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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린내 나는 아홉 번째"에서 중화 부흥 주력군으로

[양갑용의 중국 정치 속살 읽기] 당대 중국 지식인의 역할 변화와 운명

문화 혁명 시기 중국의 지식인은 모호한 계급적 속성으로 인해 적지 않은 고초를 겪었다. 학교와 공장에서 홍위병들은 자기 멋대로 고깔모자를 씌워 지식인과 관료들을 끌고 다니기도 하고 린치를 가하기도 했다. 중국에서 문화 혁명은 사실 국가권력이 지식인과 관료들을 공격한 집단적 광기를 드러낸 아픈 과거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중국에서 지식인은 새로운 사상을 흡수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지혜와 지식을 갖춘 국가 발전의 동력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예컨대 5.4 운동과 신문화 운동 시기에는 중국의 미래를 밝혀주는 향도 역할도 주저하지 않았다. 20세기 초반 혼란에 빠져 있던 중국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직접 혁명 과정에 뛰어들기도 하고 일정 부분 성과를 얻기도 했다.

시기마다 달라진 중국 지식인의 역할과 운명

신중국 건설 이후에는 국가 발전에 필요한 지식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화 혁명기에는 자본주의의 주구로 낙인 찍혀 지주, 부자, 반동 등에 이어 "구린내 나는 아홉 번째(臭老九)"로 치부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지식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개혁 개방이 시작되고 당과 국가는 지식인들이 가진 지혜와 지식을 국가 발전에 적극적으로 차용하기 시작했다. 지식인들 또한 그 길에 기꺼이 동참했다. 경제 발전에 자신이 가진 전문 지식을 충분히 발휘하여 국가의 경제 사회 발전과 사회 통합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

우리는 지식인이라면 반드시 비판 정신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국에서 지식인은 고등 교육을 받은 자,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특정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나 학자로 여긴다. 지식인의 비판 정신보다는 지식과 지혜에 기반을 둔 기능적인 역할을 더 주목하고 중히 여긴다. 여기에는 사회주의 건설 과정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는 보편적인 인식이 퍼져있기 때문이다.

2015년 4월 26일 안후이 허페이(安徽合肥)에서 개최된 지식인, 모범 노동자, 청년 대표 좌담회에서 시진핑은 수많은 지식인들을 사회주의 건설과 중화민족 부흥의 주력군으로 불렀다. 지식인들이 도를 지키고(堅守正道), 진리를 추구하고(追求真理), 양심을 지킬 것(恪守良知)을 요구했다. 시진핑에 의하면 지식인들은 문화 수준이 높고 지식이 비교적 풍부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경제 사회 발전과 사회 문명 진보 추진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발휘해야 하는 세력이다.

근현대 중국 역사를 돌아보면 지식인은 끊임없이 발생하는 현실의 모순과 갈등을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때로는 혁명과 대의를 위해, 때로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걸기도 했다. 그들은 "파도에 용감히 맞서는(勇立潮頭)" 높은 기개와 품격으로 난관을 극복하고 새 길을 개척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신중국이 만들어지면서 새로운 전환을 맞게 된다. 민족 국가 건설이라는 국가 건설(state building) 목표가 완전히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중국은 국가 건설이 아니라 국가 운영(state management)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관련된 기능적인 측면에서 지식인의 역할을 다시 주목하기 시작했다. 국가 운영은 더 이상 혁명과 건설 시기 패러다임으로는 성과를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회는 촘촘히 잘 짜인 그물망처럼 조직되었으며 지식인들은 이 그물망 속에서 잘 짜인 룰에 따라 활동을 요구받았다. 그 주된 활동 역시 국가 발전에 복무하는 것이 제일 우선시 되었다.

개혁 개방이 진행되면서 거의 모든 국가 자원은 경제 발전 과정에 동원되었으며 지식인의 지식 자원 또한 예외일 수는 없었다. 이때부터 지식인들은 국가제일(國家至上), 민족제일(民族至上), 인민제일(人民至上)을 항상 견지하고 국가와 민족의 발전에 반드시 이바지해야 하는 일종의 뛰어난 기능을 갖춘 지식 자원 기능을 수행하는 역할로 내몰리게 되었다.

