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경제의 흐름을 짚어 드리는 프레시안 도우미 정태인입니다. 올 추석이 정말 일렀는지 요즘에야 황금빛 넘실거리는 들판 사진이 올라옵니다. 하지만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는 표현은 옛말이 되어 버렸습니다.
'시한폭탄' 가계부채
'가계부채가 문제다'라는 것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닙니다. 경제가 악화되고 금융기관이 자기 살겠다고 돈 줄을 죄면,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이죠. 경제를 매일 들여다보는 저 같은 사람의 귀엔 째깍 째깍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제가 후크 선장도 아닌데 말입니다. 10월 7일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지난 6월 말 현재 가계부채는 1040조204억 원으로 1년 전보다 60조3840억 원(6.2%) 늘었고, 명목 국민총처분 가능소득은 전년 동기 대비 4.1% 증가했습니다. 즉 소득보다 부채가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는 얘긴데 이런 상황이 얼마나 계속될 수 있을까요? 국제적으로 봐도 현재 우리의 가계부채는 가처분소득의 163.8%로, 가계부채로 인해 위기를 맞은 미국의 114.9%나 영국의 150.1%보다 높습니다.
10월 2일 발행된 <주간 프레시안 뷰> 56호에서 말씀드린 대로 지난 8월 1일 정부가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푼 결과, 규제 완화 이후 한 달간 증가한 주택담보대출 금액 4조7000억 원으로 올 1~7월 월평균 증가액 1조5000억 원보다 3배 이상 많습니다.
(☞ 최경환 믿고 빚내서 집 사면? "패가망신하기 십상")
국민·신한·우리·하나·기업 등 5개 주요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사용목적을 살펴보면 올해 1∼7월 신규취급액 51조8000억 원 중 27조9000억 원(53.8%)이 주택구매 이외의 용도로 사용됐습니다. 즉 생활자금, 학자금, 사교육비, 사업자금 등에 사용하기 위해 빚을 내고 있다는 뜻이죠.
특히 전셋값이 문제입니다. 3일 KB국민은행 통계를 보면 수도권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박 대통령이 취임한 지난해 2월 1억9457만 원에서 지난 9월 2억2394만 원으로 2937만 원(15.1%) 뛰었습니다. 소득은 4% 올랐는데, 전셋값은 세 배 이상 뛰어오른 겁니다.
집값이 떨어지는데도 전셋값이 급등한 것은 저금리 탓이 큽니다. 전세를 월세로 돌리려는 집주인이 많아지면서 전세 공급 물량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죠. 국토교통부 자료를 보면, 전·월세 거래량 중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1년 1월 31.9%에서 지난해 말 40%를 넘어섰습니다. 그나마 번 소득도 또다시 상대적으로 부자인 집주인에게 가는 셈이니 양극화는 더 심해질 겁니다.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이 한국은행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올 상반기 LTV가 60%를 초과하거나 DTI가 50%를 넘는 '위험한 대출'은 30조7000억 원(37%)에 이르렀습니다. 바야흐로 경기가 더 나빠지거나 집값이 떨어지면 파산하는 가계가 속출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근본적인 원인은 실질 생산성 향상에 비해 실질임금이 정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995년 이래 실질임금은 생산성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금년 들어 사태는 더 심각해져서 실질임금 자체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실질임금 상승률은 작년에 비해 5개 분기 연속 낮아지다가 지난 2분기에는 급기야 0.2%까지 떨어졌습니다. 임시직의 실질임금은 지난해 2분기보다 1.4% 줄어들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증한 자영업도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폐업한 자영업자 6만7000명 가운데 82%(5만5000명)는 도소매 및 음식숙박업을 했습니다. 조기 퇴직한 베이버부머들이 할 일을 찾아 만든 치킨점이나 할인판매점이 문을 닫고 있는 거죠. 통계를 보지 않더라도 우리가 사는 골목에서 늘 일어나는 일입니다. 문 닫은 채 비어 있는 동네 점포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얘깁니다. 2011년에 새로 창업한 99만4000명 중 85%(84만5000명)가 지난해까지 폐업 수순을 밟았습니다. 2년을 버티기 어렵다는 얘기죠.
문제가 생산성과 임금의 격차에서 비롯됐다면, 임금을 올리는 것이 답입니다. 소득주도 성장으로 정책을 바꿔야 합니다. 남아도는 상품을 수출하거나 빚을 내서 소비하게 하는 '수출주도-부채주도 성장'은 이제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수출도 되지 않고 빚내서 소비하는 것도 한계에 부딪혔다면 완전히 새로운 경제정책을 사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최경환 부총리의 경제정책은 일관되게 부채주도 성장입니다. 이제는 증시부양책까지 내놓는다고 하니 "빚내서 집 사라"에 이어 "빚내서 주식 사라"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해서 가계부채를 늘릴 생각만 하고 있는 셈입니다.
나라 빚도 마찬가지
10월 6일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14~2018년 국가채무관리계획'에 따르면, 올해 예산에 국가채무(중앙정부 채무) 이자 비용으로 21조2000억 원이 책정됐습니다. 통계청의 올해 추계인구(5042만 3995명)로 나누면 국민 한 사람이 부담해야 할 채무가 42만 원 정도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국가 채무는 결국 국민이 낸 세금으로 갚을 수밖에 없습니다. 가계도 빚투성이인데 정부도 마찬가지라는 거죠.
정부는 세수가 부족하면 통상 국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합니다. 지난해 국가채무 이자비용의 89%가 국고채 이자로 나간 겁니다. 이 국채는 누가 살까요? 아무래도 여유가 있는 부자가 사겠죠. 앞서 말씀드린 대로 국가 채무는 최종적으로 세금으로 메꾸게 되어 있는데, 국민이 세금으로 부자들에게 이자를 내는 셈입니다.
이런 상황을 막으려면, 부자들에게 세금을 많이 거두면 됩니다. 하지만 정부는 담뱃값 인상이나 자동차세 인상에서 보듯 보통 사람의 세금을 늘리고 있습니다. 시장 안팎에서 이중으로 소득이 줄어드니 결국 빚을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급기야 한국의 대표기업이라는 삼성전자의 영업이익도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4조1000억 원의 영업이익(잠정 실적)을 올렸다고 지난 7일 공시했는데 지난해 같은 분기(7조1900억 원)보다 60% 가까이 줄어든 겁니다.
가계-기업-나라 모두 어려운 상황에 처했는데, 정부는 부채로 자산 가격 올리기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경제가 세월호처럼 침몰하고 있는데 정부는 배 주위만 맴돌고 있습니다. 아니, 침몰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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