에서 트럼프를 지지하고 나오는, 새롭게 나오는 유권자들의 움직임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차 TV토론 중 트럼프가 클린턴에게 "내가 대통령 되면 너 감옥 보낼 거야" 라고 말한 것을 두고 "어떻게 대통령 후보가 저런 말을 할 수 있냐"며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트럼프와 소통하는 그러한 수준의 백인 남성들에겐 너무나 자연스럽게 소통이 가능한 표현이다. 선거 운동이 말 그대로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 목표라고 했을 때, 트럼프는 지지자들을 이끌어내기 위해 토론을 했다고 보여진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2차 TV토론에서 트럼프가 선방했던 면도 분명히 있다.
다만 9월 첫째 주에 있는 미국 노동절 연휴의 지지율이 대선까지 이어지는 것이 통상적인 관례라는 측면도 고려해봐야 한다. 사실 대통령 후보 간 TV토론에서 판세가 바뀐 적은 없다. 후보자들은 TV토론에서 고정 지지층들을 결집시키고 이미 만들어진 흐름을 잘 유지하는 것에 목표를 두는 경우가 많다. 클린턴의 경우도 1차 TV토론이 있기 전에 9.11 기념식 때 비틀대면서 건강에 대한 우려가 많이 나왔는데 1차 토론 때 이를 무난히 넘겼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전당대회가 차례로 종료된 이후인 8월 초순에서 중순으로 지나가면서 클린턴은 트럼프를 7~11% 정도 앞서 나갔다. 그러다가 클린턴의 건강 이상설이 나오면서 차이가 점점 좁혀졌는데, 1차 TV토론을 마치고 이 차이가 다시 회복했다.
안병진 : 클린턴이 이번 토론에서 좀 더 공세적으로 나갈 수 있었는데 너무 방어적이었다는 평가가 있다. 원래 미국 정치 전략가들 사이에서 금언처럼 하는 말이 있는데 상대가 망가질 때 끼어들지 말고 가만 놔두라는 것이다.
TV토론에서는 소위 말하는 '결정적 순간'이 있다. 이번 토론을 정상적으로 했다면 클린턴은 충분히 트럼프를 공격할 만한 여러 포인트가 있었다. 그런데 그나마 준비했던 것이 영부인인 미셸 오바마가 했던 '그들이 저급하게 행동해도 우리는 품위 있게 행동한다 (When they go low, we go high)'였다. 결국 클린턴은 상대가 망가질 때 굳이 그 상처를 파고 들기 보다는 이미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 관리만 해나가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동석 : 1차 TV토론도 그랬던 것 같다. 클린턴이 저렇게 자제력과 절제력이 있는지 몰랐다. 본인이 차마 견딜 수 없는 이야기가 나오는데도 웃음도 지어 보이고 얼른 화제를 돌리기도하고, 클린턴이 예전의 클린턴이 아니었다. 2차 TV토론 때도 1차 때와 이어지는 입장을 계속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2차 토론의 사회자인 CNN 앤더슨 쿠퍼가 오바마 케어와 관련, 트럼프에게 당신의 전략은 무엇이냐고 구체적으로 물어봤다. 그 때 트럼프가 여기에 대해 얼버무리기만 하고 제대로 이야기를 못했다. 클린턴은 이런 상황을 충분히 캐치할 수 있었다. 거기서 본인의 장점인 정책 문제로 파고들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이 두 번 정도 있었는데 그런 걸 자신의 장점으로 토론회에서 활용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클린턴이 자신의 이러한 강점을 내보이는 것이 유권자들에게 본인을 어필하는데 그렇게 좋은 무기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사실 클린턴은 굉장히 똑똑하고 논리적이고 명석하며 데이터도 많이 알고 있다. 트럼프는 그렇지 않다. 그런데 TV토론에서 이러한 본인들의 특성을 십분 발휘하면 사실 트럼프가 우세하다.
