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치학자이자 일본 국제 기독교 대학 서재정 교수는 미국 입장에서 사드를 배치한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사드만 떼어 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사일 방어망 구축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들 사이에서 가장 우월한 군사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참고 : 사드, 되돌아온 구한말)
사드를 비롯한 미사일 방어 체계(MD)에 '방어'라는 말이 들어가 있어서 적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성격을 가지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어떤 무기보다 공세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해석이다.
서 교수는 "핵 미사일이 창이라면 미사일 방어는 방패라고 볼 수 있다. 지금 핵무기 보유 국가들은 창을 하나씩 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느 국가도 다른 국가를 먼저 칠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방패를 획득하면, 즉 미사일 방어 능력을 보유하면 상대방의 창인 핵무기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미국이 미사일 방어 능력을 확보한다면 핵무기 보유 국가 중 유일하게 선제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연일 사드 배치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것이 서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미국 내에서 MD 구축을 그만하자고 하면 '역적'으로 몰리게 되는 정치적 상황과 군산복합체 및 미국 정부 내의 이해관계로 인해 향후 미국에서 어떤 정부가 들어선다고 해도 이를 막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MD 구축을 반대할 수 없는 구조가 이미 미국 내에 형성됐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는 왜 이렇게 사드 배치를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것일까? 서 교수는 전시작전권 환수를 연기한 것에 대한 대가로 사드 배치가 결정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미국에서는 참여 정부 때 결정됐던 대로 전작권을 가져가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자신과 미국을 사실상 동일시하며 전작권을 가져오는 것에 대한 알레르기적인 반응을 보이는 박근혜 정부 및 보수세력이 이를 무기한 연기하기 위해 사드 배치라는 선물을 미국에 안겨줬다는 분석이다.
이와 함께 그는 박근혜 정부 내에 팽배하고 있는 이른바 '북한 붕괴론'과 박근혜 대통령이 결정을 하면 누구도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현 정부의 행태도 주요한 요인이 됐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터뷰는 지난 8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편집인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프레시안>은 인터뷰 주요 내용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프레시안 : 남한 내 사드 배치를 두고 미국의 세계전략 하에서 이뤄진 결정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이 어떤 목적으로 사드를 배치했는지를 짚어봐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서재정 : 미국 입장에서 사드 배치 의도를 읽으려면 사드만 떼어 놓고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 구축이라는 전체적인 그림을 조망해야 한다. 미사일 방어망 구축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들 사이에서 가장 우월한 군사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고 있다.
제가 다른 글에서도 창과 방패에 비유해서 말씀드리긴 했는데 핵무기, 특히 핵 미사일이 창이라면 미사일 방어는 방패라고 볼 수 있다. 지금 핵무기 보유 국가들은 창을 하나씩 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느 국가도 다른 국가를 먼저 칠 수 없다. 핵무기로 서로를 억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여기서 방패를 획득하면, 즉 미사일 방어 능력을 보유하면 상대방의 창인 핵무기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즉, 가지고 있는 창을 사용해도 상대방의 보복 공격을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따라서 미국이 미사일 방어 능력을 확보한다면 핵무기 보유 국가 중 유일하게 선제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미사일 방어 능력 확보라는 군비 경쟁은 세계 2차대전 이후 지속해왔던 핵무기 군비 경쟁의 최고 단계다. 아직 결판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현재로써는 상호 억제하고 있는 상태인데, 이를 뛰어 넘어 미국이 가장 강한 군사력을 보유할 수 있게 되느냐의 관건이 미사일 방어 능력 확보에 달려있다. 남한 내 사드 배치도 이러한 미사일 방어의 일환으로 이해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핵무기는 미국의 정책과 의지를 세계에 관철시키는 최대의 핵심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미사일 방어망이 완성된다면 중국, 러시아 등 지구상 어떤 나라도 미국의 의사를 거스를 수 없게 된다는 얘기다.
프레시안 : 미국은 2000년대 초반부터 '풀 스펙트럼 도미넌스', 즉 군사력의 모든 부문에서 압도적 우위를 유지하겠다는 기조를 내세웠다. 미사일 방어라는 것이 이를 위한 가장 중요한 무기체계인가?
