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유성기업의 직장폐쇄 이후, 일터로 돌아간 유성기업 노동자 한광호는 5년이 지난, 2016년 3월 17일 어린 시절을 보낸 장소를 찾아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를 떠나보낸 동료들은 양재동 현대자동차 앞에서 분향소를 세우고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천안 노동부 앞에서는 유성기업 노동자를 살리기 위한 릴레이 단식농성이 진행되고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20일이다.(7월 14일로 계산)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노동자의 죽음을 왜 유성기업과 현대자동차에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일까. 지난 5년간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노조를 파괴해 드립니다"
기업의 사용자들이 더 많은 이윤을 주머니에 챙기기 위해서, 혹은 자신들의 무능력이 빚은 기업 손실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노동자에게 그 책임을 일방적으로 전가하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되어버렸다. 손쉬운 ‘해고’를 방해하는 노동조합을 파괴하기 위해서 기업은 거액을 주고 컨설팅 업체를 고용한다. 노조파괴 전문으로 악명이 높은 컨설팅 업체는 7년 동안 14개의 민주노조를 파괴했다고 한다. 폐쇄된 공간에서 치밀하게 기획된 노조 파괴의 과정 속에 놓이는 노동자들. 삶을 유지하는 수단이자 삶의 일부분인 일하는 터가 '일방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장소'로 변할 때, 개인이 어떻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이제 그만해라"
나는 시민으로서, 치유활동가로서, 해고를 당한 경험이 있는 당사자로서, 사회구조의 그늘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5년 동안 들어왔다. 회사의 몰래 카메라 설치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는 이야기, 회사의 징계, 고소, 고발, 임금체불로 생활이 불가능해지자 가정의 불화로 이어지는 이야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성추행과 폭행으로 자존심이 무너진 이야기, 회사가 임금차별로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긴장을 유발하는 이야기, 그 속에서 분노와 감정을 표현하면 증거로 수집되어 오히려 회사로부터 ‘감정적이다’ ‘폭력적이다’ 공격받게 되는 상황. 공격은 회사에서 그치지 않는다.
싸움이 오래될수록 지친 가족과 지인들은 공격과 비난은 늘어난다.
"무슨 독립운동 하냐? 그만해라. 가족들 힘든 거 안보이냐?" "회사 동료들이 더 중요하냐? 가정이 중요하냐?""이기적이다." "그만큼 했으면 됐다. 그만해라" "너 하나, 그런다고 세상 바뀌지 않는다."
그 상황 속에서 개인의 분노는 자신을 괴롭히는 회사나 관리자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 옮겨간다. '나 때문에...가족들이...' '나 때문에...동료들이...' '나 때문에...' 자신에게 향하는 공격은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동료들과의 소통도 단절되게 만들어버린다. 누구도 버틸 수 없게 기획된 시간 속에서 유성조합원들은 동료들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5년을 싸우고 있다.
"쌍차 해고자들의 죽음처럼 우리도 시작일 거 같아서 두렵다"
2016년 3월 한광호 열사의 장례식장과 서울 시청광장 분향소에서 유성 조합원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쌍차 해고자들의 죽음처럼 우리도 시작일 거 같아서 두렵다"였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이어졌던 질문은 "어떻게 해야 또 다른 동료의 죽음을 막을 수 있을까요"였다. 나 또한 겁나는 일이었기에 "지금 이렇게 싸우잖아요..." 말고는 다른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대답을 하는 대신, 어떻게 그 세월을 버텨왔는지 한사람, 한사람 이야기를 들었다. 두려웠지만 함께 하는 옆 사람을 보며 ‘내겐 동지가 있다’ 의지하고 버텨왔다는 이야기, 자신들의 상황을 듣고 연대와주는 시민들을 보며 ‘우리가 틀리지 않았구나..’ 위로받은 이야기, 유성관련 기사를 보며 ‘우리의 싸움이 사회적으로도 의미가 있구나’ 느끼는 이야기, 그 속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을 찾는다고 했다. 마침내 들을 수 있었던 이야기는 "사회적으로 우리의 억울함을 알리고, 내가 잘 버티면...동료들도 잘 버티겠죠. 이 싸움도 끝이 있겠죠" 였다.
5년 동안 지속되어 온 치밀하고, 야비한 노조파괴의 과정 속에서도 수동적인 피해자가 아닌, 능동적인 주체로써 인간의 존엄을 지켜오며 ‘함께’ 어려움을 관통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지금, 그들 곁에는 ‘동료들의 죽음을 막아 달라’ 사회에 호소하던 쌍차 해고자들이 함께 하고 있다. ‘나 하나의 힘이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하며 쌍차해고자들의 옆을 지키던 시민들도 함께 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동료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을까요."라는 유성조합원들의 물음에 행동으로 답하는 사람들이다.
"어떻게 해야 우리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을까"
한광호 열사의 죽음은 개인의 죽음이 아니다. 죽음을 마지막 선택지로 강요받는 노동자의 현실이다. 노동자의 죽음이다. 한광호 열사의 장례를 치르지 못 한 채, 꿈쩍이지 않는 책임자들 앞에 유성조합원들이 115일 째 서 있다. 그들의 함성이 책임자들의 귀에 닿을 수 있도록 함께 외쳐주기 바란다, 책임자를 호출해서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기 바란다.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하는 당신의 감정이 그저 지나가지 않게 잡아 멈추어 달라. 잠시만 멈추어 한광호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별똥별이 되어 달라. 당신의 별똥별은 책임자에게는 호출의 빛이 될 것이며, 노동의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이들에게 현재를 버티는 힘이 되고,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하는 빛이 될 것이다. 그들만의 싸움이 아닌, 우리의 싸움으로 만들 때, 그 빛은 곧 우리의 미래를 비추게 할 것이다. 지금, 그 힘이 필요하다.
오는 7월 23일(토) 오후 3시부터는 수십 개 사회단체들이 함께 여는 바자회에 이어 별똥별들이 함께 하는 ‘별똥별이 빛나는 밤에’ 콘서트를 처음으로 갖는다 한다. 내가 좋아하는 와이낫과 허클베리핀, 스카웨이커스, 태히언 등이 참여하는 멋진 콘서트다. 아직도 분향소 하나도 차리지 못하게 막고 있는 한국 사회 최대 ‘갑’ 현대자동차가 일억 천금을 주고도 만들 수 없는 아름다운 날을 함께 만들어 봤으면 좋겠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