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사이다 시장'이라는 별명이 어울렸다. 조용한 목소리였지만, 직설적인 비유가 자주 나왔다. 물론 차분한 논리의 설명이 먼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특정 나이의 모든 청년에게 일정 소득을 보장해 준, 청년 배당을 시행하고 있는 성남시 이재명 시장은 "지금 기성 세대는 청년들에게 집단 '이지메(따돌림)'를 가하고 있다"는 말로 청년 배당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기회와 가능성까지도 신규 세대가 오히려 기성 세대보다 적을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에서 "정치 지도자들이 '후진국에 태어나봐야 정신 차리지' 같은 소리를 하는 건 나쁜 짓의 수준을 넘어 무식한 패악질"이라고 이 시장은 말했다. "노인을 위한 기본소득은 되는데 청년을 위한 기본소득은 왜 안 되냐"고 되묻기도 했다.
청년배당을 반대하는 이들도 자기 자식의 취직 걱정에 한숨이 깊지 않냐며 이 시장은 "기성세대가 상반된 행동을 한다"고 꼬집었다.
사실 '상반된 행동'은 정부도 마찬가지다. 청년 실업 등 청년 문제의 심각성을 매번 말하면서도, 청년을 위한 성남시의 청년 배당과 서울시의 청년 수당 등의 정책은 반대하고 있다. 이 시장은 "정부가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건 자신들의 본질이 드러나는 게 두려워서 그렇다"고 평가했다.
진행 중인 관련 소송에서 지면 청년 배당은 어쨌든 중단이 불가피하다. 이 시장과 성남시의 도전 앞엔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까.
다음은 지난 7일 성남시청에서 진행된 이 시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인터뷰는 <프레시안> 전홍기혜 편집국장이 진행했다.
"정책 비판하기 어려우니 지엽적인 '상품권 깡' 비난…청년 배당으로 깡 하면 안 되나?"
프레시안 : 청년배당 사업이 1분기 지급이 지난 1월 이뤄졌다. 첫 지급 후 어떤 반응들이 있었나?
이재명 : 금액은 적지만, 생각한 것 이상으로 현장의 청년들이 느끼는 체감은 높았던 것 같다. 일부 언론에서는 그 정도로 무슨 도움이 되겠냐, 사실상 낭비라는 식으로 폄훼도 하고 아주 지엽적인 '상품권 깡' 문제를 부각시키기도 했다. 그런데 젊은 친구들이 많이 쓰는 SNS를 살펴 보면, 호응이 좋았다. 우리가 버림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공동체에 대한 기대나 신뢰가 살아난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또 정치적 의미도 부여해주더라. 좋은 정치로 혜택을 받는구나 평가하는 것도 봤다.
프레시안 : 청년 배당의 후속 보도로 '상품권 깡' 기사가 쏟아져 나온 것은 다소 엉뚱했다.
이재명 : 사실 어디 가서 깡을 하나? 깡 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다. 한다해도 부모에게 하겠지. 할인이 아니라 할증으로 돈 더 받고 말이다. 12만5000원 어치 상품권 엄마에게 장 보라고 주고, 15만 원 받았겠지. 할아버지한테 주면 20만 원 받고, 애인에게 주면 못 받겠지만.(웃음) 사실 지역 화폐는 용도가 제한돼 있어서 정상적인 할인 시장이 없다. 등록돼 있는 점포만 은행에서 환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상품권 거래 사이트에서 있었던 사례들을 일간베스트(일베)에서 편집해서 올려 놓으니, 보수 언론이 마치 지금 일인냥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이다. 그 자료가 일베에서 나온 거라는 건 이미 증명되지 않았나.
왜 그런 비판을 할까? 정책 자체를 비판하기 어려우니까 그 정책으로 인해 생기는 지엽적이고 부수적인 부작용을 확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극단적으로 말하면 '깡' 하면 안 되나? 현금을 준 것인데, 그 돈으로 술을 사먹든 애인을 주든 엄마한테 할증을 하든 물건을 사든 그건 개인의 자유다.
상품권 대신 현금을 줬다면 아무 문제가 없나? 현금으로 주면 원래 용도와 더 다르게 사용됐을 것이다. 지역 화폐로 준 것은 이유가 있었다.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청년 배당의 두 번째 목표 때문이다. 그 목표에서는 대성공이었다. 성남시 재래시장 매출이 늘어났다. 여러 정책 효과가 겹치긴 했지만, 성남 수정구가 서울 강남구 다음으로 전국에서 창업하고 싶은 지역으로 선정됐다. 심지어 <조선일보> 조사였다.