서재정 : 그렇다. 풀 스펙트럼 도미넌스는 아들 부시 대통령이 추구했던 군사 전략이다. 전쟁이라는 게 여러 수준에서 이뤄질 수 있지 않나? 그런데 풀 스펙트럼은 모든 층위에서 군사적으로 상대를 압도하겠다는 전략이다. 최고 층위에서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하위 층위에서 군사력을 보유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예를 들어 사담 후세인을 상대로 한 이라크 전쟁이나 리비아의 카다피를 제거하는 데 이용했던 군사작전에서도 미국을 비롯한 핵무기 보유 국가들은 핵무기를 이용하지는 않았지만 핵무기 사용 위협은 항상 존재하고 있었다. 이러다 보니 후세인이나 카다피의 군사적 대응은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게 된다.
최근 갈등이 커지고 있는 남중국해에서도 이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중국이 미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와 군사적인 충돌이 생겼을 때 자국의 군사적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할 수 있다. 전쟁이 커졌을 때 최종적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중국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이를 알고 있는 한 낮은 단계에서도 확전을 꾀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군사적 행동을 조심스럽게 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우크라이나에서 미국과 충돌한다고 가정했을 때 러시아는 굉장히 조심스럽게 군사력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미국과 낮은 층위의 군사적 충돌도 조심하게 되고 가능하면 충돌을 회피하는 상황으로 몰릴 것이다.
사실 전략적인 단위에서 미국과 중국 또는 미국과 러시아가 핵무기를 주고 받는 전쟁을 벌일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 실질적으로는 그보다 낮은 층위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있는데, 미사일 방어 능력을 확보하면 최고 층위의 군사력을 확충하는 것뿐만 아니라 최저 층위에서도 다른 나라에 승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 수 있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MD 그만하자고 하면 '역적'으로 몰리는 미국
프레시안 : 미국은 핵전력 우위를 바탕으로 최대한의 군사적 능력을 확보하고 적국의 핵무기를 막기 위해, 이른바 '핵 억제력'을 갖추기 위해 미사일 방어망을 확충하려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미 1950년대 이후 미국의 핵전력은 다른 핵 보유국가들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압도적 우위에 있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금도 현실 군사력에서 우위를 가지고 있는 미국이 굳이 미사일 방어망까지 확충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다.
게다가 미사일 방어망이 군사적으로도 가능하지 않은 기술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북한이 1000개의 미사일이 있다고 하면, 이를 요격하기 위해서는 요격 미사일이 5000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측면에서 미사일 방어망 구축이 비현실적이고 비상식적인 행태라고 볼 수 있는데, 사드 배치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현실화되고 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서재정 : 일단 대중 정치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도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이를 잘 보여줬는데, 레이건은 재임 당시 소련이 핵무기로 미국 국민을 위협하고 있다며 방어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이게 당시 미국 국민들에게 상당히 먹혀들어갔다.
박근혜 대통령도 비슷한 논리를 펼치고 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로 위협하는데 방어해야 하지 않냐, 사드 배치 말고 대안이 있으면 가져와 봐라 라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런게 대중 정치에서 먹히는 이유는 미사일 방어가 상호 억제 상태에서는 선제 공격을 의미하지만, 이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바라보면 말 그대로 '방어'적인 조치라고 오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사일 방어를 추구하는 세력들은 이런 식으로 대중들을 호도하면서 미사일 방어 능력 확보를 계속 진행시켜 온 것이다.
또 미사일 방어 체계를 연구하고 생산하는 군산복합체들의 이해관계도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록히드 마틴이나 레이시온 같이 사드를 비롯해 미사일 방어 체계를 만드는 기업들은 확실한 이해관계가 있다. 사실 군산 복합체의 사업 영역 중 가장 활발하게 돌아가는 분야가 바로 미사일 방어다.
