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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는 페친의 비밀, 네트워크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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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는 페친의 비밀, 네트워크는 안다

[월요일의 '과학 고전 50'] <링크>

<프레시안>이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 사이언스북스와 함께 특별한 연중 기획을 시작합니다. 매주 월요일 아침 한 권의 '과학' 고전을 뽑아서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서평 대상으로 선정된 고전 50권은 "우리에게 맞춤한 우리 시대"의 과학 고전을 과학자, 과학 담당 기자, 과학 저술가, 도서평론가 등 여럿이 머리를 맞대고 2015년에 새롭게 선정한 것입니다. 이번 연재는 선정된 과학 고전 각각을 독자에게 소개하고 또 새롭게 읽어보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김상욱 부산대학교 교수(물리학자), 손승우 한양대학교 교수(물리학자), 이강영 경상대학교 교수(물리학자), 이권우 도서평론가, 이명현 박사(천문학자),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 강양구 기자 등이 돌아가면서 서평을 쓸 예정입니다.

오늘은 손승우 교수가 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의 <링크>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 <링크>(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 지음, 강병남·김기훈 옮김, 동아시아 펴냄). ⓒ동아시아
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을 마친 <응답하라 1988>을 포함한 모든 '응답하라' 시리즈의 오프닝에서는, 주제곡은 그 시대에 따라 달라지지만, 배경에 잡음처럼 들어간 "삐—지-지-직" 하는 PC통신 시절 모뎀 연결 소리가 공통적으로 나온다.

이제 그 효과음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그 소리가 전해주는 '연결됨'의 두근거림과 애절함을 공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응답하라' 시리즈의 첫 번째 시대인 1997년에 개봉한 영화 <접속>을 보여준다면 그 느낌을 전할 수 있을까?

다음 '응답하라' 시리즈가 처음의 1997년에서 더 이상 과거로 가지 않고 시리즈의 네 번째로 이어진다면, 2002년이 될 거라는 기대가 많다. 내가 기억하는 2002년은 밀레니엄 버그의 공포가 가시고, 미니홈피 '싸이월드'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제 호출기 대신 휴대전화를 들고 다녔다.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선거 운동이 치열했고, 지금과 다르게 남북 관계가 좋았으며, '2002 한일 월드컵'에 대한 기대와 열기로 들떠 그 어느 해보다 뜨겁고도 시원한 여름을 보냈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다른 의미로 특별한 해였는데, 나는 그해에 KAIST(한국과학기술원) 물리학과 대학원생으로 '복잡계 및 통계 물리 연구실'에 합류할 수 있었다.

그 당시 인기 있었던 보아의 'No.1'을 주제곡으로 하고, "삐—지-지-직" 하는 PC 통신 연결 소리와 함께 나의 <응답하라 2002>로 기억을 되돌려 본다. "삐—지-지-직."

월드컵은 이미 끝나고 가을을 기다리던 2002년 늦여름.

2001년 가을에 KAIST에 새로 부임한 정하웅 교수의 '복잡계 및 통계 물리 연구실'은 꾸려진 지 1년 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연구실에서는 매주 국제 학술지에 새롭게 출판된 복잡계 네트워크 연구 논문을 읽고 토론하는 열띤 세미나가 이어졌다.

나는 지난 여름 복잡계 네트워크에 대한 총설 논문의 공부를 끝내고, 최신 연구 결과를 추적하며 독자적인 연구 주제를 막 고민하던 중이었다. 그 때 공부한 논문이 바로 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가 <리뷰스 오브 모던 피직스>에 2002년 1월에 출판한 '복잡계 네트워크의 통계역학(Statistical mechanics of complex networks)'이다.

그즈음은 인터넷의 사용이 활발해지고, 싸이월드와 같은 미니홈피와 소셜 미디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본격적으로 일어나던 시기로 국내 학계에서도 복잡계 네트워크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름도 복잡해 보이는 '복잡계 네트워크 이론'을 쉽게 설명해 줄 과학 대중서에 다들 목말라하던 시기이다.

그때 나는 바라바시의 대중서 <링크>(강병남·김기훈 옮김, 동아시아 펴냄)의 번역본을 운 좋게도 미리 읽을 수 있었다. 그 임무를 충실히 하지는 않은 것 같지만, 오탈자와 어색한 번역을 찾는다는 명목이었다.

