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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민주주의다!

[백년포럼 발제문] 한국 사회, 경로를 바꿔라 <하>

다음은 제4회 백년포럼 "한국 사회, 경로를 바꿔라: '국가 대 시장'에서 '자본 대 사회'로"의 발제문의 결론 부분이다. 발제자인 박형준 박사(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부소장)는 박정희 개발독재 이래 지금까지 계속돼 온 한국의 사회경제 발전 방식은 국가-자본의 동맹 아래 사회-노동이 철저히 배제됨으로써 경제가 성장할수록 불평등이 심화되는 지속 불가능한 모델임을 밝히고, 자본독재에 대한 사회의 우위를 지향하는 한국 사회 경로 변경의 가능성을 점검한다. 포럼은 28일 오후 7시 30분~9시 30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열린다. 관심 있는 시민들의 많은 참여를 바란다.


나가며: 우리 앞에 놓인 난관들

한국 사회경제체제가 가지고 있는 저부담-저지출의 '작은 정부', 낮은 공공사회복지비 지출, 높은 부패지수-낮은 정부 신뢰도, 낮은 사회 성원 간 신뢰도, 낮은 노조 조직률, 낮은 삶의 만족도, 높은 산재 사망률과 자살률 등의 특징들은 지난 반세기 동안 국가-자본 동맹이 추구한 재벌 중심 축적체제의 어두운 그늘이라고 볼 수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 자본의 축적을 위해 국민들을 억압적으로 동원해 놓고, 후생과 복지는 각자도생으로 해결하라는 식이었다. 국가-자본 동맹은 아직까지 노동과 시민사회를 사회적 협의 주체로서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는, 진보 진영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미래의 사회경제체제를 전환하든, 스스로의 힘으로 해내야할 중요한 과제이다. 주체적 역량 강화라는 난제를 잠시 제쳐 놓는다고 해도, 한국 사회경제체제의 경로변경을 위해 극복해야할 여러 객관적 어려움들이 있다. 마지막으로 몇 가지 객관적 난관들을 확인해 보고 글을 마무리 짓도록 하겠다.

그림 12. 늙어가는 한국사회


(*유소년 비율은 전체 인구 중 0~14세까지 인구 비중이고, 노인부양률은 65세 이상 인구수를 경제활동 가능 인구인 15~64세까지의 인구수로 나눈 비율이다. 출처: 통계청)

첫 번째 고려해야할 문제는 인구학적 변화이다. 우리나라의 총인구 증가율은 1970년대 정부정책으로 산아 제한 캠페인이 펼쳐지면서부터 서서히 감소하기 시작했고, 2030년을 기점으로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할 전망이다. 그 때부터는 인구가 줄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총인구의 감소전망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인구구성 비율의 변화이다. 출산율의 저하로 유소년 인구비중은 지속적으로 줄어들 전망인 반면, 경제활동 인구가 부양해야 할 65세 이상 인구의 비율은 점점 늘어날 전망이다. 1970년 노인부양률은 5.6퍼센트에 불과했지만, 이 비율은 2013년 현재 16.7퍼센트로 늘어나 있고, 앞으로는 증가속도가 더 빨라져, 2030년에는 38.7퍼센트, 2040년에는 57퍼센트까지 늘어날 전망이다(그림12 참조). 다시 말해, 현재는 경제활동 인구 6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고 있는 꼴이라면, 2040년에는 경제활동 인구 2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한다. 그만큼 경제 활력은 떨어지는 반면, 복지재원은 더 많이 요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표5. 주요 국가별 노인부양률 비교(1980~2040)


출처: 통계청, 장례인구 추계 2006

현시점에서 특히 고려해야할 점은 고령화의 속도이다. 표5는 주요국의 고령화 속도를 비교해 놓은 것인데, 한국의 고령화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인인구 비중이 총인구의 7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면 고령화 사회, 14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면 고령사회, 20퍼센트 이상이면 초고령(또는 후기고령)사회라고 한다. 지금까지 고령화에서 고령사회, 고령 사회에서 초고령 사회로의 전환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는 일본이었다. 일본은 각각 24년, 12년이 걸렸다. 독일은 고령화에서 고령사회로 전환하는데 40년, 미국은 73년, 프랑스는 무려 115년이 걸린 것을 보면, 일본의 속도는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매우 빨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전환 속도는 일본을 능가해, 고령화에서 고령사회로의 전환이 18년밖에 걸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며, 고령화에서 초고령 사회로의 전환도 일본보다 적게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그만큼 경제성장 동력이 급격히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두 번째 고려해야 할 난제는 고용 문제이다. '좋은 일자리야말로 가장 중요한 복지제도'라는 말이 있듯이, 고용은 우리의 후생과 관련해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지점이다. 그림13은 OECD 국가들의 고용률과 자영업 비율을 비교해 놓은 것이다. 우리나라의 고용률은 64퍼센트, 자영업 종사자 비율은 27퍼센트로, 상대적으로 자영업 비율이 높고 고용률이 낮은 편에 속한다.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멕시코 등 남유럽형 모델들이 한국과 비슷한 그룹을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스웨덴과 독일 등 북유럽과 대륙형 모델들은 대부분 고용률 74퍼센트, 자영업 비율은 10퍼센트 안팎에 분포해 있다.

