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 재선거를 닷새 앞둔 24일,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동에 있는 농산물도매시장 인근에 위치한 식당 주인을 포함해 식사를 하던 주민 5명이 이구동성으로 내뱉었다. 30대 여성인 식당 주인은 "솔직히 우리같은 사람이 뭘 알겠어요. 몰라서 안 찍는 건데, 사실 내가 찍은 사람이 알고봤더니 나쁜 사람이면 안되잖아요"라고 말했다.
그가 "이 동네 터줏대감"이라고 소개한 60대 남자는 말을 아끼던 중 한 마디를 보탰다. "민주당이 돼야해. 한나라당이 너무 많아." 식사하면서 신문을 꼼꼼히 살펴보던 그다. 투표를 할 것인지 물었는데 끝까지 대답은 안했다.
여야가 앞다퉈 내놓은 GM대우 지원책은 신문지상에 넘쳐나지만 정작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 민주당 당선을 주장한 '터줏대감'은 "국회의원 뽑아서 경제가 살아났으면 진작에 살아났지 않겠느냐"고 말하면서도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서는 "얼마 안됐잖아. 실망을 많이 했는데 더 두고 봐야지"라고 했다.
식사를 마치고 한나라당 이재훈 후보 유세 현장으로 가는 도중에 대화를 나눴던 50대 택시기사는 "한나라당에 실망 많이 했다"면서도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서는 "잘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권 심판론'은 아직 이른 걸까?
▲ "경제를 살리겠다" 인천 부평을 한나라당 이재훈 후보(왼쪽에서 세 번째) ⓒ이재훈 선거사무소 |
민주당은 부평을 재선거를 '이명박 정부의 중간 평가'라고 주장한다. 한나라당도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정몽준 최고위원은 "이명박 정부의 재신임"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표심은 갈짓자로 흔들렸다. 갈산1동에서 수퍼마켓을 운영하는 올해 예순 살의 남성은 다짜고짜 "노무현이 한 것 보면 영창 가야 한다"고 욕설부터 퍼부었다. "노무현이 국민들을 갈라놓았다. 그때는 가만 두면 나라가 큰일날 것 같아서 이명박을 찍었다. 지금은 별로 관심 없다. 민주당이 돼도 상관없다. 한나라당이 저렇게 의석이 많으면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그의 친구도 맞장구를 쳤다. 민주당도 바뀌어야 하는데 정동영이 지금 잘 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 정신차려야 한다. 이참에 노무현과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다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잘하고 있느냐고 묻자 "하는 일이 없는 것 같은데, 노무현 때보다는 낫다. 일단 시끄럽지가 않잖아"라고 대답했다.
민주당 홍영표 후보 선거 캠프 대변인이자 인천시당 윤관석 대변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악재는 다 반영됐다고 본다. 정동영에 대해서도 일단 출마한 이후로 관심이 사라져가고 있다"고 했지만 '악재'는 여전히 살아있는 것 같았다.
여권에 대한 실망이 정치 무관심으로 이어지며 한나라당이 고전할 것 같지만 상당수 사람들은 '이명박 정권 심판'에 대해 선을 그었다. 부평 '토박이'지만 유권자는 아니라고 한 40대 중소기업 직원은 "박근혜를 지지했었는데, 이명박이 대통령이 돼서 아쉽지만 아직은 좀 더 두고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GM대우 부평공장 옆에 자리한 LPG 충전소. 택시 4~5대가 모여있다. 40대 택시기사는 민주당 홍영표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갈산동, 청천동 지역에 집중한 이재훈 후보의 이날 유세 일정을 얘기해주자 그는 "그 동네는 상대적으로 못 사는 사람들이 많아서 한나라당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인천에는 호남사람을 비롯해 지역 이주자들이 많아서 이명박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꽤 된다"며 "노무현에 질린 사람들이 이명박을 찍었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GM대우와 경제 살리기'는 어디로?
선거 초반, 양당의 GM대우 해법은 초미의 관심사였다. 캠프의 윤 대변인은 "한나라당과 정부가 내는 지원책이 계속 엇박자 나고 있고 민주당이 제기한 6500억 추경예산 반영 요구도 성사되기 어려워졌다"면서 "요즘은 (양당 모두) 'GM대우 살리기'에 대해서는 좀 신중해진 분위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
▲ "이명박 정부 중간평가" 인천 부평을 민주당 홍영표 후보 (가운데) ⓒ홍영표 선거사무소 |
한나라당 지도부는 23일 이재훈 후보 선거사무소에서 "부평경제와 GM대우를 살리겠습니다"라고 커다란 '휘호'를 남기고 손도장을 찍었다. 이 퍼포먼스의 결과물은 즉시 이 후보 사무소 벽에 걸렸다. 이들은 까만 먹물을 손에 바르며 은행과 보증기관 등을 통해 조성한 기금으로 총 2400억 원의 유동성을 GM대우와 쌍용자동차에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날 이윤성 국회 부의장과 허태열 최고위원은 지원 유세에 나선 자리에서 '2400억 유동성 공급'보다 '인물론'을 앞세웠다.
주민들 역시 GM대우와 재선거의 연관성을 찾지 못했다. GM대우 공장에서 나오던 직원을 붙들었지만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주장이 신빙성 없다는 것은 이미 다 알려졌지 않아요?"라고 반문했다.
민주당은 1만1000여명의 부평 공장 직원 중 2700여 명이 부평을 지역 유권자로 분석하고 한나라당 역시 2500명 가량으로 추정한다. 물론 부양가족 등을 포함해야 하고, 지역 상권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순 없다. 그래도 모든 GM대우 노동자가 유권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바닥 민심'에서 거리가 있다.
"살림 살이 좀 나아지셨나요?"라고 이재훈 후보 선거사무소 앞 노점상 주인 아주머니에게 농담조로 물었더니 "경제가 하루 이틀에 나아지겠느냐"고 했다. 그는 "한나라당 찍어야죠. 아무래도 당이 크니까..."라고 말꼬리를 흐리면서 웃었다. 그래도 "사실은 잘 모르겠어요"라고 덧붙이는 그의 말이 정답 아닌 '정답'처럼 들렸다.
'이제는 조직대 조직의 대결'
이번 4.29 재보선 지역중 최대의 승부처이자 박빙의 접전이 벌어지고 있는 인천 부평을에서는 '투표율 높이기'가 여야 모두에게 관건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 투표율이 높아지면 서로 자신들에게 이득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윤 대변인은 "투표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민주당이 우세한 것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23일부터 의원, 당직자들이 동별로 유세를 책임지는 '전담제'를 실시했다. 한나라당에 비해 조직력이 앞선다는 것은 캠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이같은 점은 끄느름한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지원 유세에 나선 한나라당 허태열 최고위원도 인정하는 바다. 그는 지원유세에 앞서 "한나라당(지지층)은 그러려니 하고 민주당(지지층)은 단결해서 하고, 그게 걱정이다"고 말했다. 이윤성 국회부의장의 연설이 끝나고 홍보차량에 올라선 허 최고위원은 "친척들, 친구들에게 29일날 등산 가지 말고, 낚시 가지 말고 투표장에 나와달라고 당부해달라"고 호소했다.
예단은 섣부르다. 인천 지역의 한 신문 기자는 "한나라당 조직력이 떨어진다고들 얘기하는데,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초반에 움직임이 적었지만 한나라당 조직이 꿈틀거리고 있다. 내 판단에 이처럼 조직이 본격적으로 가동된 것은 나흘 남짓 되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투표일이 가까워져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는 "이제는 조직대 조직의 대결"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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