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주 정의당 미래정치센터 소장이 2일 20대 총선 출마 선언을 했다.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로 나서겠다는 것.
다음은 출마선언문 전문변화를 위한 용기있는 선택
‘심판의 정치’를 넘어
지금의 한국정치는 마치 재판정 같습니다. 제1야당은 이번 총선에서 박근혜 정부의 실정을 심판하자고 말합니다. 박근혜 정부는 국회가 ‘개혁’을 발목잡고 있다며 야당은 물론 여의도 정치 모두를 심판하자고 합니다.
이 심판은 상대만을 향하고 있지 않습니다. 기괴한 조어인 ‘진실한 사람’과 ‘배신의 정치’는 여당 내부를 향하고 있습니다. 분열주의와 패권주의를 각각 심판해 달라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사이의 공방도 마찬가지입니다. ‘심판’은 여의도 정치를 지배하는 단 하나의 단어가 되었습니다.
시민들은 잘못한 정당과 정치인을 반대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를 심판하고, 심판자를 또 심판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정치를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한 ‘심판의 정치’는 증오를 동원하는 손쉬운 정치일 뿐입니다. ‘심판의 정치’는 누가 더 좋은 대안이 있는가를 묻지 않습니다. 대신 누가 더 상대의 멱살을 세게 잡을 수 있는가를 물을 뿐입니다. 심판과 증오만 남은 정치에서 시민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정치가 외면하고 있는 얼굴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어제 밤 편의점에서 마주쳤던 졸린 눈의 청년이며, 오늘 아침 회사 복도에서 인사했던 예순의 청소노동자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다른 얼굴이며, 누구보다 삶의 변화를 간절히 원하지만, 누구에 의해서도 대변되지 않는 민주주의 밖의 시민들입니다.
그들은 심판 이상을 원합니다. 정치는 그에 대한 답을 말해야 합니다. 증오를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불만을 조직하고 대표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분야별 OECD 순위가 얼마나 하위인지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바꿀 희망의 근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이제 더 나은 삶을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 논쟁합시다. 그것이 ‘심판의 정치’를 넘어선 ‘변화의 정치’입니다.
‘변화의 정치’에 모두를 초대합니다.
‘변화의 정치’는 진보정당과 야당만의 일이 아닙니다. 여당과 보수 역시 함께 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새누리당은 시민의 삶을 바꾸는 경쟁에 무관심합니다. 대신 누가 야당과 진보적 시민들에게 더 적대적이고, 누가 더 상처 주는 말을 잘 하는가에 대한 경선을 시작한 듯합니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시민과 지지자가 아니라 청와대에 더 잘 들리도록 그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여당은 흡사 정부의 법제처가 된 것처럼 청와대의 청부법안을 다듬을 뿐입니다. 이러한 퇴락은 보수적 시민들에게도 굴욕이 되고 있습니다.
저는 훌륭한 보수 정당을 원합니다. 자긍심을 갖고 맞설 수 있는 상대를 원합니다. 변화의 유일한 가능성으로 정권교체만을 상상하게 만드는 여당은 그런 정당이 아닙니다. 제가 여당에 원하는 것은 새누리당 당사 외벽에 이미 쓰여 있습니다. ‘새누리당이 혁신해야 대한민국이 변화합니다.’
야당은 ‘변화의 정치’가 시작되는 출발점이어야 하지만 수개월의 논란 끝에 분화하고 있습니다. 제1야당에 남은 이들과 떠난 이들은 서로에게 복수를 다짐합니다. 증오의 언어는 여의도를 넘어 각자의 지지자에게까지 전염되고 있습니다. 그 싸움 속에 사라지는 변화의 가능성을 보며 진보적 시민들에게도 굴욕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비난과 조롱을 중단해야 합니다. ‘친노 대 비노’, ‘호남 대 비호남’과 같은 말은 시민이 원해서 만들어진 말이 아닙니다. 문재인 대표를 좋아하는 시민도, 안철수 대표를 좋아하는 시민도 우리의 민주주의가 더 좋아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부산의 비정규직 노동자도, 광주의 청년 구직자도, 서울의 영세 자영업자도 모두 야당이 대변해야 할 시민의 이름입니다.
연대는 과감하게 하고 경쟁은 치열하게 합시다. 더 나은 대안을 위해 경쟁하고, 실질적 변화를 위해 연대합시다. 그것이 위기의 야당이 승리하는 길이며 또한 우리 정의당이 가야할 길입니다.
당신의 전쟁을 멈출 국회를 만듭시다.
심판의 정치가 난무하는 20대 총선의 또 다른 이름은 전쟁입니다. 여야 모두 총선이 대선을 앞둔 건곤일척의 전쟁이라고 말합니다. 야권은 10년만의 정권탈환이, 여권은 보수의 장기집권이 이 전쟁에 걸려 있다고 말합니다. 총선이 전쟁이라면, 정당은 서로의 적이며 국회 의석은 전승자가 차지하는 전리품일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진짜 전쟁은 어디에서 일어나고 있습니까?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진짜 적은 누구입니까?