그림 13. 고용률과 자영업 비율 비교


출처: OECD Statistics

자영업 비율이 높다는 사실 그 자체를 놓고 좋은지 안 좋은지를 말할 수는 없지만, 높은 자영업 종사자 비율이 전통적인 문화로 인한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산업 위축의 결과물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자영업 종사자 비율이 급속히 늘어났고, 최근에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조기퇴직으로 인해 자영업 비율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게다가 높은 자영업 비율은 곧 지나친 경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자영업의 채산성이 크게 떨어져 종사자들의 생계 문제로 이어진다. 실제로 대부분의 자영업이 카페, 빵집, '치맥', 편의점에 몰려있어, 자영업 종사자들의 낮은 수익률 문제와 프랜차이즈 본사와의 '갑을 관계'에서 더 취약한 입지를 가질 수밖에 없는 문제를 낳고 있다. 또한 이런 문제들은 저임금, 저질의 청년 '알바' 일자리 창출로 직결된다.

▲ 한예슬 씨가 등장한 카페베네 광고. 대부분의 자영업이 카페 등 특정 업종에 몰려 있다. 자영업자들은 과도한 경쟁 및 프랜차이즈 본사의 횡포 등에 시달린다.

한국의 사회경제모델은 제조업 중심의 급속한 산업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크루그먼(Krugman, 1994)이 주장했듯이, 개발독재 시대의 고도성장은 생산성보다는 엄청난 요소투입, 즉 국가가 동원한 노동과 자본이 높은 GDP증가로 환산되어 나타난 것이다. 그림14는 대략 1990년까지 그 모델이 지속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림의 두 그래프는 GDP에서 총고정자본형성이 차지하는 비중과 제조업의 고용 비중을 각각 나타낸 것이다. 제조업 고용비중은 1970년 13퍼센트에서 1980년대 말 28퍼센트의 최고점에 이른 후 감소하기 시작해, 최근 17퍼센트까지 떨어졌다. 총고정자본형성도 1970년 GDP대비 26퍼센트에서 1991년 38퍼센트까지 증가한 뒤 감소하기 시작해, 최근 27퍼센트까지 하락했다.

그림 14. 탈산업사회 진입


출처: 통계청

1997년 위기 이후 투자 감소에 관한 논쟁에서 금융화 혹은 주주자본주의가 원인이라는 주장이 많이 제기되었다. 그런 측면이 없지 않겠지만, 이 문제는 흔히 탈산업사회라고 일컫는 자본주의 발전과정의 '자연스런'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영미모델, 북유럽모델, 그리고 대륙모델 모두 GDP 대비 총고정자본형성이 우리보다 10퍼센트 포인트 낮은 수준에 분포하고 있다. 다소 허망하게 끝났지만, 노무현 정부 때 추진한 아시아 금융허브, 물류 허브 프로젝트는 이런 변화와 관련되어 있다. 제조업 고용비중으로 보면, 우리는 이미 과하게 탈산업화 되었다. 17퍼센트로 우리와 비슷한 미국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비교 대상 국가들이 20퍼센트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독일과 일본은 26퍼센트 전후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서비스업 고용비중은 ‘선진국’ 수준인 75퍼센트를 넘어섰다. 문제는 고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비스업 쪽 노동생산성이 매우 낮다는 사실이다. OECD 통계에 따르면, 1989~2009년에 한국 제조업의 노동생산성은 미국 대비 31퍼센트에서 66퍼센트로 증가했지만, 서비스업의 노동생산성은 42퍼센트에서 49퍼센트로 소폭 증가하는데 그쳤다. 이는 한국의 서비스업이 상대적으로 저임금 저부가가치 업종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림 15. 고진로 성장체제로


복지-성장 선순환 관계를 원활하게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노동생산성을 훨씬 높여야 하는 과제가 있다. 그림15는 OECD 국가들의 1인당 국민순소득과 노동시간당 GDP를 함께 표현한 것인데, 이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 구매력 평가 기준, 1인당 국민순소득은 2만5000달러로 일본과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 따라왔지만, 노동생산성을 의미하는 노동시간당 GDP는 29달러로 최하위 수준이다. 일본의 70퍼센트 수준이고, 독일, 스웨덴, 미국의 50퍼센트 수준이다. 앞에서 확인한 것처럼, 경제활동 인구의 상대적 비중이 점점 줄어드는 추세로 들어가기 때문에 노동생산성의 증가는 더욱더 중요해진다. 노동생산성이 크게 증가하지 않으면, GDP성장이 일본처럼 정체할 가능성이 높다. 지식기반 경제, 창조 경제, 기술융복합 산업 등 여러 이름으로 이 문제를 돌파하려는 시도들이 회자되고는 있지만, 국민경제 차원에서 어떻게 이를 실현해야 할 수 있을지는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 잡혀 있지 않다.

지금까지 OECD 국가들과의 비교 속에서, 한국 사회경제모델의 현 위치를 파악하고, 지금까지 걸어온 궤적에서 벗어나 보다 나은 방향으로 경로를 변경하는 도정에 놓인 과제들을 확인해 보았다. 이 논문에서 다룬 사항들 이외에도 우리가 넘어서야할 무수히 많은 장애물들을 만날 것이다.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소득주도 성장 등 우리가 나아갈 방향에 관한 담론들은 이미 다 나와 있다.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선 노동과 시민사회가 한국사회의 지배블록을 형성하고 있는 초국적 국가-자본 동맹에 당당한 협상주체로 인정받을 수 있을 정도로 힘을 모으는 일이 필요하다. 우리가 모범으로 삼고 있는 독일이나 스웨덴 유형의 자본주의 다양성 모델들의 근간은 민주주의적인 사회적 조정기제였다. 사회적 통합과 신뢰 제고, 민주적 거버넌스를 이루지 못하면, 이 글에서 언급했던 한국 사회경제모델의 경로변경에 필요한 여러 과제들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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