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제2차 청문회가 마무리되었습니다. 1차 청문회가 '구조'를 다루었다면 이번에는 '침몰'을 다루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미 많은 언론에서 청문회에서 나온 내용들을 다루었으므로 여기서는 기술적으로 다소 까다로운 부분과 언론에서 많이 주목하지 않았던 부분을 중심으로 조금 더 보충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AIS 항적 문제입니다.
선박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AIS 항적도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선박 관련 지식이 필요합니다. 우선 '타'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타(rudder, 방향타)는 선박의 선미에 위치하여 선박의 방향을 바꾸는 데 사용하는 장치입니다.
위 사진은 '타'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진입니다. 세월호가 90도 이상 기울어 물속에 있어야 할 타가 완전히 밖으로 나와 있는 것입니다. 세월호는 타가 가운데 있고 양쪽에 프로펠러가 있는 그런 구조입니다. 이 '타'를 좌우로 움직여 선박의 방향을 변경시키는데, 타는 좌우로 최대 35도까지 움직일 수 있으며 타를 최대치까지 움직이는 것을 '전타'라고 합니다.
선박 항해에서 방향은 0도에서 359.9도까지로 표현하는데, 0도는 정북을 나타내고 90도는 정동, 180도는 정남, 270도는 정서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만약 선박의 선수 방향(헤딩 값)이 180도에서 185도로 바뀌었다면 이는 남쪽으로 항해하던 선박이 선수 방향을 오른쪽으로 약간 틀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편 세월호는 조타실이 5층, 3·4층이 객실, 1·2층이 화물칸, 지하 1층이 기관실로 되어 있는 6층짜리 빌딩이라 할 수 있으며, 길이 146m, 폭 22m, 높이 24m, 총 6800톤급의 거대한 구조물입니다. 그리고 일부분은 물에 푹 잠겨있어, 물의 저항을 받으면서 이동하는 물체입니다. 이런 거대한 물체는 육지의 자동차처럼 빠르게 방향 전환을 할 수는 없습니다.
세월호가 일본에서 건조된 직후 진행되었던 시운전에서 짐을 싣지 않고 최고속력(23.23노트)으로 운항하면서 최대 조타각인 35도를 사용하였을 때 최대선회 각속도는 1.81도였습니다. 즉, 최고 속력으로 달리면서 조타를 최대치로 했을 때 선수 방향이 최대로 움직일 수 있는 각도가 1초에 1.81도였던 것입니다.
건조된 직후에 비해 2014년 4월 16일의 세월호는 약 2000톤 이상의 짐을 실어 더 무거운 상태였고 건조한지 20년이 흘러 최고 속력도 더 느린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세월호가 1초에 1.81도 이상 자력으로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AIS란?
AIS(Automatic Identification System)는 선박이 항해하면서 배 이름, 경도와 위도, 속력, 선수 방향 등의 정보를 일정한 규칙에 따라 발신하는 시스템입니다.
각 선박에서 AIS 데이터를 발신하면, AIS 기지국에서 일단 수신을 하고, 기지국을 거쳐 관할 VTS(Vessel Traffic Service, 해상교통관제) 센터에서 암호화된 원문을 1차적으로 저장을 하며, 그 다음에 해양수산부의 해양안전종합정보시스템(GICOMS)에서 원문을 해석하고 2차적으로 저장이 됩니다. GICOMS에서는 관계기관(청와대, 해경 상황실 등)에 AIS 데이터를 보내 주는 역할도 합니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 이후 AIS 항적을 네 차례에 걸쳐 발표하였습니다. 정부통합전산센터 AIS 데이터베이스에 2014년 4월 16일 03:37-09:30 동안 항적이 5%밖에 저장이 되지 않아 관할 VTS센터의 정보를 복원하는 과정이 필요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복원 작업은 GMT라는 업체에 해수부가 위탁용역하여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복원된 AIS 항적 역시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많이 있어 이번 청문회에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제기되었습니다.
6800톤 세월호, 1초당 14도 움직였다?
해수부가 복원한 AIS 항적 데이터 문제는 크게 두 종류입니다. 첫 번째는 원문 데이터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경우이고, 두 번째는 원문 데이터 내용을 그대로 제공하지 않고 수정을 해서 제공한 경우입니다.
첫 번째 경우의 대표적인 예는 세월호의 선수 방향 문제라 할 수 있겠습니다.
둘라에이스호가 찍은 영상. 세월호의 선수 방향이 병풍도 반대편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9시 10분에서 20분 사이 세월호 뒤에 있던 둘라에이스호가 세월호를 찍은 영상에서 세월호의 선수 방향은 병풍도 반대편 쪽을 향해 있습니다. 이것이 실제 세계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그런데 해수부가 발표한 AIS 항적도에서는 이 시간대에 선수 방향이 190~210도 사이에 있어, 병풍도를 바라보는 것으로 나옵니다. 현실과 반대 방향인 것입니다.
위의 사례는 실제와 '다른' 현상을 나타내고 있는 경우라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현상을 나타내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위 표를 보시면 세월호의 선수 방향이 8:49:44에 199도, 1초 뒤인 8:49:45에 213도, 그 2초 뒤인 8:49:47에 191도인 구간이 있습니다. 이 말은 세월호가 44초에서 45초로 가는 1초 동안 14도 우회전을 했고, 그 다음 2초 동안 갑자기 방향을 틀어 22도 좌회전을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거대한 세월호가 1초에 1.81도 이상 자력으로 각도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세월호의 이동 방향을 변화시킬 정도로 커다란 외부적 충격이 가해진 분명한 증거가 제출된 적은 아직까지 없습니다.)
