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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황제의 행복지수는?

[한인희의 중국 역사의 뒤뜰] 중국 황제 이야기① 황제가 된 사람들

1911년 신해혁명 이전 2000여 년간 중국 역사에서 정치 제도의 기본은 황제(皇帝) 제도였다. 황제는 국가의 최고 통치자였고, 전제적 통치의 대표자이자 권력의 중심이었다. 기원전 221년 진시황이 황제를 칭한 이래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傅儀)가 퇴위한 1912년까지 총 2132년 동안 422명의 황제가 있었다. 중국에서 황제 제도가 사라진 지 이제 겨우 100여 년이 지난 것이다.

한 인간이 갖는 기본적인 욕구는 황제나 백성이나 그 신분에 관계없이 동일한 법이다. 그러나 한 인간이 황제가 된 이후에는 생활의 모든 것이 봉건적 '예치(禮治)'에 따라 움직이는 면이 있었다. 황제는 그 예치를 삶으로 실천해야 하는 '정치적 실체'였다. 그렇다면 인간적인 측면에서 황제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누구나 꿈꾸는 황제의 삶이 정말 행복했을까? 그들의 삶을 단편적으로나마 추적해 보고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중국의 황제는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존재다. 모두가 황제 한 사람을 위해 존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늘 아래 왕의 땅이 아닌 곳이 없고, 땅의 사람 중 왕의 신하가 아닌 자가 없다"(普天之下 莫非王土, 率土之濱 莫非王臣)"고 했다. 천하의 모든 것이 황제 한사람의 것이라는 의미다.

황제의 후계자는 어떻게 결정되었나?

그렇다면, 중국의 황제는 어떤 사람들이 되었을까? 전통 왕조 시대에서 황제가 될 수 있는 요건은 '혈통, 정보, 행운'이었다. 그 가운데 '혈통'이 가장 중요했다. 운명적으로 혈통을 잘 타고 출생해야 했다. 중국의 한족은 '혈통'이 중심인 적장자 계승 제도를 채택했다. 적장자 계승은 '종법 제도'의 가장 기본 원칙이었다. 적장자란 정처(正妻) 소생의 장자를 의미한다. 서주(西周) 시기 천자의 왕위가 적장자에게 계승되면서, 이후 역대 중국 왕조의 왕위 계승의 정통성의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몽골족의 최고 통치자인 '칸'은 '선거'에 의해 선출되었다. 이른바 쿠릴타이(Quriltai) 대회에서 몽골 왕공들의 합의에 의해 최고 지도자를 선출했다. 반면에 여진족인 청조는 '밀건법(密建法)'에 의해 황제가 결정되었다. '밀건법'이란 후계자를 미리 공표하지 않고, 황제가 후계자의 이름을 쓴 종이를 상자에 밀봉해 자금성 건청궁 내에 있는 '정대광명(正大光明)'이라는 편액 뒤에 보관한 뒤, 황제의 사후에 대신들이 입회해 이를 개봉하고 후계자를 공표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 자금성 건천궁 내에 걸려있는 '정대광명' 현판. ⓒwikimedia.org

따라서 청대의 황제들은 대부분 적장자가 아니었다. 강희제는 순치제의 셋째 아들이었고, 옹정제는 강희제의 넷째 아들이었으며, 건륭제도 옹정제의 넷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계승을 채택한 한족은 적장자 혈통을 기준으로 했기에 '혼군(昏君)'도 많았다. 그러나 만주족은 황제의 선택에 의해 후계자를 세웠기 때문에 한족에 비해 똑똑한 황제를 배출할 수 있었다.

'혈통' 이외에도 중국의 많은 황제들이 '비밀 정보'를 장악한 뒤 황제에 올랐다. '행운'도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적장자가 갑자기 사망하여 황위 서열에 따라 권좌에 오르기도 했다.

황제는 하늘(天)의 아들이다. 그러므로 '천자'라 불렀다. 황제의 취임식을 '등기대전(登基大典)'이라 한다. '등기(登基)'라는 용어는 원래 '등극(登極)'이란 말이다. 통상은 '등극위(登極位)'라고 불렀다. 의미는 '최고의 위치에 오른다'는 뜻이다. 송나라와 원나라 이전에도 '등기'라는 표현은 있었다. 그러나 황제의 즉위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대체로 보통사람이 '높은 곳에 오르는 것'에 대한 표현이었다.

황제 즉위식인 '등기대전'은 전임 황제가 사망한 뒤 한 달 이내 길일을 택해 거행한다. 한나라 때에는 한 달 정도 기다려 진행했다. 당나라와 송나라 때에는 전임 황제 사후 둘째 날에 등기의식을 거행하였다. 명나라와 청나라 때에는 15일 이내에 즉위식을 거행했다. 다만 강희황제는 순치황제의 사후 3일 만에 즉위식을 거행했다. 한나라와 명나라 청나라 시기에는 먼저 승계를 한 뒤 즉위식을 거행했지만 남북조와 당나라 송나라시기에는 승계와 즉위를 동시에 거행했다.