트럼프는 '트럼프 다운'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지지층을 확대해가고 있다. TV토론에서 보여지는 모습을 통해 스윙 스테이트에서 새로운 백인들이 유권자로, 정치권으로 들어오고 있다. 이 사람들을 계속 끌어들이려면 이러한 수준에 맞게 소통해야 하고, 그렇다면 트럼프는 트럼프답게 가는 것이 유리하다. 반면 클린턴은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준비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부동층으로부터 표심을 가져오기에 유리하지는 않아 보인다.
홍일표 : 1차 토론 때 트럼프는 '트럼프다움'을 표현했고 클린턴은 '대통령다움'을 보여줬다고 노력했다는 평가가 있다. 2차 토론에서도 클린턴은 이러한 입장을 유지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게 잘했는지 못했는지의 여부를 떠나서 이 '대통령다움' 이라는 것이 미국 대중들이 지지하고 열광하는 대통령인지가 의문이다.
미국 대중들이 원하는 지도자에 대한 기대가 근원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한다면, 클린턴이 선택한 '대통령다움'은 시대에 맞지 않거나 부적절하다고 설명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클린턴이 '대통령다움'을 잘 보여줬다는 미국 주류 언론의 분석은 여전히 대중의 기대나 열망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주류적 평가에 불과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나?
이건 결과적으로 보면 클린턴의 대선 가도에서 승기가 아니라 제약이 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고, 반대로 트럼프는 '트럼프다움'이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다른 가능성이나 열망을 원동력으로 대선 가도를 중단하지 않을 수 있는 단계가 된 것 아니냐고 해석할 수도 있어 보인다.
안병진 : 기본적으로 미국 대선에서 대통령 후보를 바라보는 유권자의 일반적 키워드는 '반란자'다. 이를 통해 매 선거 때마다 정치판을 새롭게 혁신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코드다. 물론 예외는 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이후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아버지 부시)가 당선됐을 때 미국 유권자는 '대통령다움'을 선택했다. 레이건 시대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 속에서 이를 이어갈 수 있는 후보자를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등장만 보더라도, 미국 유권자들은 그를 '반란자'로 세우면서 새로운 미국을 만들고 싶어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선거를 놓고 보자면 트럼프는 공화당 판 '2008년 오바마'인 셈이다. 즉 미국 유권자들은 트럼프를 매개로 투표를 통해 이른바 '종이돌(paper stone)'을 미국 주류 세력들에게 던지고 싶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는 기본적으로 반란자라는 코드에도 맞다. 특히 그 어느 때보다 주류 세력에 진절머리가 난 시대에서 트럼프는 이런 흐름과도 맞는 후보다.
반면 클린턴은 미국에서 표현하기로는 이른바 '정책광'이다. 역대 클린턴만큼 정책적인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을 찾기 힘들 것이다. 거의 전무후무할 것으로 본다. 그런데 지금 시대에는 이런 사람이 아닌, 종이돌을 던질 사람이 필요하다.
2차 토론 때 아쉬웠던 점을 하나 더 이야기하자면, 중간에 트럼프가 민주당 경선에서 클린턴의 가장 큰 적수였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비아냥거리는 장면이 있었다. 여기서 내가 클린턴이라면 "니가 어떻게 감히 샌더스라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 하느냐, 너는 이야기 할 자격도 안 된다"고 세게 때렸을 것 같다. 만약 클린턴이 이런 발언을 했다면 이게 바로 2차 TV토론의 결정적인 순간이 됐을 수 있을 것이다. 샌더스를 지지하는 이른바 '밀레니얼'(1980년 이후 출생) 세대들에게 어필하는 측면도 있었을 테고.
그런데 클린턴은 이러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음속에서 분노 혹은 감정이 있어야 나올 수 있는 반응인데, 클린턴은 그런 측면이 부족하다. 이게 클린턴의 단점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TV토론은 일종의 '퍼포먼스' 대결인데 2차 토론에서 생각보다 트럼프가 많이 잃은 것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클린턴을 감옥에 보내겠다며 토론에서 '결정적 순간'을 만들어내지 않았나.
김동석 : 트럼프는 이번 선거의 흐름이 어떻게 갈 것인가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보여진다. 대통령이 어때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와 의사소통을 하는 방식을 잘 이해하고 있다.