프레시안 : 정작 가난한 사람들이 이 정책의 혜택을 못 받았다는 지적도 있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에서 제외될까봐 못 받아갔다는 사례가 나오기도 했다.
이재명 : 전체 1만3000명 가운데 청년 배당을 받으면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제외될 수 있는 사람이 140명이 있었고, 그 가운데 실제 40명이 청년 배당을 안 받아갔다. 극단적인 예외 사례다. 그런데 그건 정부 제도의 문제 때문에 불거진 일이다. 일정 소득이 생기면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제외되도록 설계된 중앙정부 제도 말이다.
그 경계선에 있으면 청년 배당을 못 받게 되니 고쳐 달라고 했다. 청년 배당은 복지 혜택인데 그 돈을 왜 소득으로 인정하냐는 게 내 생각이다. 청년 배당만이 아니라 국민 연금을 받아도 소득으로 잡히도록 현재 제도가 돼 있다. 정부 정책의 문제를 청년 배당만의 문제인 것처럼 거짓말을 한다. 행정을 하는 정부가 거짓말을 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정치도 아니고. 나를 공격하자고, 자기들이 만든 전체 제도의 문제를 마치 청년 배당 정책의 문제인 것처럼 몰아간 것이다.
"기본소득이 비용도 덜 드는데, 이건희 회장 골라내자고 돈 더 쓰자?"
프레시안 : 이번 기획에서 만난 청년 가운데 청년 배당을 실제 받았던 청년은 '나처럼 가난한 사람에게 더 많은 혜택이 주어지면 좋겠다'고 했다.
이재명 : 성남시의 대부분의 복지는 선별적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모든 복지를 다 선별복지로 해야 할까? 반대로 모든 복지는 다 보편적으로 해야 할까? 왜 그렇게 물어보는지 모르겠다. 성남시의 수백 가지의 복지는 기본적으로 선별적 복지다. 급식, 교복, 산후조리원만 보편적 복지다.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중앙정부도 아이를 낳으면 보편적 복지로 지원하지 않나? 국민에게 의무적인 요소가 있는 것들은 대개 보편적 복지 형태로 돼 있다.
선별이냐 보편이냐의 판단은 재정 상황이나 각 시행 주체의 역량, 현장의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선택하는 정책 결정의 영역이다. 어느 쪽이 일방적으로 절대적으로 진리라고 말할 수 없다. 성남시는 그동안 노인과 장애우 등에 대한 선별 복지를 많이 늘려 왔고, 그 부분이 어느 정도 채워졌기 때문에 다음 단계로 보편 복지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청년 배당은 복지라기 보다는 부분적 기본 소득에 가깝다.
프레시안 : 청년 배당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부분적 기본 소득'이다. 여전히 기본 소득은 낯선 개념이다.
이재명 : 국가의 소득재분배 정책, 쉽게 말하면 복지가 약자 보호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더 크게 말하면 자본주의 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다. 자본주의는 무한경쟁 체제인데 다치거나, 애를 낳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탈락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을 방치하면 노동력 공급이 더 이상 안 된다. 복지는 국가가 공짜로 선심 쓰는 것이 아니고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투자다. 물론 그 외에도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한 인권적 측면도 있다.
사실 선별 복지는 어느 정도 한계에 다다른 측면이 있다. 이건희 손자 골라내려고 인력을 써야하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고, 사실 유지 비용이 더 든다. 청년 배당을 예로 들면, 이건희 손자 500명 골라내봐야 5000만 원 아끼는 건데, 그를 위해서는 매년 신규로 들어 오는 1만3000명을 일일이 조사하고, 분기별로 상황이 바뀌었는지 또 조사하고…. 돈이 더 든다.
한 가지 더, 복지는 경제 상황과도 관계가 있다. 나미비아에서 실험을 해 봤더니,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니 경제성장 효과가 나타났다고 한다. 선별적 복지제도를 할 경우, 오히려 보호 대상자가 한계선을 벗어나지 않기 위해 노동을 안 하는 것과 대비됐다. 선별 복지의 대상자는 영원히 노동 시장에서 배제된다. 혹은 소득이 안 잡히는 비정상적인 일만 한다. 선별 복지가 오히려 일을 하지 않도록 강요하는 시스템이니, 이야말로 비효율적이지 않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무 소득이 없으면 한 달에 28만 원을 준다. 그 돈을 받으려고 지금은 아무 일을 안 한다. 그런데 기본 소득 형태로 주면 그 돈과 일해서 번 돈을 다 가질 수 있으니 더 바람직하지 않나? 한 가지, 왜 돈 잘 버는 사람을 주냐는 비판의 대목이 있는데 그건 세금으로 더 걷으면 된다. 세금의 누진시스템을 조금만 손 보면 되는 것이다. 기본소득이 비용도 덜 들고, 개인의 소득 증대에도 도움 되고, 경제성장에도 더 도움이 된다.
