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오는 28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열리는 제4회 백년포럼 "한국 사회, 경로를 바꿔라: '국가 대 시장'에서 '자본 대 사회'로"의 발제문의 첫 부분이다. 발제자인 박형준 박사(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부소장)는 박정희 개발독재 이래 지금까지 계속돼온 한국의 사회경제 발전 방식은 국가-자본의 동맹 아래 사회-노동이 철저히 배제됨으로써 경제가 성장할수록 불평등이 심화되는 지속 불가능한 모델임을 밝히고, 자본독재에 대한 사회의 우위를 지향하는 한국 사회의 경로 변경이 필요함을 제안한다. 오늘(26일)부터 28일까지 세 차례로 나누어 게재한다.
위기의 공감대
갈등과 충돌로 점철되어온 한국 현대사에 마침내 중요한 하나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런데 모처럼 이룬 사회적 합의란 것이 다름 아닌 위기의 공감대이다. 안으로는 추격성장 경제체제의 한계, 밖으로는 세계적 차원의 장기불황이 겹치면서 '이대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있다.
다음 몇 가지 사회경제적 현상들은 현 위기상황을 잘 드러내 주는 징표로서 많이 거론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첫째, 한국경제가 고투자-고성장 체제에서 저투자-저성장 체제로 전환했다. 둘째, 그나마 이루어지는 투자와 성장도 그에 따른 고용창출 효과를 낳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고용 없는 성장' 현상이 나타났다. 셋째, 새롭게 만들어지는 일자리 대부분은 저임금-비정규직-파트타임 일자리로, 고용의 질이 떨어짐과 동시에 고용의 불안정성도 크게 증대했다. 넷째, 이러한 경제적 변화로 인해 소득불평등과 분배의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노동소득의 불평등뿐만 아니라 자본소득의 불평등도 심화되었고, 가계와 기업의 자산가치가 집중되는 현상도 전보다 훨씬 심각해졌다.
1997년 위기 이후 불거져 온 이러한 국내적 차원의 사회경제적 문제들 위에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심화된 전세계적인 차원의 경기침체가 겹치면서, 보수 진영도 이른바 '중진국 함정', '샌드위치 경제론' 등을 부각시키며 그들 나름대로 개혁의 필연성을 설파하고 있다.1) 진정성은 없었던 것으로 이미 판정이 났지만, 그와 상관없이,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이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라는 진보 진영의 화두를 대선공약에 포함시킬 수밖에 없었던 사실은 그만큼 위에 언급한 사회경제적 문제들이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여준 것이다. 최근에는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른바 '초이노믹스'를 내세우며 ― 내용은 부실하지만 ― 진보 진영의 소득주도성장 담론을 차용하기도 했다.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사회경제적 문제들에 접근하는 관점은 다르겠지만, 보수와 진보의 대립구도를 넘어, 일용직 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에서 시작해서 재계와 정계의 상층에 이르기까지 온 국민이 '이대로는 안 된다'는 사회적 인식의 컨센서스에 도달했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현재의 한국사회경제체제가 지속가능하지 못하다는 실정이 경제성장과 분배의 지표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사회안전망과 복지제도의 확립 과정을 거치지 않고 개발독재형 동원체제에서 약육강식적 신자유주의체제로 이어지는 성장만능주의 사회로 진화하면서, 우리국민들은 극도의 생존적 불안감과 삶의 피폐화를 느끼고 있다. 