말씀하신 부분을 기동성 있게 낚아채려면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클린턴은 버니 샌더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런 포인트를 잡아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당내 경선에서 그렇게 혼쭐이 났으면서 배운 것이 없는 것 같다"는 평가도 나온다.
클린턴은 유권자나 시민들, 국민들을 통치의 대상으로만 보는 경향이 있다. 시민과 함께한다는 가능성을 볼 수가 없다. 이것이 여론조사에서 '비호감'으로 나타난다. 클린턴이 주민들과 가까운 거리에서 편하게 이야기하는 이른바 '타운 홀 미팅'을 할 때 직접 현장에 가보면 동네 유력 인사들이나 재력가들로 붐빈다. 돈 많은 자본가들, 똑똑한 지식인 오피니언 리더들을 불러서 토론하고, 이들과 정책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샌더스는 이와는 다르다. 특정 지역에 가서 깃발을 박으면 사람들이 구름같이 밀려 나오게 만든다. 타운홀 방식이 아니고 군중동원식이다. 이게 오바마 대통령이 후보 시절 때 했던 방식인데, 클린턴은 여기서 배운 것이 없는 셈이다.
오히려 시대 흐름에 더 잘 맞는 것은 트럼프일 수 있다. 그는 미국에서 정치에 무관심했던 백인 중하층들로부터 지지를 얻고 있다. 이들이 없다면 트럼프는 선거에서 이길 수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트럼프는 세계가 어떻게 하면 안전해지느냐의 문제보다는 유권자 표심이 중요했을 것이다.
안병진 : 클린턴은 베이비붐 세대다. 2008년 오바마가 당선되면서 한 세대가 넘어간 것인데, 지금 클린턴은 여전히 신자유주의에 적응한, 자신이 속한 세대의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오바마 이후는 혁명을 요구하는 시대라는 점에서 클린턴과 시대는 부조화스럽다. 이 때문에 갖가지 공백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클린턴이 승기는 잡았다. 70대 30 정도로 클린턴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 부조화 속에서 어느 정도의 반작용은 일어날 것이다. 트럼프가 이 공백을 치고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선거가 완전히 끝났다고 보기만은 어려운 상황이다.
김동석 : 클린턴 입장에서는 지난 두 번의 TV토론을 통해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지지층들이 투표장으로 나오도록 견인했어야 했는데, 이게 잘 안된 것 같다. 반면 트럼프는 TV토론에서 샌더스의 지지자들이 투표장에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과 본인의 지지층을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뒀는데, 이 두 가지 측면에서 효과를 봤다.
현시점에서 후보들에 대한 여론 조사 결과를 100% 신뢰하기 어려운 것이, 여론조사를 진행하는 주류 매체들은 지난번에 조사했던 때와 대상이 똑같기 때문이다. 저변의 흐름을 보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트럼프의 지지율이 답보 상태거나 떨어지고 있는데도 돈이 쌓이는 것을 보면 여론조사와 일반 흐름이 다소 다른 측면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반적으로 클린턴 후보 쪽에 자금이 많다고 하는데, 선거 운동의 방식으로 보면 돈이 쓰이는 정도가 다르다. 트럼프는 돈이 많이 들어가는 방식이 아니다. 반면 클린턴은 돈이 없으면 하루도 진행할 수 없는 선거 운동 방식을 쓰고 있다. 어쨌든 결과는 대선 당일에 투표함을 까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정책을 보더라도 클린턴이 트럼프보다 유리하다고 보여지는 것이 별로 없다. 클린턴은 국내외 이슈에 있어서 뭔가 바꿀 수 없을 것 같은,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 식으로 비춰지고 있다. 외교정책보다 국내 이슈에서 이런 측면이 더하다.
홍일표 : 한편으로는 <워싱턴 포스트>의 폭로가 그동안 트럼프를 지켜봐 왔던 사람들에게 새롭거나 놀랄 정도의 일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오히려 언론들이 이번 폭로를 상당히 큰 이슈로 다루고 있다는 분석인데, 더 이상 이대로 트럼프를 내버려 둘 수 없다는 미국 기득권과 주류 질서의 반응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을까?