여기에 국방부 내에 '미사일 방어국(MDA)'이라는 공식적인 기구가 있다. 여기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하는 것이 자신들의 업무다. 정부 내에서도 미사일 방어에 밥줄이 달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정부 밖에 있는 연구 기구나 민간단체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 단체들은 상당 부분 록히드마틴과 같은 방위산업체에 경제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독립적인 민간단체지만, 헤리티지를 비롯해 지원을 받고 있는 연구 기관에서는 미사일 방어 필요성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레이건 대통령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미사일 방어망 구축은 미국에서 변화하기 힘든 하나의 정치적인 의제로 자리 잡았다. 이제는 어떤 정부가 들어선다고 해도, 심지어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유사한 인물이 집권한다고 해도 미사일 방어망 구축을 반대할 수가 없는 국내 정치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이제 와서 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하지 않겠다고 하면 거의 역적으로 몰리는 상황이다.
사실 빌 클린턴 행정부 때도 미사일 방어망 구축을 하지 않으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외부 압력이 워낙 크다 보니 폐기는 못하고 축소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오바마 정부에서도 미사일 방어에 반대하는 인사들이 있었는데 압력이 세게 들어와서 폐기하지 못했다.
대신 전임 정부인 부시 행정부 때 대규모로 미사일 방어망 구축을 추진했었는데 이걸 좀 줄여서 해보자는 의견은 나왔다. 그래서 'EPAA(European Phased Adaptive Approach·유럽 미사일방어의 단계적 접근 전략)'가 등장했는데 이는 유럽에서 미사일 방어망 구축을 단계적이고 신축적으로 운영하자는 의미다. 아시아에서도 조금 줄여야 한다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이 나타나게 됐다.
EPAA가 구축된 구실은 이란의 핵 미사일이었다. 이란이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으니까 미국과 유럽의 동맹국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미사일 방어망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지난해 이란의 핵 문제가 타결됐다. EPAA를 계속 추진할 구실이 없어진 것인데, 그런데도 올해 이를 강행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이를 EPAA의 본질이 드러난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EPAA 구축 의도가 이란의 핵 미사일 방어가 아니라 러시아에 대한 방어였다는 점이 드러났다는 주장이다.
프레시안 : 유럽의 미사일 방어망은 완성된 것인가?
서재정 : EPAA가 총 4단계로 이뤄져 있는데 그 중에서 네 번째 단계는 아예 취소됐다. EPAA를 만든 것이 오바마 정부인데 이전 정부인 부시 행정부는 지상 배치 요격 미사일(GBI)을 폴란드에 배치하려고 했다. 미국의 알래스카와 캘리포니아에 배치한 것과 같은 것이었다. 이것이 현실화되면 이건 정말 이란이 아니라 러시아 미사일을 막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오바마 정부는 이보다 완화시켜서 SM-3로 대체하기로 했다.
물론 SM-3도 요격 체제다. 미사일 방어망의 종류가 몇 가지가 있는데, 패트리엇이 저고도에서 요격하는 체계이며 이보다 높은 것이 사드다. 사드보다 높은 고도에서 요격하는 것이 SM-3 미사일이다. (미국은 상대방의 미사일 비행경로를 크게 '이륙-상승-중간-최종'으로 구분하고 있다. 상승 단계에서 요격하는 데 쓰이는 미사일이 SM-3이며 GBI는 중간 단계, 사드와 패트리엇은 최종 단계에 해당한다. 편집자)
오바마 행정부는 SM-3는 GBI 같은 강력한 요격미사일이 아니기 때문에 러시아에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것도 약간 문제가 있는 것이, SM-3가 여러 개가 있다. SM-3 1A와 SM-3 1B가 있고 SM-3 2A가 있다. 이 중에 1A, 1B는 이미 폴란드에 배치돼있고 레이더는 동유럽에, 통제 시스템은 서유럽에 있으며 연동돼서 작동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것은 SM-3 2B를 배치하는 4단계를 취소한 것이 지난 2013년 초라는 점이다. 2012년 12월 북한은 위성을 궤도에 올리는데 성공했다. 그 직후에 리언 파네타 미국 국방 장관은 북한이 ICBM 기술을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즉 탄도 미사일을 미국까지 날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2013년 초부터 미사일 방어 계획을 대폭 수정했다. 그 중 하나가 EPAA에서 4단계를 취소하고 대신 아시아 미사일 방어망을 가속화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괌에 사드를 배치하기로 결정하고 일본 쪽에 미사일 방어망을 강화했다. 사드에 쓰이는 레이더가 2기가 있는데 이를 배치하기로 한 것도 이 때 나온 결정이다.
