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인민일보>는 시진핑 주석이 제18기 중앙기율검사위원회(中央紀律檢查委員會) 제6차 전체회의(2016년 1월 12일 개회)에서 발언한 12,000여 자에 달하는 장문의 전문을 게재했다. 시진핑은 이 자리에서 '정치적 야심'(政治野心)의 문제를 세 차례나 거론했다. 중국 정치에서 '정치적 야심'은 불온시되고 있고 경계해야 할 일이라는 점을 시진핑의 입을 통해서 다시 확인한 셈이다.
일례로, 살아있는 제갈량(諸葛亮)으로 회자되는 왕후닝(王滬寧) 중앙정책연구실 주임은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 3대에 걸쳐 최고 지도자의 지근거리에서 정치 책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는 지방 경력이 전무하고, 행정 기관 및 대중 사회단체는 물론이고 기업에서조차 경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국 위원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중앙정책연구실이라는 고급 정보를 다루는 최고위직에 있고 아침저녁으로 최고지도자와 얼굴을 마주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그의 뛰어난 능력을 인정하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3대에 걸쳐 서로 다른 지도자에게 중용될 수 있었을까하는 의구심은 여전하다. 여기에 대한 해답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가 '정치적 야심'이 없고 결코 그러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세간의 평가다. 바꿔 말하면 중국 정단(政檀)에서는 '정치적 야심'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어 있다는 얘기다.
그럼 중국에는 '정치적 야심'을 갖지 않는 정치인이 있다는 말인가라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상식으로 정치인은 반드시 자신의 '정치적 야심' 혹은 '정치적 목표'를 가지고 최고 권력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사고하기 전에 중국에 정치인이 있는지부터 되짚어 봐야 한다.
필자는 '일반적으로 정치인이란 대중의 지지를 발판으로 삼아 선거라는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서 정치권력을 획득, 자신의 이상과 목표를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들'로 생각한다. 선거가 권력을 감시하고 감독하는 보편적인 수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정치 제도 아래에서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정치인을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인물 정도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 우리들의 이익을 투사하려고 한다.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러한 정치인에 대한 개념을 과연 중국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우선 당대 중국의 정치문화에서는 '권력 의지'를 내보이는 것을 매우 금기시하고 있다. 대중의 자발적 참여와 감시에 의한 감독 체계와 달리, 중국공산당이 시달하는 엄격한 규정과 규율 등에 따른 감독 메커니즘이 국가와 사회를 움직여가는 소위 '당-국가 체제'이기 때문에 외부의 관리와 감독보다는 내부의 관리와 감독을 더욱 중시한다.
'정치적 야심'이란 프레임으로 권력 투쟁 벌이는 시진핑
따라서 이런 의미에서 보면 사실 중국에는 외부의 관리와 감독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하는 권력 의지를 가진 '정치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에서 '정치적 야심' 혹은 '정치인으로서의 권력 의지' 등은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다. 그런데도 시진핑은 세 차례에 걸쳐 '정치적 야심' 문제를 직접 거론했다.
이는 중국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정치적 야심'이란 프레임을 사용하여 권력에 도전하려는 반대파를 제거하고, '권력 의지' 자체가 갖고 있는 불온성을 널리 알려 국민들을 당과 국가 주위로 통합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중국정치에서 '정치적 야심'을 드러내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심지어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른바 '정치적 단죄'를 받은 낙마한 고위 관료들 역시 당-국가 체제라는 공고한 틀 내에서 자신의 이익과 권력을 최대한 보장받아왔던 체제의 수혜자들이기 때문에 자신의 개인적 야심을 위해서 공고한 수혜 보장 틀을 깬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그들이 오직 체제 내에서 지위와 권력을 활용하여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 및 측근의 사사로운 이익의 확보와 수호에 종사할 수는 있어도, 체제의 틀 자체를 깨는 '정치적 야심'을 드러내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그리고 사실 신 중국 건립 이후 '정치적 야심'을 드러낸 사건은 그리 많지 않았다. 린뱌오(林彪)가 마오쩌둥을 대체하고 자신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쿠데타를 도모하던 중 발각되어 도망가다 추락,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사실 역시 승자의 기록일 뿐이고 린뱌오는 권력을 쫓은 '정치적 야심가'여야 한다는 당시 상황 논리가 필요했던 것뿐이었다.
