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이 망친 경기다. 29일 미국에서 열린 리틀 야구 월드 시리즈에서 한국 대표 팀은 준우승에 그쳤다고 한다. 미국 언론의 표현대로 미국 선수보다 더 높은 수준의 재능을 가졌지만 1대2로 패한 것이다.
선발 투수 정준호는 일곱 타자 연속 삼진 포함 4이닝 9탈삼진을 기록하는 등 한국 투수들은 6이닝 동안 11탈삼진이라는 놀라운 피칭을 선보였다. 타자들도 이번 대회 팀당 최다 홈런인 10개를 기록한 최강 실력의 팀이었다. 그러나 감독이 우리 어린 선수들을 주눅 들게 했고 극도로 긴장하게 만들었다.
리틀 야구가 군대 야구냐
중계방송에 잡힌 한국 팀 감독의 모습은 리틀 야구 감독이 아니었다. 경기가 자기 마음대로 전개되지 않는다고 노골적으로 짜증을 내고 어린 선수들의 실책을 무섭게 질책하는 듯한 그의 모습은 유소년 스포츠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듯했다.
경기를 본 네티즌조차 "아이들인데" "군대냐" "무서워서 경기 하겠냐"의 반응 일색이다. 감독의 지시에 "네, 네" 하는 모습은 군인들의 모습이었다면서 다른 팀이 투수를 교체할 때 감독이 마운드에 있는 투수를 안아주며 격려하는 모습과 비교하기도 했다.
사실 군대보다 더 심한 게 한국의 스포츠다. 고교 야구 경기장에 가보라. 이닝을 마치면 선수들은 자신의 수비 위치에서 덕아웃으로 전력 질주를 해야 한다. 힘든 수비를 마치고도 그들은 덕아웃에 들어가지 못한다.
감독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서서 열중쉬어 자세에서 '지적질'을 당해야 한다. 그러다 감독이 "알았어!" 하면 잽싸게 차렷 자세로 바꾸며 "네"하고 크게 답하고 다시 열중쉬어로 돌아간다. 이게 어디서 하는 짓인가. 군대에서나 하는 짓이다.
유소년 스포츠가 만만해 보이나
결승전에 임하는 한국 팀 감독은 이 경기가 미국과 한국으로 위성중계되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정도로 '무서운 감독님'임을 숨기지 않았다면 평소 훈련 때는 어떠했을까.
우리 스포츠가 얼마나 억압적이고 폭력적인지에 대해 이미 알고 있던 나조차 이날 경험한 '한국의 리틀 야구'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무서운 감독님' 외에 또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리틀 야구에서 무슨 작전을 그렇게 많이 쓰는가. 4할 타자에게 번트를 지시하다니. 이것은 이 경기가 선수를 위한 경기가 아니라 감독을 위한 경기라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또 감독은 4회 1사 2, 3루의 위기에 몰리자 내야수들에게 전진 수비를 지시했다. 결과는? 미국 타자의 빗맞은 타구가 내야수 키를 넘기는 바람에 미국은 선취 득점을 했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 〈유에스에이투데이〉는 감독이 지시한 전진 수비에 대해 이렇게 꼬집었다. "수비수들이 정상 위치였다면 충분히 잡았을 것"이라고.
결국 팀 전체가 흔들린 듯하다. 그때까지 7타자 연속 삼진을 기록하던 정준호는 바깥쪽으로 확 빠진 공을 던졌고 이 공은 긴장했던 포수의 미트에서 튕겨나갔다. 이렇게 해서 그때까지 공을 맞히기도 힘들었던 미국 선수들은 졸지에 결승점까지 얻게 된다.
감독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1루가 비었으니 더블 플레이를 노리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한 점도 주지 않겠다는 욕심에 전진 수비를 지시한 것인데 스포츠 심리학은 둘째 치고 유소년 스포츠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기에 가능한, 무모한 판단이다.
한 점도 안 먹겠다고 열두세 살 먹은 아이들에게 전진 수비 시키고 또 4할 타자에게 번트 시키는 것은 아이들을 더욱 긴장 상태로 몰아가는 것이다. 프로 선수조차 이런 경우 극도의 긴장 상태에 빠지게 마련인데 이를 월드 시리즈에 나선 열두세 살짜리 아이들에게 시킨다? 유소년을 지도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운동 열심히 하는 이유? 혼나지 않기 위해
유소년은 물론 청소년에게 운동을 가르치는 사람이 가져야 할 덕목은 무엇인가. 엄한 감독인가? 스파르타식 훈련? 정신력 강조? 군대식 기강? 아니다. 전혀 아니다. 운동을 재미있게 가르치는 지도자, 아이들에게 자상한 감독이다. 그래서 운동을 하고 싶게 만들고 운동하는 시간을 즐거운 시간으로 만드는 감독이다. 시키는 게 아니라 하게 만드는 지도자다.
우리가 스포츠 선진국이라고 여기는 나라의 유소년 및 청소년 스포츠 지도자들은 경기 중 실수했다고 혼내지 않고 중요한 경기라고 하루 종일 운동시키지 않는다. 그놈의 '폼' 가지고 아이들 잡지도 않는다.
한국 스포츠 최고로 슬픈 순간은 어린 선수들이 경기 중 실수한 바로 그 찰나에 감독을 쳐다보는 것이다. 어떤 선수들은 심지어 실수를 하면 이를 만회하기 위한 다음 동작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멈춰서기까지 한다. 속으로는 "아~ × 됐다" 탄식하면서 말이다. 왜? 이제 '감독님'에게 또 혼나야 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두들겨 맞거나.
