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잡는 대장'이라 불리던 왕치산이 한동안 사라졌다가 중앙기율검사위원회 홈페이지와 CCTV <신원롄보(新聞聯播)>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왕치산의 재등장이 관심을 받는 이유는 과거 몇 차례 그가 언론에서 사라지고 나서 복귀한 이후 고위 관료들이 줄줄이 낙마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왕치산은 네 차례 언론에서 사라졌다. 처음 언론에서 사라진 것은 지난해 7월초였다. 그리고 왕치산은 2015년 7월 31일 20여 일 만에 CCTV <신원롄보>에 모습을 드러냈다. 왕치산이 모습을 드러내던 날 중앙기율검사위원회는 난징시(南京市) 서기 양웨이저(楊衛澤), 윈난성(雲南省) 부서기 치우허(仇和) 두 사람의 '쌍개(雙開, 당적과 공직의 박탈)' 처분을 발표했다. 또 이미 퇴직한 네이멍구자치구(內蒙古自治區) 정협 부주석 자오리핑(趙黎平)의 당적을 박탈한다고 발표했다. 결과적으로 이 두 건 모두 왕치산이 언론에서 사라진 기간 발표가 준비되고 있었으며 언론에 재등장한 이후 처분 결과가 발표된 것이다.
돌아온 왕치산의 '호랑이' 사냥
왕치산은 2015년 9월 24일부터 26일까지 푸젠성(福建省) 현지 조사를 다녀왔다. 그리고 9월 27일부터 10월 22일까지 한 달가량, 두 번째 언론에서 모습을 감췄다. 왕치산이 사라진 기간인 2015년 10월 7일 푸젠성 성장(省長) 쑤수린(蘇樹林)이 낙마했다. 이 낙마 소식은 왕치산이 푸젠성 현지 조사를 마친 지 겨우 11일이 지난 시점이다.
또 10월 16일에는 하루 동안 허베이성(河北省) 서기 저우번순(周本順), 안전생산감독관리총국(安監總局) 국장 양동량(楊棟梁), 네이멍구자치구(內蒙古自治區) 부주석 판이양(潘逸陽), 난닝시(南寧市) 서기 위위안후이(餘遠輝) 등 네 명의 성부급(省部級) 고위 관료 4명이 '쌍개(雙開)' 처분을 받고 낙마했다.
왕치산이 언론에 다시 등장한 것은 역시 10월 22일자 CCTV <신원렌보>였다. 당시 <신원롄보>는 왕치산이 10월 23일 날짜 <인민일보(人民日報)>에 자신의 이름으로 "높은 기준을 견지하고, 최저 한계선을 단단히 지키고, 전면적이고 엄격한 당의 통치 제도 혁신을 추진하자(堅持高標准 守住底線 推進全面從嚴治黨制度創新)"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고 전했다. 이 소식과 아울러 왕치산이 등장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닝샤자치구(寧夏自治區) 부주석 바이쉐산(白雪山), 상하이시 부시장 아이바오쥔(艾寶俊), 베이징시 부서기 뤼시원(呂錫文) 등 3명의 성부급 관리가 연속 낙마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15년 11월 20일 왕치산은 후야오방(胡耀邦) 탄생 100주년 기념 좌담회에 참석했다. 그리고 바로 매체에서 사라졌다가 12월 18일부터 21일까지 베이징에서 진행된 중앙경제공작회의(中央經濟工作會議)에 모습을 드러냈다. 왕치산이 사라진 기간에도 중앙기율검사위원회의 '호랑이' 사냥은 계속되었다. 2015년 12월 8일 헤이룽장성(黑龍江省) 인대 상무위원회 당조 서기 겸 부주임 거루인(蓋如垠)이 조사를 받고 있다고 보도되었으며 12월 27일에는 중국전신(中國電信) 당조 서기 겸 이사장 창샤오빙(常小兵)이 부패와 기율 위반으로 조사받고 있다고 발표되었다.
