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가 기반에 해당하는 '기록의 작성 및 공개 체계'가 무너지고 있다. 대통령 및 고위 공직자들이 결정한 의사 결정에 대해 근거 자료를 남기지 않거나 비공개하는 것을 당연히 생각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국가의 세금 집행 과정 및 의사 결정 과정이 불투명하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그 결정판이 바로 서별관 회의이다.
지난 9월 8일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서별관 청문회에서 "서별관 회의는 정책을 결정하는 곳이 아니고 협의를 위한 곳"이라며 "지금까지 회의록도 안 만들었다. 앞으로 회의록을 작성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서별관 회의록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지, 회의록 자체가 없는지 논란이 있었으나 주무 장관이 회의록이 없다고 공식적으로 확인시켜준 것이다. 게다가 유일호 부총리는 관련 법이 없어, 회의록을 만들지 않았다고 발언했다.
나는 기록 관리 활동가로 이 장면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서별관 회의는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 한국은행 총재 등이 주축으로 참여하고, 대우조선해양에 4조2000억 원이 넘는 돈을 지원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곳이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회의체가 기록을 남기지 않는 것이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우선 공공기록물법 시행령 제18조(회의록의 작성·관리) 3항에는 회의록을 반드시 작성해야 할 요건으로 ‘주요 정책의 심의 또는 의견 조정을 목적으로 차관급 이상의 주요 직위자를 구성원으로 하여 운영하는 회의’는 반드시 회의록을 작성하도록 하고 있다. 정확히 '서별관 회의'와 같은 태스크포스(TF) 성격을 가진 회의체를 위해 만든 조항이다.
법에 따르면 회의록에는 '회의의 명칭, 개최 기관, 일시 및 장소, 참석자 및 배석자 명단, 진행 순서, 상정 안건, 발언 요지, 결정 사항 및 표결 내용에 관한 사항'이 기록 되어야 한다. 만약 서별관 회의가 이 순서대로 기록되었다면, 참석자 중 대우해양조선에 누가 지원을 주장했는지, 반대했는지 명확히 판명 될 수 있을 것이다. 국회 입법조사처에서도 지난 7월 서별관 회의는 '회의록 작성 의무가 있다'고 확인시켜주었다. 그런데도 부총리는 관련 법이 없다며,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은 것을 당연히 여기고 있다.
더욱 문제는 이 회의는 청와대에서 개최되었다는 점, 대통령 보좌 역할을 하는 회의체였다는 점, 경제수석이 참여했다는 점에서 대통령 기록으로 관리해야 한다. 대통령기록물법에는 대통령기록물의 범위를 대통령 및 대통령의 보좌 기관·자문 기관 및 경호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에서 생산하는 기록이라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 기록은 일반 기록물보다, 기록 작성이 더욱 철저해야 하며 그 관리가 엄격하다.
어떤 회의가 개최되어 회의록 공개 시점과 관련해서는 논쟁이 있을 수 있으나, 기록 자체가 없다는 것은 영원히 책임을 규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대우조선해양에 지원한 4조2000억 원은 책임과 근거 없이 유령들이 결정해 집행한 돈이 되어버린 것이다.
만일 회의록을 만들었는데, 없다고 주장하면 어떻게 될까? 대통령 기록인 회의록이 존재하는데, 없다고 주장해 은닉할 경우 대통령기록물법 제 14조(무단 파기·반출 등의 금지)에 해당할 수 있다. 이 조항은 '대통령기록물을 파기·손상·은닉·멸실 또는 유출'할 경우 7년 이하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향후 회의록이 애초에 없었는지, 이를 은닉했는지는 다시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공공기록물법 시행 16년(2000년), 대통령기록물법 시행 9년(2007년)이 흐르고 있다. 지난 9월 5일에는 전 세계 기록 관리 올림픽인 ICA 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그런데 청와대에서, 주요 경제 수장들이 참석하는 회의가 관련 법이 없이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았다고 발언하는 것을 본다는 것은 매우 충격적인 일이다.
내가 참석하는 서울시 정보공개심의회에 사례를 인용해 보자. 서울시 정보공개심의회에는 시민들의 정보 공개 청구에 대해서 이의 신청 및 직권 심사를 다루는 곳이다. 이 회의는 박원순 서울시장 부임 이후 매 회의 때마다 속기사가 배석하여, 심의 위원의 발언 전체를 기록하며 향후 보정 작업을 마친 후, 서울정보소통광장에 대법원 공개 판결기준에 따라 공개하고 있다.
이것이 시민들의 위임을 받은 공직자 및 회의체가 해야 할 의무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이후 급속히 위축되고 있는 정보 공개 실태, 부실해지고 기록 체계 그리고 반복되는 참사와 책임자의 부재. 과연 우연히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 견고하게 엮여 있던 국가 시스템의 실타래가 서서히 헝클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많은 시민은 받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가 더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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