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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10% 위한 학교서 시간 허비해야 하나요"

[다산칼럼] 학교 밖의 학교

지난 1월 남인도를 다녀왔다. 코친에서 바르깔라로 가는 길이었다. 인도 기차답지 않게 5분 늦게 아침 7시 5분에 출발했다. 운수대통한 날이라고 속으로 실컷 웃었다. 건너편 좌석에 앉은 초로의 인도인 부부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흘끔흘끔 바라보든지 말든지 어쨌든 기분이 좋았다.

인도 여행길에서 만난 젊은 자매

기차에 오른 지 5분도 되지 않아 좌석 건너편에 젊은 아가씨 둘이 자리를 잡는다. 입성만 보고도 한눈에 한국인인 줄 알겠다. 일본인·중국인은 같은 동아시아 사람이고 옷차림도 거의 같지만, 어딘가 생김새가 다르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솔직히 사심을 털어놓자면, 내 눈에는 한국 사람이 훨씬 잘 생겨 보인다.

금방 이야기를 시작했다. 둘은 친자매다. 인도에 온 지 한 달이 넘었단다. 뭄바이에 내려 고아와 마르가오, 함삐를 거쳐 코친으로 왔고 이제 바르깔라로 가는 길이란다. 바르깔라에 도착하면 좀 쉬었다가 인도 남동부를 돌아 다시 뭄바이로 가서 네팔 가는 비행기를 탈 생각이란다. 네팔에서는, 언니는 직장 때문에 일주일 뒤 귀국하고 동생은 남아서 보름 동안 트레킹을 한 뒤 돌아간다고 한다. 대단한 자매가 아닐 수 없다.

언니는 스물여섯, 동생은 열여덟이다. 동생이 고등학교 2학년 나이라 아무리 방학이지만, 석 달을 외국에 나와 있는 것이 좀 이상했다. 알다시피 대한민국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눈치를 챘는지 동생이 자신은 고등학생 나이지만 고등학교에 다니지 않는다고 말했다. 학교는 자신을 옥죄는 감옥 같았고, 그 속에 갇혀 입시공부를 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여겨졌단다. 그래서 늘 우울했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도 하지 못하고 다닐 바에야 그만두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 부모를 설득해 학교를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동생의 말은 이랬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여행비용을 만들었지요. 부모님도 약간 도움을 주셨구요. 나는 내가 번 돈으로 세상을 배운다고 생각해요. 학교를 그만두고 나니, 얼굴도 폈고 생활이 활기차게 되었어요. 얼굴이 환해진 것을 보고 학교 그만두는 것을 반대하던 엄마도 이제는 좋아하세요. 학교에서 지내는 것보다 더 보람찬 삶을 사는 것 같아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 계발을 해야 하구요. 봉사, 운동 등으로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 있어요. 사실 우리나라 고등학교란 것이 상위 10%를 제외하면 별 의미 없는 곳이 아닌가요? 그 10% 외에는 학교는 쓸데없는 곳이라 생각해요."

"10%를 위한 학교에서 시간을 허비할 순 없어요"

"꿈도 많은데 학교에서 귀중한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어요. 나는 언니가 내 세계관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어요. 언니가 여행 다니는 것을 보고 나도 언니처럼 여행을 하고 싶었는데, 학교가 나를 가로막았지요. 학교 그만두고 언니를 따라 다니기 시작했지요. 여행을 하다 보니,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어에 좀 더 능숙해지면 아프리카로 가서 트럭을 타고 여행을 하고 싶어요."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 도리어 내가 앞으로 무얼 해서 먹고 살아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취미로 좋아하는 것과 직업으로 선택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 문제는 앞으로 계속 고민하기로 하고, 귀국해서 4월에 있는 검정고시에 합격하면 스킨스쿠버부터 배워둘 예정이에요. 또 앞으로 학교를 그만둔 나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서 내고 싶어요. 대학은 꼭 갈 거예요. 내가 하고 싶은 전공을 택해서 가고 싶어요."

말은 조리 정연했고 거침이 없었다. 표정에는 활기가 흘러넘쳤다. 이 젊은 아가씨는 학교 밖의 학교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었다.

이 만남에서 피교육자가 대한민국 교육의 본질적 성격을 꿰뚫어보기 시작했다는 것을 절감했다. 학교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 이 명백한 사실은 어떤 교육학자도, 어떤 학교도 말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젊은 친구가 고등학생 중 10%만 되면 대한민국 교육이 바뀔 것이고 세상이 바뀔 것이다. 3주 동안 인도를 여행하면서 가장 기뻤던 일은 이 용감한 젊은 친구를 만난 것이었다. 몸은 고달팠지만 마음은 도리어 상쾌했다.

* 다산연구소가 발행하는 <다산 포럼(www.edasan.org)> 2월 26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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