2016년 1월 5일 오전에는 중앙기율검사위원회가 국가종교사무국(國家宗教事務局) 부국장 장러빈(張樂斌)이 엄중한 기율 위반으로 당적을 박탈하고 공직에서 해임했다고 발표했다. 한편, 중앙기율검사위원회에서 조사받고 있던 베이징시 부서기 뤼시원도 엄중한 기율 위반으로 당적 박탈과 공직 해임이 이루어졌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2016년 6월 7일, 네 번째로 왕치산이 사라졌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왕치산이 매체에서 사라진 지난 47일 동안에도 중앙기율검사위원회는 안후이성(安徽省) 부성장 양전차오(楊振超), 장수성(江蘇省) 상무위원 겸 부성장 리윈펑(李雲峰) 등 두 명의 '호랑이'를 잡아들였다.
이처럼 지난 네 차례 왕치산이 사라졌던 기간 반부패 활동은 계속되었고, 그 결과는 왕치산의 등장과 함께 언론에 발표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47일 만에 왕치산이 다시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에 또 다른 '늙은 호랑이' 사냥의 결과물을 내놓는 것은 아닌가 하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왕치산이 매체에서 사라졌던 기간 발생했던 선례에 비춰보면 이번에 네 번째로 왕치산이 다시 나타났다는 점은 모름지기 '호랑이'를 잡기 위한 잠복기였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일단 '호랑이' 사냥보다는 '중국공산당 문책 조례' 관련 내용을 들고 나타났다. 물론 이것이 '호랑이' 사냥을 그만두고 이슈를 새로운 쪽으로 돌리기 위한 정치적 제스처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전국 31개 모든 성에서 반부패에 걸려든 '호랑이'들이 최소한 한 명 이상 존재한다고 해서 '호랑이'들이 모두 잡혔으니 이제 그만 반부패를 중단하겠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왕치산은 오히려 "당풍과 청렴 정부 건설 그리고 반부패는 포기할 수 없는 투쟁"이라고 말하고 있다.
왕치산은 중국공산당이 추진하고 있는 당풍과 청렴 정부 건설과 반부패 투쟁은 입장이 있고(有立場), 목표가 있고(有目標), 중점이 있는(有重點) 것이기 때문에 실패할 수도 없고 실패해서도 안 되는 투쟁이라고 강조한다. 여기에서 왕치산이 강조하는 이른바 '입장'이란 "부패가 있으면 반드시 반부패가 있고, 탐관이 있으면 반드시 숙청할 것"이라는 결연하고 단호한 의지를 말한다. 오히려 왕치산은 '늙은 호랑이'와 '파리'를 함께 타격하는데 조금도 용인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계속해서 부패를 처벌해 나가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부패의 피로감이나 경제 악영향 우려는 적어도 왕치산의 발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2016년 초에 왕치산은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제6차 전체 회의 준비 좌담회에서 "반부패 투쟁에 쏟는 역량을 낮추지 않을 것이고, 반부패 기조 또한 변하지 않을 것이며, 반부패 척도도 느슨해지지 않을 것이며, 지속적으로 부패를 억제하는 고압적인 자세를 유지하여, 당 집권의 정치 기초를 두텁게 할 것"이라고 말한바 있다. 따라서 왕치산의 일련의 언술을 종합해보면 적어도 단기간에 반부패 투쟁을 쉽게 그만둘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반부패 활동이 경제를 위축시키고 관료들의 복지부동과 무사안일을 조장하고 있다는 일각의 우려와 염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도 한층 더 적극적이고 과감한 반부패 활동을 지속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중국공산당 문책 조례', 반부패 운동의 3.0 버전
오히려 47일만에 다시 나타난 왕치산이 새롭게 들고 나온 이른바 '중국공산당 문책 조례' 관련 내용에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2016년 1월 14일 중국공산당 제18기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제6차 전체 회의는 <중국공산당 제18기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제6차 전체 회의 공보>를 통과시켰다. 결의는 문책을 엄격한 당 통치의 중요한 착수점으로 삼고, 실책을 반드시 묻는 것을 일상화하는 당내 문책 조례를 제정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왕치산은 "권력이 있으면 반드시 책임이 있고, 책임이 있으면 그 책임을 짊어져야 하며,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반드시 추궁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권력과 책임, 의무와 책임을 대응시키기 위해서는 당의 영도 핵심 역할을 충분히 발휘해야 하고 당 집권의 정치 기초를 두텁게 세워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금까지 추진해 오던 적발식, 일벌백계식 반부패 운동을 제도적으로 한 단계 끌어 올려서 관료들이 스스로 책임지고, 책임을 다하지 못할 경우 반드시 문책할 것이고, 이것을 조례로 명문화하겠다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공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랴오닝성 좌담회도 조례 제정을 위한 의견을 구하는 자리였다.
