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는 "사드 배치를 위한 제반 절차를 잠정적으로 중단하고, 북핵을 완전히 폐기시키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다시 하자는 것"이고, 또 하나는 "국회의 비준동의"다.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고, 또한 공론화가 필요한 제안이다.
하지만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문 전 대표의 제안을 두고 "가장 기뻐할 세력은 김정은 정권일 것"이라며 색깔론으로 응수했다. 그만큼 사드는 정부여당에겐 문 전 대표를 비롯한 야권을 공격하는 '정치적 무기'가 되고 있다.
체념론은 금물!
문재인 전 대표의 글에서 내 눈에 가장 크게 띈 대목은 "이제 와서 (박근혜) 정부가 동맹국인 미국과 한 합의를 번복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부분이다.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로 여기자는 취지는 아니겠지만, 이러한 인식에는 큰 문제가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우선 이러한 인식은 체념론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사드에 반대하거나 찬반 입장을 정하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한미 양국이 합의한 마당에, 이제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종종 듣곤 한다. 이러한 와중에 야권의 유력한 대선 후보의 이와 같은 입장은 결코 적절하다고 볼 수 없다.
"동맹국인 미국과 한 합의가 번복"된 경우도 많다. 1992년 1월 노태우 대통령과 조지 H.W 부시 대통령이 합의했던 '팀 스피릿' 훈련 중단은 9개월 후에 한미 국방 장관에 의해 '번복'되었다. 당시 양국이 합의했던 주한미군 3단계 감축 계획도 북핵을 이유로 번복되었다.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합의 '번복'이다. 2012년 4월에 받기로 했던 합의는 이명박 정부에 의해 번복되었고, 2015년 12월에 받기로 했던 것도 박근혜 정부에 의해 번복되었다. 물론 일방적인 번복이 아니라 한국의 연기 요청에 미국이 응해준 사례들이다.
이처럼 한미 간의 합의는 결코 '불가역적인' 것이 아니다. 달라진 상황에 따라, 혹은 어느 일방의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문 전 대표는 한미 양국 정부에게 사드 '재논의'를 촉구했어야 했다. 이게 '선 북핵 협상, 후 사드 검토'라는 문 전 대표의 제안 취지에도 부합한다.
더구나 사드 배치 결정은 차기 미국 정부에 의해 '재고'될 수밖에 없다. 중국과 러시아가 전략적 대응을 경고하고 있는 상황에서, 재고의 결과는 예단할 수 없지만, 미국의 다음 정부는 사드 배치에 따른 전략적 득실관계를 따져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 미국 다음 정부, 사드 배치 '재고'할 것)
돈, 안보, 주권...사드가 국회 비준동의 대상인 이유
문 전 대표는 또한 사드 부지로 발표된 "롯데골프장의 경우 부지 매입비용에만 적어도 1000억 원 이상 소요될 것으로 관측된다"며,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수반하는 만큼 국회의 비준동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더불어민주당의 우상호 원내대표도 주장한 부분이다.
정확한 비용은 나오지 않고 있지만, 사드 배치에 따른 한국 측 재정 부담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부지 매입 비용, 세계 최고 수준을 요구하는 펜타곤 기준의 건설비, 그리고 방위비 분담금에서 전용될 것으로 보이는 운영유지비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마땅히 국회에서 검증하고 또 동의를 받아야 할 부분들이다.
하지만 국회의 비준동의 사유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드 배치는 한국의 '안보상의 부담'과 '주권의 제약'을 수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사드 배치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거해 결정된 만큼 국회 비준동의가 불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건 사드의 수요가 한반도에 국한될 때 성립할 수 있는 이야기다. 거꾸로 사드가 제3자를 겨냥할 가능성이 있다면, 이건 상호방위조약의 위반 소지까지 안게 된다.
이미 앞선 글들에서 밝힌 것처럼, X-밴드 레이더(AN/TPY-2)는 '종말 모드'와 '전진 배치 모드'로 겸용이 가능해질 정도로 진화하고 있다. 또한 미국 본토에 있는 전략사령부 등 한국 '밖'의 사령부에 설치된 지휘통제전투관리통신(C2BMC) 본부에는 원거리에서 X-밴드 레이더를 통제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설치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에게 두 가지 문제, 즉 '안보상의 부담'과 '주권의 제약'을 동시에 수반하게 된다. 한국에 배치된 레이더가 중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제3자의 탄도미사일을 탐지․추적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유사시 한국의 사드 기지는 이들 나라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 한국이 미국에게 이들 나라를 겨냥하는 레이더 기지를 제공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이건 한국에겐 중대한 안보 문제이다. 그런데 레이더는 한국의 주권 '밖'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주한미군뿐만 아니라 전략사령부와 태평양사령부와 같은 해외 사령부도 레이더의 통제권을 '기술적으로'는 보유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박근혜 정부는 최소한 미국으로부터 사드 기지를 오로지 대북용으로만 사용하겠다는 법적 구속력을 갖춘 확약을 받아내야 한다. 그리고 이 확약은 국회에서 검증되고 비준동의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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