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책임이 있는 살균제 제조 업체의 가증스러운 대응은 최대 희생자를 낸 영국계 기업 옥시레킷벤키저를 본딴 제품을 내놓은 롯데마트도 못지 않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옥시 관계자의 검찰 소환이 시작된 19일 바로 전날 롯데마트가 대국민 사과에서는 선수를 치고 나섰다. 살인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로는 처음으로 공식 기자회견을 열고 사장이 직접 나와 사과를 한 것이다.
하지만 피해자 측은 "5년동안 가만이 있다가, 검찰 소환 시작 전날 사과라니 진정성이 없다"고 일축했다. 롯데마트의 사과에 진정성이 없다는 피해자 측의 판단이 옳았다.
롯데마트는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피해 보상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혀 이 결정의 배경에는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의 결단이 있다는 추측이 나돌았다. 하지만 며칠 뒤인 22일 롯데마트가 법원의 정해준 배상액에 이의 신청을 하는 행보를 보였다.
합의까지 해놓고 법원 결정 나오자 이의 신청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보상 재원으로 100억 원 정도를 마련해 피해 보상을 하겠다는 태도와는 너무 다른 것이다. 신 회장의 결단이 있다는 추측은 사실이 아닌 것이었을까? 김종인 롯데마트 사장도 "롯데마트의 자체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수많은 희생자를 낸 참사와 관련해 5년만의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일개 계열사가 결정했다고 보는 이들은 거의 없다.
롯데마트의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은 검찰의 수사가 본격화되자 부랴부랴 신동빈 회장의 결정으로 한 달 만에 급히 마련됐다는 게 재계에 알려진 정설이다.
그렇다면 롯데마트의 자체 결정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피해자 측은 "피해자들에 대한 검찰의 조사를 피하기 위해 시간을 끌려는 꼼수에 불과했다"고 분노하고 있다.
실제로 롯데마트는 옥시와 마찬가지로 검찰 수사나 소송까지 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피해자들을 개별 접촉해 적당한 합의금으로 '각개격파'하는 전술을 써왔다. 롯데마트가 이의 신청을 한 건 피해자 5명이 제기한 손해 배상 소송이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0부(이은희 부장판사)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5명(두 가족)이 롯데쇼핑(롯데마트) 등 업체를 상대로 낸 손해 배상 청구 소송에서 이달 1일 강제 조정 결정을 내렸다. 강제 조정은 법원이 판결을 내리지 않고 임의로 합의금을 정해 조정으로 갈음하는 절차다.
법원이 정한 합의금은 수십억 원대이며 오는 30일까지 지급할 것을 롯데마트 측에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마트 측은 "합의금 액수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배상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고, 피해자 전체에게 일정한 기준으로 한꺼번에 보상하기 위해 합의를 잠시 보류해 달라는 취지"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소송을 제기한 한 피해자 측에 따르면, 롯데마트가 수술비와 치료비 20억여 원을 지급하는 대신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기로 이미 합의한 상태였다. 합의 조건에는 "수사 기관에 나가지 말라"는 롯데마트 측 요청도 있어서 피해자들은 검찰의 출석 요구에도 불응했다. 롯데마트는 3억 원의 합의금 결정이 나온 다른 피해자 가족에 대해서도 이의를 신청했다.
100억 원 규모의 보상금을 약속한 롯데마트 측이 두 가족에게 지급할 것을 결정한 법원의 결정에 이의 신청을 한 것은 추후 보상 규모가 더 커질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롯데마트가 피해자에 대한 검찰 조사를 일단 피하고 보상액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대국민 사과라는 기만책을 썼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정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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