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외교 수장으로서는 처음으로 쿠바를 방문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5일(현지 시각) 브루노 로드리게스 쿠바 외교 장관과 회담했다.
한-쿠바 외교 장관 회담은 아바나 시내의 쿠바 정부 건물인 '컨벤션 궁'에서 75분에 걸쳐 진행됐다.
윤 장관과 로드리게스 장관은 2013년 9월 뉴욕에서 개최된 한국·라틴아메리카-카리브 국가 공동체(CELAC) 고위급 회담 계기에 면담한 적은 있지만 양국 간 공식 외교 장관 회담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회담에서 우리 측은 사실상 강력한 수교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져 향후 양국 관계 정상화에 중대 이정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양국은 앞으로 고위급 교류 등을 통해 다양한 차원의 후속 협의를 이어갈 것으로 보이며, 이는 관계 정상화의 속도를 촉진하는 촉매제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윤 장관은 회담 후 외교부 공동 취재단에게 "우호적이고 진지하고 허심탄회한 (분위기) 가운데 회담했다"면서 "양국이 가진 잠재력을 더욱 구체화할 시점이 다가왔다는 점을 제가 강조했고,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우리 측의 생각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잠재력을 구체화할 시점'이라는 언급은 수교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윤 장관은 "(관계 개선을 위한) 이심전심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느꼈다. 다양한 후속 협의를 생각하고 있다"면서 "미래에 대한 비전과 방향성, 로드맵을 갖고 양국관계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회담에 배석했던 한 외교 소식통도 "양자 문제, 글로벌 협력, 인사(교류) 문제를 포함한 양국 간 관심사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면서 "우리 쪽에서 하고 싶은 얘기를 다했다"고 전했다.
윤 장관은 로드리게스 장관에게 1969년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했던 닐 암스트롱의 "개인에게는(한 인간으로서) 하나의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를 위한 위대한 발자국"이라는 역사적 명언을 인용하며 양국 관계에서 자신의 방문이 갖는 의미를 강조했다.
윤 장관은 쿠바의 혁명가이며 독립 영웅인 호세 마르티의 시(詩)를 언급하며 아늑하고 포근한 쿠바의 정경이 인상 깊었다는 소감도 전했다.
이에 대해 쿠바 측은 상당히 호감을 표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관계 정상화에 대한 쿠바 측의 구체적 언급은 전해지지 않았다. 윤 장관도 취재진의 관련 질문에 언급을 피했다.
북한과 '형제국'인 쿠바의 입장과 북한의 반발, 방해 공작 가능성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외교부는 로드리게스 장관이 윤 장관의 방문을 환영했으며, 카리브 지역의 기후 변화(해안선 침식) 대응 협력 사업에 우리 정부가 적극 기여를 검토 중이라는 언급에 "한국과의 협력에 기대가 크다"면서 우리 측의 기여 의사에 사의를 표명했다고 전했다.
윤 장관은 회담 후 한인후손회관인 '호세 마르티 한국 쿠바 문화 클럽'을 방문해 안토니오 김 한인후손회장에게 "후손 여러분이 문화 교류 등을 통해 양국 국민 간 마음과 마음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한인 후손들의 한-쿠바 가교 역할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고,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더 큰 기여를 당부하는 방문록을 남겼다.
쿠바는 1949년 대한민국을 승인했지만 1959년 쿠바의 사회주의 혁명 이후 양국 간 교류는 단절됐으며, 이에 따라 우리와 공식 수교 관계를 맺은 적이 없다.
ACS(카리브국가연합) 정상 회의 참석을 위해 현지 시각으로 4~5일 쿠바를 방문했던 윤 장관은 우리 시각으로 7일 오후 귀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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