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작가들이 세월호 참사, 유성기업 등 사회 현안에 주목한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자 풀리지 않는 문제를 문학적 관점에서 접근한다. 이들을 주제로 하는 시를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프레시안>은 매주 한 편씩 이들의 시를, 그리고 시를 쓰게 된 배경을 설명한 글을 올린다.
진혼의 노래, 초혼의 노래
차고 빠른 물살의 4월 바닷속으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난 내 아이들아.
검고 무서운 파도가 오래 굶주린 배를 채우는 악귀(惡鬼)들처럼 날뛰며 모든 것들을 집어삼키는 심연 속에서 무기력하기만 한 우리들의 분노는 너희들의 슬픔을 대신하는 노란 리본, 그저 부끄러운 우리들의 피눈물은 너희들의 목마름을 적셔줄 한 방울의 물, 그리고 어찌해볼 도리 없어 그저 발만 동동 구르던 우리들이 켜는 촛불은 너희들의 앞길을 인도해줄 작은 등불.
하지만 그것들조차 애써 무시하며 오직 너희들의 의지와 힘으로 지옥 같은 맹골수도의 어둠을 벗어나라. 단 한 명도 구원하지 못한 공화국의 선무 방송에도 흔들리지 말고, 팽목항에서 너희들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제 어미의 목소리에도 뒤돌아보지 말고, 더 이상 미련 없이 결코 두려움 모르는 영웅처럼 해 뜨는 동쪽, 불멸의 영혼을 가진 신들의 나라로 곧바로 가라.
"엄마, 난 어디서 났지?"
"아빠, 우린 어디로 가는 거지?"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몰라보게 커버렸던 아이들아.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소용돌이와 사나운 개가 지키는 문들이 연이어 나타나더라도, 크게 놀라거나 허둥대지 마라. 설령 쉬 납득하거나 감당하기 힘들다고 해도, 그 시련과 고통들은 백 번이고 천 번이고 태어나길 거듭할 너희들이 마땅히 거쳐 가야 할 관문들.
너희들이 그렇듯 한 걸음씩 불사(不死)의 하늘로 다가가고 있으리니. 그제야 긴 잠에서 깨어난 신들이 하품하며 끝까지 아름다웠던 너희들의 깨끗한 육신과 해맑은 영혼을 부활의 제물로 기꺼이 받으리니.
어이 그렇지 않으랴. 필시 그 자체로 모두가 꽃이고 신이었던 아이들아.
끝끝내 구명정도, 구조 헬기도, 구조 밧줄도 다가오지 않은 캄캄한 선실 속에서 믿어 의심치 않았던 구원의 손길, 어린아이들도 두려워하지 않은 구원의 노랫소리에 귀 기울여라.
그 어느 순간에도 결코 찢기거나 더렵혀질 수 없는 몸과 맘 그대로 마지막 수학여행을 떠난 내 아이들아.
죄 많은 망각의 역사, 생면부지의 공포가 기다리는 순장(殉葬)의 바다에서 이제 스스로 선장이 되고, 조타수가 되어 너희들만의 안전한 배, 너희들만의 아름다운 꿈, 너희들만의 영원한 조국을 향해 항해하라.
시작메모
이른바 '4·16대재난'이 일어나는 순간, 더 이상 시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문득 들소 떼의 죽음에 관련된 인디언의 신화를 떠올렸다. 부당하게 죽음을 맞이한 아이들의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할 유일한 수단이 신화적 사유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야만이 참담한 살육의 시대를 살아가는 시인으로서 최소한의 정체성이나마 유지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그 아이들이 불멸의 존재로 부활하여 우리와 함께 살아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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