프레시안 : 유럽에서는 이미 기본소득제도가 많이 도입이 돼 있다.
이재명 : 핀란드에서 올해부터 전국민에 대한 기본소득이 도입된다. 스위스도 도입을 위한 국민투표를 한다. 도입할 경우 세금이 70% 올라가는데도, 좋다고들 한다. 우리와 달리 그 나라들에서는 자신이 낸 세금을 대부분 돌려주기 때문에 아깝지 않다고 한다. 복지를 국민에 대한 투자로 보는 나라들이다. 전 국민에 대한 기본소득 이전 단계에서는 청년 수당, 학생 수당, 아동 수당, 취업 장려 수당 등 부분적 기본소득 제도가 있었다.
부분적 기본소득은 우리도 도입될 뻔 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때, 65세 이상 모든 국민에게, 심지어 이건희 회장까지도 기초노령연금을 준다고 약속하지 않았나? 당선되고 나서 돈 없다고 하면서 결국 사기가 됐지만, 명백하게 당선된 대통령의 대국민 공약이었다. 기초노령연금이야말로 부분적 기본소득이다. 선거를 통해 국가 정책으로 채택까지 됐다. 집권 이후 후퇴해서, 지금은 멀쩡하게 월 20만 원을 받는 사람이 40%밖에 안 된다고 하지만.
노인을 위한 기본소득은 되는데, 청년을 위한 기본소득은 왜 안 되는가?
"어버이연합 회원들도 자기 손자 보면 한숨 나올 걸"
이재명 : 사지 멀쩡하면, 장래에 무한한 꿈과 미래가 펼쳐져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젊을 때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고?
프레시안 : 기성 세대의 인식은 그렇다.
이재명 : 옛날엔 맞는 말이다. 지금은 안 맞는다.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얼마 전까지도 젊은 세대가 기성 세대보다 훨씬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원시시대부터 언제나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기성 세대보다 신규 세대가 더 나빠질 것이라는 데 모두가 동의한다. 심지어 기성 세대들 자기 자식을 생각하면 한숨만 쉬지 않나. 어버이연합 구성원도 자기 손자 보면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걸?(웃음) 젊은 세대도 '우리는 가능성이 없어'라는 데 동의한다. 아버지보다 더 나빠질 거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아이를 안 낳는다. 내 자식은 나보다 더 나빠질 거라 믿고 있는 것이다. 진짜 서글픈 일이다.
기성 세대와 신규 세대의 꿈과 미래가 역전돼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 세대에게 '가능성'을 말하면 안 된다. 과거 얘기하면 안 된다. 쌀밥만 먹으면 행복할 때가 있었지만 우린 이미 쌀밥 먹고 있다. 그런데 쌀밥에 만족하라는 무식한 소리가 어딨냐? 정치 지도자들이 '후진국에 태어나봐야 정신 차리지' 같은 소리를 하는 건 나쁜 짓의 수준을 넘어 무식한 패악질이다. 새 새대에게 우리 세대가 가진 것 이상의 기회를 줄 생각을 해야지, 우리보다 더 나쁜 것을 가지라고 강요할 수 있나. 역사의 발전을 부인하는 것이다. 발전하지 말고 과거로 돌아가자는 건가?
프레시안 : '헬조선'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다.
이재명 : 실제 기성 세대가 매우 상반된 행동을 한다. 집단으로 보면 젊은 세대에 대한 작은 복지 혜택도 엄청나게 아까워하고 기회와 미래를 만들어주는 일에는 무관심하면서, 개인으로는 아들·손자 걱정에 시름이 깊다. 그런데 이는 집단으로 놓고 보면 자식 세대에게 '이지메(따돌림)'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재밌는 점은 기성 세대 중 일부는 복지 혜택의 수혜자다. 그 세금은 젊은이도 내고 있다. 아이스크림 사먹고, 아르바이트하면서 기성 세대에게 들어가는 복지의 재원을 낸다. 똑같이 세금도 내고, 상황은 더 나쁜데도 왜 청년만 복지의 혜택을 받아선 안 되나?
