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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생 OT요? 38만 원 내고 얼차려 받는 자리죠!"

[정희준의 어퍼컷] 악의 뿌리가 된 대학교 학생회

모 체육 대학 학생회가 주관하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논란이 됐다. 과도한 금액을 책정하고 참석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3박 4일 일정의 행사를 교내 기숙사를 활용해 진행함에도 불구하고 그 비용이 무려 38만 원이다. 금액도 금액이지만 불참자도 돈을 그 돈을 고스란히 내야하고 불참 시 장학금 심사에도 영향을 준다는 문구는 사실상 겁박이다. 입학에 들뜬 신입생과 자식 잘 되기만을 바라는 부모들의 심리를 이용한, 장사꾼 못지않은 아주 못된 상술이다.

올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실시하는 몇 개 학교를 알아보니 수도권 모 대학교 사회대는 2박 3일에 9만 원, 부산의 모 대학교 공대는 5만 원, 내가 재직하는 동아대학교 예술체육대학은 10만 원이다. 모두 교외에서 진행함에도 10만 원 이하다. 10여 년 전 동아대는 신입생 전원을 대상으로 경주의 특급 호텔에서 2박 3일간 오리엔테이션을 수년간 실시했는데 학교가 전액 부담했고 신입생들은 무료로 참여했다. 그러니까 이삼일 정도 교외에서 하는 오리엔테이션도 학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학교가 직접 실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이렇게 학교 밖까지 가서 3일 동안 잠까지 재워가며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 2년 전 바로 이즈음인 2월 17일 저녁 경주의 한 리조트에서 부산외국어대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중 지붕이 무너져 무려 10명이 사망하고 214명이 부상했던 충격적 사건 이후 잠시 잠잠했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다시 고개를 내밀고 신입생들에게 돈과 참여를 강요하는 그 이유 말이다. 나도 대학을 다녀봤지만 내가 입학했을 때엔 학교 체육관에서 오후 한나절 하고 끝났다. 그러나 학교 다니고 졸업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그런데 왜?

학생회, 그 가벼운 존재의 이유

부산외국어대 참사 때 학교 측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교내에서 진행할 것을 제안하며 교외 행사를 금지했으나 총학생회 측이 이를 어기고 학생들에게 회비를 걷어 강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학생회는 왜 그랬을까. 이는 부산외대뿐 아니라 다른 대학 총학생회도 마찬가지다. 그 이유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그들의 존재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요즘 대학 총학생회가 가장 역점을 두는 사업은 보통 가을에 하는 축제와 함께 겨울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다. 이 두 개의 행사가 그들에게 돈과 권력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이른바 '운동권'이 총학생회를 지배하던 20세기가 과거가 된 지금 대학 총학생회는 그들의 정체성은 물론 존재감 유지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들이 선거 때 내세우는 공약은 학생들의 후생 복리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 대부분이 사실은 학생처의 기존 업무로 학교가 학생들의 요구를 반영해 알아서 하면 되는 것임에도 학생회가 끼어들어 자신들의 역할과 성과를 과대 포장해 왔다. 그러나 이런 것 가지고는 자신들의 존재감을 알리기가 여의치 않다. 그래서 그들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축제 때 '얼마나 유명한 가수를 부르느냐', 그리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얼마나 성대하게 하느냐다.

그러나 이 둘 모두 교육적 차원에서 볼 때 그 역할과 의미는 매우 문제가 많다. 이미 거의 모든 대학의 축제들은 '상아탑'이나 '지성의 전당'과는 거리가 먼 술판이다. 축제 때가 되면 캠퍼스는 거대한 술집 그 자체다. 곳곳에 차려진 술집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기 힘들다. 동아리나 학생회 소속 학생들은 대학에서 처음으로 '술장사'를 배운다. 술장사해서 번 돈으로 술 마시러 간다. 그리고 시내 각 대학 총학생회들은 축제 때 일합을 겨룬다. 어디가 더 인기 있는 아이돌을 섭외하는지, 어느 학교 축제에 더 섹시한 가수를 부르는지를 놓고 말이다. 여기서 이기는 총학생회가 진정으로 능력 있는 총학생회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역시 못지않게 중요하다. 총학생회가 순진한 신입생들 앞에서 폼 잡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축제의 경우 학생회에 대한 비판과 함께 그 잘못된 세태를 바로잡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겠지만 총학생회가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오리엔테이션을 한다는 것은 그 시작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어떻게 학생이 다른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할 수 있나. 신입생들 지도는 전적으로 학교가 책임 있게 해야 할 일이지 총학생회에 맡길 일이 아니다.

이번에 기사화 된 모 대학 체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학교 경험이 있다고 해도 학생이 학생을 지도하겠다는 것을 허용하는 것부터 매우 잘못된 처사일 뿐 아니라 신입생에게 무려 38만 원이나 되는 돈을 등록금 외에 또 내게 했다는 것은 학교 및 교수들이 자신들의 책임을 방기하고 학생회에 떠넘긴 것과 다를 바 없다. 게다가 이 행사는 폭력마저 동반한다. 한 학생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이렇게 설명한다.

