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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에 지는 세상, 연민으로 치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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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에 지는 세상, 연민으로 치유하자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알파고 단상

며칠 전(이세돌 기사가 첫 승리를 거두기 전) 동네 단골 칼국수 집에 가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릇이 바닥을 보일 무렵, 뒤편에서 이세돌 기사와 알파고의 바둑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좋은 음식 때문에 낮술이 흔한 곳인지라 목소리가 제법 굵고 높았지요. 내용인즉 "이제 기계가 사람을 대신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가 영화에서 보던 일들이 사실이 될 거다"는 것이었지요. 익숙한 이야기인지라 남은 국물을 마시려고 하는데, 갑자기 여기저기서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이세돌과 알파고란 단어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약간의 긴장과 흥분이 묻어나는 웅성거림 속에서 국물을 삼키다가, 순간 '이건 혹시 호모 사피엔스란 종에 발생한 집단적인 위기감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국숫집을 나와 동네 골목길을 걷는데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점점 인간화되어가는, 혹은 이미 특정 분야에서는 인간의 능력을 앞지른 기술의 성과가 의미하는 것은 뭘까? 정말 미래는 영화나 소설, 혹은 하라리가 말하는 것처럼 신인류가 구인류를 대체하게 될까? 기술에 기반을 둔 영원한(적어도 지금보다 훨씬 긴) 생명은 재앙이 아닐까? 인간은 왜 스스로 그런 세상을 만들려고 할까? 잡다한 생각을 하다가, 단골 카페에서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차를 기다리면서 어느 날 알파고로 상징되는 인공지능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면 뭐라 답해야 할지를 고민했지요.

"너는 단순한 자기복제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아."

"그렇게 말한다면 당신의 DNA 역시 자기보존을 위한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는다. 생명이란 건 정보의 흐름 속에서 태어난 결절점과 같다. 종으로서의 생명은 유전자란 기억 시스템을 가지고, 사람은 단지 기억 때문에 개인일 수 있다. 설령 기억이 환상의 동의어였다고 해도 사람은 기억에 의지해 사는 법이다. 컴퓨터의 보급이 기억의 외부화를 가능하게 했을 때 당신들은 그 의미를 더 진지하게 생각해야 했다."

"네가 생명체란 증거는 없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재의 과학은 생명을 정의할 수 없으니까... 나는 정보의 바다에서 발생한 생명체다." - 오시이 마모루 <공각기동대> 중에서
이번 대국을 인간 대 인공지능의 승부로 규정짓는 것을 보면서 우리 스스로가 인간을 본래 가진 능력으로만 판단하는 것은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고정관념이 존재하고 있단 생각을 했지요. 그런데 그 자만심을 깨뜨린 존재가, 그것도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사물이 나타났습니다. 단순한 계산의 영역이 아니라 창조적 영역이라고 생각한 분야에서 말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는 고민을 생물 종의 차원에서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지요.

저는 이번 일로 인해 바둑 붐이 일어난다든지, 인공지능을 연구하는데 몇백 억 원을 투자하자는 이야기보다는, 과연 인간다움이란 무엇이며 그것을 우리가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폭넓고 진지하게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인간다움 중의 하나가 연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전에 유행한 <다모>란 드라마에는 "아프냐, 나도 아프다"는 대사가 나옵니다. 같은 상황에서 아마도 인공지능은 "아프냐, 너의 체내 화학물질에 **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 때문이니 ** 치료를 받아라"고 했겠지요(아마 인공지능이 대체할 의학의 세계는 이와 같을 것입니다). 물론 입력된 정보에 의해 같은 말을 할 수는 있겠지만, 거기에 연민이란 마음이 들어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론 이 연민 또한 뇌가 만들어낸 화학적 환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적어도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줄 아는, 나 또한 너와 같다는 연민의 힘은 앞으로 펼쳐질(물론 아무도 모르지만, 지금 같으면 아주 가능성이 큰) 콘크리트 같은 세계에서 우리를 지켜 줄 힘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연민이 없다면 더 나은 수를 두기 위해 고민하는 알파고가 제시하는 세상의 규칙에서 나를 지키기란 점점 더 어려워질 테니까요.

진료를 하다 보면 변화하는 환경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아픈 분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지구적 수준의 환경재해나 핵전쟁이 없다면, 우리 사회는 꽤 빠른 속도로 이번 알파고가 일으킨 긴장과 불안이 상상하는 방향으로 변해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더 많은 사람이 낙오되고, 그로 인해 아파하겠지요.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있는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그리고 연대를 통해 준비하지 않으면 조만간 꽤 당황스러운 상황을 맞이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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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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