김동석 : 사실 이번 폭로는 '트럼프답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사안이었다. 그런데 이 폭로가 임팩트가 컸던 것은 미국 국내 정치 상황도 원인이 됐다고 본다.
지난 7월 공화당의 클리블랜드 전당대회 때 공화당은 이미 트럼프를 대선 후보로 인정했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도 트럼프 후보에 대한 지지의사(endorse)를 표명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번 대선에서 대통령뿐만이 아니라 상원의원, 하원의원, 주지사 선거도 함께 열린다는 데 있다.
특히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한 공화당 후보들이 좌불안석이다. 기존 공화당 지지자와 트럼프 지지자가 갈려져 버린 상황에서 이들을 어떻게 봉합할지에 대한 마땅한 방도가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워싱턴포스트> 폭로가 나왔는데, 트럼프에 각을 세워야만 유리한 공화당 후보들은 이 부분을 계속 건드릴 수밖에 없다. 이에 공화당 지도부를 포함해 중도층이 많은 지역구에 출마하는 공화당의 유력 인사들이 트럼프에 대한 공개적인 비난을 했는데, 이러면서 사안이 더 커진 것이라고 본다.
미국 양당 체제 한계 드러낸 대선, 선거 이후엔?
홍일표 :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느냐에 따라 달라지긴 할 텐데 아직까지는 클린턴의 완승이 점쳐지고 있다. 그런데 미국 사회의 저변이 바뀌었다는 것을 대표하는 미국의 새로운 유권자들과 교감하는 측면은 클린턴이 트럼프보다 떨어지는 측면도 있다.
이런 와중에 미국 사회의 변화가 어느 정도 한 사이클을 지났다고 봐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진행 중인 변화라고 봐야 하는 것인가? 이번에 선거가 끝나더라도 정치 지도자가 아니라 사회 전반이 변해야 한다는 열망이나 열기가 남아있게 될까?
특히 클린턴이 이겼다고 가정한다면, 트럼프 지지자는 말할 것도 없고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도 확고한 지지를 받지 못하는 클린턴이 어떤 움직임을 보일까? 클린턴의 행보가 결국 미국 사회의 변화와 맞물려야 할 것 같은데?
김동석 : 지금은 미국 양당 정치의 재편성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링컨의 당이라고 하는 공화당이 갈라질 뻔하지 않았나? 공화당은 트럼프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결국은 갈라질 것이다. 정치권이 시대의 흐름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는 '공화당 대 민주당'의 선거가 아니다. 전선은 여론 주도층과 그렇지 않은 일반 시민 사이에 놓여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미국의 정당은 일정한 시기가 지나면 시민 사회의 흐름 때문에 그 플랫폼도 바뀌게 돼 있다. 민주당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흐트려 놓긴 했지만, 이후에 다시 정체성을 찾고 체제를 갖췄기 때문에 변화를 수용할 수 있게 됐다. 실제 민주당은 정체성 확립을 시작했던 2000년 빌 브래들리 바람이 2004년 하워드 딘으로 이어졌고, 이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당선시키면서 나름의 성공을 거뒀다.
그런데 공화당은 이러한 작업을 하지 못했다. 시도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버지니아 출신의 63년생인 에릭 캔터(3선), 위스콘신에서 올라온 70년생 폴 라이언(4선), 그리고 캘리포니아의 61년생 캐빈 맥카티(초선) 등은 공화당을 재건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의기투합했다. 그런데 이들의 프로젝트는 '티파티'에 가로막혔다. 이후 공화당은 현재와 같은 상황에 놓여있다. 물론 민주‧공화 양당 모두 지금보다 훨씬 더 선명하고 안정된 미국의 비전과 방향을 내놓아야 한다는 숙제를 가지고 있다.
안병진 : 클린턴이 당선되면 공화당은 자중지란에 빠지게 되나?
