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신하지 않는 구조 세력
선박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당신은 구조 세력으로서 헬기를 이용하여 사고 현장으로 출동하였습니다.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약 15분 정도의 시간이 있습니다. 그 15분의 시간 동안 당신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또 현장에 도착한 즉시 당신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구조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황이 파악되어야 합니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사고 선박과 교신을 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만약 사고 선박에 여러 번 교신을 시도하였음에도 교신이 되지 않는다면 상황실에 상황을 물어보거나, 현재 사고 선박과 교신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를 알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그에 맞게 대처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교신 행위가 지극히 어려운 일일까요?
"기본입니다. 기본. 정보를 알아야 자신이 현장에 가서 무엇을 할 것인지 판단이 서게 됩니다. (···) 세월호 내에 무슨 상황이 발생하였는지 알지 못하면 도착해도 전혀 조치를 취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계속 교신을 유지하여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1차적 목표입니다"(진모 전 해군해난구조대 대장 검찰 참고인 진술)
"그건 꼭 배라고 하는 상황이 아니어도 구조를 하면서 상대의 상황을 알려고 하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항해사의 상식으로서 구조하려고 현장에 갔으면, 현장에 있는 조난 선박과 교신하려고 시도를 하였을 것이고, 교신이 되지 않으면 휴대폰이든 가능한 방법을 찾았어야 할 것입니다."(이모 한국해양대 교수의 검찰 참고인 진술)
위 참고인 진술은 123정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헬기에도 그대로 해당됩니다. 해경 헬기 3대는 모두 세월호와 단 한 번도 교신을 하지 않습니다. 현장지휘함의 역할을 맡았던 해경 123정 역시 세월호와 단 한 번도 교신을 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해경 123정과 해경 헬기도 서로 단 한 번도 교신을 하지 않습니다.
당시 세월호, 해경 헬기, 해경 123정은 모두 공통적으로 통신 장비 둘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VHF(Very High Frequency, 초단파)는 상대적으로 근거리 통신에 사용되고, SSB(Single-Side Band, 단측파대 전송)는 VHF보다 더 낮은 주파수 대역을 사용하여 상대적으로 원거리 통신에 사용되는 통신기입니다.
위 표는 해경 항공기에 어떠한 통신장비들이 설치되어 있는지를 나타낸 것입니다. 헬기 중에서 '팬더'(panther)가 사고 해역에 도착한 511, 512, 513호의 기종입니다. 팬더에는 VHF와 SSB가 장착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세월호에는 VHF 2대와 SSB 1대가 설치되어 있었고, 해경 123정에도 VHF와 SSB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세월호, 헬기, 123정의 통신 장비는 모두 정상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이렇듯 충분한 통신 설비를 갖추고 있었고, 모두 정상 작동하고 있었음에도 이들은 교신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는 많은 생각을 할 필요 없이 그냥 명백한 의혹 사항입니다. 현장으로 가는 도중에 세월호와 교신하여 상황을 파악하고 적절한 지시를 내리는 것, 그리고 현장에 도착해서 도착했다고 이야기하고 선원들과 상의하여 승객들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특별한 훈련을 필요로 하는 고도의 작업이라고 생각하기도 힘듭니다.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있습니다. 첫째, 정말 교신을 하지 않은 경우. 이 경우에는 해경의 무능을 넘어서는 어떤 이유, 즉 교신을 해서는 안 되거나 아니면 교신을 할 필요가 없거나 하는 등 어떤 이유가 존재했으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 실제로는 교신을 했는데 이를 은폐하고 있는 경우. 이 경우에는 밝혀져서는 안 되는 어떤 내용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둘 중 어떤 경우이든 진상 규명이 되어야 합니다.
상황실, 지휘부의 책임은?
