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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 해양 플랜트 가격 정보 15년간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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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대우조선, 해양 플랜트 가격 정보 15년간 숨겼다

[해설] 부실 공시, 부실 감독이 조선업 부실 키웠다

21억5400만 원.

고재호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지난해 회사로부터 받은 돈이다. 그는 지난해 5월까지 대표이사를 지냈다. 지난해 상반기 근로소득이 6억4900만 원, 퇴직금이 15억500만 원이다.

대우조선해양이 지난해 공시한 반기 보고서에는 고 전 사장의 보수 산출 기준이 적혀 있다.

"계량 지표와 관련하여 수익성, 성장성 및 생산성은 매출액이 2013년 14조800억 원에서 2014년 15조1595억 원으로 전년 대비 7.7% 증가한 점을 고려하였습니다. 비계량 지표와 관련하여 어려운 경영 여건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경영관리와 장기발전 기반을 마련하였으나, 자회사 관리 및 위험 관리에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한 점을 고려하여 2013년 대비 63% 삭감하여 2014년 성과급을 산출 및 지급하였습니다."

회사를 위기로 몰아넣은 책임자에 대한 평가로 온당한가. 지금 읽으면, 확실히 동의하기 어렵다. 하지만 시계바늘을 지난해 초로 되돌리면, 생각이 달라진다. 당시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대부분 대우조선해양 주식에 대해 매수 의견을 냈다. 대우조선해양의 부실이 심각하고, 이에 대한 수술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설 자리가 없었다. 결국 더 적은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었던 부실을, 더 큰 비용으로 감당하게 됐다. 구조 조정 시기를 놓친 대가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실세들이 내려 보낸 '낙하산' 인사들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채권단인 산업은행, 경영을 감시해야 할 사외이사 등의 책임 역시 크다. 커튼 뒤에 숨어서 책임지지 않는 권한을 행사한 금융 당국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한 가지 가정. 만약 대우조선해양이 공시한 정보가 주식시장에서 꼼꼼한 검증을 거쳤다면, 어땠을까. 부실한 공시, 석연치 않은 회계 처리 등에 일찍부터 주목했다면 어땠을까. '낙하산' 인사 등의 문제가 그대로였다고 해도, 문제는 덜 곪았을 가능성이 크다. 부실 징후가 시장에 빨리 알려지면, 주가가 하락하면서 경영진에게 압력이 가해진다. 이런 장치가 잘 작동하는 것만으로도, 기업 건전성이 개선된다.

공시 제도는 자본 시장을 유지하는 핵심 인프라다. 주식회사와 투자자 사이에서 일종의 언론 역할을 한다. 이 기능이 망가지면, 부실기업으로 오히려 돈이 흐르는 일이 생긴다. 암세포에게 영양을 투입하는 격이다.

대우조선해양이 그간 공시한 정보 가운데 이상한 점들을 짚어봤다. 언론이 진작 했어야 할 일이다. 제2의 대우조선해양을 막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므로, 뒤늦게나마 살펴봤다.

15년 동안 감춰왔던 해양 플랜트 가격 정보

첫 번째는 민감한 정보의 누락이다. 대우조선해양이 공시한 사업보고서에는, '주요 제품의 가격 변동 추이'가 기재되어 있다. 이걸 보면, 가격 하락 폭이 크지 않다. 컨테이너선은 오히려 가격이 올랐다. 지난 2012년에는 1억700만 달러였는데, 2015년에는 1억1600만 달러로 올랐다.

그런데 언론은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 업체가 무리한 '저가 수주'를 해서 부실을 키웠다고 보도했다. 사업보고서만 보면, '저가 수주'라는 지적에 동의하기 어렵다. 그럼, 언론 보도가 틀린 건가. 그건 아니다.

사업보고서의 '주요 제품의 가격 변동 추이' 항목이 선박만 다뤘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저가 수주' 문제가 심각했던 해양 플랜트 부문은 누락했다. 이는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도 마찬가지다. 조선 3사 모두 해양 플랜트 관련 가격 정보를 빠뜨린 보고서를 공시했다.

보고서를 꼼꼼하게 읽어야만 알 수 있는 문제다. 불리한 정보를 감춘 기업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하지만 보고서를 비판적으로 읽지 않았던 애널리스트와 기자들의 책임도 크다.

