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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속의 여성…피해자와 가해자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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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속의 여성…피해자와 가해자의 두 얼굴

[김재명의 월드 포커스] <11>

총력전을 펼치는 현대전쟁에서 전쟁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많은 여성들이 전선에 뛰어들거나 정보·군수·병참 등 2선 지원임무를 맡는다. 자폭테러의 행동대원으로 나서는 전투적 여성들도 있다. 지구촌의 여러 분쟁지역에서 여성은 성폭력의 피해자다. 그러나 이라크 주둔 미 여군, 그리고 팔레스타인 지역을 군사통치하는 이스라엘의 여군들에서 가해자의 모습이 보인다. 여성 자살폭탄테러리스트들도 또 다른 '가해자'의 모습이다. 현대전쟁에서 여성은 피해자(피억압자)인 동시에 가해자라는 두 얼굴을 지녔다.

나폴레옹 시대의 유럽전쟁을 비롯, 19세기만 해도 전쟁 희생자의 90%가 군인이었다. 오늘날 현대전쟁은 후방과 전선이 따로 없는 데에다 공습으로 많은 민간인들이 죽고 다친다. 분쟁 연구가인 댄 스미스(오슬로 국제평화연구소 연구원)가 펴낸 『전쟁과 평화 상황 지도』(1997년판)에 따르면, 1990년대 전반기에만 전세계 분쟁지역에서 550만 명이 사망했는데, 75%가 비전투원이다. 그 가운데 상당수는 여성이다.

전쟁 속의 여성을 말할 때 '피해자' 이미지가 강하다. 독자 여러분은 1990년대 중반 세르비아계 무장세력에게 집단강간을 당한 끝에 임신을 한 보스니아 여성들이 서로 어깨를 감싸고 흐느끼는 모습의 사진을 기억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여성도 가해자로 나설 수 있다. 과학기술의 진보는 가볍고 살상력 높은 무기들을 만들어냈고, 여성이라도 쉽게 무기들을 다루게 됐다. 여성의 전투행위 참여는 성능이 개량된 소형무기들이 널리 보급되면서 크게 늘어났다. 그래서 전쟁에서 여성은 언제나 피해자라는 개념이 바뀌고 있다.

***미 여군의 8%, 이라크에 주둔**

원칙적으로 미 여군은 '직접적인 지상전투'를 벌이는 전투부대에 배속될 수 없다. 이 규정이 처음으로 문서화된 것은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지난 1994년. 펜타곤(국방부)은 '직접적인 지상전투'의 개념을 가리켜 '적군의 총격에 노출되고, 적군과 직접적인 신체적 접촉을 할 가능성이 아주 높은 상황에서 적과 교전을 하는 행위'라고 정의했다. 이에 따라 미 여군은 지상전을 주요임무로 하는 여단(brigade) 이하의 부대 단위에는 배속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미 국방장관 규약 : 직접지상전투의 정의와 임무규칙』1994년).

현재 이라크에는 1만1000명의 미 여군이 근무 중이다. 전체 미 여군 13만9000명 가운데 8%가 이라크에 와 있는 셈이다. 지금까지 적어도 37명의 여군이 저항세력의 공격에 죽임을 당했다. 일부 여군은 헌병대 소속으로 아부 그라이브 감옥에서 이라크 포로 학대사건을 일으켰다.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에서도 미 여군들은 군화발로 수감자를 짓밟거나 여자의 생리로 더럽혀진 팬티를 얼굴에 씌우는 가혹행위를 벌였다. 이런 보기들은 여성이 전쟁의 피해자라는 일반적인 관념을 깨뜨린다. 여성도 전쟁에서 가해자가 될 수 있다.

1991년 걸프전쟁 당시에는 4만 명의 여군이 수송병, 간호병, 통역병 등 비전투 인력으로 참전했다. 한국의 여군 비율은 0.5%. 국방부는 현재 3700명인 여군 장교 및 하사관 인력을 오는 2020년께 7000명으로 확충할 계획이다. 전세계적으로 여군의 평균 비율은 3%. 남녀가 모두 병역 의무를 지는 이스라엘은 30%, 캐나다도 10%로 비교적 높은 편이다. 일본 자위대는 약 4%선.