"세월호 사고 현장으로 이동하면서 초단파무선통신, 휴대전화 등 교신 수단을 통해 세월호의 선장 또는 선원과 교신하여 다치거나 사망한 승객이 있는지, 가장 구조가 시급한 승객이 누구이고 어디에 있는지, 나머지 승객들은 몇 명이고 현재 어떤 상황에 있는지, 승객들이 구명조끼를 제대로 착용하고 있는지, 퇴선 지시가 내려져 승객들이 갑판 등 비상 대피 장소에 나와 있거나 바다에 떠 있는 상태인지, 어디로 접근하여야 가장 신속하게 많은 승객을 구조할 수 있는지 등 세월호의 상황을 신속히 확인하고 필요한 정보를 전달받아야 했다."(123정장 재판 항소심 판결문)
위 글은 123정장 항소심 판결문의 일부입니다. 김경일 정장이 업무상과실치사, 업무상과실치상 유죄를 받게 되는 근거 중 하나가 되는 부분입니다. 모두들 아시는 바와 같이 세월호 참사에서 '구조'와 관련하여 처벌받은 사람은 김경일 정장 단 한 사람뿐입니다.
하지만 위 판결문은 헬기 대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123정은 현장지휘함이라 책임이 더 크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헬기는 가장 먼저 도착한 구조 세력입니다. 가장 먼저 도착한 세력이 상황을 파악하여 이후에 속속 도착하는 세력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헬기는 하늘에서 상황을 내려다보는 것이기 때문에 바다에 있는 세력보다도 상황 파악에 더 유리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또 위 판결문은 상황실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세월호와의 교신은 꼭 현장에 출동한 세력들만이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현장 출동 세력이 다른 일로 바쁠 수가 있기 때문에 현장 세력들이 교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상황실이 대신 교신을 해서 출동 세력에게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상황실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끝으로 위 판결문은 해경 지휘부에게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지휘부는 상황실의 책임자이기도 하고, 구조활동 전체의 책임자이기도 합니다.
또 하나의 미스테리, 해경 초계기 CN-235(B703)
703호는 헬기 511호보다 1분 빠른 9시 26분경 세월호 사고 현장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구조와 관련된 행위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고 다만 현장 촬영과 헬기 통제만을 하였습니다. 703호는 저속 저공 비행이 가능한 항공기이고 구명벌을 5개 보유하고 있었지만, 이를 터트려 구조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려는 행위는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703호는 당시 헬기 3대가 작업 중이므로 헬기가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통제하는 역할을 하였고, 그 과정에 헬기 511, 512호와 교신을 하였습니다. 앞의 표에서 보면 CN-235 역시 VHF와 SSB를 장착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얼마든지 세월호나 123정과 교신이 가능함에도 교신을 하지 않고 헬기하고만 교신을 한 것입니다.
이 703호의 활동과 교신에 대한 정보공개 요청에 대해, 국민안전처는 당시 활동 일지와 보고문서 등은 비공개 결정을 하였고, 교신 내역과 관련해서는 "당시 사용한 VHF 123.1MHz(항공 비상주파수) 및 SSB 2183.4kHz(선박 비상주파수) 교신내용을 따로 녹음하는 장비 및 기록하는 일지류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703호의 문제는 단지 구조와 교신에 소극적이었다는 것만이 아닙니다. 703호는 이후 언론과의 완전한 허위 인터뷰를 통해 언론의 오보에 커다란 공헌을 하는 역할도 합니다. 703호 부기장 이모 경위는 10시 38분경 KBS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대부분의 인원들은 현재 출동해 있는 함정, 그리고 지나가던 상선, 그리고 해군 함정(에 의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조가 된 상황입니다. 현재 수면 아래에 사람이 갇혀 있는지 파악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조되었다는 것도 거짓이고, 현재 수면 아래에 사람이 갇혀 있는지 파악을 하고 있다는 것도 거짓입니다. 세월호 참사는 탑승인원 476명 중에서 304명이 사망한 사건입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조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사실에 부합합니다.
또 구조 세력이 수면 아래를 파악하는 행위, 즉 잠수를 최초로 시도해 본 시각은 13시입니다. 그런데 이모 경위는 10시 38분경 저런 인터뷰를 하였던 것입니다.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지만 아무런 구조행위를 하지 않았던 703호. 도대체 어디서 정보를 얻어서 저런 인터뷰를 하게 되었을까요?
'세월호, 의혹의 확정'은 '국민참여를 통한 세월호 진상규명' 후속 연재입니다. 박영대 위원은 세월호 연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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