<링크>는 열다섯 개의 장(이 책에서는 장의 개념을 재미있게 '링크'라고 표현하였다)으로 이루어져 제법 두툼하지만, 첫 장을 읽기 시작하면 중간에 멈추기 어렵다. 바라바시는 그의 첫 대중서 <링크>에서 다양한 등장인물의 에피소드와 서사적 표현으로 종종 읽는 이들에게 즐거운 시공간 여행을 선사한다.

위대한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1783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여행하는 수학자" 폴 에르되스를 만나러 1920년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다시 1965년 레오 카다노프의 미국 일리노이로 정신없이 달린다. 과학 대중서가 마치 소설책 읽듯이 읽히는 것은 바로 그의 폭넓은 배경 지식과 과학자의 글에서는 보기 드문 훌륭한 서사가 어우러진 데 있다.

에르되스와 구둣가게 소년과의 대화에서는 천진난만하고 독특하면서도 어느 누구와도 수학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그의 개성이 느껴지며, 대화를 직접 듣는 현장감마저 느껴진다.

초등학교에서 배웠던, 연필을 종이에서 떼지 않고, 모든 선을 한번만 지나 그림을 완성하는 한 붓 그리기는 어떻게 21세기를 지배하는 네트워크 과학이 되었을까? 이에 대한 답을 찾고 싶은 사람들과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라고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이 책 <링크>를 꼭 읽어 보길 권한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인터넷이, 틈만 나면 수시로 확인하는 카카오톡과 페이스북 같은 소셜 미디어가, 전 세계의 항공망이, 세포 안의 단백질과 신진 대사 물질이, 기업들의 이사회 구성원과 주식들의 관계가 모두 복잡계 네트워크 이론의 지배를 받는다.

한 붓 그리기의 가능성을 증명한 오일러의 1736년 쾨니히스베르크 다리 문제에서는 일곱 개의 다리를 오직 한 번만 건널 수 있는 경로가 있는가 묻는다. 이 문제에서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두 지류가 만나는 프레겔 강이 얼마나 넓은지, 그 사이에 위치한 크네이포프 섬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섬과 육지들을 연결하는 일곱 다리가 얼마나 큰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단지, 중요한 것은 육지와 섬에 해당하는 네 개의 점이 있고, 그 사이를 연결하는 일곱 다리는 그 점을 연결하는 선들로 표현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이를 점과 선을 연결한 '네트워크'로 추상화하는 데 있다. 이로써 문제는 경로를 찾는 사람의 재주보다는 네트워크의 속성에 달린 것으로 된다.

이렇듯 문제의 구성 요소 간의 핵심적인 연결만을 간추린 네트워크의 구조는 우리 주변의 복잡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열쇠가 된다. "실제 네트워크의 구조는 어떻게 생겼을까?", "그 구조와 성장을 지배하는 법칙이 있을까?" 하는 질문들이 바로 복잡계 네트워크 이론의 출발점이다.

이에 대한 첫 번째 시도가 바로 '네트워크의 점들은 확률적으로 마구잡이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무작위 네트워크 이론'이다. 에르되스와 레니는 자연이 따를 수 있는 가장 단순한 방법인 무작위성을 가정하여, 그 동안의 획일적인 정규 격자의 틀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수학적으로 아름다운 이론을 정립하였다. 이때가 1959년이다.

그 이후, 마크 그라노베터를 위시한 사회학 분야의 연구에서는 사회 연결망이 몇 개의 강한 클러스터로 이루어져 있고, 이를 약한 연결이 이어주는 구조임을 밝혔다. 무작위 네트워크 모델에서 이를 수정하기 위해, 1998년 던컨 와츠와 스티븐 스트로가츠가 '작은 세상 네트워크' 모델을 제안한다. 하지만, 작은 세상 네트워크도 무작위 네트워크와 마찬가지로 연결선 수의 분포가 정규분포와 같은 종형을 따른다.

