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도대체 적대시 정책이란 게 뭡니까?
김정은 : 네 그렇게 하죠. 이건 리용호 외무상이 설명해주시오.
리용호 : 네 알겠습니다. 우선 우리 공화국은 70년 가까이 귀국의 핵 위협에 시달려왔습니다. 이건 우리 공화국의 주장만이 아닙니다. 귀국의 <에이피> 통신도 이렇게 보도했습니다. 세계 비핵화를 주장한 오바마조차도 우리 공화국을 핵 선제공격 대상에 올려놓고 수시로 핵공격 훈련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우리 공화국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요구를 60년 넘게 해왔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조금도 성의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전협정을 이유로 남조선에 미군을 주둔시켜놓고 우리를 겨냥한 북침 훈련을 수시로 벌여왔습니다. 훈련을 중단해달라는 요구도 계속 뿌리쳤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정당한 위성 발사를 유엔 안보리로 가져가 제재를 가해왔습니다. 유엔 회원국 가운데 위성 발사가 안 된다고 하는 나라는 우리 공화국밖에 없습니다. 이건 우리 공화국의 주권에 대한 용납 못할 침해입니다.
또한 70년 가까이 경제 봉쇄를 가하고 다른 나라와 경제 활동도 못하게 해 우리의 발전권을 심대하게 침해해왔습니다. 더구나 있지도 않은 인권 문제를 들면서 우리 공화국의 '최고 수위'를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하겠다고 위협해왔습니다. 이 밖에도…
트럼프 : 자자, 그 정도면 됐어요. 내가 무슨 강의 들으러 온건 아니지 않소? 이번엔 우리 국무장관 얘기를 들어봅시다. 리 장관이 얘기한 게 모두 사실이오?
국무장관 : 그건 대부분 북한이 자초한 겁니다. 한국전쟁을 비롯해 북한이 끊임없이 도발해온 결과입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고 관계 정상화를 할 것이며 대규모 경제 지원도 하겠다고 했는데, 북한이 고집을 부려 이루지 못한 것입니다. 로켓 문제도 북한의 의도는 위성 보유보다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인권은 보편적 가치입니다. 북한이 스스로 인권을 개선한다면 그럴 일이 없을 겁니다.
리용호 : 자초라니요? 94년에 체결한 조미 제네바 합의를 어긴 게 누구입니까? 2000년 조미 공동코뮤니케는 누가 찢어버렸습니까? 2008년에 합의하지도 않은 검증 문제를 들고나와 6자회담을 결렬시킨 쪽은 누구입니까? 우리의 평화적 위성 발사 권리를 침해해 2.29 합의를 휴지조각으로 만든 당사자는 누구입니까? 그리고…
트럼프 : 자자, 그래서 요구 조건이 뭡니까? 주한미군 철수로만은 안 된다는 뜻인가요?
김정은 :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죠. 남조선 주둔 미군이 떠나도 미국은 얼마든지 우릴 공격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핵 포기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주권을 존중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우리에 대한 경제제재를 완전히 해제하고 조미 수교를 하면 핵 동결은 가능할 겁니다.
트럼프 : 핵 동결? 그건 이미 만든 건 계속 갖고 앞으로 안 만들겠다는 뜻 아니오? 내가 이런 얘기나 들으려고 여기까지 온 줄 아시오? 내가 얼마 전에 시진핑을 만나서 그랬소. 북한의 핵을 포기시키지 않으면 당신들도 각오하라고요. 듣자 하니 귀국은 중국한테 죄다 의존하면서 살고 있다고 하던데…
김정은 : 허허, 그래서 시진핑(習近平)이 뭐라고 하던가요? 우리 공화국과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겠다고 하던가요? 그리고 우린 철저하게 자력갱생으로 살아왔어요. 중국이 어떻게 나오든 거뜬히 버틸 수 있으니 마음대로 해보라고 하세요. 이거 트럼프 대통령과는 말이 좀 통할 줄 알았는데, 실망이군요.
트럼프 : 하하, 그래서 협상을 그만두자는 것인가요? 좋습니다. 이만 일어납시다.
트럼프는 악수도 나누지 않고 문밖으로 나가버렸다. 김정은도 상기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트럼프가 나가는 걸 지켜봤다. 김정은이 잠시 감은 눈을 뜨곤 리용호에게 물었다. "어떻소? 저자를 상대로도 글러먹은 것 같소?”
