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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버스터, 성공적…하지만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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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버스터, 성공적…하지만 언제까지?

[전문가 진단] 테러 방지법 이슈, 어디로 가나

테러 방지법 직권상정 처리 저지를 위한 야당 의원들의 무제한 토론, 즉 필리버스터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예상 외로 크고 뜨겁다. 이 관심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야당은 언제까지 필리버스터를 해야 할까? 만약 2월 임시국회 회기 종료일인 다음달 10일까지 필리버스터가 이어지면 어떤 상황이 될까? 야당 의원들이 보인 투혼에도 불구하고 테러 방지법 원안이 통과된다면, 사람들은 실망하고 정치에 등을 돌릴까, 아니면 분노를 담아 4월 총선거에서 '페이퍼 스톤'을 던지려 할까? 여야가 테러 방지법 타협안을 도출한다면 지금 야당에 우호적인 여론 지형은 어떻게 변할까? 또 이번 사태는 한국 정치에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까? 야당에는?

필리버스터, 현재로선 "성공적"…더민주, 존재감 과시

현재 필리버스터 관련 이슈는 주로 온라인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국내 최고의 SNS 전문가로 꼽히는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는 이번 필리버스터 사태에 대해 "19대 국회 4년 동안 야당이 했던 캠페인 중 가장 성공적"이라고 평했다. 유 대표는 "(야당이) 이렇게 여론의 중심에 있었던 적이 없다"며 "지표로 비교하자면, 2012년 대선 TV 토론에서 박근혜 당시 후보가 이정희 후보와 싸웠던 날 '박근혜'의 SNS 언급량이 36만 건이었는데, 필리버스터 연설을 한 날 은수미 의원의 언급량이 50만 건이었다"고 했다.

유 대표는 "이번 필리버스터 사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20대가 중심이 돼서 하나의 문화로 만들어 가고 있다는 점"이라며 "마치 일종의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짚었다. 그는 "전 세계 정치사를 봐도, 선거 기간에 필리버스터가 이렇게 국민적 관심을 끈 경우는 없었다. 상상하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고 했다.

유 대표는 여론 동향과 관련해 "여론조사를 보면 여야 지지층이 서로 결집하고 있다"며 특히 "호남이 먼저 반응했다"는 점을 짚었다. 유 대표는 지난 26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를 언급하며 "호남에서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국민의당 지지율을 2배 이상 앞선 것은 호남 야권 지지층의 1차적 결집이 일어난 것"이라며 "국민의당이 애매한 태도를 취하면서, 필리버스터가 관심을 많이 받을수록 SNS에서도 국민의당의 존재감이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상훈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정치학 박사. 이하 '박 박사')는 "성공적이라는 기준이 뭐냐가 중요할 것"이라고 다소 냉소적 태도를 보이면서도 "일반 유권자나 지지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는 기준에서 보면 야당 입장에서 긍정적 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앞으로…"관심 지속돼 野 지지층 결집" vs "관심 사라질 것"


문제는 앞으로다. 유 대표는 향후 여론 변동 추이에 대해 "3월 10일까지 필리버스터를 계속한다면 여야 지지층 결집을 더 불러와, 이번 필리버스터를 주도한 더민주가 국민의당과의 야권 경쟁에서 우위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선거 연기에 부담을 느낀 새누리당이 '정의화 중재안'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며 "더민주 입장에서는 중간에 필리버스터를 포기한 것보다는 (새누리당이 중재안을 수용할 때까지) 계속 끌고 가는 게 불가피한 선택이 아닌가 싶다"고 전망했다.

현재 새누리당은 중재안을 수용할 의사가 없다며 원안 통과를 주장하고 있지만, 총선 일정 연기를 감수하면서까지 테러 방지법 이슈를 놓고 여야가 정면 충돌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관측이 많다. 박성민 '정치 컨설팅 민' 대표(이하 '박 대표')는 "수정안이 통과되면 더 이상 이슈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여당도 선거 연기에 대한 부담이 있고, 국민의당도 테러 방지법과 선거법 동시 처리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박 대표는 또 "필리버스터에 대한 호응이 크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야당 지지층 사이에서, 특히 인터넷을 중심으로 나오는 이야기"라고 의미를 한정하며 "앞으로의 '메인 이슈'는 공천 학살 문제가 될 텐데, 그렇게 되면 필리버스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사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박 대표는 "만약 수정안이 만들어지지 않고, 야당이 3월 10일까지 필리버스터를 계속했음에도 새누리당 원안이 그대로 통과된다면 이 문제가 총선 이슈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단서를 달았다. 그는 "아직까지 사람들이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한 분노를 갖고 있지 않느냐"며 "그런데 테러 방지법이 새누리당 원안대로 되면 '북한 테러를 막는 것보다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을 막는 게 더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야당, 필리버스터로 이길 수 있을까?