고대 중국에서 대체로 전임 황제가 숨을 거둘 때 다음 황제와 대신들이 모두 함께 배석을 한다. 전임 황제가 숨이 끊어지면 대신들은 즉시 새로운 황제에게 예를 갖춘다. 사실은 이것이 의식은 하지 않았지만 이미 즉위를 한 것이다. 선황제의 사후 신황제가 등기대전을 거행하기 이전에도 대신들은 '황상'이라고 부른다. 등기대전이 완료된 후 정식으로 황제가 되었다.

그렇다면, 등기대전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먼저 유조(遺詔)를 반포하고, 다음으로 '즉위예'에 필요한 택일을 정하는데 등기의 일시는 태양의 움직이는 황도(黃道, ecliptic)의 길일을 택한다. 이것은 필수 조건이다. 또한 황포를 제작하고 일반 백성에게 고지하는 등의 번잡한 일도 병행된다. 그리고 봉선(封禪), 즉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행사를 거행한다.

다음으로 대사면을 반포한다. 그 다음으로 등기 조서를 반포하고, 그 다음으로 옥쇄가 전달된다. 그러면 궁중의 악사들이 축하 음악을 연주하는데 이때 황제는 내시의 부축을 받아 황위에 오른다. 황위에 착석하면 음악이 중단되고 백관들과 외국 사절의 축하를 받는다. 다음으로 종묘와 사직에 제사를 지내고 백성들의 축하를 받으면 공식 행사가 종료된다.

중국의 정사인 <25사>를 살펴보면 황제에 관한 많은 자료가 정리되어 있다. 편제 일람표를 보면 조재(朝代), 칭호, 생몰 년대, 재위연낸, 등기세수, 연호 등이 기록되어 있다. 아울러 비고란에는 황제의 사인도 기록되어 있다.

황제들의 행복지수는?

중국 황제는 '천자' 혹은 '만세야(萬世爺)'라고 하면서 장수를 기원했지만 단명한 황제가 적지 않다. 50세 이하에 사망한 황제가 절반이다. 80세 이상을 장수한 황제는 겨우 5명에 불과했다. 중국 역대 가장 장수한 황제는 청대의 건륭황제(88세), 양무제 소연(梁武帝 蕭衍, 85세), 유일한 여성 황제였던 측천무후(81세), 송고종 조구(宋高宗 趙构, 80세), 오대 오월 무숙왕(武肅王, 80세) 정도이다. 60세 이상을 산 황제는 38명에 불과했다. 10살 이하의 황제도 29명이며, 한 살이 채 안되어 세상을 떠난 한상제(漢殤帝) 유륭(劉隆)도 있었다.

재위 기간을 보면 가장 오래 재위한 황제는 청대의 강희제(61년)이며, 다음이 건륭제(60년), 한무제(54년) 등으로 재위 40년 이상이었던 황제는 11명이었고, 30년 이상은 19명, 20년 이상이 31명, 10년에서 20년이 103명이었고, 10년 미만이 240명이었다. 중국 역대 황제의 재위기간은 절반 이상이 10년 미만이었다.

1년 미만도 40명이었으며, 가장 짧은 재위 기간은 금나라 마지막 황제 완안승린(完顔承麟)으로 등극에서 붕어까지 반나절이었다. 또 많은 황제들이 등극할 때 한 돌이 되지 않아 젖을 먹는 간난 아기였다. 가장 나이가 많아 등극한 황제는 75세에 등극한 5대 10국의 초무목왕(楚武穆王) 마은(馬殷)도 있다. 측천무후도 66세에 등극한 여황제이다.

황제는 천자의 신분으로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른 신비의 인물이었으나 행복지수는 그렇게 높지 않았던 것 같다. 역사 속에서 태평성대를 구가했던 시기는 짧았고, 외적의 침입과 재난이 끊이지 않았다. 백성들이 학수고대했던 '진명천자(眞明天子)'는 드물었고 측근 세력의 권력투쟁 만이 빈번했다.

황제가 되는 것은 '천운'이라 하고 '하늘의 뜻'이라고 말하지만, 시대가 요구하는 인물이어야만 진정한 의미의 황제가 아닐까? 역사가 오늘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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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희

건국대학교 국제학부에서 가르치며, 한중사회과학학회 회장과 KU 중국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다. 대만 중국문화대에서 중국 근대 정치사 연구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대 중국의 영웅들>을 비롯한 다수의 저서와 <중국 외교사> 시리즈 및 <대만 현대 정치사> 등 20여 권의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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