"38만 원 내고 기합 받으며 체대 교가 외우는 거예요."

우리 대학의 학생회 문화는 매우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총학생회도 이 지경이지만 단과대 학생회와 학과 학생회로 내려갈수록 폭력적인 문화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신입생 환영을 빙자해 술 마시기를 강요하고 집단으로 신체적 폭력마저 행사한다. 이로 인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이러한 문화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이유는 이러한 캠퍼스 폭력에 관대한 사회 분위기에도 있지만 이를 방기하는 교수들이다. 특히 예체능 분야 교수와 규모가 작은 대학의 교수 중에는 이를 오히려 조장하고 즐기는 이들도 있다. 군대까지 갈 것 없다. 우리나라는 대학이 '얼차려 문화'를 사회에 확산시키는 요새다.

악의 뿌리가 된 학생회

'환영'을 빙자한 또 다른 나쁜 문화는 바로 대학의 신입생 환영회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아이들'이 한국 사회의 나쁜 것부터 배우는 공간이 바로 신입생 환영회다.

한국 사회의 가장 나쁜 것을 꼽아보자.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나는 폭력이라고 본다. 아이들끼리 서로 주먹 휘두르고 싸우는 수준을 넘어 교사가 학생을 때리고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고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곳이 우리나라다. 우리는 폭력을 어릴 때부터 배운다. 모든 한국인은 가정에서 먼저 폭력에 노출되고 곧이어 학교에서 정당화된 폭력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데 고등학교까지 이 폭력의 주체는 교사였다. 그런데 대학에서는 교수가 교사들처럼 학생들의 일상적 행동, 즉 생활까지 간섭하지 않는다. 당연히 폭력의 진공상태가 발생하는데 여기에 학생들이 스스로 들어가 권력을 형성하고 폭력을 행사한다. 그 매개는 이른바 '학번'이다. 선배들이 권력을 잡고 후배들은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된다. 이를 공식화 하는 게 학생회고 이를 뒷받침하는 비공식적 방식이 바로 집합이다.

대학에 들어가면 경험하게 되는 모임으로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개강 집회, 종강 집회, MT 등이 있고 그 외 무수한 '집합'이 있다. 보통 체육 관련 학과만 이런 집합 문화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많은 학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 공통점은 전공의 특성 자체가 집단적이라는 것이다.

연극영화과, 무용과와 같이 공연이 필수적인 전공, 생리학, 물리학 같은 실험실 군기(?)가 필요한 전공, 의학, 간호학처럼 응급실과 수술실에서의 위계가 강조되는 전공들이 그러하다. 여러분들은 여학생으로 이루어진 간호학과의 군기가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전혀 모를 것이다.

학생이 학생을 가르쳐?

그러나 이미 우리가 경험했듯 대학교 내 억압적 문화는 이런 학과들에 제한되지 않는다. 대학이라는 교육 기관이 잘못된 회식 문화와 술버릇과 위계에 의한 억압과 폭력을 생산하고 전파하는 공간으로 남아있는 것을 우리는 용납할 것인가.

오리엔테이션은 분명 교육이다. 그렇다면 책임 있고 자격을 갖춘 교육자들이 해야 한다. 이를 학생회에 떠넘기는 것은 책임의 방기다. 그리고 단지 학교에 먼저 입학했다는 이유로 학생이 학생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걸 허용하기 때문에 수많은 오리엔테이션과 학과 모임에서 학생들 간 구타가 발생하는 것이다.

대학에서 모든 지도와 교육은 교수나 직원이 해야 한다. 전공이나 교양에 대한 탐구, 자기 계발, 친목 도모를 제외한 모임에 대해서는 인정이나 지원에 신중해야 한다. 그리고 위계에 의한 모임, 즉 '집합'은 금지해야 한다. 학생회 임원들은 자신들의 존재감 부각을 위해 별 필요도 없는 모임을 자꾸 가지려 하고 또 이를 강제화 하려 한다.

게시판 벽보도 있고 카톡도 가능하지만 자꾸 모이게 하는 바람에 학생들의 학원 수강 등 자기 계발을 오히려 방해하고 아르바이트도 못 가게 만드는 학생회도 많다. 이런 학생회는 대학의 적일 뿐 아니라 미래 한국 사회의 암적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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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준

스포츠와 대중문화 뿐 아니라 세상사에 관심이 많아 정치 주제의 글도 써왔다. 인간의 욕망과 권력이 관찰의 대상이다.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네소타대에서 스포츠문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미래는 미디어가 지배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아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아대 체육학과 교수, 부산관광공사 사장을 지냈다. <미국 신보수주의와 대중문화 읽기: 람보에서 마이클 조든까지>, <스포츠코리아판타지>, <어퍼컷>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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