김동석 : 사실 트럼프 후보가 나온 이후 600만 명 이상의 새로운 유권자들이 공화당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트럼프가 당 권력을 무서워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이 되기도 했다. 그런 측면에서 부통령 후보인 마이크 펜스 같은, 굉장히 이성적인 사람인데 이러한 인물들이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안병진 : 1964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베리 골드워터는 민주당의 린든 존슨에게 무참히 패했다. 하지만 그는 이후 자기 세력을 가지고 공화당을 재편해 나갔다. 그런데 트럼프가 예전 골드워터가 했던 대로, 이번에 새롭게 입당한 사람들을 모아서 그 중심에 설 수 있을까?
그렇다고 지금 공화당에는 민주당의 하워드 딘과 같은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도 없다. 따라서 상당히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운 기간이 오래 지속되지 않을까 싶다. 정당의 재편 과정이 꽤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본다.
홍일표 : 전통적으로 양당 체제 하에서 정책이 만들어지고 집행되는 매커니즘 자체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기 때문에 새 정부가 들어선다고 해도 문제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안병진 : 몇 년 전 토머스 프리드만은 미국의 민주주의에 새로운 동력이 더 이상 없는 것 같다고 평가한 적이 있다. 양당 독점 체제가 점점 부패하기만 하지,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주장이었다. 프리드만이 사실 과격한 인물이 아닌데도 제3당 운동을 하자고 말하기도 했다. 그정도로 사태를 절박하게 봤다는 뜻일 것이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미국은 한국의 총선처럼 '국민의 당'이라는 제3당이 나온 것이 아니라, 샌더스와 트럼프가 양 당을 접수하려고 시도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샌더스는 후보는 되지 못했고 트럼프는 일단 대선 후보까지는 올라섰는데, 이건 제3당의 힘이 양당 내부에 들어가서 교란을 일으킨 것으로 봐야 한다. 이러한 교란이 정당 재편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정당 재편을 섣불리 예측하기는 어렵고, 당분간은 에러와 터뷸런스(turbulence, 난기류) 현상이 계속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전략은? '무(無)전략'이 전략?
홍일표 :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대선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대선 이후를 대비하는 양국의 태도는 상당히 다른 것 같다.
일본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직접 클린턴을 만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트럼프의 외교 자문으로 알려진 마이클 플린 전 미 국방정보국(DIA) 국장을 일본으로 초청하기도 했다. 나름대로 만일의 상황까지 대비하면서 미국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는데, 막상 한국은 별다른 전략이 없어 보인다.
안병진 : 미국에 있는 한 교수님이 한국에 와서 외교부 고위 간부를 만났는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비롯해 변화된 대외 환경에 대해 한국의 전략은 무엇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 관료가 하는 말이 아직 한국은 전략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게 한국의 수준이다.
홍일표 : 일반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보다는 똑똑한 클린턴이 낫다는 생각에 한국에서는 그래도 트럼프보다는 클린턴이라는 분위기가 여전히 깔려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속내를 들여다보고 민주당의 최근 흐름을 보면 클린턴이 낫다고 장담하기가 어려운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 와중에 일본은 자국에 필요한 전략적 행보를 하고 있는데, 당장 한국은 미국 대선판이 펼쳐졌을 때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준비나 논의가 거의 없는 것 같다.
김동석 : 우선 클린턴이 당선되면 구체적으로 뭐가 유리한지에 대해 손익 계산을 해볼 수도 있다. 9.11 테러 이후 극성을 부렸던 외교 안보 영역에서 소위 '네오콘'이라는 무리들이 서서히 클린턴 쪽 캠프에 자신들의 입장을 맞추고 있다. 클린턴이 대선에 나간다고 선언하기 전부터 네오콘들은 클린턴 쪽에 이미 많이 방점을 찍고 있었다.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적 주간 매체인 <위클리 스탠다드>의 편집인이 클린턴에 호의적이었고 네오콘 학자로 불리는 존 볼튼이나 로버트 케이건도 클린턴 쪽과 가깝다. 특히 로버트 케이컨은 클린턴의 정책 자문도 맡고 있다.
