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월 20대 국회가 시작된다. 이번 총선에서 가장 주목되는 결과는, 의회 권력이 2008년 총선 이후 전면적으로 재편됐다는 점이다. 사실상 의회 권력의 기능이 마비됐던 2006년 지방 선거 이후로 치면 약 10년 만에 의회가 정국의 주도권을 쥐게 된 것으로 보인다. 2004년 총선에서 압승했던 열린우리당은 2006년 지방 선거에서 참패, 정국 운영의 주도권을 야당(한나라당)에, 그리고 행정부(이명박 정부)에 내줘야 했다.
이명박 정부를 계승한 박근혜 정부는 2012년 총선에서 승리했고, 과반 의석을 가진 여당의 정국 운영은 2008년부터 따지면 8년 가까이 진행돼 왔다. 의회는 사실상 행정부의 '거수기' 역할을 하는 데 그쳤다.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더불어민주당(123석), 국민의당(38석), 정의당(6석) 의석수는 167석에 달한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122석으로 내려 앉았다. 야당이 정국을 주도할 기회가 생겼다. 보수 정당의 집권 기간 많은 일들이 있었다. 4대강 사업, 미디어법, 부자 감세, 테러 방지법 등, 숱한 논란 속에 '보수 혁명'이 일어났다. 이제 균형을 맞춰야 할 시점이다. 20대 국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프레시안>은 전문가 등과 함께 20대 국회에서 꼭 추진해야 할 입법 과제를 짚어 본다.
'사람의 시간'을 위한 도전
1863년 6월 영국의 거의 모든 일간지에 런던의 20세 여성 노동자가 작업 중 졸도로 사망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소녀들에게 하루 평균 16시간 30분, 사교 계절에는 30시간을 중간에 쉬는 일 없이 계속 노동시킨 탓이다. 유사하고 반복적인 죽음이 이어지자 '돈의 시간’을 줄이고 '사람의 시간’을 키우기 위한 도전이 거세졌다.
12시간, 10시간, 8시간으로 노동 시간을 단축하고 노조를 만들 권리, 실업이나 질병 등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등을 보장할 때마다, 과감한 임금 인상이 이루어질 때마다 일부 사용주나 보수 정부는 세상이 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 반대였다. 자본주의는 사람의 시간이 커지는 것에 비례하여 활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1914년 헨리 포드는 하루 8시간 근무에 최저시급 5달러라는 당시로서는 파격적 제안을 했다. 그가 자선가라서? 아니다. 기존의 방식으로 자본주의가 유지될 수 없으며, 새로운 길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제안조차도 극단적인 경쟁과 탐욕, 제1차 대전과 제2차 대전을 겪고 나서야 복지 국가라는 형태로 전 세계적으로 관철되었다. 돈의 시간을 위한 탐욕은 막대한 희생을 치르고서야 멈췄다.
세계 최장의 노동 시간과 전 세계 1위의 산재 사망 국가, 자살과 저임금과 비정규직으로 고통받는 한국은 그 어느 때보다 '사람의 시간'을 키우는 용감한 도전이 시급하다. 우리의 아이들까지 탐욕의 제물로 바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끈질긴 노동 시간 단축 노력해야
무엇으로부터 시작할까? 우선 노동 시간 단축을 위한 지속적이며 끈질긴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
1주 52시간 법으로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단지 일자리 때문만은 아니다. 좀 더 많은 여가는 '사람다움'을 증진시킨다. 독일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보다 평균 4개월이나 더 쉰다. 만약 지금보다 우리가 한 달만 더 쉴 수 있다면, 퇴근해서 느긋하게 아이를 데리러 갈 시간이 생기고, 장을 본 후 저녁을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생기고, 모두가 투표장에 갈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 우리는 다른 꿈을 꿀 수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한국에서는 노-사-정 모두 노동 시간 단축에 대한 관심이 적다. 심지어 정부-여당은 1주 60시간을 요구한다. 박근혜 정부나 사용주가 더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노동자는 왜 관심이 적을까? 저임금과 일자리 불평등 탓이다. 저임금을 받기 때문에 더 긴 시간 일을 해야 생존이 가능하다. 그런데 노동 시간을 줄이자? 죽으란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그래서 저임금 일자리를 없애고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노동 시간 단축을 위해서, 사람의 시간을 모두가 공평하게 누리기 위해서 필요하다.