이후 2014년 4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측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연기하면서 미사일 방어의 상호 운용성을 향상시킨다고 합의했다. 이것이 이미 아시아에서 미사일 방어 능력을 강화하는 일련의 움직임이었다.
프레시안 : 미국이 세계 경제에서 IT와 금융을 빼면 가장 압도적인 우위를 누리고 있는 분야가 군수산업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재정 : 2차대전과 같은 전쟁 자체가 미국의 경제 부흥에 직접적으로 기여한 측면이 있다. 특히 2차대전 종료 이후 감소됐던 미국 국방 예산이 다시 올라간 것이 한국전쟁 기간이었다. 한국 전쟁이 미국 국방비 증액에 굉장히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도 있다. 한국 전쟁 이후 책정된 예산이 더 이상 내려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군비 지출이 미국 경제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논란은 있다. 국방비 지출과 군수 경제 때문에 미국 경제가 성장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 군사력에서 중요한 것은 이 군사력의 지향점이 무엇인가 하는 부분이다. 미국의 군사력은 미국 중심의 세계 경제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작동한다. 이라크의 후세인이나 리비아의 카다피는 석유 결제 통화를 달러에서 다른 화폐로 바꾸려 했다. 달러가 국제 결제 통화 지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은 미국 입장에서는 사활이 걸린 부분이다.
미국 경제가 계속 침체됐다가 조금이나마 살아났던 이유가 양적 확대 정책 때문이었다. 쉽게 이야기하면 생산을 통한 것이 아니라, 달러를 찍어 내서 경제를 활성화 시켰다는 것이다. 미국이 이런 조치를 사용할 수 있는 이유는 달러가 기축통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을 유지하는 최후의 보루는 군사력과 군산복합체다.
사드, 전작권 환수 연기 대가
프레시안 : 미국은 말씀하신 대로 사드를 포함한 미사일 방어망 구축을 통해 분명히 얻는 게 있어 보인다. 그런데 우리는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박근혜 정부가 정말 이걸 모르고 사드 배치를 추진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왜 이렇게 서둘러서 추진하려는 것일까?
서재정 : 전작권 반환 연기 문제가 있다. 노무현 정부 때 전작권 환수 합의가 있었는데 보수 측에서는 이를 결사적으로 반대한 바 있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 때 한 번 연기했고 박근혜 정부 때는 거의 포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조건에 기반한 연기 결정을 내렸다. 전작권 반환을 막기 위해 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주겠다는 결과가 사드 배치로 나타난 것은 아닌가 싶다.
제가 전작권 반환이 논의될 당시 워싱턴에 있었는데 미국 국방부나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니 이명박 정부 때만 해도 미국 정부 측 분위기는 전작권 반환이 결정됐고 그대로 진행하자는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 때 연기하자고 했는데 이미 전환을 위해 그동안 준비 작업이 진행됐으니 계획대로 가자, 왜 자꾸 귀찮게 구느냐는 분위기가 강했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에서 전작권 환수를 거의 포기하는 결정을 미국으로부터 끌어냈다면 그에 상응하는 반대 급부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론해볼 수 있다. 저는 그것이 사드 배치라고 본다. 지난 2014년 4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사드라는 표현은 안 들어갔지만, '미사일 방어 상호 운용성'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이것이 전작권 환수 연기의 반대급부라고 볼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이다.
이어 2014년 6월 스캐퍼로티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의 입에서 처음으로 사드 발언이 공개적으로 나왔다. 일개 장군이 그런 민감한 문제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 두 달 전 정상회담의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추정이 가능한 대목이다.
프레시안 : 반대급부가 사드가 되는 것도 감수할 정도로 한국의 군부나 보수 세력이 이렇게까지 전작권을 되돌려받기 싫어하는 이유는 뭘까?