일반적으로 정부군의 여성비율(3%)보다 반군의 여성 비율은 훨씬 높다. 지구촌의 여러 분쟁지역들을 살펴보면, 많은 여성들이 비정규군으로서 AK-47 소총 등을 들고 적에 맞서 전투를 벌여 왔다. 이들 비정규 무장조직은 민병대, 게릴라, 준군사조직(paramilitary) 또는 시민군(militia) 등 여러 이름으로 일컬어진다. 특히 병력 충원에서 어려움을 겪는 소수민족의 무장세력일수록 여성의 비율이 높다.

이를테면 인도양 귀퉁이의 작은 섬나라 스리랑카의 반군 타밀 타이거 해방전선(LTTE)이 그러하다. 국제적십자사가 펴낸 <여성과 전쟁>이란 이름의 한 보고서(2000년판)에 따르면, LTTE 전체 병력 가운데 약 3분의 1이 여성이다. 1996년 이래로 준(準)내전 상태에 빠져드는 네팔도 여성 반군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1만 명을 넘는 반군들은 마오쩌둥주의를 내걸고 네팔왕정을 전복하려고 게릴라전을 펴 오고 있다.

***성폭력의 희생자, 자폭테러로 보복**

아프리카 반군들도 여성 비율이 높다. 2000년 봄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내전 취재 때 보았던 반군 '혁명연합전선'(RUF) 소속 여성들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거침없이 내뱉는 말투나 행동이 웬만한 남자 주눅 들게 할 정도였다. 시에라리온 여성반군의 경우에서 보듯, 아프리카 여성들이 반군의 일원으로서 총을 들고 전투에도 뛰어드는 이유는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전쟁 중 흔한 성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둘째, 전란 속에서 이렇다 할 생계수단이 없는 여성이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이다.

전쟁희생자가 가해자로 나서는 모습을 우리는 지구촌 분쟁지역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체첸, 팔레스타인, 스리랑카에서 벌어져 온 자살폭탄테러가 단적인 보기다. 체첸 여성들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러시아 군과 경찰은 "테러용의자들을 잡으려 한다"는 구실로 체첸 민간인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집안을 약탈하고 심지어 불태우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여성들이 성폭력에 희생됐다. 2003년 러시아 군을 태운 버스를 자살폭탄 공격해 18명을 죽인 사건을 비롯, 지금껏 14건의 자폭테러가 여성에 의해 벌어졌다. 이들은 러시아군에게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거나 그녀 자신이 성폭력의 피해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난민수용소 여성들의 고난**

전쟁은 대량난민을 낳는다. 난민수용소는 현대 전쟁이 그려내는 우울한 초상화 가운데 하나다. 난민촌에 들어서면, 우리는 그곳 사람들이 대부분 여성과 어린이, 그리고 노인들임을 알게 된다. 유엔 고등난민판무관(UNHCR) 쪽 자료에 따르면, 난민들 가운데 여성과 어린이들의 비율이 75%에 이르며, 어떤 경우엔 90%에 이른다. 많은 성인남자들이 군대에 징집되거나, 전선에서 죽임을 당했기에 수용소 안에서 남성 비율은 그만큼 줄어든다. 필자가 시에라리온 난민수용소나 발칸반도의 코소보와 보스니아 난민수용소에서 만난 사람들의 경우도 한눈에 봐도 남자들보다는 부녀자들이 많았다.

난민수용소가 여성에게 안전한 곳은 결코 아니다. 힘센 동물이 약한 동물을 지배하는 밀림의 법칙이 통하는 곳이 바로 난민수용소다. 전란을 피해 나닌수용소로 오기까지 온갖 고초를 겪은 여성들은 수용소 안에서 또다른 전쟁의 공포를 겪기 십상이다. 많은 경우 난민수용소 여성들은 그곳을 지배하는 무뢰한들의 성폭력에 희생당한다. 그 혼란 속의 눈물과 희생은 고스란히 약자인 여성들의 몫이기 십상이다. 르완다 내전 당시 투치족의 공세에 밀려 이웃 콩고로 도망간 후투족이 세운 난민촌들이 그러했다.