세월호의 선수 방향이 1초에 14도 움직이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그 다음에 순식간에 반대 방향으로 다시 초당 11도로 움직이는 것은 더욱 불가능합니다. 자연계에서 존재할 수 없는 움직임입니다.
이에 대해 2014년 12월 29일 발표된 해양안전심판원(해심원) 특별 조사 보고서에서는 AIS 데이터의 송신 시간 기준으로 정렬하면 199->213->191의 순서이지만, 이를 수신 시간 기준으로 정렬하여 191->199->213으로 재정렬하면 이상 항적은 없다고 발표했습니다.
선박에서 먼저 송신한 데이터가 나중에 보낸 데이터보다 기지국에서 더 늦게 수신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해심원은 송신 시간 기준으로 정렬하면 199->213->191의 순서라서 우회전하던 배가 갑자기 좌회전하는 현상이 나타났지만, 수신 시간 기준으로 정렬하면 191->199->213의 순서가 되어 계속해서 우회전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문제없다는 입장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더라도 여전히 1초에 8도, 7도를 움직인 것이므로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현상입니다. 이에 대해 이번 청문회에서 참고인으로 나왔던 허용범 전문가 자문단 단장은 지난 선장 선원 공판에서와 마찬가지로 기계적인 오류로 설명하였습니다.
정리하면 해수부가 AIS 항적을 발표한 것은 2014년 4월이고, 논란 구간을 기계적 오류로 지적한 합동수사본부 전문가 자문단 보고서가 나온 것은 2014년 8월이며, 해심원 특별조사보고서가 나온 것은 2014년 12월입니다. 논란이 계속되었던 것이고 시간적으로 가장 늦은 해심원의 발표 역시 납득하기 힘든 내용입니다.
다음으로 두 번째 경우, 즉 원문데이터를 수정한 경우의 대표적인 예는 속도 데이터(SOG, Speed Over Ground)입니다. 원문에는 102.3으로 되어있는데 해수부가 발표한 자료에서는 102.2로 바뀌어져 있습니다. 이에 대해 복원업체 연구소장은 프로그램 오류로 설명하였습니다.
조기정 증인((주)GMT 연구소장) : "프로그램 상의 오류에 의해서 SOG가 소수점 단위의 오차가 포함된 자료들이 좀 있습니다." "20.2 같은 경우 20.1로 바뀝니다. 그리고 20.7 같은 경우 20.6, 20.9 같은 경우 20.8, 102.3이 102.2로 바뀌는 그런 현상이 있었습니다."
권영빈 위원(진상규명 소위원장) : "엑셀로 바꾸는 프로그램에 오류가 있다는 거죠?"
조기정 증인 : "예"
GMT에서는 프로그램 오류로 인한 소수점 오차라고 해명하였지만 아직 다 해명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다른 숫자들은 몰라도 102.3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위 ITU 권고안에서 보듯이 102.2는 실제 속도가 102.2노트거나 아니면 그보다 더 빠른 속력을 의미하지만, 102.3은 하나의 코드로서 정보가 없는 경우(not available)를 의미합니다. 단순한 숫자가 아닌 하나의 코드인데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프로그래밍을 했을까요?
지면 관계상 모든 예를 다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원문 데이터 누락 문제, 원문에는 있지만 삭제한 데이터 문제, 선회율(ROT) 데이터 문제, 같은 시간에 다른 속력과 위치를 나타내는 데이터 문제, 저장기능을 갖고 있지 않은 선박의 AIS 시스템이 과거 정보를 발신하는 문제 등 정부가 발표한 AIS 항적에는 무수히 많은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정부 발표 AIS 데이터를 어떻게 볼 것인가?
"우리 특조위는 현재 AIS 항적을 조작했는지 이런 것에 대해서 판단할 수 없습니다. 다만 정부가 발표한 AIS 항적이 어떤 의도 하에 편집된 게 아닌가 하는 의문점이 있구요. 그다음에 AIS 항적 자체에도 믿기 어려운 점이 몇 가지 확인되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세월호 특조위는 세월호 참사 원인을 규명하는데 정부 발표 AIS 항적에만 의존하는 것은 진상규명을 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구요. 그래서 참사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이제 AIS 항적은 좀 참고자료로 옆에 두고 좀더 광범위한 자료를 수집해서 참사 원인을 밝혀야 하지 않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권영빈 상임위원 1일차 1세션 마무리 발언)
AIS 항적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의 첫 출발점이 되어야 했던 데이터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의혹 덩어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럼 AIS 데이터는 의혹으로 확정해야 하는 걸까요? '기계적 오류'라는 답이 존재하는 한 의혹으로 확정하기는 힘듭니다. 기계가 오류를 일으켰다는데 그게 아니라는 명백한 근거가 없는 한 반박할 도리가 없습니다.
다만 적어도 정부 발표 AIS 항적도를 가지고 침몰 원인을 밝히려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말씀은 드릴 수 있겠습니다. 오류 투성이의 자료를 가지고 사고 원인을 확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설령 정부 발표 AIS 항적이 맞다 하더라도 세월호가 급격한 우회전을 하는 것이 사고의 원인인지, 사고의 결과인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위 권영빈 상임위원의 이야기처럼 좀더 광범위한 자료를 통해 참사 원인은 밝혀져야 할 것입니다.
('세월호, 의혹의 확정'은 '국민참여를 통한 세월호 진상규명' 후속 연재입니다. 박영대 위원은 세월호 연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