지금 서서히 가시화되고 있는 지속불가능성의 공감대는 극에 달한 삶의 황폐화에서 나오는 인간적 반발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 OECD 최상위에 속하는 장시간의 노동시간으로 삶을 돌볼 수 있는 여유가 없는데다가, 땀 흘린 시간과 보상이 비례하지 않고 돈이 돈을 벌거나 학연·혈연·지연 등 연줄과 줄서기가 출세와 치부를 결정하는 현실에서 심한 박탈감과 무기력감을 느끼고 있으며, '이태백', '삼팔선', '사오정' 등 자조 섞인 유행어에 배어 있듯이 상시적인 삶의 불안감을 안고 산다. 높아지는 GDP가 삶의 질을 개선하기는커녕, 우리 삶에 드리우는 그늘만 점점 짙어지고 있을 뿐이다. 청년들은 자신들을 '3포 세대, 5포 세대, 7포 세대'로 자조적인 정체성을 부여하며, 한국 사회를 인간관계, 꿈, 희망이 없는 '헬조선'이라 부르고 있다. 이러한 모순된 사회경제적 현실은 지난 40여 년 간 한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았지만, 아동·청소년의 삶의 만족도 꼴찌, 산재사망률 1위, 노인빈곤률 1위, 자살률 1위라는 통계로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지표들은 우리가 그동안 "자살 친화적 성장"이라 불리는 참혹한 경로를 따라왔음을 절감하게 해준다.2)
위기의 공감대가 형성되었지만 해결책에 대한 합의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지금까지 우리가 겪은 급속한 사회적 변화의 성격과 바람직한 개혁의 방향에 관해 많은 논쟁들이 뜨겁게 펼쳐져 왔지만, 1997년 위기의 원인에 대해서조차도 합의된 설명을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1987년 체제가 형성한 ― 보수와 진보, 좌우, 민주 대 반민주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 대립적 진영 사이에 존재하는 이견뿐만 아니라, 진보 진영 내에서도 현격한 인식의 차이를 노정해 왔다. 현 위기상황에서도 이러한 대립의 골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노동개혁이란 이름으로 국민들에게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며 재벌기업 위주의 밀어주기 정책을 지속하려는 보수 진영을 차치하더라도, 어느 방향으로 한국 사회경제체제의 진로를 전환할지에 대해 합의를 도출하기가 여전히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그동안 진보 진영에서는 2003년에 있었던 대안연대와 참여연대 사이의 논쟁을 시작으로, '자유주의 경쟁시장 규율의 확립'과 '국가주도 성장기제의 복구'라는 두 가지 이분법적 담론이 중심을 이루며, 1997년 경제위기의 원인, 포스트-1997 개혁의 성격, 이후 바람직한 개혁의 진로 등에 관한 여러 논의들이 펼쳐져 왔다.3) 이 두 중심 담론은 아직도 평행선을 그리며 교점을 만들지 못하고 있고4), 진보 진영 전체적으로도 대중적인 개혁운동의 기반이 될 만한 공통분모를 형성해내지 못하고 있다.
진보 진영에서는 그동안 다양한 대안 담론을 제시하였다. 이른바 '자본주의 고쳐쓰기'라는 테두리 안으로 대안 담론을 제한한다면, 주요 논의들은 표1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동반성장론과 재벌활용 복지국가론 사이에 존재하는 재벌에 관한 대립적 입장을 제외한다면, 거의 모두가 사회연대와 분배정의 강화를 통한 복지와 성장의 선순환 구축, 지식기반과 혁신 강화를 통해 고진로 성장을 도모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또한 미국식 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의 강화를 주장하는 동반성장론을 빼면, 대부분 스웨덴과 독일로 대표되는 유럽 쪽의 '자본주의 다양성' 모델을 지향한다고 볼 수 있다.
<표1> 진보 진영의 대안적 사회경제 담론들
출처: 안현효·류동민(2010)과 주상영(2013)를 참조해 선택 정리5).
