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균 전 강정마을회 회장의 절규다. 그는 3월 30일 오전 11시 마을 주민들과 함께 제주도청에서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나섰다. 해군이 제주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펼친 마을 주민과 평화활동가, 시민사회단체 등을 상대로 34억 5000만 원을 청구한 것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이 자리에서 주민들은 "차라리 강정 주민들을 다 죽이고, 강정 마을 재산을 모두 가져가라"고 울분을 토했다.
어느덧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졌지만 강정마을은 2012년 총선에서 최대 이슈 가운데 하나였다. 해군은 물론이고 정부와 여당, 그리고 일부 언론은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거나 재검토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종북', '안보 무시 세력'으로 몰아붙였다. 당시 선거에서 재미를 봤다고 여긴 탓인지, 또 다시 정부는 총선을 2주 앞두고 34억 원이 넘는 거금의 구상권을 청구해 강정마을 주민들을 옥죄고 있다.
하지만 이래서는 안 된다. 해군 스스로도 해군기지가 완공되면 분열과 갈등으로 고통받아온 강정마을의 치유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었다. 민군 갈등의 중심지에서 민군 화합의 새로운 장을 만들겠다고 약속했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2월 26일 열린 제주해군기지 준공식에 축전을 보내 "오늘 준공식이 그동안의 갈등을 극복하고 지역사회와 상생하고 화합하는 뜻 깊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불과 이틀 만에 해군이 주민들과 활동가들을 상대로 거액의 구상권을 청구해 최고군통수권자의 축전을 무색하게 했다. 아니 새로운 갈등의 씨앗을 뿌리고 말았다.
해군은 국책사업을 방해해 국민 세금의 낭비를 초래한 것에 책임을 묻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하지만 강정마을 주민들을 포함한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는 국가에서 하라고 하면 무조건 복종하는 독재국가가 아니다. 주권재민의 원칙에 따라 국민들의 의사 표현의 자유와 저항권을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돌이켜보면 제주해군기지 사업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곳곳에서 충돌한 것이었다.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지정해놓고 대규모의 해군기지를 짓는다는 것부터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그래도 해군기지가 필요하다면 주민들의 동의를 밟는 것이 필수였다. 하지만 민주적 의사결정은 실종됐고 마치 군사작전 하듯이 1000명이 넘는 마을 주민 가운데 87명만 달랑 모아놓고 박수로 통과시켰다. 나중에 이를 안 주민들이 민주적 총회를 열어 압도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지만, 해군은 공사를 강행했다. 강정의 비극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지정한 절대보존지역도 날치기로 해제됐다. 항만설계에도 오류가 있었고 공유수면 매립공사에서 탈법이 자행돼 정지명령을 받기도 했다. 제일 황당한 것 가운데 하나는 15만 톤급 크루즈선 2척의 입·출항 문제였다. 정부와 해군은 해군기지 반대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민군복합관광미항'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을 달고는 해군 함정뿐만 아니라 초대형 크루즈 선박도 사용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 사업을 강력히 추진했던 이명박 대통령조차 "5만 톤은 가능해도 15만 톤은 어렵다"고 했다. 미군의 사용 문제도 그렇다. 해군은 미 해군이 올 일이 없다고 했다가 미군이 오면 막대한 경제적 수익이 생길 것이라고 같은 입으로 다른 말을 했다.
강정마을 주민들과 활동가들은 이러한 부당함과 맞서 싸웠다. 신민(臣民)으로 살라는 것을 거부하고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한 사람들이다. 이 과정에서 다친 사람도 있고 잡혀간 사람도 있고 벌금 폭탄을 맞은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해군기지가 완공되면서 한편으로는 해군기지 활동을 감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애쓰고 있었다. 갈가리 찢긴 마을 공동체를 다시 세우겠다는 다짐도 곳곳에서 들려왔다.
그런데 이들에게 날아온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말한 "상생과 화합의 계기"가 아니었다. 34억 원이 넘는 거액의 청구서였다.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라고 있는 정부가 이런 식으로 주민들을 겁박해도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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