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에 맞춰 정치 분야 신간이 연이어 나온다. 허나 적잖은 책은 기대만큼 충실한 내용을 담지 못한 기획물이다.
<지구를 구하는 정치책>(홍세화·고은광순·조홍섭·조효제·이지문 지음, 나무야 펴냄)은 유행에 발맞춰 쏟아지는 정치책과 조금 결을 달리한다. 이 책에는 이른바 '직업 정치'의 세계와는 조금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시민 사회 영역에서 오랜 기간 활동한 이들이 자기 전문 분야의 소재를 선정해 진정한 정치를 이야기하는 글 다섯 편이 모였다.
좋은 정치란 당리당략 싸움이 아니라, <삼국지>를 인용한 듯 벌어지는 책사의 싸움이 아니라 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더 좋게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극소수 엘리트가 독점한 현실 정치의 세계에서 이 당위성은 그야말로 헌신짝처럼 버려진다. 심지어 엘리트 정치의 가장 큰 피해자라 할 만한 유권자부터가 연일 언론이 중계하는 엘리트 정치판의 훈수꾼이 되었다는 착각에 빠져 정치의 진짜 의미를 망각한다.
이 책은 우리의 주의를 '진짜 정치'로 되돌린다. 삶의 생생한 이야기, 완전히 새로운 시각의 이야기로 좋은 정치가 필요한 이유를 근본적으로 성찰하게 한다.
홍세화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은 인권연대가 주도해 만든 장발장은행 이야기로 정치가 고귀함을 찾아야 하는 이유를 강조한다. 장발장은행은 위법 행위로 벌금형 선고를 받았으나, 돈을 마련하지 못해 강제 노역을 해야 하는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홍 이사장은 장발장은행의 은행장도 맡고 있다.
그는 글에서 장발장은행의 의미와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의 비참한 삶을 정리한 후 "가난은 나랏님도 못 구한다"는 말이 과연 옳으냐고 독자에게 묻는다. 좋은 나라는 당연히 가난을 구제해야 한다. 옳은 정치란 당연히 국가의 주인이 최소한의 사람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옳은 정치란 당연히 나눔을 끌어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당연한 듯 언론에 오르내리지 않아 눈에 보이지 않는 가난한 이들의 삶을 관심 영역 바깥으로 치워버리고, 대신 각종 부패로 몸을 더럽힌 이들이 정치판을 휘젓는 걸 아무 비판의식 없이 지켜본다.
조홍섭 <한겨레> 기자는 환경 이야기를, 조효제 성공회대학교 교수는 난민 이야기를, 이지문 연세대학교 연구교수는 추첨제 민주주의 이야기를 꺼낸다. 이들이 제기하는 주제는 모두 조금씩 다른 모양새로 여러 양심 있는 지식인이 오랫동안 목청 높여 부르짖었다.
선거, 여의도 등의 상징어로 수렴되는 정치와 이 책은 얼핏 관계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을 덮으면, 우리 삶의 모든 조각이 정치임을 알 수 있다. 그제야 4.13 총선의 중요함을 새삼 다시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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