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응천 전 비서관이 그러했듯 진영 전 장관도 이해할 여지는 있습니다. '정치 난민'이라는 점에서, 정책적 대립각을 세웠다가 청와대에 밉보였다는 점에서 더민주가 껴안을 여지는 있습니다. 그를 껴안음으로써 박근혜 정권 심판의 이유를 부각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아닙니다. 제자 논문 표절 의혹을 산 교수, 론스타의 먹튀 행각을 두둔한 교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비하한 의사, 자당의 대선 후보를 '종북'으로 매도한 장성 등은 그 어떤 논리로도 연분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더민주의 도덕성을 갉아먹거나, 더민주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사람들입니다.
지역구 후보보다 비례대표 후보에게 더 강조되는 게 정체성입니다. 지역구 후보는 정체성 못잖게 당선 가능성을 재야하는 현실적 문제가 있지만 비례대표 후보는 그렇지 않습니다. 당의 색깔과 행로를 상징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비례대표 선정의 이유는 분명해야 하고 비례대표 면면의 상징성은 뚜렷해야 합니다. 하지만 앞의 인물들에겐 이런 기본 요소가 없습니다.
김종인 대표는 어제 열린 중앙위원회에서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비례대표 후보들은 수권정당으로 가는 길에 나름대로의 면모를 충분히 드러낼 수 있는 분이라 확신한다"고요.
글쎄요. 김종인 대표 본인은 확신할지 모르지만 지켜보는 입장에선 고개가 갸우뚱 거립니다. 수권의 목표와 후보의 면모가 상응하는지 정말 의문입니다. 오히려 김종인 대표의 주장과는 정반대 생각도 듭니다. 후보의 면모를 보아하니, 수권의 목표가 참으로 허망하게 들리는데요. 더민주가 수권을 하려면 자신들이 수권을 해야만 하는 이유, 자신들이 수권하면 세상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분명히 밝혀야 하는데 이게 없습니다. 저런 사람들 데리고 수권을 해서 도대체 뭘 바꾸겠다는 건지, 그 기본설정부터가 의아합니다.
없는 게 하나 더 있습니다. 최소한의 양식조차 없습니다. 비례대표 선정의 전권을 쥐다시피 한 김종인 대표가 자신을 '2번'에 셀프 공천한 사실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최소한의 겸양, 최소한의 신중조차 없습니다.
정 하려면 당선권 끝번호를 맡아 결연한 승리 의지를 보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당내 일각의 주장을 김종인 대표는 이런 말로 일축했습니다. 눈 가리고 아웅은 하지 않는다고, 끝번호에 넣어 동정을 구하는 정치는 안 한다고요.
어쩌면 반은 맞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당선권 앞번호에 넣는 거나 당선권 끝번호에 넣는 거나 눈 가리고 아웅 이긴 마찬가지일지 모릅니다. 문제의 본질은 공천 순번이 아니라 공천 그 자체입니다. '원 포인트 릴리프'라고 생각했던 인물이 '원 텀'을 쭉 같이 가려는 것 자체가, 그것도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그렇게 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이상현상입니다.
김종인 대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셀프 공천 비판에 대해 "자기네들을 도와주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하려던 건데 안 하면 그만"이라고요.
뭘 어떻게 도와준다는 걸까요? 궁극의 도움이 수권·정권교체라는 건 일찍이 설파했으니 검증 항목이 아닙니다. 살펴야 하는 건 '누구를 통해' 수권을 하고 정권교체를 하려는 것이냐는 점인데요. 이조차 자신을 상정하고 있는 것일까요? 일각의 입방아가 정말 실체 있는 관측이었던 걸까요?
판단은 좀 천천히 내려도 될 듯합니다. 관문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과 연분 없는 사람들을 막무가내로 공천하고, 자기 스스로 자기 밥상 차리는 공천을 하는 이 행태가 컷오프 단계 때부터 부글부글 끓던 지지층의 분노를 폭발시킬지 여부, 이 분노가 투표 불참이나 다른 정당 기표로 이어질지 여부부터 살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여하에 따라 '구원자 김종인'의 정치적 운명이 달라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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