서재정 : 이건 정체성 측면에서 봐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아마 한국 내 존재하는 상당수의 사람들은 거의 미국 사람이라고 봐야 하는데, 전작권을 한국이 가져오는 것만으로도 심리적인 불안감과 정체성의 혼동 등 위기의식이 뒤따라 온다.
사드를 둘러싼 기술적, 국제정치적 문제들을 한국 국방부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그런 문제들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은 기본적인 정체성의 문제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는 2014년 정상회담에서 합의가 있기 때문에, 즉 박근혜가 이미 도장 찍었기 때문에 정부에서 어느 누구도 여기에 토를 달지 못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주요한 요인으로는 북한 붕괴론을 들 수 있다. 어차피 북한이 망할 거라면, 여러 수단과 도구를 동원해서 최대한 압박하고 이를 통해 붕괴를 앞당기자는 판단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계속 북이 망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제는 이런 걸 당연시하는 자기 최면적인 내부 분위기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전방 확성기 재개 같은 사안의 경우, 박근혜 정부는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난 뒤에 이에 대한 보복으로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확성기를 트니까 북한이 중단하라고 난리를 치더라며, 이것이 북한에 참 아픈 방법이고 따라서 북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북한이 당시 대북방송을 중단하라고 했던 이유는 남북관계에서 모든 것이 단절됐는데 가장 낮은 단계에 있는 대북방송부터 해결해보자는 의도였다. 이게 되면 그다음 단계로 가자, 이런 입장에서 대북 방송을 중단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김정은 체제가 위태롭기 때문에 그만큼 대북방송이 먹히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아파한다 등등의 자의적인 해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안에서 국방부, 국정원, 통일부 등등에서는 상당 부분 이런 인식이 갖춰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일단 대통령이 받아 들이니까 누구도 반대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그룹 띵킹'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 안에서는 북한 붕괴론이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진리로 굳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2편에 계속됩니다.)
이어 2014년 6월 스캐퍼로티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의 입에서 처음으로 사드 발언이 공개적으로 나왔다. 일개 장군이 그런 민감한 문제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 두 달 전 정상회담의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추정이 가능한 대목이다.
프레시안 : 반대급부가 사드가 되는 것도 감수할 정도로 한국의 군부나 보수 세력이 이렇게까지 전작권을 되돌려받기 싫어하는 이유는 뭘까?
서재정 : 이건 정체성 측면에서 봐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아마 한국 내 존재하는 상당수의 사람들은 거의 미국 사람이라고 봐야 하는데, 전작권을 한국이 가져오는 것만으로도 심리적인 불안감과 정체성의 혼동 등 위기의식이 뒤따라 온다.
사드를 둘러싼 기술적, 국제정치적 문제들을 한국 국방부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그런 문제들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은 기본적인 정체성의 문제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는 2014년 정상회담에서 합의가 있기 때문에, 즉 박근혜가 이미 도장 찍었기 때문에 정부에서 어느 누구도 여기에 토를 달지 못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주요한 요인으로는 북한 붕괴론을 들 수 있다. 어차피 북한이 망할 거라면, 여러 수단과 도구를 동원해서 최대한 압박하고 이를 통해 붕괴를 앞당기자는 판단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계속 북이 망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제는 이런 걸 당연시하는 자기 최면적인 내부 분위기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전방 확성기 재개 같은 사안의 경우, 박근혜 정부는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난 뒤에 이에 대한 보복으로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확성기를 트니까 북한이 중단하라고 난리를 치더라며, 이것이 북한에 참 아픈 방법이고 따라서 북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북한이 당시 대북방송을 중단하라고 했던 이유는 남북관계에서 모든 것이 단절됐는데 가장 낮은 단계에 있는 대북방송부터 해결해보자는 의도였다. 이게 되면 그다음 단계로 가자, 이런 입장에서 대북 방송을 중단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김정은 체제가 위태롭기 때문에 그만큼 대북방송이 먹히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아파한다 등등의 자의적인 해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안에서 국방부, 국정원, 통일부 등등에서는 상당 부분 이런 인식이 갖춰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일단 대통령이 받아 들이니까 누구도 반대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그룹 띵킹'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 안에서는 북한 붕괴론이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진리로 굳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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