해양 플랜트 가격 정보 누락을 공론화한 건 경제개혁연대다. 이 단체는 9일 논평에서 "2000년에서 2015년까지 해양 플랜트 부문의 가격 변동은 전혀 공시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지난 2000년 대우조선해양 매출에서 해양 플랜트 부문이 차지한 비중은 5.6%였다. 이 수치가 2010년에는 38.8%(특수선 포함)으로 뛰었고, 2015년에는 47.7%가 됐다.

경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보를 15년 간 감춰왔던 게다. 이에 대해 경제개혁연대는 중요 정보를 공시하지 않은 까닭, 그리고 감독 당국이 지적하지 않은 이유 등에 대해 명확한 해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손실로 변한 미청구공사, 감당 못한 '낙하산' 경영진

두 번째는 손익계산서와 현금흐름표 사이의 간극이다. 공시된 손익계산서만 놓고 보면, 대우조선해양은 대단히 우량한 기업이다. 이 회사의 당기순이익은 2008년에는 4017억 원, 2009년 5775억 원, 2010년 7801억 원, 2011년 7431억 원, 2012년 1370억 원, 2013년 2517억 원, 2014년 719억 원이었다. 안진회계법인이 2013년과 2014년의 수치를 뒤늦게 수정했고, 각각 마이너스 6736억 원, 마이너스 8302억 원이 됐다. 그래도 2012년까지는 흑자 행진이다.

그렇다면 현금도 넉넉해야 한다. 하지만 그간 공시된 현금흐름표는 전혀 다른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이명박 정부 첫 해인 2008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영업활동현금흐름이 마이너스였다. 그 이전에는 줄곧 플러스였던 지표다. 영업활동현금흐름이란, 기업이 영업 활동으로 벌어들인 현금이다. 미수금이나 외상매출은 포함되지 않는다.

현금흐름과 이익이 엇갈린 현상은 미청구공사 때문이다. 미청구공사란 수주기업이 매출액으로 인식은 했지만 아직 발주처에 청구하지 않아서 현금이 들어오지 않은 자산을 가리킨다.

예컨대 조선 업체가 천억 원대 프로젝트를 수주했다고 하자. 이 회사는 지금 공정을 30% 진행했다고 본다. 반면 발주처는 공정이 20% 진행됐다고 본다. 공정 진행 정도에 대한 판단이 엇갈리는 것이다. 이 경우, 수주 기업은 발주처가 인정하는 20%에 해당하는 금액, 즉 200억 원을 매출채권으로 잡는다. 그리고 자신들이 인정하는 공정 진행 정도와의 차이에 해당하는 10%에 해당하는 돈, 즉 100억 원은 미청구공사로 잡는다.

그런데 수주 업체가 프로젝트 기한을 못 맞추거나 발주처와 의견 충돌이 심각해지는 경우, 혹은 원가가 예상보다 늘어나는 경우에 문제가 생긴다. 미청구공사 대금이 손실로 돌변하는 것이다.

국내 조선 업체는 해양 플랜트 분야에 경험이 없다. 선박 건조가 기성복 만드는 일이라면, 해양 플랜트는 맞춤옷 제작이다. 후자가 더 까다롭다. 요구되는 기술 수준이 훨씬 높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대우조선해양에선 기술 비전문가가 요직을 차지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이른바 '낙하산' 인사와 맞물려 있다. 해양 플랜트 공정 진행 정도를 둘러싼 논란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의사결정을 주도한 것이다. 미청구공사 규모가 늘어난 한 이유다.

문제는 감독 당국이다. 감독 실무자가 해양 플랜트 사업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플러스였던 현금흐름이 2008년 이후 계속 마이너스를 기록한 현상을 그냥 지나친 책임은 물어야 한다. 명백히 이상한 일인데, 경고등을 켜지 않았다. 제때 경고가 이뤄지지 않은 대가를, 국민이 치르고 있다.

경영 못해서 생긴 적자, 땅값 재평가로 메웠다

세 번째는 자산 재평가다. 대우조선해양은 종종 토지 등 자산 가치를 재평가했다. 그때마다 토지 자산 가치가 뛰었다. 예컨대 지난 2009년에는 5127억 원으로 봤던 토지를 9835억 원으로 재평가했다. 가만히 있는데 돈이 불어난 셈이다. 이 회사가 2009년 거둔 재평가 차익은 7985억 원이다. 그게 없었다면, 대우조선해양은 2009년에 적자를 보는 거였다. 요컨대 사업을 제대로 못해서 생긴 적자를 땅값 재평가로 메운 셈이다.

이는 이 시기 재무제표만 살펴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감독 당국은 이 회사가 실제 사업에선 돈을 잃었다는 점을 지나쳤다. 그 이유를 지금이라도 따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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