한국이 전략이 없다는 측면에는 상당 부분 공감한다. 어떤 한국 의원이 나에게 클린턴이 되면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했던 정책과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북한을 방문한 이야기를 하면서 클린턴에 대한 기대를 하던데,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의견이나 전략 없이 기대만 가지고 있는 것에 대단히 놀랐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한국의 의견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북한 문제만 해도 그렇다. 오바마 대통령은 비핵을 중심에 두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미국을 적대시하는 국가가 있으면 안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란과 쿠바, 북한을 거론했는데 이 중 이란과 쿠바는 일단 협상이 이뤄졌다.
이제 북한이 남았는데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을 정도로 핵 탄두의 소형화‧경량화에 성공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최근 마이크 멀린 전 미국 합참의장이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 발언을 해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와 관련, 엘리엇 엥겔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민주당 간사에게 선제타격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봤다. 그랬더니 엥겔 의원이 이제는 한국의 동의 없이 미국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요즘이 더하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수많은 옵션 중 하나인 핵 시설을 직접 타격하는 문제는 한국의 권력이 하나의 옵션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현지에서는 이러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왜 한국은 자기의 의견 없이 미국의 의견만 듣고 맞추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한국이 분단 체제를 관리하고 평화체제로 가겠다는, 굳건하고 초당적인 국가 차원의 입장이나 전략이 있으면 미국의 새로운 권력은 거기에 맞출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큰 틀에서는 누가 당선되든 간에 한국에서 내부적으로 준비를 잘하는 것이 더 우선이 아닌가 싶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미국 사람들은 한국에서 의원들이 오면 다들 미국에 물어보기만 한다면서, 너네 생각은 뭐냐고 한국 쪽에 되물어보면 가만히 있는다고 하더라.
안병진 : 이야기가 나온 김에 여쭤보자면,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 미국 내에서 여러 가지 해법이 나오고 있다. 실제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어떤 해법을 가지고 가야 한다고 보는지?
김동석 :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안정과 평화라는 부분을 공고히 해내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본다.
우리는 북이 핵을 가졌는지 여부보다는 평화와 안정을 공고히하는 것을 중심에 놓고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인 한국이 이에 대한 확고하고 움직일 수 없는 입장을 계속 보여야 한다. 우리가 절박하다고 하면 계속 그렇게 설득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도 미국이 미국 위주의 시각에서 정책을 만들고 행동도 취하겠지만, 미국은 예산권이 의회에 있기 때문에 한국에 비해 결정 과정이 훨씬 오래 걸린다. 미국 대통령뿐만 아니라 의회도 설득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너무나 철딱서니 없는 언급이 나왔다. 한국도 핵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는 한국도 북한처럼 되자는 것이나 다름 없는 말이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고 이른바 '불량 국가'가 되자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오바마가 가장 흔들리지 않는 정책이 '핵 없는 세계'다.
안병진 : 한국은 대통령 중심제라는 말을 즐겨 쓰는데,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미국은 대통령이 있긴 하지만 의회가 많은 것을 결정한다. 레이건이든 닉슨이든 과거 의회와 예산권 싸움에서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채널이 상당히 많은 것이다. 그런데 이런걸 모르고 미국에서 누군가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그 사람한테만 관심을 가지고 부산을 떨고 있다. 미국 정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오는 현상이라고 본다.
김동석 : 의회에서 여론을 만드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로비를 통해서도 가능하고 대사관에 있는 외교관들이 열심히 일을 해서 만들 수도 있다. 더구나 지금은 선거 철이다.
한편으로는 "미국에 한국 입장을 이야기하는 것은 정부가 할 일이니까"라며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야당이 더 답답하다. 본인들이 절박하면 짐 싸 들고 미국에 가서 외교위, 국방위 소속 의원들을 만나면 된다. 의원들끼리 만난다는데 뭐가 문제가 되겠나? 일본은 이런 활동을 엄청 많이 한다. 인도는 수도 없이 미국 의회를 기웃거리고 있다.
홍일표 : 외교는 외교부가 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외교부는 '외교란 미국의 말을 잘 듣는 것'이라고 생각하다 보니 사실상 한국에 외교가 없다는 말도 나온다. 한편으로는 정부가 하는 외교 외에 공공외교나 의원 외교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공공외교는 정부가 주도하고 있고 의원외교는 의원들이 '외유'를 나간다고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말씀하신 의원 외교를 통해 구체적인 성과를 냈던 경험이 많지 않다 보니 외교에 공백이 생기고, 전체적으로 한국 외교의 수준이 낮아지는 것 같다.