성남시의 복지 예산 전체에서 노인 관련 복지가 30%가 넘고, 청년 관련 복지는 청년 배당까지 포함해도 겨우 1.9%다. 청년 관련 복지에 등록금 이자 지원 정책까지 합쳐져 있는 것인데도, 겨우 그 수준이다.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소수가 기회와 이윤을 독점하는 사회, 망할 징조다"
프레시안 : 기성 세대의 '집단 이지메'라고 표현했는데, 사실 인식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도 있지만 저성장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지 않을까.
이재명 : 그런 면도 있다. 기회의 총량 자체가 줄어든 것은 맞다. 그런데 다른 선진국에 비해 우리가 더 적냐면 그건 아니다. 그럼 왜 우리만 유난히 청년 문제가 심각할까. 세계 최악의 출산율을 기록할 만큼 말이다. 기회와 소득, 이윤을 특정 소수가 독점해서 그렇다.
나는 여기서 대한민국이 망할 징조를 본다. 역사적으로 기회가 소수에게 집중될 때, 나라가 망했다. 토지를 공평하게 나누면 그 나라가 흥한다. 물론 기득권의 저항은 있었고 그걸 전쟁이든 혁명이든으로 막아야 했지만, 자원이 공평하게 분배되면 가장 효율적으로 쓰이기 때문에 나라가 흥하는 것이다.
지금은 자원이 소수에게 집중돼 있다. 이미 재벌이 슈퍼마켓까지 다 뺏고 나서는 미용실도 뺏으려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제일 부려 먹기 좋은 것이 청년이다. 기회가 적어지니 힘 없는 사회 초년병에게 압박이 집중된다. 청년실업 대책이랍시고 내놓는 정책을 보면, 실제로는 청년 괴롭힘 정책이다. 인턴제, 청년고용 보조금제가 전부 그렇다. 보조금 받는 동안은 청년을 싸게 쓰고, 그 기간이 끝나면 자른다.
청년 고용이 늘어나지 않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기술 발전으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이야 전세계적 문제지만, 우리는 유독 고용 유연성이 강하다. 다 1년짜리 연봉제를 하는데, 이는 결국 사람의 인생 가운데 많이 남겨 먹을 수 있는 시기만 써먹고 이익보다 비용이 커지면 버리겠다는 것이다. 임금에 비해 더 많은 수익이 생기는 것을 기업이 다 가져가는 건 당연하고, 수익이 적을 때는 왜 그 손해를 노동자가 부담해야 하나? 손해 나는 농사는 안 짓고 이익이 생기는 일만 하려는 것이 제대로 된 기업인가?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시장 구조 개선은 결국 기업더러 청년 쓰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정부가 청년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못 갖게 강요하는 셈이다. 고용안정성을 낮추려면 임금을 높여야 한다. 헌법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그게 맞다.
프레시안 : 청년 문제가 심각하다는 건 모두가 동의하는데, 정치에서는 오히려 전면에 크게 드러나지는 않는 것 같다. 물론 청년 정책들을 내놓긴 하지만 말이다.
이재명 : 2011년 <프레지던트>라는 드라마에서 최수종 대통령 후보가 이런 말을 한다. "대통령은 국민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투표하는 국민이 만드는 것입니다"라고. "못 배우고 나이든 어르신들이 지팡이 짚고 버스 타고 읍내에 나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때, 여러분은 애인 팔장 끼고 산으로 들러 놀러가지 않았냐"고. "권리 위해 잠자지 않는 사람은 보호 받지 못하고 투표 하지 않는 계층은 결코 보호받지 못한다"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대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무서운 건 주권을 행사하는 주인, 말하는 주인이다. 바보 처럼 말도 안 하고, 관심도 없는 주인은 안 무섭다. 지배 대상일 뿐이다. 이용의 대상일 뿐이다. 그런데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주인에게는 그렇게 못 한다. 엄밀히 말하면 자기가 주인 노릇을 하지 않고, 주인으로 대접받기를 바라는 것도 도둑놈 심보다. 정치는 이 사회의 자원 배분 뿐 아니라 고용과 산업 등 경제에 대한 모든 의사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정치적 결정이 자신에게 유리하기를 바라는 것은 바보다.
"정부가 지자체 복지에 제동? 자신들의 본질 드러나는 게 두러워서"
프레시안 : 사실 성남시나 서울시의 복지 정책에 제동을 거는 중앙정부의 견제에도 당연히 정치적 해석이 깔려 있다.
이재명 : 정부가 성남시의 복지 정책에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건 자신들의 본질이 드러나는 게 두려워서 그렇다. 첫째, 복지는 공짜가 아니라 국민의 권리라는 것을 각인시키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시장이 살림을 잘 하니까 혜택이 나한테 돌아오네'라는 걸 알게 되면 복지에 대한 인식이 바뀐다.