1시간이 누구에게는 30분이고 누구에게는 2시간인 것이 저임금 일자리이다. 같은 시간에 유사한 일을 하는데 나의 급여는 1500만 원이고 다른 사람의 급여는 3000만 원이라면 나는 두 배 이상 더 일을 해야 한다.
게다가 덜 받는다 해서 책임과 의무가 반으로 깎이는 것도 아니다. 군대 복무 기간이 줄지도 않고 집값이나 음식물 비용이 줄어들지 않는다. 등록금이 반으로 줄어들지도 않고 부모나 자녀 부양책임을 반으로 덜 수도 없다. 때문에 저임금 노동자는 사람의 시간을 제대로 누릴 수 없는 정글에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
가난한 사람이 왜 보수적인 투표 성향을 지녔느냐고, 왜 투표를 하지 않느냐고 묻지 말라. 개혁적인 투표 성향은 사람의 시간을 누릴 수 있을 때만 만들어진다. 생존이 가능해야 정치적 사회적 활동을 할 수 있는 탓이다.
하루 일당 5만8000원에서 8만 원인 일용직 노동자가 그것을 포기하고 투표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또 그런 희생을 치르고 투표해서 자신의 일당이 늘어난다고 믿을까? 그런 믿음을 제대로 준 적이 있는가?
지금은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를 신속하게 취해서 사람의 시간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 또한 지속적이고 끈질기게 나의 삶, 나의 가족과 이웃의 삶이 정치를 통해 바뀔 수 있다는 신뢰를 줘야 한다. 20대 국회가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
최저 임금 인상 대책, '패키지'로 짜야
무엇보다 최저 임금을 최소 1만 원까지 빠르게 올리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길 바란다. 물론 자영업자, 소기업 경영자는 난색을 표명한다. 대기업의 온갖 갑질 때문에, 무너지는 골목 상권에 치열한 경쟁까지 해야 하는 탓에, 소비가 줄어드는 탓에, 자신의 소득만이 아니라 타인의 급여를 줄이는 방식으로 버텨야 하는데 최저 임금 1만 원이 말이 되냐고 항의한다.
그래서 최저 임금 1만 원 정책은 종합 대책 즉 '패키지'여야 한다. 자영업의 사회 안전망을 확충하고, 10인 이하 사업장에 대한 사회 보험료 지원을 결합해야 한다. 대기업 갑질을 없애는 경제 민주화도 필요하다. 임대료와 수수료가 계속 오르는데 어떻게 최저 임금 1만 원을 감당하겠는가.
'이익 공유제'도 바람직하다. 재벌 대기업의 초과 이익을 공유하거나 사내 유보금의 2~3% 정도를 재원으로 하청이나 자영업 및 해당 노동자들의 최저 임금 인상을 지원하는 이익 공유제라면 무조건 긍정적이다. 필요하다면 한시적으로 최고 임금 상한제를 도입할 수도 있겠다. 너무 급진적이라고? 아니다. 미국부터 유럽까지 도입을 위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공평'한 노동 시장…사회 안전망 확대해야
저임금과 관련해서 한 가지 더 주의해야 할 것은, 시작이 정규직 혹은 괜찮은 일자리일지라도 시간이 지나 저임금의 덫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일자리에는 반드시 공평한 '기회'가 보장되어야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고용 형태에 따른 차별금지, 시민의 안녕과 안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로 하는 업무에는 비정규직 사용 금지, 대기업 불법 파견 금지, 정리 해고나 희망 퇴직 명예 퇴직이란 명분으로 상시적 해고를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 등이 공평한 기회이다.
