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삼성반도체)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에 걸린 직원들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달라며 소송을 냈지만 최종적으로 패소가 확정됐다.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30일 삼성반도체 전 직원 김모(47)씨와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모(2005년 사망)씨의 부인 정모(39)씨 등 3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앞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을 하다 급성 백혈병과 악성 림프종에 걸린 노동자와 그의 가족 5명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산업재해를 인정하라며 낸 소송을 낸 바 있다.
김 씨 등 5명은 "삼성반도체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이 발병했으므로 산재로 보상받아야 한다"며 2007∼2008년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등을 신청했으나 공단이 백혈병 발병과 삼성반도체 근무 사이의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그러자 이들은 "삼성전자 기흥·온양 공장 등에서 생산직 직원으로 근무하거나 퇴사한 이후 급성골수성 백혈병 등 조혈계 암에 걸려 투병 중이거나 숨졌으므로 산재로 인정해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1, 2심은 원고 중 김 씨 등 3명에 대해선 "유해 화학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피해를 입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고 반면 나머지 2명에 대해서는 1심과 2심에서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당시 법원은 고 황유미·이숙영 씨에 대해서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동안 각종 유해 화학물질과 미약한 전리 방사선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발병했거나 적어도 발병이 촉진됐다고 추정할 수 있다"며 백혈병 발병과 업무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이후 근로복지공단이 상고를 포기해 2014년 2심 승소가 확정됐다. 반면, 패소한 김 씨 등 3명은 상고했지만 이날 대법원이 하급심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지 못했다.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증거 부족을 이유로 산업재해를 인정하지 않은 대법원의 판결은 매우 유감스럽다"며 "대법원의 판결은 산업재해에 대한 입증 책임을 피해 근로자들에게 전가하는 것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윤 대변인은 "기업이 영업 비밀을 이유로 화학물질 노출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상황에서 피해 노동자들이 무엇을 어떻게 증명하라는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대법원의 판결은 산업재해에 대한 책임을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고, 유해한 화학물질을 사용해 소속 노동자를 위험에 노출시킨 기업들에 면죄부를 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도 논평을 내고 이번 대법원 판결을 비판했다. 이들은 "대법원은 '원고가 발암물질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은 인정'하면서도 '그 노출의 정도가 질병을 유발하였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고 했다"며 "하지만 그러한 '증거 부족'의 원인에는 주목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회사의 관리 부실이나 자료 은폐, 근로복지공단의 조사 잘못으로 인해 업무환경의 유해성을 알 수 없게 된 상황에 대해 규범적 판단 자체를 하지 않았다는 것.
이들은 "결국 입증 곤란의 상황은 회사나 근로복지공단의 잘못으로 초래되었으나 그에 따른 불이익은 다시금 재해노동자 측에 전가함으로써, 직업병 피해가족들의 치료와 생계를 보장하기 위한 산재보험제도의 존재 의의를 무너뜨리고 말았다"며 "그러나 직업병 피해가족들과 반올림은 희망을 잃지 않고 지속해서 반도체 공장의 유해성을 규명하고, 직업병 피해를 인정받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이어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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