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찍었다던 사진 한 장을 전달 받았다. 광장에 모인 군중 사이 SF영화에서 봐봄직한 유니폼을 입은 사내가 커다란 깃발을 휘날리며 뽀족이 서 있었다. 작년 겨울, 물대포가 할퀴고 간 자리에 다시 모인 사람들 틈에서였다. 생각 없이 받아 든 사진을 보면서 나는 안면근육을 있는 대로 다 써버렸다. 통쾌하다가도 문득 서글프고, 웃음을 터트리다가도 돌연 비장해지는 심정이 여과 없이 표정으로 드러난 것이다. 단지 범상치 않은 그의 옷차림 때문이 아니다. 그의 왼쪽 가슴에 새겨진, 그리고 그가 들고 있던 깃발에 박혀있던 '난민'이란 글씨 때문이었다.
한국난민의 등장,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제 1조 1항을 생각하면 이상하지만 광장을 채운 사람들의 사연을 생각하자면 이상할 것도 없었다. 나는 그를 한번 찾아보면 좋겠다는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다. 사진 외에는 그에 대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었지만 서울에서 김 서방을 찾겠다는 각오는 있었다.
"1차 민중총궐기에서 물대포를 목격하고 그 옷을 떠올리게 됐어요. 방한용은 아니지만 방수용 옷이거든요. 방수기능을 갖고 있는 옷이 있는 사람으로서 마음이 동해 시위에 참여했어요. 갖고 있는 옷이 다섯 벌인데, 그걸 입을 사람이 있느냐고 온라인에 간단하게 물었고 의사를 보인 분들과 함께 참여하게 된 거죠."
찾았다. 사진 속 주인공이자 '난민'이 새겨진 방수용 옷을 갖고 있는 사람, 차지량 작가였다.
그는 그 옷이 방수복이어서 입고 나갔다는 것 말고는 더 말하지 않았다. 난민에 대한 의미심장한 대답을 기대했건만 옷이 잠수복 소재로 만들어 졌다는 말만 겨우 덧붙였다. 내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줬던 저 옷이 단순히 방수복에 그친단 말인가? 솔직히 실망할 뻔했다. '뻔'했다는 것이지 실망했다는 건 아니다. 찾고 보니 그는 꽤 유명한 사람이었다. 다수의 공연에 예술 감독으로 참여했고, 굴지의 예술 페스티벌에 선정 및 초청된 미디어 아트 작가였다. 그렇다고 이런 그의 유명세가 나의 실망감을 잠재웠다 생각하지는 말아주기를. 나를 홀린 그의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개인성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어떠세요? 잘 유지되고 존재하고 계신가요? 저는 그 부분을 얘기하고 싶어요. 개인성에 영향을 주는 것은 어떻게 보면 가까운 것에 있을 수 있어요. 강남의 인구밀도 일 수도 있고, 주차관리원 아저씨의 성질머리일 수도 있는데 결국 이런 것들에 영향을 주는 것이 뭐냐는 거죠."
시스템, 정확히는 시스템 자체를 학습할 수밖에 없는 여러 사회구조가 문제였다. 그는 시스템 결정권자가 되어 본 적 없는 개인들이 이미 견고하게 세워진 구조에 흡수되어 버린다는 것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시스템과 개인에 대한 차지량 작가의 고민은 '세대독립클럽'(2010년), '일시적 기업'(2011년). 'new home'(2012년), '한국난민시리즈'(2015년) 로 이어진 관객 참여형 예술 프로젝트로 발현됐다.
"주로 했던 작업들이 다 제 삶과 관계되어 있어요. 2011년은 직장생활을 3,4년 정도 했던 친구들이 제 주변에 많았던 시기에요. 대부분 그 즈음이 기업문화에 물들어가는 시기잖아요. 그걸 보면서 기업 시스템을 설계한 사람들과 거리가 먼 우리 세대가 어떻게 시스템의 질서를 학습하게 되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고 그게 '일시적 기업'이라는 작업으로 이어졌어요. 'new home'은 도시계획에 관여하지 않은 세대가 도시의 주거공간에 내몰리는 상황에 치닫는 것을 보며 시작한 작업인데, 저 역시 너무 단단한 현재의 주거시스템에 무력함을 느끼게 되는 경우들이 많았거든요. 이렇게 내 의사와 상관없이 결정되는 내 삶의 유형들을 경험하며 시스템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일시적 기업'은 기업 시스템, 'new home'은 주거 시스템에 대한 차지량 작가의 실험 현장이었다. '일시적 기업'은 일반 기업의 그것처럼 정식 기업 채용공고를 통해 지원자를 모집하고 면접도 실시했다. 일시적 기업 지원자들이 면접에서 받은 질문 중 몇 개를 추려보면 이렇다. 임시직 퇴직 후 정규직 사원과 연락하고 지낸 경험은 있는가? 급여는 어떤 항목으로 주로 사용되고 있는가? 이런 질문도 있다. 임시직이지만 정규직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 사장의 신임을 한 몸에 받던 중, 회사노조가 파업을 결정했다. 참가 할 것인가? 근무시간에 개인적인 볼일로 인터넷을 하다 발각되고 경고조치를 받았다. 개인적인 볼일이 끝나지 않았다면 몰래 할 것인가?