더불어 사회 안전망을 인턴, 알바, 하청, 임시 일용직에게까지 확대한다면 저임금 일자리는 반 이상 줄어든다. 예산이 문제가 된다면 특정 연령 예를 들어 청년부터 사회 안전망을 확대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청년수당이나 이재명 성남시장의 청년배당 실험과 정부 취업 패키지 경험을 결합한다면 향후 1년 내에 전 국민 사회 안전망이 가능하다.
자본주의를 위해 노조는 필요하다
이것으로 충분하냐고? 그렇지 않다.
'사람의 시간'은 시혜가 아니라 권리이다. 권리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요구하고 쟁취할 자유의 땅에서만 얻어진다. 권리를 요구할 자유, 그것이 대한민국 헌법 33조 노동3권이다. 또한 노동3권 확대는 불평등을 줄인다. IMF(국제통화기금)조차도 노조 조직률이 떨어지면 소득 불평등이 10% 늘어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사람의 시간만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위해서 노조는 필요하다.
따라서 노동 3권을 가로막는 온갖 장애부터 없애야 한다.
19대 국회에서 발의된 '노란봉투법'은 손해 배상-가압류 즉 돈으로 노동 3권을 죽이는 반사회적 반자본주의적 행위를 없애려는 노력으로 20대 국회에서도 이어지길 바란다. 또한 비정규직이나 하청이라는 이유로, 구조조정은 경영권이라는 이유로, 노조는 모든 노동자가 아니라 단지 조합원만을 대표해야 한다는 이유로, 파업권 등 노동3권을 가로막는 법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노동조합이 자신들만의 밥그릇을 위해 싸운다고 비난하다가 노동조합이 사회적 이익을 위해 싸우면 불법이라고 구속하는 이중 잣대는 없어져야 한다. 심지어 노동조합의 일거수일투족에 개입하여 노동조합 결성부터 일상 활동까지 정부가 간섭하는 공안통치 시절의 유산 역시 사라져야 한다. 이것만 없어도 노동조합 조직률이 곧바로 두 배 이상 뛴다.
2~3%에 불과한 비정규직 노조 조직률을 10%로 늘리는 것을 당장의 목표로 설정하자. 그래서 입법의 우선순위를 검토하면 답은 나온다.
노동 검찰제, 적극 받아들일 때 됐다
한 가지 더. 노동 검찰제를 도입하자는 의견을 이제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 근로감독관이나 노동위원회 만으로 비정규직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부당 노동 행위를 규율할 수 없다. 현대자동차가 하청 업체의 노동조합을 파괴하는 불법 행위를 버젓이 자행해도 바로잡지 못한다면 노동 검찰제가 해결책일 수 있다.
그리고 또. 노동 개악을 사실상 승인한 기존의 노사정위원회를 대체하는 것 역시 검토해야 한다. 정부의 수족이 되어버린 노사정위원회를 용인해서는 갈등과 분란만 커질 뿐이다. 장기적이고 제도적인 대체재를 만드는 것은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비정규 노조 등 노동계 전체와 여-야 정당, 정부, 사용자가 모두 참여하는 한시적인 사회적 대화기구를 국회 중심으로 설치할 수는 있겠다. 이런 경험을 공유하고 향후 중장기적인 제도로 발전시켜보는 것도 괜찮은 접근 방법이다.
그런데 한시적인 제도를 만드는 경우에도 박근혜 정부가 제안한 노동 5법을 재논의하거나 재검토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미 19대 국회에서 조항별로 검토를 마쳤고 국회 대토론회까지 공개적으로 했다. 독소 조항이 낱낱이 밝혀졌다. 때문에 의제를 바꿔야 한다. 재부팅이 필요하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민생'이란 말로 뒤범벅 시켜서는 안 된다.
우리가 쓰는 민생은 밥은 먹고 살게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다. 사람의 권리, 사람의 시간, 사람들이 요구하는 변화, 사람을 위한 정치, 이 모든 것이 왜 민생으로 불려야 하는가. 말도 좀 바꾸자.
그런 점에서 20대국회는 민생 국회가 되어서는 안된다. 20대 국회는 사람의 존엄과 자유를 위해 도전하는 국회여야 한다. 사람의 시간을 키우는 국회이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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