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정청래 의원(서울 마포을) 공천 배제 결정을 내린 데 대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박영선 비대위원과 이철희 선대위 전략기획본부장의 소행'이라는 주장이 유포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노무현 정부 각료 출신인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가세하면서 반향이 더 커질 조짐도 보인다.
유 전 장관은 15일 공개된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카페>에서 "정 의원 공천 탈락에 박영선과 이철희 두 사람이 개입돼 있다"며 "정치 물 먹은 사람은 딱 보면 안다"고 주장했다. 유 전 장관은 "두 사람이 미는 사람의 공천을 위해 서울 지역구를 상대로 여론조사를 벌였고, 그 결과 마포을에 내보내면 이길 것 같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앞서 다른 팟캐스트 방송인 <이이제이>는 박 비대위원과 이 본부장이 나눈 대화 내용이라며, 이 본부장이 "(정 의원의 낙천에 대해) 반응이 별로다"라고 하자 박 비대위원이 "SNS는 안 좋을 것"이라며 "그런 데 휘둘리면 안 된다"고 말했다고 녹음 파일을 공개하기도 했다.
몰래 한 대화가 '딱 걸려?'
그러나 당사자들은 이에 대해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이철희 본부장은 16일 <프레시안>과 한 전화 인터뷰에서 "정 의원의 공천 배제를 결정한 비대위 회의에 참석하지도 않았고, 결정 과정에서도 전혀 배석한 바도 없다"고 밝혔다.
이 본부장은 <이이제이>가 공개한 녹음 내용에 대해 "상식적으로 생각하자. 만약에 진짜로 내가 그렇게 (공천 배제를) 했다면, 그 은밀한 이야기를 그런 자리에서 했겠느냐"며 "나와 박 비대위원이 정 의원을 배제하자고 했다면 그 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주고받을 필요도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실제로 <이이제이>가 공개한 대화는, 박 비대위원과 이 본부장이 사석에서 주고받은 것이라기보다는, 지난 10일 더민주가 총선 전략의 일환으로 기획한 '더불어경제콘서트' 행사의 내용을 기자들에게 설명하는 공개 브리핑 자리에서 나왔다. 방송 카메라까지 동원된 공식 브리핑이 시작되기 직전, 그 브리핑 자리에서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는 중에 나온 내용의 일단이었던 것.
게다가 대화 내용 역시 유 전 장관이나 <이이제이> 측의 주장과는 정반대라고 이 본부장은 설명했다. 그는 "(내가 박 비대위원에게) '언론의 반응이 좋지 않다'고 전했더니 박 위원은 'SNS에서의 부정적 여론은 예상했던 바고, 그 때문에 앞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사실상 반대 의견을 개진했다'고 했다"며 "다시 내가 '국회 출입하는 종이 신문(SNS와 대비되는 의미에서) 기자들은 오늘 발표가 좀 약하다는 평가를 내린다'고 했더니 (박 비대위원이) '그런 얘기에 절대 휘둘리면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이게 전부"라고 했다.
박 비대위원도 지난 10일 "정 의원 지지자의 허탈감에 대해 걱정하는 대화를 나눈 것이며 '정 의원 한 명으로 약하다'는 여론이 있다는데 그런 여론에 휘둘려선 안 된다는 대화 내용이었다"며 억울함을 밝힌 바 있다.
이 본부장은 '여론조사' 부분에 대해서도 "나는 지금 여론조사를 담당하지도 않고 있다"고 일축했다. 이 본부장은 앞서 자신의 팬카페에 올린 글에서 "공관위가 후보 공천을 위해 필요로 하는 여론조사는 정세분석본부(본부장 김헌태)가 지원하고 있다"며 "제게는 공천에 관여할 권한이 없다"고 해명했다.