대안 담론들의 지향 자체는 대동소이 하지만 단일한 정치적·정책적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지는 못한 실정이다. 의견그룹들이 공동의 조직적 틀을 만들지 못하고 있고, 담론을 온전히 받아 안는 정치세력도 없으며, 개혁의 동력이 될 사회세력도 아직 형성되어 있지 않다. 게다가 진보 진영의 대안 담론들을 현실화 하는 데는 매우 커다란 객관적 걸림돌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유럽의 사민주의적 사회경제 모델들이 만들어진 역사적 경로와 한국의 사회경제모델의 형성 경로 사이에 존재하는 현격한 거리이다. 그로인해 동경심이 유발되지만, 동시에 실현가능성이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다시 말해, 경로의존성 탈피가 쉽지 않다. 그래서 어느 방향으로 갈지를 정하는 것만큼 경로를 바꿀 수 있는 동학을 지금 우리 현실에서 찾아내야하는 과제도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서있는 위치가 어디쯤인지 정확한 좌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시도의 일환으로, 이 글에서는 권력자본론이라는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1) 한국 사회경제의 역사적 궤적을 설명하는 분석의 틀을 제시해, 2) 그 동안 진보 진영 내에서 관련 논의를 주도했던 '국가 대 시장' 또는 '국내 자본 대 외국 자본'이라는 이분법적 접근방식을 넘어설 수 있는 대안을 찾고, 3) 그를 통해, 다른 '자본주의 다양성' 모델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현재의 한국 사회경제 체제의 역사적 궤적을 설명하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본주의 다양성 모델 측면에서 OECD 국가들과의 사회경제적 비교를 통해. 한국 모델과 우리가 지향할 잠재적 모델들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를 가시화하고, 한국 사회경제의 경로변경을 위해 우리가 넘어서야 할 주요 과제를 논의해 보겠다.
자본주의 다양성 모델 논의
자본주의가 이상화된 자유시장의 원리에 따라 조직되는 하나의 발전경로를 밟는 것은 아니고, 다양성을 가질 수 있다는 주장은 찰머스 존슨(1981)의 일본 연구 이후 여러 학자들에 의해 동아시아 개발국가모델 이론으로 정립된 바 있다. 이후 신자유주의 지구화가 세를 떨치면서, 세계적으로 사회경제 제도가 하나의 모델로 수렴된다는 혹은 수렴되어야 한다는 이론이 확산되었다. 이에 맞서, 영미식 신자유주의 체제는 하나의 특수한 형태에 불과하며, 지역적으로 다양한 자본주의 모델이 존재하고, 나아가 그 제도적 다양성이 지속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세계 진보학계에서 활발히 논의되었다(Crouch & Streeck, 1997; Hall & Soskice, 2001; Amable, 2004; Pontusson, 2005). 학자들마다 자본주의 유형 분류의 핵심 기준이 조금씩 차이가 나고, 그에 따라 분류되는 국가 목록이 약간씩 달라지지만, 일반적으로 홀과 소스키스가 제시하는 노사관계, 직업훈련과 교육, 기업지배구조, 기업 간 관계, 조정형태 등을 중심으로 크게는 영미식 자유시장경제, 유럽형 조정시장경제, 동아시아 모델로 나누고, 좀 더 세분화 하여 유럽형 조정시장경제를 대륙형 부문별 조정시장경제, 북유럽형 전국적 조정시장경제, 남유럽형 조정시장경제 모델로 구분하면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김인춘, 2007; 임현진, 2006).
<표2> 자본주의 다양성 모델 정리
(*에스핑-안델센은 남유럽형과 동아시아형의 분류를 하고 있지 않지만, 이후 관련 논의들에서 더 세분화된 분류체계가 일반적으로 사용됨.
**영국은 잔여적 복지국가가 아닌 보편적 복지국가에 속한다.)
유형 분류의 여러 기준들은 통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하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자본-노동(과 시민사회) 간 '협력' 관계의 수준과 성격,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경제발전에 관한 전략적 장치가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각 모델별로 상이한 형태와 수준으로 국가의 시장개입 기제와 노-사-정 협상기구 등의 제도로서 표현된다. 노-사-정 협력의 수준은 사회 계급·계층 간 힘의 균형관계를 반영한 것으로서, 사회적 조정기제는 시장에서의 소득분배와 연관관계를 가지는 것은 물론 재분배 제도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위에 나열한 자본주의 발전유형이 탈상품화를 기준으로 한 에스핑 안델센(Esping-Andersen, 1990)의 복지국가 유형 분류와 거의 비슷하게 나눠진다.
