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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국가'가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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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국가'가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만들었다

[송기호의 인권 경제] 가습기 살균제 참사, 국가가 사과해야 ①

옥시는 나쁘다. 목숨을 잃은 피해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 제품이 옥시였다. 그러나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옥시라는 기업 단위의 문제가 아니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의 <가습기 살균제 참사 백서>에 의하면,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에는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유독물이 있었다. 'PHMG 인산염'이라는 화학물질이다. 이것이 사람을 죽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물질은 어떻게 사람들의 삶에 침투했을까? 유공(현 SK 케미컬)의 대표이사 조규항은 지난 1996년 12월 30일 이 유독물 제조를 위해 환경부 장관에 '화학물질 제조 신고서'를 제출했다. 수수료는 5만 원이었다. 김영삼 정부가 한국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 가입했다고 자랑하던 때였다.

유공의 이 절차는 당시의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따른 절차였다. 이 법의 목적은 "화학물질로 인한 국민 건강상의 위해를 예방"에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화학물질을 제조하려는 경우 반드시 환경부의 유해성 심사를 받도록 했다. 그리고 심사 신청서에는 반드시 화학물질의 "주요 용도"를 "일반적인 용도와 구체적 사용 예"로 적도록 했다.

당시 유공은 옥시 가습기 살균제 유독물의 주요 용도를 뭐라고 신고했을까? "사용 용도-항균제로서 항균 카페트 등의 첨가제로 첨가된다"고 썼다.

만일 환경부가 이 유독물을 유독물이라고 판단하였다면 이 물질은 죄 없는 어린아이들과 산모들의 폐로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국립환경과학원 화학물질평가팀의 국회 제출 자료에 의하면, 대한민국 환경부 장관은 1997년 2월에 유공에게 유독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심사 결과를 통지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법령에 따라 1997년 3월 15일자 대한민국 관보 제13559호에 "유독물에 해당하지 않음"이라고 고시했다.

이로써 이 유독물은 대한민국의 안전성 규제를 통과해서 시장에 침투했다. 강조하지만 만일 이 물질을 유독물로만 판단했어도 무고한 아이들과 산모들은, 보건복지부의 백서에서와 같이 옥시 제품 때문에 죽지 않았을 것이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는 2014년 12월 <가습기 살균제 건강 피해 백서>라는 것을 발표했다. 이 백서는 이렇게 묻는다.

"21세기 한국에서 이런 비극을 막을 수 있는 법제도가 없었던 것인가." (180쪽)

타당한 질문이다. 그러나 보건복지부가 냈다는 이 백서는 놀랍게도 옥시 가습기 살균제 유독물질, PHMG가 "유해성 심사 대상 물질이었나?" 라고 물은 후 대상 물질에 해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떠한 안전성 평가도 받지 않았다"고 기술한다.(186쪽) 그러면서 "만약 PHMG에 대한 안전성 평가가 이루어졌다면 어땠을까?"라고 자문하면서 "최소한 가습기 살균제 성분으로 사용, 판매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186쪽)

그러나 이 백서가 나오기 석달 전인 2014년 9월 30일, 국립환경과학원 화학물질평가팀은 국회에 낸 제출 자료에서 PHMG가 "유해성 심사 대상에 해당"한다고 답변했다. 그리고 "(심사 결과) 유독물에 해당되지 않음('97.2월 통지) ※ 접수일: '96.12.30, 고시일 : '97.3.15(제1997-23호)"라고 밝혔다. 그리고 유공이 제출한 신규화학물질등록을 위한 제조 신고서의 물질 명칭도 PHMG, 즉 "Poly (guanidine phosphate hexamethylene)"으로 되어 있다.

보건복지부의 <가습기 살균제 백서>의 내용을 따지는 것은 이 글의 쟁점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보건복지부가 만약 PHMG에 대한 안전성 평가가 이루어졌다면 가습기 살균제 성분으로 사용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라고 서술한 점이다. 보건복지부의 백서는 역설적으로 PHMG가 1997년에 대한민국의 안전성 평가 제도를 뚫고 시장에 진입한 것 자체가 얼마나 충격적이며 있을 수 없는 일인지를 웅변한다.

나는 검찰에 요구한다. PHMG가 1997년에 대한민국의 관보에 "유독물에 해당하지 않음"이라고 고시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

이 점에 대해 환경부는 유공이 "항균 카페트 등의 첨가제"로 사용한다고 심사를 신청했기 때문이라고 변명했다. 그러나 당시의 국립환경과학원 고시 '화학물질의 유해성 심사 등에 관한 규정'은 장·단기적으로 피부와 접촉하거나 흡입될 가능성이 큰 화학물질에 대해서는 추가 자료를 요구하도록 했다. 정부가 과연 이러한 추가 자료를 유공에게 요구했는지를 수사해야 한다.

그리고 위 규정은 용도만이 아니라 "물리 화학적 성질"에 의해서도 주 노출 경로가 흡입으로 판단되는 경우에도 급성 독성에 대한 시험 성적서를 심사 신청시 제출하도록 했다. 이러한 급성 독성 시험 성적서의 제출을 유공에게 요구했는지 수사해야 한다.

비극은 이러한 독성 시험이 아이들과 산모들이 생명을 잃은 후에야 이루어져다는 사실이다. PHMG는 2012년 9월에서야 유독물로 지정되었다. 대한민국의 관보에 유독물이 아니라고 고시된 지 15년이 지나서였다. 2001년에 옥시 가습기 살균제가 출시된 지 11년이 지나서였다.

검찰은 유공이 정말로 PHMG를 항균 카페트 등의 첨가제로 생산했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가습기 살균제 용도로 만든 것인지 수사해야 한다. 항균 카페트 등의 첨가제로 심사를 받은 생산한 PHMG를 어떻게 옥시에 가습기 살균제 용도로 판매할 수 있었는지 수사해야 한다.

아이들과 산모들이 죽는 동안 도대체 국가는 무엇을 했나? 당시의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은 "국가는 유해화학물질이 국민 건강 및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항시 파악해야 한다"고 규정했다(7조 1항). 이렇게 명백한 근거 규정이 있는데도, 국가는 시민이 죽는 순간에도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았다.

청와대에서 한국이 OECD에 가입했다고 샴페인을 터뜨리던 시간에 가습기 살균제의 참사는 시작했다. 한 기업의 악덕과 국가의 실패를 냉정하게 구별해야 한다. 경제를 인권의 윗자리에 떠받드는 국가의 작동 방식을 고치지 않는 한, 제2, 제3의 옥시가 우리와 우리의 가족을 기다릴 것이다.

▲ 25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37개 시민단체들이 '가습기살균제 제조기업 처벌 촉구 옥시 상품 불매 선언 시민사회 기자회견' 을 열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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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호

보통 사람에게는 너무도 먼 자유무역협정을 풀이하는 일에 아직 지치지 않았습니다. 경제에는 경제 논리가 작동하니까 인권은 경제의 출입구 밖에 나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뛰어 넘고 싶습니다. 남의 인권 경제가 북과 교류 협력하는 국제 통상 규범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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