실제로 선대위 전략기획본부는 통상 공천 관련 여론조사를 담당하는 핵심 보직이며, 이는 유 전 장관의 말대로 "정치 물 먹은 사람은" 상식처럼 여기고 있는 부분이지만, 이번 더민주 김종인 지도부는 '정세분석본부'라는 별도 조직을 만들어 여론조사 작업을 이 본부에 맡기고 있다. 유 전 장관은 지난 2013년 2월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야인 생활을 하고 있고, 팟캐스트 <노유진> 등을 통해 자신이 당적을 가진 정의당을 지원하는 정도 활동만 하고 있다.
박 비대위원 측 관계자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박 비대위원은 공천 결정 과정에서 정 의원에 대한 공천 배제를 주장한 바 없으며, 오히려 그 반대"라며 "정 의원을 컷오프하면 지지자들이 많이 반발할 것이라는 우려를 가장 먼저 표시했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정청래 의원이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과 가까운 사이이고, 박 비대위원도 정 전 장관과 가까운 사이라는 것은 다 아는 얘기 아니냐"며 "굳이 박 비대위원이 정 전 의원을 그렇게(배제) 해야 할 이유가 뭐냐? 이제껏 박 비대위원이 정 의원에 대해 한 번도 나쁘게 얘기한 적이 없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그럼 정청래를 내친 건 누구?
정 의원에 대한 공천 배제가 이뤄진 이뤄진 경로를 보면, 애초 3월 첫주에 정 의원이 '낙천 가부 투표' 대상으로 올라간 것은 그가 지난해 '공갈 사퇴' 발언으로 윤리심판원 징계를 받았던 데 따라 이뤄진 기계적 결정이었다. 가부 투표는 9일 저녁 늦게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고, 공관위원 9명의 최종 투표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홍창선 공천관리위원장은 다음날(10일) 비대위 회의에서 '가부투표 결과, 낙천시키자는 결론이 나왔다'는 취지의 보고를 했다.
박 비대위원 등에 따르면, 이같은 공관위의 보고에 대해 박 비대위원 자신을 포함한 비대위원들이 우려를 표했다고 한다. 즉 박 비대위원은 알려진 바와는 달리 정 의원 컷오프 찬성파가 아니라 반대파였다는 것이다. 찬성파 비대위원이 누구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고, 다만 홍 위원장은 공관위원장이라는 입장 때문에 공관위의 가부 투표 결과를 존중해 달라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단'을 내린 것은 김종인 비대위 대표였다. 김 대표는 반대파들의 우려에 대해 "그런 사정을 다 고려하면 (공천을) 할 수가 없다"며 공관위 투표 결과대로 하자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16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도 '공천 과정에서 박 비대위원 등이 '보이지 않는 손' 역할을 한다고 한다'는 질문을 받고 "(이를 거론한) 최재성 의원의 발언은 정치인으로서 상식 이하"라고 맹비난하며 "불만 있는 사람이 핑계대기 위해 그런 소리를 한다"고 했다. 김 대표는 그러면서 "내가 박영선 말을 듣고 (결정을) 하는 것 아니냐는 쓸데없는 우려를 하기 때문에 그런 말(보이지 않는 손)을 하는 것이다. 실제 제가 성격상으로 남 얘기를 듣고 모든 것을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이렇게 정작 김 위원장 본인은 '내가 한 것이다'라고 하고 있는데도 화살이 김 위원장이 아닌 박 비대위원과 이 본부장을 향하는 현상도 흥미롭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박 비대위원은 지난 2014년 당(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을 맡았을 때부터 이른바 '친노' 그룹과는 불편한 사이였고, 이 본부장은 비노계 좌장인 김한길 의원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한 데다 2012년 대선 당시 정치평론가로서 후보 단일화와 관련해 문재인 후보 쪽에 비판적 평을 많이 했던 반면, 김종인 위원장은 문재인 전 대표 본인에 의해 사령탑으로 추대된 인물이기 때문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김윤철 경희대 교수는 "(지지자들 입장에서) 배제 결정을 수용하기 어려우니 자꾸 '배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심리적 분석을 할 수 있다"며 "박 비대위원은 워낙 '친노'와 대척점에 섰던 세력이고, 이 본부장은 원래 '친노'의 타깃 아니었냐"고 했다. 김 교수는 "(반면) 김 대표는 문 전 대표가 데리고 왔고, 김 대표까지 흔들었을 때는 당이 너무 어려워지는 게 아니냐 하는 부분도 작용한 것 같다"고 했다.