그리고 국회는 무엇입니까?
우리 시대 가장 비극적이고 치열한 전쟁은 이미 시민들의 고통스러운 일상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진짜 적은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이 아닙니다. 우리가 물리쳐야 할 적의 이름은 고유명사로 불렸던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불평등, 절망, 냉소와 같이 사회를 무너뜨리고 있는 모든 것들입니다.
내일이면 계약이 종료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생계를 두고 벌이는 전쟁이 있습니다. 폭락한 쌀값에 신음하는 농민이 비정한 시장에 맞서 치르는 전쟁이 있습니다. 두 평짜리 고시원에서 살아가며, 수백 대 일의 취업경쟁에 지쳐 결국 ‘지옥’이라는 말로 냉소하고 있는 청년의 전쟁이 있습니다. 우리가 끝내야 할 전쟁은 오천만이 매일 치르고 있는 이 절박한 전쟁입니다. 이들의 전쟁에는 승자도 전리품도 없습니다. 오직 패배하여 추방된 자와 또다시 전쟁을 치르다 사멸되는 자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20대 총선은 시민들이 치르고 있는 전쟁 같은 현실을 바꾸기 위한 대안들이 경쟁하는 장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무너진 삶을 다시 세우는 것이 20대 국회의 목표여야 합니다. 그것이 진보와 보수, 여야가 함께하는 ‘변화의 정치’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변화를 위한 용기있는 선택
우리는 조연이 아닙니다. 정의당은 연대와 연합의 조연이 아닌 ‘변화의 정치’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의 정당 분화는 한국 정치의 오른쪽에서 벌어지는 익숙한 재배열이자 답답한 양당정치의 확장일 뿐입니다. 정의당이 추진하는 ‘왼쪽으로부터의 도전’만이 양당정치가 외면한 우리 삶의 진짜 문제들을 정치의 무대에 등장시킬 수 있습니다. 그 도전을 위해 정의당의 진보정치는 더 과감해져야 합니다.
정의당은 혐오에 단호하게 맞서는 정당이 되어야 합니다. 더 이상 혐오는 소수에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극심한 여성혐오를 비롯한 이주민과 성소수자 등 약자에 대한 혐오는 우리 공동체에 대한 공격입니다. 혐오의 구조적 원인을 제거하고, 혐오에 대항하는 반혐오의 정치를 주저 없이 시작해야 합니다.
정의당은 새로운 노동운동가가 되어야 합니다. 바닥에 떨어진 노동권은 시민들의 존엄 그 자체에 대한 위협입니다. 노동조합의 지지를 받는 정당에서 노동자를 조직하는 정당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어디에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가장 위태로운 노동으로 눈을 돌려야 합니다 그곳에서 정의당은 열정적인 조직가이고 믿음직한 대변자이며 따뜻한 동료여야 합니다.
정의당은 세금에 솔직한 정당이 되어야 합니다. ‘증세 없는 복지’라는 박근혜 정부의 허구를 비판하는데 그쳐서는 안됩니다. 재벌과 소수 부유층의 책임은 분명히 해야 합니다. 하지만 불평등 해소와 복지국가 실현을 위해 시민들이 함께 기여해야 한다는 진실을 외면하지 맙시다. 우리는 ‘다른 삶을 위해서라면 더 내야 한다’고 솔직하게 말해야 합니다. 논쟁없이 이루어지는 꿈은 없습니다.
정의당의 또 다른 색깔은 녹색입니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산업구조와 노동으로는 지속가능한 삶을 말할 수 없습니다. 산업과 노동의 ‘정의로운 전환’을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합니다. 녹색은 장밋빛 미래나 선언적 구호가 아니라 진보정당만이 할 수 있는 도전이자 미래를 향한 치열한 선택입니다.
20대 총선에서 정의당의 승리는 정치협상에만 좌우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승리는 세상을 바꿀 우리의 비전에 대한 당원들의 자신감에서 시작됩니다. 진보정치의 필요와 가능성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치를 높이는 일이 최우선 전략입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정의당을 유시민 심상정 노회찬의 정당이라고만 설명해서는 안됩니다. 비정규직의 정당, 혐오와 차별에 싸우는 정당. 정의당이 고통 받는 사람들의 다른 이름이 될 때, 우리는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당원들의 열정과 미래를 향한 새로운 대안으로 용기있게 경쟁을 헤쳐 나갑시다.
조성주에 대한 질문에 답합니다
지난 해 6월, 저는 ‘2세대 진보정치’를 주장하며 당대표 선거에 도전했습니다. 선거가 끝나고 전국의 당원들과 지지자들을 만났습니다. 과분한 애정과 때로는 날선 비판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질문들과 마주했습니다.