"'new home' 안에서는 이런 질문들이 있어요. 함께 살면 가족일까? 어떻게 바라봐야 가족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이 질문들에 대한 인터뷰를 참여자들이 하게 돼요. 이런 질문들에 답하면서 주거유형을 결정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집에 대해, 가족에 대해 재정의를 하는 과정을 겪게 되죠. 일시적 기업에서는 내가 기업문화에 얼마나 흡수되어 있고 개인의 질서는 얼마만큼 가지고 있느냐를 가늠해 보게 되는 질문들을 비디오 면접을 통해 제공했죠."
차지량 작가의 또 다른 프로젝트 'new home'은 주거공간이 필요한 사람들이 한국의 대표적인 주거유형인 원룸, 빌라, 신도시 아파트에 일시적으로 거주하면서 벌이는 커뮤니케이션의 기록이다. 이 프로젝트에는 완공 직전이거나 완공 후 빈 공간으로 남아 있는 거주지를 일시적으로 점유해 자기 영역을 만들 돼,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규칙이 있었다. 누울 자리를 위해 나눠 받은 돗자리도 예외는 아니다. 'new home' 참여자들은 하룻밤 몸을 뉘였던 돗자리마저 학으로 접어 창문 밖으로 날려 버린다. 청라 신도시 고층 아파트에서 진행 된 'new home'이 게 중 가장 압권인데, 이미 밑동을 삼켜버린 매립지 안갯속으로 돗자리 학들이 추락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비극적이다. 차지량 작가가 생각하는 이 스토리의 결론은 더 극단적이다. 둥지를 갖지 못해 집단적으로 내몰린 철새들, 그 철새로 대변되는 인간들의 집단자살이 그가 준비한 이야기의 끝이었다.
"저는 삶의 방법론들이 더 많아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삶의 방향이 정말 많아져야 하고 한 가지 질서가 아니어야 하는데 지금 시대의 방향과 질서는 한 가지로 너무 짙어지고 있는 거죠. 지금의 질서가 한쪽 방향으로 흐르고 있을 때 다른 쪽 방향에 대한 극단을 제안하면 그 둘의 사이를 넓게 생각할 수 있잖아요? 제가 하고 있는 극단적인 제안은 시스템을 전복하려는 것이라기보다 이 제안들을 통해 현실이 개정될 수 있는 가능성들을 각자가 다 상상하고 스스로 개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중요성이 있어요."
차지량 작가의 '한국난민시리즈'의 탄생은 갑작스러운 게 아니었다. 주거와 일자리의 균형이 붕괴된 사회에서 삶의 지속이 가능할리 없고, 테러와 자멸을 선택하느니 이런 국가를 떠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국가 시스템에 대한 극단적 제안으로 장장 2년간 진행해 온 그의 최근 프로젝트 '한국난민시리즈'는 총 3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배경은 2024년, 국가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진 가상세계를 설정하고 참여자들의 난민 신청을 받았다. 난민 신청자들을 만나 난민증을 발급하는 과정이 '한국난민시리즈'의 첫 번째 에피소드 ‘한국난민판매’에 담겨있다. 두 번째 에피소드인 '한국난민대표'에서는 난민증을 발급 받은 100명의 사람들이 부산항에 모여 준비한 배를 타고 진짜 국가를 떠나는 상황이 벌어진다. 난민들은 배에서 각자의 난민 신청 사유를 밝히기도 하고 그들의 대표도 뽑았다. 그리고 얼마 뒤, 난민들이 도착한 곳은 각자가 신청한 국가가 아니라 2014년의 대한민국이었다. 2024년 부산항을 출발한 배가 100여명의 난민을 싣고 2014년 부산항에 도착하면서 ‘한국난민대표’ 에피소드가 끝난다. 처음 이 에피소드를 만들 때만 해도 미래에서 온 난민들의 등장은 없었다고 한다. 다소 황당한 결론을 내면서까지 이야기의 흐름을 바꾼 이유가 있었다.
"'new home'과 마찬가지로 한국난민시리즈의 두 번째 에피소드를 그릴 때도 집단적인 침몰이 초안이었어요. 배를 하나 빌려 난민으로 등록된 사람들을 다 데리고 떠난 다음 가짜 구조요청을 하고 협상을 하는 게 원래 이야기의 끝이었죠. 그런데 첫 번째 에피소드를 하고 그다음 달에 세월호가 터졌어요. 개인적으로 세월호를 타보기도 했던 저한테는 너무 큰 충격이었어요. 제가 생각했던 사회구조의 잔인한 부분들이 그대로 드러난 사건이었어요. 방송이 어떤 방식들로 오보되고 거기에 사람들은 어떤 영향을 받고 이런 것들이 제가 기초적으로 설계했던 하나의 오작동 코드였거든요. 그런데 그게 현실로 드러나니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세 번째 에피소드를 생각해 내는 과정이 오래 걸렸어요."