이 본부장은 팬카페에 올린 글에서 억울함을 담아 이렇게 일갈했다.
※다음은 이 본부장이 자신의 팬카페에 쓴 입장글 전문(全文).
공천 개입설과 관련된 이철희의 입장
마음이 참 무겁고, 착잡합니다. 요즘 이런 게 정치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당의 총선기획단에 한 자리를 맡고 있는 터라 당이 져야 할 부담을 제가 나눠지는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사실과 다르게 오해받고 있는 부분이 있어 많이 속상합니다.
제가 속해 있는 총선기획단에는 여러 본부가 있습니다. 전략기획본부를 비롯해 경선관리본부, 메시지본부, 조직본부, 정세분석본부 등이죠. 제가 당에서 맡고 있는 직책은 전략기획본부장입니다. 당의 총선 전략을 전반적으로 기획하는 역할입니다.
총선에 나갈 후보를 심의·결정하는 공천관리위원회는 총선기획단과 별도의 조직입니다. 공관위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우리당 당헌은 총선기획단이 공천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다만, 공관위가 후보 공천을 위해 필요로 하는 여론조사는 정세분석본부가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런 구조이기 때문에 제게는 공천에 관여할 권한이 없습니다. 저라고 왜 개별 후보에 대한 호불호가 없고, 판단이 없겠습니까. 하지만 워낙 말 많고 탈 많은 것이 공천 아닙니까. 별 거 아닐지라도 제가 다른 말을 하면 불필요한 논란이 야기될 수 있어서 그것조차 조심해왔습니다.
공천관련 논의를 하는 비대위 회의에는 비대위원만 참여할 뿐 저같은 본부장들은 배석조차 할 수 없습니다.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정청래, 이해찬 의원의 컷오프 결정은 공관위가 내리고, 비대위가 추인한 것일뿐 저와는 무관합니다. 청년 비례대표 후보 컷오프와 관련해서도 저는 언론보도를 통해 알았습니다.
정청래 의원의 컷오프가 발표되던 날, 오전 10시 당 대표실에서 '더불경제콘서트' 언론 브리핑이 예정돼 있었습니다. 정론관에서 진행되던 공천 발표가 길어져서 브리핑을 30분 늦추기로 하고 참석자들끼리 이런저런 한담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날 발표된 공천에 대한 언론의 반응을 보고 박영선 비대위원과 짧게 대화했습니다.
언론의 반응이 좋지 않다고 전했더니 박 위원은 SNS에서의 부정적 여론은 예상했던 바고, 그 때문에 앞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사실상 반대의견을 개진했다고 했습니다. 다시 제가 국회 출입하는 off line 신문기자들은 오늘 발표가 좀 약하다는 평가를 내린다고 했더니, 그런 얘기에 절대 휘둘리면 안 된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제가 한 일에 대한 책임은 마땅히 제가 져야 합니다. 그걸 회피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조직인으로서 조직의 결정 때문에 받는 비판은 싫어도 감수해야 합니다. 이 또한 마다할 생각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관계를 오해하거나 왜곡해서 가하는 비판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정청래 의원, 이해찬 의원을 좋아하는 분들이 당의 결정에 화를 내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분들이 소중하다고 해서 충분한 근거도 없이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 해서는 안됩니다.
문재인 전 대표의 선한 눈망울을 믿고 정치에 다시 뛰어들기로 결심한 까닭은 보수와 싸워서 이기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끼리 싸우면서 누구에게 해코지 하거나, 누군가의 졸개 노릇하기 위한 게 아닙니다. 못난 놈이 될지언정 나쁜 놈은 되지 않겠다는 제 약속, 잊지 않고 있습니다. 허언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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