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보면 경주 선거는 참으로 '이상한 그림자 선거'다. 차기주자 1순위인 박근혜 전 대표와 현정권 실세 중의 실세인 이상득 의원이 맞붙은 선거나 다름없다. 지역적으로도 경주는 박근혜의 '대구'와 이상득의 '포항' 영향권이 겹치는 곳이다. 지난해 4월 총선 당시 영남권에서 벌어졌던 '친이-친박' 대립의 연장전 성격을 피할 길 없다.
하지만 지난해 총선과 다른 면이 분명히 있다. 박근혜 전 대표가 표나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친박계 무소속인 정수성 후보로서는 아쉬운 대목. 지난 해 연말 정 후보 출판기념회 참석 이후 박근혜 전 대표는 이 지역 선거에 대해 입 한 번 떼지 않았다.
정종복 후보의 낮은 자세도 눈에 띈다. '힘 좀 쓰더니 목에 기브스 했냐'는 비아냥을 들었던 정 후보는 이번에는 연신 굽히고 굽힌다. 판세도 엎치락뒤치락이다.
박근혜 힘이냐, 이상득 실리냐
▲ 한나라당 지도부들은 경주 선거운동에 공을 들이고 있다ⓒ정종복 후보 홈페이지 |
경주역 주변 성건동 중앙시장 등에서 만난 경주 시민들의 민심은 크게 두 갈래였다. 노년층은 "경주는 박근혜 아이가. 정수성이 박근혜 사람이라 카데"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반면 청장년층은 "힘있는 사람을 밀어야 경주에 득이 되재. 이번에는 마 한나라당이다"는 소리가 많았다.
'정종복 찬반론'도 적지 않았다. 경주에는 한나라당 지도부가 자주 총출동한다. 이에 대해 한 쪽에선 "정종복이 힘이 있기는 있는 갑다"라는 말이 나왔다. 반면 다른 한 쪽에선 "박근혜 대표를 저래 못살게 군다야"라는 눈총이 나왔다.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면 한나라당에 입당한다? 절대 입당은 없다. 홍준표가 경주 시민들에게 약속한다. 내가 한나라당에 있는 한 절대 입당 안 시킨다"는 홍준표 원내대표의 발언도 화제거리가 됐다.
한 60대 남성은 "지가 뭔데? 당이 지끼가(자기 것이냐)"라면서 "당장 한나라당 안 들어가도 된다. 어차피 박 전 대표가 대통령 후보도 될낀데 그때 들어가면 된다"고 주장했다.
경주역 앞에서 만난 택시기사들은 "어쨌든 정종복이 문제"라고 판세를 정리했다. 중앙에선 힘깨나 썼지만 고향에 무심했던 정종복 후보의 '반성'을 받아들이냐 마느냐가 관건이라는 이야기다.
한 택시 기사는 "우리도 마카(모두) 박근혜 전 대표 팬이기는 하지만 정수성이 박 전 대표하고 그리 가깝지는 않다는 것도 다 안다"면서 "정종복한테 본때를 한 번 더 비주나(보여주나) 마나가 문제다"고 설명했다.
▲ 정수성 후보 선거운동의 알파와 오메가는 '박근혜'다ⓒ정수성 후보 사무실 |
'포항'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포항에는 예산이 넘친다더라. 이상득이 포항을 챙기는데 정종복은 이상득 밑에 찰싹 붙어있다"라는 식의 이야기였다. 정종복 후보를 밀면 혹시나 경주도 '형님 덕'을 좀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다.
공기업에 다니는 한 40대 남성은 "이카이(이러니) 경주가 안 되지"라면서 "박 전 대표가 대통령되면 나도 좋지만 지금은 실리를 챙기고 볼 때 아이가. 영감 할매들이 박 대통령 해싸면서 정수성찍는다 카는데 정수성하고 박 대통령하고 무슨 상관이고. 우리도 변해야 된다"면서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박정희의 딸'과 '이명박의 형님'이 맞붙은 경주 선거의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것 같다. 하지만 선거 결과와 별개로 '박근혜 파워'가 확인된 만큼 청와대와 한나라당 주류 진영이 선거 뒤에 이를 어떻게 진화해 나갈 것인지도 지켜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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