김동석 : 한국은 공공외교가 중요하다면서도, 이와 관련한 예산은 외교부로 간다. 거기서 조직을 만들고 예산을 짠다. 정부를 대표해서 전통적인 외교를 하는 외교부 산하에 정부 외의 영역에서 외교 행위를 벌여야 하는 공공외교 관련 예산이 들어가는 상황이다. 물론 공공외교 측면에서 대표적인 행위자라고 할 수 있는 시민단체의 경우에도 어떻게 외교를 펼칠 것인가에 대한 전략이 너무 없다는 문제도 있다.
미국 의회를 다니면서 한인은 미국 내에서 마이너리티에 속하다 보니, 우리의 이야기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엮어서 발언을 내게 하는 방식을 생각해 보기도 했는데, 이것보다는 오히려 반대하는 사람들의 메시지 톤을 낮추는 것이 효과가 높았다. 한국의 공공외교도 직접 부딪혀 보고 정교한 전략을 짜는 것이 필요하다. 학자들끼리의 네트워크, NGO, 해외 동포 활용 등 다양한 방식이 있을 수 있다.
홍일표 : 이번 미국 대선에서 나타난 샌더스‧트럼프 현상, 그리고 2008년에 나타났던 오바마 현상까지, 따지고 보면 미국 사회의 저변이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 그런 측면에서 정부가 하는 외교가 아니라 공공외교를 수행했다면 미국이 무언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감지도 하고 좀 더 많은 정보를 들을 수 있는 네트워크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현재까지 우리가 외교를 하거나 다뤄온 방식을 보면 저변의 흐름을 모르거나 혹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치부하면서,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의 접근을 고수하고 전통적인 채널만을 가지고 미국을 해석‧예측하려 했다.
원래 전략이 없었다는 점은 논외로 치더라도, 미국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는데 이러한 변화를 인지하지 못한 채로 이를 대비해야 하는 상황으로 와버린 것 같다.
안병진 : 이는 어쩌면 학계 문제와도 긴밀이 연관돼 있는 것이다. 세계가 급변하는 대전환기에는 기존의 전통적 틀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이를 설명하려면 미국처럼 융‧복합적인 사고가 DNA 속에 뿌리 깊게 각인이 돼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융복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기존 학과와 기존 교과서를 가지고 그 속에서 기존 이익이 분배되는 구조다. 그러다 보니 이런 전환기에는 더 대응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속에서 공공외교라는 매력적인 개념이 나왔다. 한국이 원래 이런 것에 대한 수용은 빠르니까 흡수하긴 했는데 이걸 이상한 방식으로 받아들였다. 창조경제만 해도 주도적인 역할을 국가가 가져가 버리지 않았나? 공공외교를 비대화된 국가의 형태로 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 대선,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Brexit) 등을 보면 전 세계에 소위 '트럼프 주의'가 만연하고 있는데, 여기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이 없다. 특히 한국에서는 사회주의가 붕괴한 이후 거대한 서사가 사라졌다. 글로벌한 흐름을 꿰뚫어보면서 미시적으로 파고들어야 하는데, 거대한 서사가 사라지니까 더 대응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대선 후보가 내는 정책 전략이 다 협소하게 나온다. 사실 미국보다 우리가 더 심각하다.
김동석 : 그래서 미국의 변화가 내년 한국 대선에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다. 한국의 학자들이 미국의 변화에 대해 책임 있게 연구해서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올바르게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또 한국은 미국의 일반 유권자 흐름에 영향을 빨리 받는 국가이기도 하다. 버니 샌더스가 떠오른 이유는 월스트리트의 폐단을 보고 젊은 층이 중심이 돼서 활동했던 흐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진보적 단체들과는 결이 다르다. 이 흐름이 유권자와 연결되니까 힘을 갖게 됐는데, 이를 놓고 봤을 때 과연 한국 내 시민단체의 동력이 표로 연결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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