왕치산은 "언행일치는 최종적으로 행동으로 체현되어야 하고, 역사적 사명을 실현하고 당의 목표(宗旨)를 체현하는 것은 모두 반드시 책임 있는 행동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당의 영도 약화와 당 건설의 결점 그리고 전면적인 엄격한 당 통치의 무력함, 당의 관념 박약과 조직 이완 그리고 기율 해이의 그 근본적인 원인은 당 조직과 영도 간부의 관당치당(管黨治黨)이 엄격하지 못함에 있고, 책임감 부족에 있고, 호인주의(好人主義)에 있고, 허물없이 화목하게(一團和氣) 지내는 데에 있기 때문에 문제가 발견되면 바로 증상에 따라 약을 처방하고(對症下藥), 지엽적인 것과 근본적인 것을 함께 다스리고(標本兼治), 제도건설 강화가 바로 근본적인 치료"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문책을 제도화하는 관련 규정이 정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책 조례 제정은 날카로운 칼을 높이 메달아 전 당과 당 중앙이 문책에 대해서 진짜 행동으로 옮기고 당의 영도 간부가 담당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으면 바로 책임 추궁을 당할 것이라는 것을 훈계하고 계시하려는 것"이라고 문책 조례 제정 목적을 밝혔다.
돌아온 왕치산의 워딩을 복기해보면, 앞으로 당 통치를 더욱 강화할 것이고 이는 '문책'을 새로운 제도의 틀로 삼아서 앞으로 계속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피력한 것이다. 특히 조례 제정 자체도 중요하지만 조례 제정 과정이 통일적인 사상 인식이 확립되어 가는 과정이 되도록 하겠다는 점에서는 중앙과 지방에서 조례 제정 관련 대규모 정치 학습이 전방위적으로 진행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게 한다. 이 과정에서 반부패는 반부패대로 지금과 같이 진행해 나갈 것이고 전면적인 당 통치를 강화하기 위해서 사상과 실제 업무를 결합해 나가는 노력을 병행 추진하겠다는 점을 확언했다. 이 점이 왕치산이 다시 돌아온 이유이기도 하다. "수천 번을 동원해도 문책 한 번 하는 것과 같지 않다(動員千遍, 不如問責一次)"는 왕치산의 말이 의미심장한 이유이기도 하다.
왕치산에 의하면 현재 중국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압력이 아래로 전도되지 않는 것"이고 이는 중간 고리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압력이 아래로 전도되지 않는 것'은 특정 이슈에 대해서 기층에서는 압력으로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이는 엄격한 당 통치를 요구하는 차원에서도 기층에서는 이 문제를 매우 중요한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는 현실을 말하는 것으로 앞으로 기층까지 반부패 등 주요 문제에 대한 중앙의 의지가 '전도'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돌아온 왕치산이 '문책'을 들고 나온 이유이기도 하다. 왕치산의 말대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관료들에게 문책을 하는 이러한 제도화가 '감히 부패하지 않을' 환경을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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