박 대표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지적을 했다. "테러 방지법은 국정원에 대한 불신이 강한 상황에서 국정원에 의한 인권 침해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고, (그런 면에서) 상당한 영향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야당이 북한 관련 이슈에서 우위를 점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테러 방지법은 이슈 성격상 국정원 댓글 사건이나 10.4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무단 공개 등과 유사하고, 이같은 사건들에 대한 여론 지형은 과거의 '민주 대 반(反)민주' 구도와 닮아 있다.

박상훈 박사도 "총선 이슈에서는 사회·경제적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며 "사실 테러 방지법은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자유주의적 기본권 이슈"라고 했다. 박 박사는 "사회 구성원들이 생산한 결과를 공공정책을 통해 분배하는 것이 '정치'"라며 "테러 방지법은 굳이 막아야 한다면 꼭 '정치'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운동의 영역이다 : 편집자)"라고 주장했다.

박 박사는 "테러 방지법 이슈를 놓고, 박근혜 정부는 안보 이슈로 (총선을) 몰아가고 야당은 또 이에 대한 두려움을 동원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며 "그런 것은 좀 그만 했으면 좋겠다"고 비판했다.

이와 다른 측면에서 박성민 대표는 필리버스터가 계속 진행돼 선거법 처리가 늦어지면 안심번호 경선이 시간적으로 불가능해진다면서, 이럴 경우 "새누리당에서는 친박계가, 더민주에서는 김종인 비대위가 '시간이 없다'며 다 내리꽂는 식으로 공천을 할 것이고 상향식 공천, 시스템 공천은 안 될 것"이라고 대치 국면 장기화의 부정적 효과를 짚었다. "(경선을 못 하게 되는) 그것도 일종의 정치적 테러"라고 그는 비판했다.

▲테러 방지법 직권상정 저지를 위한 필리버스터가 29일 정오 37시간을 넘어섰다. 사진은 지난 24일 은수미 의원의 토론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필리버스터, 이번엔 공리적 효과 있었지만…제도 자체는 우려"


나아가 박 박사는 필리버스터 제도 자체에 대해 좀 찬찬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앞서 그가 했던 "지지자들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는 면에서 보면 긍정적"이라는 말은 사실 이 비판을 하기 전에 전제처럼 나왔던 말이었다. 그가 했던 말은 원래 이랬다. "기준이 뭐냐가 중요하죠. 사람들에게, 지지자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는 면에서 보면 야당으로서는 긍정적인데, 민주주의 제도 측면에서 보면 좀 곤혹스러운 부분이 있죠. 아시다시피, 필리버스터는 민주주의를 줄이기 위해 고안된 제도니까요."

박 박사의 말을 좀더 옮기면 이렇다. "미국의 경우, 하원에서 다수결로 채택된 의견이라도 일종의 귀족원(院)인 상원에서 다수 의견을 소수가 저지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는 것이 필리버스터다. 다수 지배의 민주적 결정 원리를 사후적으로 소수가 막을 수 있게 한 것이다"라고 그는 설명한다.

그는 "만약 이번 테러 방지법에 대해 그런(야권 지지자들이 평가하는) 것처럼 '소수 의견이 정의롭다'고 생각한다면 잘 했다고 볼 수 있지만, 야당이 집권해 개혁을 하려 할 때는 오히려 필리버스터가 어려움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그래서 미국은 유럽처럼 복지국가 정책, 자본주의에 대한 수정을 가하는 정책 등 갈등 이슈들이 의회에서 잘 통과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에서 최근 있었던 필리버스터 사례는 보수 야당인 공화당이 '오바마케어'에 반대해 벌였던 것이다.

박 박사는 "공리적 기준으로 문제를 봐야 할 지점이 있다"며 "정치, 정당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는" 면에서는 이번 필리버스터가 정치 발전에 기여한 부분이 있다고 평가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효적인 효과라는 측면에서 무엇을 남길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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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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