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차원적이고 상호 연관적이며 구조화된 불평등
지금의 불평등 현상은 한 영역에서 나타난 불평등이 다른 영역의 불평등을 만들어 내거나 강화하는 효과를 특징으로 한다. 예를 들어, 소득 불평등은 의식주, 특히 주거 형태와 주거 환경의 불평등을 낳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임금 불평등 → 소득 불평등 → 교육 불평등 → 일자리 불평등 → 임금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순환 고리가 만들어졌다.
이런 틀 속에서 각 요소들은 체계적으로 연결되며, 각각의 순환 고리는 점차 공고해져서 쉽게 깨지기 어려운 구조로 자리를 잡았다. 즉, 오늘날의 불평등 구조는 여러 영역에서 나타난 개별적인 불평등이 상호 작용을 하는 '다층-구조적 불평등(multi-structuralized inequality)'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층적으로 구조화된 불평등을 보여주는 사례로 자주 등장하는 것이 소득 불평등과 교육 불평등 간의 관계이다. 우리나라에서 교육을 받을 기회는 형식적으로는 평등해 보인다. 누구에게나 최소한 초·중등학교에서 교육받을 기회를 동등하게 보장(초등교육 취학률은 1960년대 초반, 중·고등학교 취학률은 2000년에 거의 100%에 도달)하며,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도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하지만 누구나 인정하듯, 실제의 현실은 다르다. 학생들이 '질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부모의 학력∙직업∙소득 수준에 크게 좌우된다. 2015년 통계청의 '2015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에 따르면, 부모의 경제적 능력이 높을수록 자녀가 받는 사교육의 질은 높아지고 양도 늘어난다. 거주지나 학교의 소재지에 따라, 학교시설, 교원 1인당 학생 수, 교육 프로그램의 다양성, 학원 교육 기회 등의 교육 조건에서 차이가 난다.
이 또한 부모의 경제적 여건과 맞물려 있다. 부모들의 경제적 여건이 교육에 대한 수요를 낳고, 이 수요에 따라 교육 시설이나 프로그램 등이 결정된다. 학군과 교육 조건의 좋을수록 집값이 높은 것은 이런 역학 관계의 표출이다.
교육 기회의 불평등이 대학 진학의 불평등을 낳아
우리나라는 1990년대 이후 대학 진학률이 올라가면서 전반적인 학력 수준의 상승을 이루었다. 하지만 이런 추세 속에서 부모의 사회경제적 능력이 교육 기회의 불평등을 낳고, 결국에는 대학 진학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부모가 부자일수록 사교육에 투자한 돈이 더 많고, 투자액이 많을수록 학생의 성적은 더 좋았다(통계청, '2015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좋은 성적은 결국 상위권 대학 진학으로 연결되어, 부모의 사회경제적 수준이 높은 학생일수록 기타 4년제 대학보다는 서울 지역의 4년제 대학에 진학할 가능성이 1.7배나 높게 나타났다(김성식, <학생 배경에 따른 대학진학 기회의 차이>, 2008). 반대로 하위 계층에 속한 학생이 좋은 대학에 들어갈 확률은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여유진 외, <사회통합 실태진단 및 대응방안II>, 2015).
상위권 대학 입학률은 불평등의 심각성을 더 극적으로 보여준다. 2016년 서울대학교 입시의 경우, 소위 '금수저 고교' 불리는 특수목적고, 자율형 사립고, 강남3구 일반고가 서울대 합격생의 49.1%로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한겨레>, 2016/03/16). 대학을 서울∙연세∙고려대로 확대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대학정보 공시 사이트인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서울∙연세∙고려대에 입학한 학생들 중에 일반고 출신 입학자는 전체의 50.3%에 머물고, 나머지는 '금수저 고교'의 몫이 됐다. 특히, 일반고 중 강남3구와 양천구 등 소위 부자동네의 일반고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금수저 고교' 출신의 비중은 더 늘어난다.
불평등 재생산의 엔진은 교육과 부모의 사회적 자본
불평등 구조는 부모와 자식 간에 재생산되는 양상을 보임으로써 더 큰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좋은 대학에 입학한다는 것은 향후 사회 생활에서 유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벌사회의 이점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대학 서열화에 의거한 학벌은 취업, 임금, 승진 등에 있어서 차별을 낳고, 사회생활과 일자리의 개인적 만족도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KDI, <노동시장 신호와 선별에 기반한 입시체제의 분석과 평가>, 2013).
이 현상을 거꾸로 보면, 우리나라의 교육은 '사회 이동의 사다리' 역할보다는 사회적 지위를 세대 간에 유지∙존속시켜주는 역할, 즉 재생산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즉,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교육 체계를 통해 재생산되고 공고화되는 것이다. 특히, 부모 세대의 학력은 과거보다 더 높고 자녀의 수는 줄어들기 때문에, 자녀에 대한 관심과 교육투자는 더 높아져 이런 재생산은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계층의 재생산은 단순히 교육을 통해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사실, 오늘날에는 학업 성적이 우수하여 좋은 대학을 나오거나 대학원 이상의 높은 학력을 가지더라도 하위 계층 출신은 좋은 일자리를 갖거나, 높은 임금을 받는 지위를 얻을 가능성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이는 학력 이외의 중요한 요인이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결부된 인적 네트워크라는 '사회적 자본'이 자녀의 노동시장 진입과 그 지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채용 관행을 보면, 완전 공개 채용은 소수의 대기업에서 채택될 뿐 대부분의 기업은 채용 과정에서 소개나 추천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대기업에서도 인적 네트워크에 의해 채용이 선점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 연구에 따르면, 실제 취업 과정에서 인적 네트워크의 의존도는 생애 첫 취업자의 경우 약 40%, 경력직 구직자의 경우 약 60%로 추정되고 있다(김영철, <인적 네트워크의 노동시장 효과 분석>, 2010).