세월호를 겪고 원래의 초안대로 이야기를 끝낼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실질적인 대상과의 온전한 협상을 세 번째 에피소드의 목표로 잡았다. 미래에서 온 난민과의 협상을 위해 일반 관객과 국회의원을 초대했다. 관객은 국민대표, 국회의원은 협상대표자들이었다. 그렇게 '한국난민시리즈'의 세 번째 에피소드 '한국난민협상'은 2015년 4월 17일에 열렸다. 장소는 여의도가 보이는 한강이었다.
부산항을 거쳐 한강에 유입된 미래의 난민들은 빈약해 보이는 오리 튜브에 의지한 채 이렇게 말했다. 미래에서 온 우리는 미래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불균형에 대한 극단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결정권자들은 이것들을 개정하고 우리 난민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2015년의 한국, 우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바로 그 옷, 사진 한 장으로 차지량을 찾아 나서게 만든 그 난민 복장이 이 에피소드에서 등장한다. 잠수복 소재로 만들었다는 난민 협상 수트였다. 2015년 한국의 대표자들과 협상이 결렬되면 언제고 물 위에 떠다녀야만 하는 운명을 직감하고 있는 옷이었다. 방수라는 옷의 기능이 함의하고 있는 시간과 사연만 따져 봐도 이 수트가 한 편의 에피소드에 쓰인 소품 정도로 그 운명을 다 할 것 같지는 않다. 2015년 물대포를 쏘아대는 대한민국 광장에 다시 등장한 것처럼 말이다.
비단 방수기능 때문만이 아니다. 차치량의 '한국난민시리즈'의 모든 현장은 종료됐지만 이 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예민한 감각이 환영(幻影) 정도로 남아 있던 한국난민의 존재를 "있음"으로 각인시켜버렸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우리는 이 사회의 시스템을 마주할 때마다 난민의 삶을 떠올리게 돼버렸다. 시스템의 균형이 무너질수록 우리도 난민이 되리라는 공포도 커질 것이다. 하지만 이 불균형을 바로세울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런 형태의 미술이 익숙하지 않다고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게 요즘의 애플리케이션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현장이라는 게 모든 삶의 필수 조건은 아니지만 이 부분을 경험하는 것이 삶에 있어서 여러 태도를 확장시키는 과정이기도 하잖아요. 저는 제 작업이 그 부분들로 기능한다면 좋겠다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요. 제 작업을 함께 한 관객들이 다른 시스템을 상상할 수 있는 개인, 시스템에 상상력을 제안할 수 있는 개인으로 확장 된다면 좋기를 희망하는 거죠."
한국난민의 탄생을 알린 것도 그이지만 막을 방법도 그에게서 찾았다. 고착된 시스템에 새로운 상상력을 불어 넣는 개인과 지금과는 다른 시스템을 제안하는 개인들이 많아지는 것. 그리고 그 개인들이 만들어 가는 유연한 사회 시스템의 존재에서다.
'한국난민시리즈'의 세 번째 에피소드 ‘한국난민협상’의 제목은 '멈출 수 있는 미래의 환영'이다.(쉽게 한국난민판매, 대표, 협상으로 부르고 있지만 실은 큰 제목들이 따로 있었다. 한국난민판매는 '뉴미디어를 장착한 체념이 광장을 가로지른다' 한국난민대표는 '대표의 균형이 개인을 살린다'이다) 차지량 작가가 '한국난민시리즈' 마지막에 이르러 '멈출 수 있'음을 얘기하고 있는 것도 그가 벌인 프로젝트를 통해 개인에게로 그리고 사회로 확장된 상상력에 기댄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극단으로 치닫는 이 불균형한 사회를 멈출 수 있다는데, 차지량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보는 일, 마다 할 이유가 없다.
* 한국난민협상 자리에 초청한 국회의원들은 왔는지, 그래서 협상은 잘 됐는지에 대한 결과는 이 글에서 밝히지 않겠다. 차지량 작가가 '한국난민시리즈'의 영화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하니 결론은 영화를 통해 확인해도 좋을 것 같다. (필자)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바로 가기 : 바꿈)은 2015년 7월에 출범한 시민 단체입니다. 흩어져 있는 사회 진보 의제들을 모아 소통하고 공동의 지혜를 그러모으는 장을 만들어보려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바꿈이 기획한 '기억을 기억하다'는 많은 이가 외면하고 잊어가는 이 땅의 현실을 온몸으로 살아내고 있는 얼굴들을 만나 그의 기억을 함께 나누려는 기록 연재입니다. (필자)
<1> '기억'을 기억하다 : "진실을 요구하는 일에는 '강단'이 필요하다"
<2> '기억'을 기억하다 : "현실이 이러니 우리가 할 말 없지요"
<3> '기억'을 기억하다 : "4.11 총선에서 10만3811표 얻었어요"
<4> '기억'을 기억하다 : "세월호 특위, 이번이 끝이 아닙니다"
<6> '기억'을 기억하다 : "삼풍 무너져도 정부 책임 생각 안 했죠"
<7> '기억'을 기억하다 : "54.5세 국회의원은 '헬조선' 못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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