한국 리틀 야구 팀은 인터내셔널 챔피언
바로 잡아야 할 게 있다. 언론에서는 한국 팀이 "준우승했다"고 쓰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한국 리틀 야구 팀은 미국을 제외한 8개 대륙권역 대표 팀과의 시리즈에서 우승한 '인터내셔널 챔피언'이다. 인터내셔널 챔피언인 한국 팀과 미국 지역 챔피언인 뉴욕의 메인-엔드웰 팀과 월드 시리즈를 벌여 미국이 이겼을 뿐이다. 이른바 '슈퍼 매치'를 한 번 더 치렀을 뿐이다.
그래서 미국 언론도 한국 팀이 '준우승(second-place)했다'는 표현을 쓰지 않는 것이다. '인터내셔널 챔피언 한국 팀과의 월드 시리즈에서 미국 팀이 승리'한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언론은 이를 '결승에서 패한 준우승'으로 만들어버렸다.
누구를 위한 스포츠인가? 감독? 선수?
한국 스포츠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한국의 스포츠는 협회를 위해 존재하고 감독을 위해 존재한다. 이런 어린 선수들은 협회와 감독의 도구일 뿐이다. 21세기 들어 정부가 때만 되면 스포츠계를 바꾸고 혁신하겠다고 했는데 결과는 어떠한가. 요즘 한국 스포츠 돌아가는 꼴을 봐라. 옛날보다 나아졌는가?
희망이 보이기도 한다. 2014년 리틀 야구 월드 시리즈에 출전한 한국 팀을 지켜봤던 한 기자는 당시 모습을 이렇게 설명한다.
당시 대표 팀 아이들은 야구도 열심히 하고 놀기도 열심히 놀았습니다. 다음날이 경기인데도 미국 시골 농장에 찾아가 말도 타고 마음껏 뛰놀았죠. 쇼핑몰도 자주 가고 오전 훈련이 끝나면 아이들은 오후 내내 수영장에서 신나게 놀았습니다. 특히 월드 시리즈 전날엔 마이너리그 경기를 관람했죠. 아이들에겐 정말 좋은 추억이 됐을 겁니다. 그렇게 휴식을 취하며 야구 외적으로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아이들은 더 강해졌습니다. 경기 자체를 즐긴 거죠.
이 2014년 팀은 월드 시리즈에 올라 미국 팀을 8 대 4로 격파하고 월드 챔피언이 됐다. 일장춘몽이라고 했나. 이번 대표 팀은 쇼핑몰 한 번 안 가고 매일 훈련했다고 한다. 심지어 야간훈련까지 했다고 한다. 감독이 '리틀 김성근'이란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리틀 야구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이렇듯 한국 스포츠는 감독이 문제다. 김인식 감독은 자서전에 이렇게 썼다. "진 경기를 감독이 이기게 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감독 때문에 다 이긴 경기가 뒤집히는 경우는 숱하게 봤다"고 말이다.
이런 꿈나무들을 억압적으로 가르치는 지도자들은 재교육을 받거나 배제되어야 한다. 우선 아이들을 멍들게 하고 운동을 부정적으로 대하게 된다. 이는 대를 이어 반복된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감독이 망친 게임도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감독의 잔소리에 겁먹고 주눅 들어 뛰어 제 실력 발휘도 못했지만 그저 자기가 경기를 망쳤다고 자책한다. 한 미국 기자가 한국 기자에게 던진 질문이다.
한국 어린이들은 인터내셔널 챔피언에 올랐다. 미국 뉴욕 아이들과의 결승전은 보너스 게임이었다. 그런데 보너스 게임에 졌다고 저토록 슬프게 우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어른들이 이 장한 아이들을 자책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우리가 이 자랑스러운 인터내셔널 챔피언들을 울게 만든 것이다.
운동하는 시간은 재미있는 시간, 아이들이 '칭찬받는 시간'
어린 아이들이 운동을 하다가 떨어져 나간다. 관둔다는 말이다. 왜? 겁이 나서. 하도 맞아서. 내 아들 친구는 중학교 때 수영이 좋아서 수영부에 들어갔다고 한 달 만에 관두고 나왔다. 왜? 무서워서. 그놈의 감독님이라는 사람들 때문에 아이들이 무서워서 하고 싶은 운동도 못한다. 초등학생을 50대, 100대 때리는 게 한국의 스포츠다.
외국에서 감독님이란 운동을 가르쳐줄 뿐 아니라 경기장에서 선수들을 응원하는 사람이다. 긴장한 선수들을 격려하는 사람이고 또 실수를 하더라도 괜찮다며 등을 두드려주는 사람이다. 경기가 끝나면 이기건 지건 "너희들이 자랑스럽다"고 칭찬해주는 사람이다. 결국 아이들에게 있어서 운동하는 시간이란 첫째 '재미있는 시간'이고 둘째 '칭찬 받는 시간'인 것이다. 운동, 하고 싶겠나 안 하고 싶겠나. 어른들만 끼어들지 않으면 아이들은 신나게 운동한다.
가끔 내 칼럼을 읽은 사람들이 이메일을 보내온다. 그 중 기억에 남는 하나. "제가 살면서 많은 결정을 해봤지만 그 중 가장 잘 한 게 어릴 때 운동 관둔 거였습니다." 캐나다의 한 대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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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와 대중문화 뿐 아니라 세상사에 관심이 많아 정치 주제의 글도 써왔다. 인간의 욕망과 권력이 관찰의 대상이다.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네소타대에서 스포츠문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미래는 미디어가 지배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아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아대 체육학과 교수, 부산관광공사 사장을 지냈다. <미국 신보수주의와 대중문화 읽기: 람보에서 마이클 조든까지>, <스포츠코리아판타지>, <어퍼컷>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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