불평등의 재생산이 인도하는 '현대판 신분제 사회'
교육과 부모의 사회경제적 자본을 통한 불평등 재생산 구도는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사회통합 실태진단 및 대응 방안>(여유진 외, 2015)에 따르면, 1975년 이후 출생자들은 이전 세대에 비해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더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특히, 중상층 이상과 하층에서 부모-자식 간의 지위 고착화가 두드러지고 있다.
한 연구 따르면, 고등학생은 부모의 역량에 따라 교육의 불평등뿐만 아니라, 사회 생활에서 기회의 불평등도 심각하다고 여기고 있다. 그리고 계층 이동 기대감에서도 부정적 인식을 가져, '성공 기회가 공평하게 보장되어 있다'는 의견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다. 취업·승진, 교육, 인맥 형성 등 사회경제적 지위를 결정하는 영역의 기회 공평성에 대해서도 매우 부정적인데, 특히 본인이 하류층에 속한다고 여기는 고등학생일수록 더 부정적이다.
결국, 오늘날 우리나라의 청년과 청소년들이 생각하는 계층 이동은 하층에서 중간층으로, 중간층에서 상층으로 가는 상승 이동이 아니라 '현재의 사회적 조건이나 기회의 불평등을 반영하는 계층 재생산'의 성격을 가질 뿐이다. 한 전문가의 지적처럼, "부모 세대에서 생긴 결과의 불평등은 자녀 세대에 이르러서는 조건의 불평등으로 바뀌고, 이 조건의 불평등은 자녀가 학업을 이어가고 직업과 소득을 얻을 기회를 제약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이 된다."(장상수, 2015). 그야말로 '현대판 신분제 사회'가 어느새 우리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다층적이고 구조화된 불평등 해소 위해 포괄적 대안 필요
그렇다면 이렇게 다층적이고 구조화된 불평등 체계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단순히 한 가지 종류의 불평등 해소에 그칠 수는 없다. 다양한 불평등들을 최대한 많이 고려하면서 포괄적이고도 체계적으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복지 국가가 해답이다. 사실, 복지 국가는 자선을 베풀거나 더 나아가 사회 보험∙사회 서비스∙공공 부조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복지 국가는 불평등을 해소하고 경제 성장과 복지 확충을 함께 이룰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조직된 민주적 정치 공동체이다.
따라서 복지 국가는 구성원의 삶과 연결되는 모든 영역에 대응하기 위해 공적 자원을 이용하는 경제, 사회, 문화, 안전, 도시, 주거 정책 등 무수히 많은 정책들을 가진다. 이처럼 복지 국가는 삶의 영역 대부분을 포함하는 '포괄적' 성격을 특징으로 한다. 바로 이 점에서 복지 국가는 다차원적으로 구조화된 불평등 체계를 해소할 수 있는 크고 넓은 패러다임 전환의 대안이다. 그리고 실제로 북유럽에서 복지 국가는 그런 불평등들을 동시다발적으로 해소하는 데 큰 성과를 만들어냈다.
현재 우리나라 정치에서 핵심 이슈가 된 경제 민주화는 유럽의 복지 국가들이 시행하는 한 가지 정책에 지나지 않는다. 성공한 복지 국가들은 경제 민주화를 넘어 경제 정책 전반에 걸쳐 포괄적인 비전을 가지고 세부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래서 경제의 공적 영역이 활성화되고, 점차 사회적 경제도 주요한 경제 영역으로 자리 매김을 하고 있다.
사회 정책 또한 매우 넓은 영역을 포괄한다. 고용, 노동,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 등은 경제 영역과 중첩된 영역이며, 사회 보험, 사회 서비스, 공공 부조 등의 다양한 사회분야 정책들을 제도적으로 펼친다. 여기에 더해, 도시 정책, 성 평등 정책, 사회 통합 정책 등도 사회 정책의 영역에 속한다. 당연히 문화, 여가, 치안, 안보, 외교 등도 복지 국가 정책의 일부를 구성한다.
'역동적 복지 국가' 비전으로 불평등과 전면전 선포해야
복지 국가는 무엇보다 "국민 다수의 삶의 질을 최대한 높여 행복을 확보하는 것"을 궁극적 목적으로 삼고, 이를 위해 구체적 차원에서 국민 다수가 공유하는 이익을 실현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아왔다.
사실, 삶의 질이란 가장 근원적인 욕구들이 얼마나 충족되는가에 달려있다. 소득, 고용, 노동, 건강, 의식주, 교육, 안전 및 치안, 문화 및 여가, 환경 등의 사회적 조건이 이런 근원적 욕구에 해당된다. 이 욕구들이 제대로 충족되었을 때 삶의 질이 보장되고 인간은 행복할 수 있다.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이 근원적 욕구의 충족에 있어서 불평등이 여기저기에 혼재해 있고, 서로를 강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복지 국가란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함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이런 불평등을 없애는 것 자체가 국민 다수가 공유하는 이익이며, 따라서 복지 국가의 일차적 공격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것도 하나의 불평등만이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모든 불평등을 공격하며, 서로의 연계를 고려하면서 일관적이고 체계적으로 공격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체계적이고 일관된 큰 틀 안에서 불평등과 전면전을 선포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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