표2는 자본주의 유형별 특징을 간단히 정리한 것이다. 영미식 자유시장경제 모델은 제도화된 노사 간 사회적 합의 기구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반면, 시장개입 최소화와 탈규제를 통한 국가-자본 간 정책공조의 경향이 강하다. 이는 경쟁시장을 통해 노동과 자본 모두가 효율적으로 관리된다는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에 따라, 노-사-정 협력을 통한 조정 전략 대신에, 독점에 대한 강한 규제와 더불어 기업 공개와 자본시장의 확대를 통한 기업정보의 투명성 제고, 자유로운 자본 이동 촉진, 그리고 신용평가 제도의 확립이라는 시장의 상호보완적 기제들을 바탕으로 경제의 위험성 관리와 발전을 추구한다. 유럽형 조정경제시장 모델은 나라별로 차이가 있지만, 국가의 시장규제가 영미형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하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시장개입을 한다고 말할 순 없다. 다만, 임금과 고용에 관한 사항들은 제도화된 노-사-정 합의 기구를 통해 조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또한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지금까지 일정 정도 유지되어 온 노동-자본 간 힘의 균형관계는 높은 수준의 공적 사회복지제도를 운영하는 데 자본의 기여를 이끌어 낸 한편, 국가적 차원의 성장전략에 노동의 협력을 유도했다. 유럽형은 다시 스웨덴으로 대표되는 북유럽형, 독일로 대변되는 대륙형, 그리고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남유럽형으로 세분화 될 수 있다. 북유럽형은 사민당의 장기 집권 속에서 노-사-정 협력체제가 오랫동안 제도적으로 유지되면서, 전국적 차원의 사회적 조정과 보편적 복지체제가 만들어졌다. 대륙형은 상대적으로 산별협상 단위의 노-사-정 조정 경향이 강하고, 고용과 연계된 조합주의적 복지체제 성격이 짙다. 남유럽형은 상대적으로 불안정한 정치문화와 가부장적 전통과 결부되어 장기적인 복지 인프라와 국가적 성장전략의 연계 발전에 관한 사회적 조정 경향이 약하고, 복지체제도 가장의 일자리와 연금을 보장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본과 한국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 모델은 노동을 사회적 조정의 주체에서 배제하고 국가와 자본의 협력관계를 바탕으로 노동의 희생을 강요한 성장전략을 추구해 왔다. 정부의 시장개입 경향이 강하지만, 복지체제는 이른바 '선성장 후분배' 전략에 따라 잔여적인 성격이 강하다. 1990년대 이후에는 영미식 자유주의 시장경제 유형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졌지만, 온전히 한 유형으로 전환되었다고 보기 힘들고, 구체제와 신체제의 혼합형 성격을 지닌다. 국가의 개입주의적 성격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전통은 여전히 남아있다. 최근 점점 강해지고 있는 아래로부터의 '후분배' 요구와 노령화의 급속한 진전 등 인구학적 변화로 인해, 자유주의 시장경제 유형으로의 정책적 전환과 '자연발생적' 복지제도의 강화가 교차하는 '모순된' 흐름이 형성되어 있다.
권력자본론
자본주의 다양성 이론은 모든 것을 자율조정시장에 맡기면 된다는 공격적인 신고전파-신자유주의 논의에 대한 비판 논리로서 세계적으로 진보 진영에서 널리 수용되었다. 자본주의 다양성 주창자들은 나라별 혹은 유형별로 발견되는 특유의 제도들과 제도들 간의 정합성이 경제발전과 위기에 대한 대응에 특성 있는 차이를 만들고, 그 특성들이 쉽게 바뀌지 않는, 이른바 경로의존성을 갖는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는 하나의 자유주의시장 모델로 세계가 수렴하고 있고, 수렴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매우 효과적인 비판을 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본주의 다양성 논의는 자본-노동관계와 자본 간 관계를 포함해, 제도들 간의 정합성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자본주의 동학의 핵심인 권력의 문제는 간과한 측면이 있다.