심지어 4인방이 정말로 권력을 쟁취하려고 했는지, 그래서 '정치적 야심'을 갖고 마오쩌둥을 움직여 문화혁명을 일으키고 그것을 기화로 실제로 권력을 장악하려고 했는지도 사실 불분명하다. 이들 역시 고도로 집중된 당-국가 체제에서 온갖 권력을 향유했던 수혜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논리의 연장선에서 보면, 특히 개혁개방 이후 중국정치에서 자신의 행동을 '정치적 야심'으로 포장하여 정당성을 주창한 사례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강자에 의해 패자가 '정치적 희생양'이 된 것이며, 이 때 패자와 약자를 단죄하는 명분이 바로 '정치적 야심'으로 포장되었을 뿐이다. 장쩌민(江澤民)의 천시통(陳希同) 제거나 후진타오(胡錦濤)의 천량위(陳良宇) 낙마 등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
사실 이들은 부정부패에 연루되었을 뿐이지 '체제 전복'이나 '국가 변란'이나 '권력 교체' 등의 '정치적 야심'과는 무관하다. 오히려 해당 권력의 최대 수혜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패 관료들을 계속해서 단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부정과 부패가 사라지지 않고 만연하고 있다. 그 사정의 칼날을 쥐고 있는 중앙기율검사위원회가 저승사자의 역할을 쉬지 않고 계속하는데도 여전히 중국에서 부정과 부패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잔뜩 몸을 움츠리고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과정에서 '부패 사정이 경제를 위축시킨다'는 반론도 심심찮게 나오면서 일종의 반격의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사정 당국은 피로감이 쌓여가고 있고 관료들은 움츠러들고 국민들은 부정과 부패에 둔감해지고 있다. 시진핑 집권 기간은 3년을 지나고 있다. 중국체제가 외부의 감독과 관리를 받지 않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그들만의 리그'라는 내부 감독체계가 작동해야 하는데 쉽지 않아 보인다.
반부패 투쟁과 '정치적 야심'이라는 주홍글씨의 협주곡
시진핑의 모습에서 조속히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당풍(黨風) 혁신으로 이어가야 한다는 조바심이 엿보인다. 당위론 차원에서 부정부패 일소가 체제 정당성을 제고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계속해서 이것만을 국정의 동력으로 삼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적 야심' 문제를 거론한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은 해당 연설에서 "당내에는 야심가들과 음모가들이 존재한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이는 당내의 모든 문제를 야심가들의 '정치적 야심' 차원에서 접근하겠다는 일종의 선전포고인 셈이다.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제5차 회의에서도 "어떤 사람은 '정치적 야심'이 팽창되어 있다. 자신의 이익 혹은 소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당 조직을 배신하고 정치 음모활동을 하고 있으며 당을 파괴하고 분열시키는 짓을 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한 적이 있다.
2015년 8월 15일 중국공산당에서 발행하는 <구시(求是, 2015/16)>라는 잡지에는 스핑(石平)이라는 필명으로 <반부패 청산의 정치적 채무와 민심의 채무(算清反腐敗的政治賬民心賬)>라는 글이 실렸다. 이 글에서 부패로 낙마한 저우용캉(周永康), 보시라이(薄熙來), 궈보슝(郭伯雄), 쉬차이허우(徐才厚), 링지화(令計劃), 수롱(蘇榮) 등을 정치적 야심이 팽배하고 권세욕에 빠진 인물로 거론하고 (공산당에서 금기시하는) 비조직 정치활동을 통해서 당의 단결과 통일을 저해했다고 명시적으로 비난했다. 이는 올 초 시진핑이 언급한 '정치적 야심'이라는 것이 부패 혐의로 낙마한 고위 관료들에게 덧칠해진 또 다른 '주홍글씨'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따라서 향후 반부패 단죄는 계속하되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피로감을 약화시키기 위한 특단의 조치로 '정치적 야심' 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통해 반부패 피로감을 줄여나가고 관료들에게 긴장감과 위기감을 조성하여 기강을 바로 잡고, 나아가 인민들에게 정책 지속이라는 신뢰감을 높여 나갈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당국가 체제 특성상 인민의 신뢰야말로 가장 강력한 개혁의 동력이기 때문이다.
시진핑 역시 이 점을 매우 잘 체득하고 있다. 그는 "민심이 최대의 정치이고, 정의는 최강의 힘(民心是最大的政治, 正義是最強的力量)"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천하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는 바로 민심을 얻는 것이요, 천하가 어찌 혼란스러운가는 바로 민심을 잃었기 때문이다(天下何以治? 得民心而已!, 天下何以亂? 失民心而已!)"는 사고를 갖고 있다.
시진핑이 '정치적 야심' 문제를 연설에서 세 차례나 거론했다고 해서 '정치적 야심'에 기반을 둔 정치적 사건이 터져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는 일종의 부정부패로 일차 단죄된 고위 인사들에 대한 덧칠하는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점에 이러한 용어가 쓰였다는 점을 되짚어 보면, '정치적 야심'이라는 민감한 용어를 구사하면서까지 당의 기율을 강조하고 싶은 시진핑의 의중을 읽을 수 있다. 이런 용어를 써서라도 당의 기율을 확립하려는 절박함이 묻어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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