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나라살림 적자 폭이 2009년 이후 6년 만에 가장 커진 것은 부진한 경기를 떠받치기 위해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 등 재정을 확장적으로 운영한 결과다.
'세수 펑크'에서 4년 만에 벗어나고 공무원연금 개혁으로 충당부채(미래에 지출될 연금 예상액) 증가율이 크게 낮아졌는데도 살림살이는 더 어려워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부는 재정 건전성의 고삐를 바싹 죄기로 했다.
특히 내년에 각 부처가 재량지출을 10% 줄여 일자리 창출 사업에 투자하도록 요구하자 정부가 사실상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선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 관리재정수지 6년 만에 최대 적자
5일 정부가 발표한 '2015회계연도 국가결산'에 따르면 지난해 관리재정수지는 38조원 적자를 봤다. 적자 규모가 1년 새 8조5천억원 늘었다.
관리재정수지는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에서 미래 세대를 위해 쌓아둬야 하는 국민연금·고용보험 등 사회보장성기금의 흑자를 뺀 것으로, 정부 살림살이를 파악할 수 있는 대표적 지표다.
지난해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있었던 2009년(43조2천억원) 이후 6년 만에 가장 크다.
재정 적자는 2010년 13조원으로 줄었다가 2012년 17조5천억원, 2013년 21조1천억원, 2014년 29조5천억원 등 5년 연속 증가했다.
재정 적자를 나라경제 규모(국내총생산·GDP)에 견줘보면 -2.4%를 차지한다.
보통 재정적자 비율이 GDP 대비 ±0.5% 이내이면 균형 재정 수준으로 본다.
작년에는 통합재정수지도 2009년 이후 6년 만에 처음 적자를 냈다.
2014년 8조5천억원이던 적자 규모가 2천억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재정 적자가 쌓여 부족한 재원을 국채 발행 등으로 메우면서 국가채무도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국가채무는 590조5천억원으로 1년 전보다 57조3천억원 늘었다.
2014년까진 세금이 잘 걷히지 않는 게 재정 적자 증가의 큰 이유였다.
그러나 작년엔 세수가 예상보다 2조2천억원 늘었는데도 11조6천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면서 재정 적자 규모가 오히려 커졌다.
◇ 강력한 재정개혁 예고한 정부
정부는 우리나라의 재정건전성이 아직까지는 양호한 수준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가운데 한국의 일반정부 부채(2014년 기준)는 27개국 중 5번째로 낮아 비교적 양호한 것이 사실이다.
에스토니아(10%), 룩셈부르크(23%), 뉴질랜드(31%) 등 한국보다 인구와 경제 규모가 작은 나라를 제외하면 멕시코(36%) 정도만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더 낮다.
OECD 통계 기준으로 2014년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는 41.8%였지만, OECD 평균치는 115.2%에 달했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강력한 재정개혁을 예고하고 있다.
고령화로 복지지출 규모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면 국가채무 역시 급격히 증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복지 예산 규모는 전체 예산의 3분의 1 수준인 120조원 규모다.
기초연금 등 의무지출(법에 지급 의무가 있는 지출)은 한번 늘어나면 되돌리기가 어렵고 시간이 갈수록 불어난다는 속성이 있다.
올해 예산을 짜면서 각 부처가 집행하는 보조사업을 정조준한 정부는 내년에는 아예 부처 재량지출(정부 의지에 따라 조정할 수 있는 예산)을 10% 줄이라는 지침을 내렸다.
올해 전체 예산에서 인건비, 기본경비 등 줄일 수 없는 비용을 제외한 재량지출은 168조원 규모다. 부처들이 10조원 이상의 '다이어트'를 해야하는 셈이다.
정부는 지출 구조조정과 함께 사회보험 개혁, 지방·교육재정 관리 강화도 예고한 상태다.
전문가들도 정부 재정을 효율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백웅기 상명대 교수는 "유사·중복사업 등 비효율적으로 재정이 집행돼 줄줄 새나가는 부분이 여전히 많다"며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세수를 추가로 확보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지금은 재정의 효율화가 가장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백 교수는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줄이기 어려운 의무지출 규모가 계속해서 늘어나면 재량지출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전략적 재원 배분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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