"그래도 이렇게 끝내서는 안 됩니다. 제가 미 국무장관하고 얘길 나눠보겠습니다" 리용호가 고개를 끄덕이는 김정은의 모습을 보곤 미국 수행단을 따라나섰다. 미 국무장관 역시 트럼프에게 후속 회담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리용호와 미 국무장관은 잠시 후 접촉을 갖고 3시간 후에 정상회담을 속개키로 했다. 다시 백화원 초대소에서 마주 앉은 김정은과 트럼프. 김정은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김정은 : 첫 단추는 잘 끼워야 하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입니다. 평화협정 체결과 핵 동결은 아주 의미 있는 첫 단추이자 조미관계의 반환점이 될 것입니다.
트럼프 : 핵 동결이 첫 단추라... 그럼 비핵화는 언제 하는 거요?
김정은 : 그건 귀국하기 나름입니다. 조미 관계가 적대관계에서 완전히 평화관계로 전환되면, 그 때 가서 고려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의 핵 포기는 되돌리기 힘든 불가역적 조치입니다. 핵무기를 어디에 맡겼다가 여차하면 다시 찾아올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반면 평화협정도 경제협력도 우리에 대한 제재 해제도 하루아침에 되돌릴 수 있는 것들입니다. 또한 우리가 핵을 포기한다고 그것으로 끝날까요? 로켓도 있고, 인권문제니 뭐도 있고, 생화학무기도 있고, 줄줄이 트집 잡을 문제들이 널려 있습니다. 강대국들의 사탕발림에 넘어가서 핵을 포기했다가 크게 당한 리비아와 우크라이나도 있고요.
이건 그냥 의심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한두 번 당해본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비핵화는 미국의 여러 정부도 경험해보고, 조미 관계가 완전히 달라지면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수 있을 겁니다.
트럼프 : 그래서 핵 동결 대 평화협정으로 가자? 거 시진핑도 비슷한 얘기를 하던데, 그럼 내 임기 내에 비핵화는 불가능해지는 것 아닙니까? 이건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비핵화를 약속해야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김정은 : 너무 비핵화에만 매달리지 않는 게 좋습니다. 일단 반환점을 만드는 게 중요하죠. 반환점을 만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선 미국의 안보 부담 자체가 크게 줄어들 겁니다. 이건 트럼프 행정부도 그렇고 미국 국민들도 바라는 바 아닙니까? 그리고 조미 간의 경제협력이 본격화되면 미국도 큰돈을 벌 수 있어요. 우리 공화국에 자원이 무궁무진합니다. 얼마 전 <이코노미스트>를 보니 우리 땅에 매장된 지하자원 가치가 10조 달러가 넘는다고 하던데, 조미 간의 관계가 정상화되면 미국에 우선적으로 배려하겠습니다.
트럼프 : 허허, 거 구미 당기는 제안이군요. 하지만 비핵화의 목표 시한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한 5년 정도로 하는 건 어떻습니까? 내가 그사이에 미북 관계도 완전히 바꿔놓겠습니다.
김정은 : 이란 핵 협정 이행 기간도 15년이던데 너무 각박한 것 아닙니까? 시한을 정하지 말고 '비핵화가 최종적인 목표이다'라는 정도의 합의 내용을 넣을 수는 있습니다. 우선 핵 동결과 평화협정부터 합의하고 경제제재도 완전히 해제합시다. 이렇게 해야 미국도 우리한테 대대적으로 투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조미 간의 역사는 너무 정치군사문제에 얽매여 있었습니다. 이제 경제관계로 전환하면 양국 모두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귀국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문제는 경제 아닙니까?
트럼프 : 좋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실무 협의로 넘기고 정상회담은 이것으로 마칩시다. 거 듣자하니 모란봉 악단 공연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고 하던데, 좀 쉬었다가 공연이나 보러 갑시다.
김정은 : 하하, 트럼프 대통령께서도 좋아하실 만한 노래 많이 준비했다고 하니 따라 부르셔도 좋습니다.
정상회담 직후 리용호와 미 국무장관은 공동성명 문안을 집중적으로 협의했다. 그 결과 "양국 정상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 궁극적인 목표임을 확인하고, 그 중간 단계로 핵 동결 조치와 평화협정 체결, 그리고 정치적, 경제적 관계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는 문안에 합의했고, 양국 정상의 재가를 받아 발표했다.
이에 대한 각국의 반응은 크게 엇갈렸다. 중국과 러시아 정부는 즉각 "환영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 정부는 미국 정부를 의식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하지는 못한 채, "긴밀한 협의를 기대한다"는 수준의 입장을 내놓았다. 특히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주한미군 철수를 약속한 게 아니냐는 추측성 우려를 강하게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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