둘째, 재원에 관한 문제다. 우리 시민들이 이상하게 생각한다. 똑같은 살림으로 전에 모 시장은 빚만 수천억 남겼는데, 시장 바뀌고 세금을 더 걷는 것도 아닌데도 빚도 다 갚고 자꾸 뭘 주네? 저 돈이 어디서 났을까? 그런데 정부는 왜 못 하지?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각종 부정부패, 예산 낭비, 이권 챙기기 등을 국민이 알게 된다.
사실 나는 시민에게 걷은 세금을 좀 아껴서 돌려줬을 뿐이다. 그게 왜 악마인가? 물론 다른 지방정부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중앙정부의 무능과 부패는 지방 정부에 비견할 수 없을 정도다. 구조상 지자체는 정부보다 무능하거나 부패할 수가 없다. 감사만 해도 엄청나게 많고, 그런데 중앙정부는 스스로 감시하지 않나.
프레시안 : 청년 배당 등 복지 정책 때문에 여러 소송이 한꺼번에 진행 중 아닌가.
이재명 : 경기도가 먼저 제기했다. 물론 법과 상식에 따라 법원이 판단한다면 이길 것이라고 본다. 지방자치는 헌법에 따라 독자적 권력과 독자적 재정을 가지고 있다. 정부 산하 기관이 아니다. 주민 복리에 관한 사안을 지방정부가 독립적으로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법에는 중앙정부와 '협의'하라고 돼 있다. '협의'는 우리도 했다. 그런데 협의가 잘 안 됐다. 안 되면 사회보장위원회 조정에 넘기게 된다. 그럼 우리는 조정 결과를 의무적으로 따라야 하나? 아니다. 조정 결과를 반영하라고 법에 써 있다. 법 조항이 '따른다'가 아니다.
그 조항을 중앙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하는 건 일방적인 해석일 뿐이다. 법원과 헌재가 이런 억지를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이 정치하는 곳도 아니고, 법을 따라 심사숙고해서 합리적 결론을 내기면 이길 것이다.
프레시안 :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다면?
이재명 : 지면 법에 따라야지.
프레시안 : 청년들의 실망이 클텐데….
이재명 : 청년들의 몫이다. 그런 소송을 거는 도지사를 뽑았잖아.(웃음) 사실 다른 지자체도 협의 중인데 예산은 편성해 놓은 곳이 많다. 그런데 그런 곳은 소송 안 걸면서 성남시만 콕 찍어 소송을 제기했다. 거긴 합법이고 우리만 불법인가? 집행을 하는 예산은 불법이 되고, 집행을 안 하는 예산은 합법인가? 이 재판에서 지면 못 한다. 섭섭해 해도 어쩌겠나. 그런 도지사가 뽑히도록 왜 가만히 있었냐고 물어야지.
"청년 배당은 노인기초연금이고 서울시 청년 수당은 '노인 일자리 사업'"
프레시안 : 서울시에서도 청년 수당이라는 이름으로 청년 지원 활동을 곧 시작한다고 한다. 언론에서는 비슷한 정책으로 같이 묶어서 많이 얘기하는데, 평가를 해본다면?
이재명 : 각 자치단체마다 필요와 상황에 맞춰 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다 똑같이 하라고, 획일적으로 하라고 강요하지만 그건 자치를 부인하는 행위다. 각 지차체가 청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필요한 각종 정책을 만들어내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서울시의 정책은 청년 배당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비교 대상도 아니다. 청년 배당은 부분적 기본소득의 개념이고 청년 수당은 선별적 청년 복지 정책이다. 굳이 비슷한 예를 들자면 성남시는 노인기초연금이고 서울시는 노인 일자리 사업이다.
프레시안 : 정치 얘기를 마지막으로 해보자. 4.13 총선을 앞두고 있다. 야권은 분열돼 있고, 여당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들이 많다.
이재명 : 야권에 매우 비관적인 상황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를 통해 진짜 국민을 생각하는 정치인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인이 가려질 것이라 본다. 정치가 권력을 획득하고 월급 받으려고 해 먹는 '짓'이 아니지 않나. 우리 공동체가 어디로 갈지 고민하는 것이 정치다. 실제로는 자기 자리 유지에만 급급하고 국민과 나라 생각은 없는 정치인이 상당히 많다. 전체는 다 죽이고 자기 혼자 혜택을 보겠다는 사람들이 이번에 걸러지지 않을까? 또 걸러져야 한다.
프레시안 : 긴 시간 얘기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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