종형 연결선 수 분포는 대규모 네트워크 자료가 확보되면서 대부분의 실제 네트워크와는 다르다는 것이 밝혀진다. 실제 네트워크들은 생각보다 큰 연결선 수를 갖는 점들이 많은 '멱함수 법칙'을 따르는 긴 꼬리 분포를 보인다. 이는 80/20의 법칙으로 더 유명한 롱테일 분포에 해당하는 것이다.

▲ 멱함수 범칙을 따르는 '척도 없는 네트워크'. 소수와 연결된 노드(점)는 아주 많은 반면에 다수와 연결된 노드는 아주 적다. 다수의 링크를 독점한 소수와 소수의 링크만 보유한 다수가 또렷하게 대비된다.

이로부터 저자인 바라바시 팀이 연결선 수 분포가 멱함수 법칙을 따르는 '척도 없는 네트워크' 모델 연구에 이르게는 되는 여정을 다섯 번째 장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서술한다. 척도 없는 네트워크 발견을 학술지에 보고하고, 그 구조를 설명하기 위한 '성장'과 '선호적 연결'의 알고리즘 모델을 찾는 과정이 역동적이고 긴박하게 그려지는데, 연구자의 '아드레날린'이 읽는 이에게까지 느껴진다.

인터넷 웹페이지의 연결 구조에서도, 논문을 함께 쓴 공동 저자들의 사회 연결망 구조에서도, 영화에 함께 출연한 할리우드 배우들의 네트워크에서도, IBM의 컴퓨터 칩셋의 회로도에서도, 미국 서부 전력망과 예쁜꼬마선충의 신경망에서도 모두 멱함수 법칙을 따르는 연결선 수 분포가 나타난다.

도대체 멱함수 법칙이 무슨 의미가 있고, 왜 중요할까? 이런 근본적인 질문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여섯 번째 장을 361쪽의 노트와 함께 찬찬히 살펴보면 좋을 것이다. (사실 이는 통계물리학의 상전이와 임계 현상에 관계된 심도 깊은 논의를 품고 있다.) 혹, 척도 없는 네트워크의 발견을 응용하고 적용하는데 관심이 더 많다면, 열 번째 장 이후에 다양한 적용에 대한 논의가 펼쳐진다. 그 이후는 중간부터 읽는다고 해서 이해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한창 인기 있을 때 "어·남·○"가 있어, 드라마 속 미래의 남편을 찾는 즐거움에 찬물을 끼얹는 글들이 있었다. 이제 급격한 성장기를 지나 여러 학문 분야에 응용되는 단계에 접어든 복잡계 네트워크 이론의 연구자들에게는 "어·네·멱"이 통할 것이다. "어차피 네트워크는 멱함수 법칙이다." 하지만, 방심은 마시라 남편이 정환이라 확신했다 택이인 줄 알고 소위 '멘붕'을 겪은 시청자들이 많지 않았던가.

14년 전 KAIST 연구실에서 시작한 복잡계 네트워크 연구는 나의 연구 인생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고, 이제는 나의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네트워크 연구의 선구자인 폴 에르되스에게 몇 단계 만에 닿을 수 있는가를 뜻하는 에르되스 넘버가 있다. 책의 내용 중에 바라바시 의 에르되스 넘버가 4라기에 '이제 나는 적어도 6은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에르되스 넘버를 미국수학회(AMS)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바로 가기 : MathSciNet)를 이용하여 확인해 봤다.

그런데, 의외로 다른 경로로 4가 되었다. 최근에 <세상물정의 물리학>(동아시아 펴냄)의 저자로 유명한 성균관대학교 김범준 교수 그룹과 논문을 썼는데, 김범준 교수는 톰 브리톤이라는 스웨덴의 수리생물학자와 논문을 썼고, 다시 브리톤은 스웨덴의 수학자 스벤테 얀슨과 논문을 썼다. 얀슨은 에르되스와 함께 쓴 논문이 있다.

되돌아보면 인생의 중요한 분기점에는 의외성도 많고 불확실성도 많다. 내가 그때 그저 좋아 했던 것들이 나의 미래를 이 정도로 결정할 줄이야!

다시 '응답하라'의 마지막 내레이션을 빌려 마무리 해 본다. 연구의 열정으로 "뜨겁고 순수했던, 그래서 시리도록 그리운 그 시절. 들리는가, 들린다면 응답하라." 나의 2002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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