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 구조할 수 있었던 두 번째 기회
9시 12분경 둘라에이스호 도착하였을 때가 전원 구조할 수 있었던 첫 번째 기회였다면, 9시 27분경부터 전원 구조할 수 있었던 두 번째 기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해경 헬기가 도착한 것입니다.
9시 27분경 B511호를 시작으로, 9시 32분경 B513호, 9시 45분경 B512호가 사고 현장에 도착하였습니다. (이하 B는 생략) 헬기에는 항공 구조사가 탑승하고 있었고, 헬기에서 줄을 타고 내려가는 것이므로 세월호 어디든 목표하는 지점으로 갈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헬기에서 내려온 항공 구조사가 세월호 조타실에 들어가 퇴선 방송을 하거나, 3층 안내데스크로 들어가 퇴선 방송을 하거나, 아니면 그냥 객실로 진입하여 육성으로라도 승객들의 퇴선을 유도하였다면 전원 구조는 가능하였습니다.
하지만 해경 헬기는 이와 같은 조치는 취하지 않고, 밖으로 나와 있는 소수의 사람들만 한 명 한 명 바스켓에 담아서 끌어 올리는 극히 소극적인 구조 활동을 펼칩니다. 당시 세월호에 총 476명이 탑승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너무나도 부적합한 구조 방식이었습니다.
더구나 당시 현장에 출동한 해경 헬기는 소형 헬기라서 승객을 5~6명 구조하고 나서는 인근에 있는 섬, 서거차도에 승객들을 옮겨 놓고 다시 와서 구조작업을 계속해야 했습니다. 또한 충돌 위험으로 인해 헬기 3대가 동시에 작업을 할 수가 없어 서로 교대로 작업을 하였기에 구조작업은 더더욱 더딜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헬기 3대가 구조한 인원은 총 35명(511호: 12명, 513호: 13명, 512호: 10명)뿐입니다. 476명 중 35명을 구조한 것입니다. 그것도 알아서 밖으로 나와 있는 승객들만을 구조한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해경 헬기 대원들은 한 목소리로 세월호 안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 줄 몰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안으로 들어갈 생각도 못 했고 밖으로 나오는 승객들만을 구조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요?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거대한 여객선이 침몰하는데 승객이 많은 줄 몰랐다고?
세월호에 많은 승객들이 탑승하고 있다는 것을 모를 수 있으려면 다음 네 가지 관문을 모두 통과해야 합니다.
첫 번째, 상황실에서 헬기에 출동 명령을 내릴 때 승객 수를 이야기해주지 않아야 합니다. 목포서 상황실의 경우 123정을 출동시킬 때는 당시까지 파악하고 있었던 수, 350명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헬기를 출동시킬 때만큼은 승객수를 이야기해 주지 않았어야 하고, 출동 이후에도 교신을 통해서 절대로 알려주지 않아야 합니다.
두 번째, 설령 출동할 때는 못 들었다 하더라도, 이후 수많은 교신들 속에서 승객수와 관련된 내용들이 나오는데 이 교신들을 헬기에서는 '전부' 못 들어야 합니다. 즉 "인원이 450명이니까 일사불란하게 구명벌"과 같이 직접적으로 숫자가 등장하는 교신 뿐만 아니라 "현재 승선객이 승객이 안에가 있는데 배가 기울어 가지고 현재 못 나오고 있답니다", "현재 승객이 절반 이상이 지금 안에 갇혀서 못 나온답니다. 빨리 원투투(122)구조대가 와서 빨리 구조해야 될 것 같습니다" 등 배 안에 많은 수의 승객들이 잔류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모든' 교신들을 다 못 들어야만 합니다.
참고로 헬기에는 헤드셋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기장, 부기장뿐만 아니라 구조사, 정비사, 전탐사들까지도 모두 착용할 수 있는 헤드셋이 준비되어 있는데, 교신은 기장과 부기장이 담당하였으므로 헬기 3대의 기장, 부기장 총 6명이 모두 승객 수 관련 교신을 전부 못 들어야만 합니다. 거의 1시간 동안.
세 번째, 길이 146미터, 폭 22미터, 높이 24미터의 거대한 '여객선'이 침몰하고 있는 현장을 뻔히 내려다보면서, 그 안에 많은 수의 '여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식적인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상황실을 통해서든, 다른 출동 세력을 통해서든 배 안의 상황을 알아보려는 시도를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헬기에서 바스켓으로 끌어올려 구조한 승객에게 배의 상황에 대해 절대로 질문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당시 출동한 해경 헬기는 하나같이 '여객선이 침몰한다는 것'과 '사고 현장의 위치', 두 가지 정보만을 받고 출동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구조된 승객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왜 침몰한 것인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물어보는 것은 상식적으로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이 당연한 행위를 절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이상 네 가지 관문을 '모두' 통과해야만 세월호 안에 많은 수의 승객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모를 수가 있습니다. 단 하나만 통과를 못 해도 세월호에 수백 명의 승객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버리게 됩니다.
과연 이 네 가지 관문을 모두 통과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사실 이 중 단 하나의 관문만을 통과하더라도 의혹으로 확정할 수 있을 수준인데, 헬기 대원들은 네 가지를 모두 통과해 버렸습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위 네 가지를 모두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지 않나요?
상황실에서 설령 처음에는 승객수를 전달해 주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후 교신을 통해서도 전혀 이야기를 해 주지 않고, 또 헬기에서도 물어보지 않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한 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승객수와 관련된 모든 교신을 헬기 3대의 기장, 부기장이 모두 못 듣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거대한 여객선 안에 많은 수의 여객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구조된 승객에게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끝으로 이 모든 것들이 전부 다 이루어지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헬기에서 세월호 안에 많은 수의 승객이 있는줄 몰랐다는 것은 믿기 힘든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를 의혹으로 확정하고자 하는데, 독자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헬기에서 한 명의 예외가 있기는 합니다. 바로 513호 부기장인데, 그는 선박 안쪽에 사람들이 갇혀 있다고 생각했지만 선장이나 선원들이 승객들을 퇴선시키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합니다. 몰랐다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렇게 남에게 떠넘기는 것이 더 솔직한 것일까요? (해경 헬기②에서 계속)
'세월호, 의혹의 확정'은 '국민참여를 통한 세월호 진상규명' 후속 연재입니다. 박영대 위원은 세월호 연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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