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도시의 중소기업에서 근무한다는 30대 초반의 남자가 급하게 상담을 청해 왔다. 그는 위험한 흉기로 야간에 사람을 때려 다치게 했다는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 달 전 즈음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대학 선배와 저녁 식사를 겸한 술자리를 가졌다. 그 직전에 그는 선배에게 소개팅을 주선했었다. 선배는 상대방을 마음에 들어 했는데, 아쉽게도 상대방의 반응이 시큰둥했다. 이래저래 선배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마신 술병이 한 병 두 병 늘어나면서, 선배의 말이 거칠어졌다.
급기야 남자에게 소개팅에 나갔던 (여자) 친구에 대해서도 성적으로 모욕적인 말을 해오더니, 남자의 따귀를 연거푸 몇 대 때렸다. 남자의 인내심이 바닥을 쳤다. 남자는 상을 엎었고 그 과정에서 고기를 구웠던 불판이 선배의 발등 쪽으로 떨어졌다. 그렇게 헤어져 돌아왔고, 연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돌연 경찰에서 전화가 와서 그가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서 가중 처벌받는 흉기를 휴대하고 저지른 상해의 죄로 고소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배는 남자가 자신의 발등을 불판으로 찍어 3도 화상을 입었다며 고소를 했다.
남자는 자기가 전혀 잘한 일도 아니고 혹시라도 불판이 떨어져서 다쳤다면 미안한 일이란 것에 공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날 불판이 선배의 발등 위로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선배가 그 즉시 발로 불판을 받아쳤기 때문에 선배가 주장하는 것처럼 3도 화상을 입을 정도의 상황이란 것이 의아했다.
평생 경찰서 한 번 가본 적 없이 살다가 경찰이 전화를 걸어온 것도 당황스러웠고, 고소를 당했다는 것은 더 당혹스러웠다. 그에 비해 전화를 걸어온 경찰은 사뭇 고압적이었다. 당황한 마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경찰서 출석을 독려했다. 얼결에 피의자 조사를 받을 날짜도 잡았다. 전화를 끊고 나서 생각해보니 변호사 상담부터 받아야 할 것 같았다. 경찰서도 집이나 직장 인근이 아니라 제법 거리가 있는 경찰서였다.
대면해서 상담을 해보니 사건도 쟁점도 복잡하지 않았다. 사건 당시로부터 시일이 한 달이나 지나다 보니까 당시의 폐쇄회로(CC)TV가 없는 상황이었고, 고소인이 제출한 상해 진단서도 다툼이 있던 날로부터는 좀 떨어져 있었다. 우선은 경찰서에 출석해서 고소된 내용을 점검하는 게 필요해 보였다.
그런데 담당 경찰과 통화를 해보니 관할에 문제가 있었다. 다툼이 있었던 술집은 서울이었다. 그런데 연락이 온 경찰서는 고소를 당한 남자의 주소지 관할도, 피해를 주장하는 선배의 주소지 관할도 아니었다. 사건을 맡기로 했기 때문에, 그 즉시 담당 경찰과 통화를 하고 관할 이송을 신청했다.
처음 경찰서 관할 이송을 신청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쟁점이 정말 고소인의 화상이 의뢰인과의 다툼에서 발생한 것이 맞는지 대목이었기 때문에, 고소장에 쓰인 내용이나 고소인의 구체적인 진술이 무엇인지 등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의뢰인의 조사에 배석이 꼭 필요해 보였다. 원칙적으로 경찰서 관할은 범죄가 발생한 곳이고, 그 곳 관할 경찰서에서 수사하는 것이 불합리한 사정이 있을 경우 피의자 주소지가 관할이 된다.
그 외에 기타 부득이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관할이 아니더라도 수사할 수 있다는 것이 관할의 원칙이다. 이 사건의 경우 범죄 행위지가 서울이니까 당연히 관할 경찰서로 보내달라는 것이기도 했고, 내가 서울에 있으니 조사 배석을 위해 이동하기 편한 곳으로 이송을 하려는 단순한 의도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담당 경찰관의 태도가 완강했다. 반드시 자기네 경찰서에서 자기가 수사를 해야 한다며 이송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통화상으로는 서로 합의점이 찾아지지 않아 수임계와 함께 관할 이송 신청서를 즉시 제출했다. 그러나 일주일 후에 전화를 걸어온 담당 경찰관은 관할에 대한 기타 부득이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관할이 아니더라도 수사할 수 있다는 위에 언급한 경찰 내부 규칙을 들먹이며, 자신에게 임의권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당장 나와서 수사를 받지 않으면 의뢰인의 가족들이나 동료들이 피소 사실을 알 수 있도록 우편 통지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했다. 평범한 소시민인 우리 의뢰인을 대하는 태도가 고압적이었다면, 젊은 여자 변호사를 대하는 태도는 위압적이었다. 태도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엄연히 관할에 대한 원칙이 있는데도, 경찰에게 임의권이 있으니 나오라면 나오라는 식의 막가파식 적용이었다.
전화를 끊고 떨리는 마음을 진정할 시간도 없이 해당 경찰서 청문감사관실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청문감사관실의 한 청문감사관이 전화를 돌려받아 담당 경찰에게서 사건을 들어서 알고 있다면서 도리어 나를 설득했다. 친절하고 조심스럽게 의사를 타진해 왔지만, 일이 이렇게 되니까 그 경찰서로 피의자를 데리고 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담당 경찰이 이 사건을 부득불 자기가 해야 한다고 우기면서 변호인한테까지 무리수를 두는 이유가 석연치 않았다. 형사법의 대원칙인 무죄 추정의 원칙이란 것이, 실무에서는 이따금씩 뻔히 죄지은 자들을 풀어주는 분통터지는 일을 만들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얼마나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해당 경찰서의 청문감사관실에 정식으로 이의 신청서를 작성하여 민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2주후 받은 답변은 앞서 통화하였던 청문감사관의 답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관할은 내부 규칙상 담당 경찰이 굳이 한다고 하면 수사를 진행할 임의권이 있고, 피해자가 강력히 해당 경찰서에서 진행하길 원하고 있어서 이송을 할 수가 없다는 답변이었다.
거기에 담당 경찰에게 불친절하고 위압적인 태도에 대해 질의한 결과 출석에 대한 우편 통지 등 원칙적인 절차를 안내한 것이었는데 오해가 생긴 것 같다며, 다른 증거를 가지고 오면 조사를 해주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더운 날씨에 건강을 유의하라는 살뜰한 인사도 함께 전달됐다.
사안이 이쯤 되니 일이 더 해당 경찰서로, 문제의 담당 경찰에게 의뢰인을 수사 받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더 이상 뭘 할 수 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선호하는 방법이 아니지만, 번거롭지만, 피의자를 위해 정식적인 절차는 아니지만 차안의 항의 절차를 만들어 밟기로 결심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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