1999년 동티모르에서 인도네시아로부터의 독립투쟁 과정에서 유혈사태가 벌어졌을 때 10만이 넘는 동티모르 난민들이 인도네시아를 지지하는 민병대들의 협박과 속임수로 서티모르로 강제이주 당했었다. 서티모르에 세워진 난민수용소는 국제사회의 손길이 제대로 닿지 않는 틈을 타 강간범죄가 날마다 여기저기서 벌어졌다. 유엔 난민구호기관인 유엔 고등난민판무관실(UNHCR) 관계자들도 어쩌지 못할 정도였다. 동티모르 현지 취재 때 서티모르에서 막 빠져나온 난민들을 만났었다. 그들은 "인도네시아를 지지해 방화와 살육을 저질렀던 민병대원들은 우리가 동티모르로 돌아가겠다는 말을 하면 죽이겠다며 폭력을 휘둘렀다"고 혀를 내둘렀다.

***시신 앞에서 흐느끼는 한국 여인 3대***

여성은 전쟁의 혼란 속에서 성적인 학대에 희생되는 일이 잦다. 1990년대 발칸반도에서 보듯, 때로는 그런 성적 학대가 전술적 필요에 따라 조직적으로 이뤄진다. 강제 임신 또는 강제 불임, 성노예 강요 등의 성범죄는 인간성을 거스르는 반인륜적 범죄(crime against humanity)다. 국제법에서는 성범죄를 전쟁범죄로 엄히 다스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법 앞에 남녀는 평등하다. 그렇지만 인도주의에 바탕을 둔 국제법들은 전쟁에서 여성을 특별히 보호해야 한다는 점을 따로 명시하고 있다. 1949년 '전쟁희생자 보호'를 위한 4개의 제네바협정, 1977년에 빛을 본 2개의 추가 의정서가 그러하다. 이에 따르면, 비전투원인 여성은 당연히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2003년에 문을 연 국제형사재판소(ICC) 법규도 전쟁의 광풍에서 여성을 지키려 한다. ICC 법규에 따르면, 성범죄는 대량학살(genocide)과 더불어 전쟁범죄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처럼 현실적으로는 성범죄자들을 법정에 세우기까지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린다. 발칸반도에서의 경우처럼 대부분의 피해여성들이 증언대에서 피고에 불리한 증언을 꺼리는 것도 문제점으로 남아 있다. 아프리카 내전에서는 평화협상 과정에서 정부군-반군이 저질렀던 성범죄를 포함한 전쟁범죄에 대해 "없었던 일로 한다"는 백지사면을 내리는 일도 잦다.

언젠가 필자는 미국 뉴욕의 헌책방에서 뜻 깊은 책을 하나 찾아냈다. 6.25 때 특파원으로 활동했던 사진가 칼 마이던스가 펴낸 책이다. 제목이 『폭력적인 평화』(1968년판)에 실린 여러 전쟁사진들 가운데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6.25 때 좌익 활동을 하다 죽은 한 남자의 시신 앞에서 3명의 여인이 우는 모습이었다. 죽은 남자의 아내,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였다.

3대에 걸친 그 여인들이 나란히 앉아 통곡하는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듯 환청을 느꼈다. 그처럼 전쟁은 여성들에게 크나큰 시련과 슬픔으로 다가온다. 이라크도 현재진행형이다. 전쟁이 사라지고 지구촌 전체에 평화가 깃들 날을 언제쯤일까.

(사진설명) 6.25 한국전쟁 때 죽임을 당한 한 좌익청년의 관 앞에서 통곡하는 여인 3대, 죽은 이의 아내, 어머니, 할머니. (@마가레트 버크-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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