여기에 당과 국가에 의한 유한 자원이 권위적으로 배분되면서 지식인들은 비판적인 시각보다는 협조적인 방식으로 당과 국가의 국가 운영 메커니즘에 깊이 연계되어갔다. 이제 지식인들은 당과 국가가 요구하는 경제 사회 발전 과정에서 "봄누에는 죽음에 이르러서야 실 뿜기를 그치고, 초는 재가 되어서야 촛농이 비로소 마르는 것(春蠶到死絲方盡, 蠟炬成灰淚始幹)"처럼 헌신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드러내야 했다.

그리고 이러한 '드러냄'은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보상하는 금전적 인센티브가 가미되면서 점점 '지식 비즈니즈'가 성행하기 시작했다. "고생스러운 일에는 자기가 먼저 나서고 즐거운 일에는 남보다 뒤에 선다(先天下之憂而憂,後天下之樂而樂)"는 고귀한 희생 정신과 헌신적 자세는 권력과 자본의 영향력을 이겨내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자기 합리화로 덮여지고 있다.

시진핑이 지식인을 중시하는 이유

시진핑은 각급 영도 간부들이 주동적으로 나서 전문가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의견과 건의를 들을 것을 주문했다. 지난 2015년 5월 17일 철학, 사회과학 공작(工作) 좌담회에서 강조한 내용이다. 그리고 '백화제방(百花齊放)'과 '백가쟁명(百家爭鳴)'을 중국 철학, 사회과학 번영과 발전의 중요한 방침이라고 강조하고 전문가들이 비판을 내 놓는 것을 환영한다고 지식인들을 독려하기도 했다. 그리고 당과 정부가 지식인들과 소통, 협상, 대화하도록 유도했다.

"각급 당위원회와 정부는 반드시 지식을 존중하고 인재를 존중하며 지식인을 충분히 신뢰해서 지식인들이 일을 하는데 유리한 체제 메커니즘을 빨리 만들어내서 지식인들의 재능과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하라."

지식인을 독려하여 지도 사상의 문제에서 새로운 돌파구와 사상의 얼개를 찾아내야 하는 시진핑으로서는 지식인들의 혁신적인 생각이나 철학적인 비전이 꽤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지식인들은 사상과 주관, 그리고 책임성 측면에서 장점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방면에서 지식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여러 문제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러 기회를 이용하여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지식인에 대한 역할과 열망을 드러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가까운 중국의 역사 유산에서 보면 지식인은 늘 동원의 대상이었다. 지식과 지식인에 대한 열망이 높아질수록 그래서 지식인에 대한 동원 열망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지식인의 정체성과 지식인의 역할에 대한 본원적인 물음을 피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지식인의 지식과 지혜를 필요로 하고 그 길에서 지식인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밀고 있지만 사실상 지식인의 정체성이 독립적이고 비판적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국가 발전에 협조적이고 기대 요구에 부응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해마다 5월이 되면 문혁이 얘기되고 문혁은 곧 지식인의 명운과 본성, 역할에 관련된 다양한 시각과 관점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즉 지식인을 보는 시각의 터닝 포인트인 셈이다. 중국에서 지식인은 문혁의 폐해를 고스란히 받았던 사회 세력으로서의 이미지가 있고 국가발전에 기여한다는 기능인으로서의 이미지도 공존한다.

사회가 변하고 시대가 변하고 공간과 시간이 교차하면서 지식인에 대한 기대와 시각도 변해왔다. 우리는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오직 한 가지 잣대만을 들이대지는 않는다. 비판적 지식인이 절대 선이 아니듯, 경제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지식인이 절대 선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시진핑의 적극적인 지식인 포용 정책이 점차 강화되는 시점에서 지식인의 역할이 과거와 같이 당과 국가권력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에서 지식인의 본질을 찾으려는 노력이 이제는 조금 달라져야 한다는 점이다.

당국가 체제에서 국가 권력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동일하게 점차 자본과 자본 권력에 순응해가는 지식인의 모습에서도 권력 비판자로서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 지식인의 비판적 역할은 권력과의 관계에서도 필요하지만 자본이 거래되는 시장에서도 필요해지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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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갑용

성균관대학교 성균중국연구소 연구실장. 중국의 정치 엘리트 및 간부 제도와 중국공산당 집권 내구성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중국 상하이 푸단 대학교 국제관계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국민대학교 중국인문사회연구소 HK연구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연구소 연구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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