“당신은 정치가 약자들의 유일한 무기라고 했다. 하지만 현실의 정치는 강자들이 휘두르는 흉기일 뿐이다. 정치가 어떻게 달라져야 약자들의 무기가 될 수 있는가?”
TV와 소셜미디어 속에 머무르는 정치는 결코 약자들의 무기가 될 수 없습니다. 진보정당의 국회의원은 연예인이 아닙니다. 특별한 재능을 가진 전문가도 아닙니다. 진보정당에게 국회는 민의를 ‘조직’하는 곳이고, 국회의원은 민의의 ‘조직가’입니다. 국회가 평범한 시민들의 숨겨진 목소리를 대변하는 ‘성난 얼굴의 조직가’들이 싸우는 곳이 될 때, 정치는 비로소 약자들의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의정활동은 기자회견과 사진이 아니라 조직으로 남아야 합니다. 누구보다도 자신을 대변할 조직이 간절하지만 그것을 가지고 있지 못한 시민들을 향해야 합니다. 저는 한 개의 의정활동을 마치면 한 개의 조직을 만들 것입니다. 그 조직은 우리 당의 기반이 되고, 사회 속에서 더 크게 성장할 것입니다. 저는 바로 그들, 민주주의 밖 시민들의 원내대표가 되려고 합니다.
다른 질문도 있었습니다. “정치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당내 계파나 정파도, 큰 조직적 기반도 없는 당신은 도대체 누구와 함께 그러한 정치를 할 것인가?”
저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저는 이제 함께 도전하고 있습니다. 저 멀리 경남의 통영에서부터 광주, 목포, 부산, 대구, 울산, 제주, 수원, 안산, 안양, 군포, 충주, 대전, 천안, 서산, 태안, 정읍, 전주, 서울, 인천 그리고 강원의 춘천과 원주까지. 정치에 대한 익숙한 절망 대신 희망을 찾고자 했던 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시민들과 책읽기 모임을 하며 정치도 아름다울 수 있음을 발견하고 있었습니다. 노동조합의 조합원들과 가상의 출마선언문을 쓰며 현장에서 정치를 다시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마을만들기’와 ‘협동조합’이 정치와 떨어져 있지 않음을 말하고 시민참여의 민주주의를 토론하고 있었습니다. ‘변화의 정치’는 이미 시작되고 있습니다.
제가 전국에서 만난 이들이 바로 진보정치 2세대입니다. ‘변화의 정치’를 위해 과감히 나선 동료들은 이제 각자의 자리에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0대 총선은 저 조성주의 출발선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20대 총선은 진보정치 2세대의 출발선이며 이미 시작된 ‘변화의 정치’가 도약하는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조성주의 도전은 그들이 어디서 출발하게 될 지를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조성주 당신에게 시민을 대표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이 질문에 답합니다. 저는 산타클로스처럼 선물을 드릴 수 없습니다. 혼자만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해드리겠다고 말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대신 당신과 함께 변화를 만들 것입니다.
열정페이에 시달리던 청년은 용기있게 사표를 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고용보험을 개혁해 나쁜 직장을 스스로 그만두더라도 실업급여를 받도록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이제 숨을 고르며 다른 내일을 꿈꾸게 될 것입니다.
차별과 폭언, 고용불안에 시달리던 비정규직 노동자는 이제 착한 사장을 기다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노동조합의 가입과 활동을 제약하는 법과 제도들을 바꿀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노동조합에 가입할 것이고 동료들과 함께 권리를 요구할 것입니다.
젊은 연인들은 두려움 없이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가 더 아끼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주거와 복지제도를 만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과 연인 사이에는 사랑의 확신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맞벌이 부부들은 어린이집 문 닫는 시간을 걱정하며 상사의 퇴근지시를 기다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아이와 부모의 사랑을 만들 수는 없지만, 5시에 퇴근할 수 있도록 법을 바꾸고 더 많은 휴가를 만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아이와 더 오랫동안 눈빛을 나누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시민들이 준 권력으로 오늘 당신이 사용할 수 있는 힘을 만들 것입니다. 누군가의 선의를 기대하는 것이 아닌 우리 스스로가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그런 힘을 만들 것입니다. 그것이 정의당이 세상을 바꿔나가는 방식입니다. 저는 당신과 함께 성장하고 행복해지는 정치를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왜 정치를 하는가”
저는 변화가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고립된 섬들이 아니라 대지의 일부라고 느낍니다. 오늘 어딘가에 우두커니 앉아있을 청년구직자의 막막함과, 차별과 폭력에 무너진 여성의 자존감은 바로 우리 자신에 대한 모욕입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생존만이 아니라, 타인의 존엄을 위해 과감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존재입니다. 저는 바로 그것을 믿기에 정치를 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더 나은 정치를 기대하는 모두에게 드리는 조성주의 대답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글은 저의 출마선언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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