이 글에서 채택하고 있는 권력자본론은 넓은 의미에서 제도주의적 관점을 수용하면서도 생산 혹은 경제의 최적화를 위한 제도 간 정합성보다는 사회세력 간 권력관계에 초점을 맞춰 자본주의의 동학을 설명하는 정치경제학 관점이다. 권력자본론을 발전시킨 닛잔과 비클러(2009)는 시장경제가 유형별로 상이한 제도의 정합성을 가지고 있고, 그에 따라 특유한 생산방식과 소비방식을 보이지만, 그 핵심은 '효율적 생산' 그 자체가 아니라 사회적 생산의 결실을 특정한 사회 그룹이 차등적으로 더 많이 사유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변화의 동학을 파악할 때, 그 초점은 자본주의적 권력관계에 맞춰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제도적 정합성은 지배세력이 다른 사회세력과의 역관계를 반영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사회경제적 양식이며, 그 양식을 분석하는 데 빠지지 말아야하는 핵심 요소는 권력의 상대적 크기가 상징적으로 표현되는 금전적 가치의 분배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상품의 가격, 노동의 가격, 이윤, 자본의 가치 등 자본주의 가치체계는 이른바 생산함수에서 말하듯 투입요소의 생산적 기여에 비례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권력의 함수에 의해 규정된다. 이제 권력자본론의 관점이 한국의 사회경제 발전의 궤적을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닛잔과 비클러는 권력자본론의 가치론적 기초를 베블런(Veblen 1904; 1908; 1923)의 "산업(Industry)"과 "영리활동(business)"의 본성적 구분에서 찾는다. 베블런은 자본주의적 생산과 재생산 과정을 산업과 비즈니스라는 본성적으로 다른 두 가지 인간 활동의 모순적 결합으로 구분하면서, 산업 활동은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물품을 공동으로 생산하는 창의적이고 기술적인 과정으로 규정하고, 비즈니스는 그 과정을 사적으로 장악하고, 그 통제력을 금전적 가치로 전환하여 전유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산업 활동은 항상 공동체의 역사적 유산인 지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독립된 개인의 활동으로 환원될 수 없다. 특히 산업혁명으로 기계화 시대가 열리면서, 산업은 국가적·국제적 차원의 사회적 생산으로서만 정의할 수 있게 되었다. 수학, 물리학, 화학, 공학, 예술, 다양한 사회과학 등 산업 과정에는 인류 공동의 지식과 창의성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투입되는 수많은 재료들과 부품들을 고려할 때 공동체 차원의 생산이라는 방식으로만 개념 지을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생산물은 "마치 홀로그램처럼 인류 지식의 전 역사를 담고 있기 때문에 생산과 생산성은 본성적으로 사회적이다" (Nitzan and Bichler 2002, 34).
비즈니스는 이러한 사회적 차원의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원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산업 활동과는 전혀 다른 원리에 의거해 작동할 뿐만 아니라 서로 모순되기까지 한다. 비즈니스의 목적은 영리 활동 혹은 이윤의 추구이며, 영리 활동은 공동체적 생산인 산업을 사적으로 전유함으로써 가능하다. 즉,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영역에 들어올 수 없게 만드는 권리를 바탕으로 사용료를 지불하게 만드는 힘이다. 마르크스도 주목했듯이, 이러한 영리활동의 본성은 이른바 '울타리치기(enclosure)'로 상징화되었다. 권력자본론에서는 인클로저가 자본의 본원적 축적기에만 존재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관통하는 핵심 기제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특정한 계급이 다른 사회구성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세계관에 따라 사회질서를 지속적으로 재구성해 나가는 힘을 권력이라고 정의한다면, 자본주의적 권력은 사회적 생산과정에서 타인을 배제할 수 있는 배타적 권리를 상품화하여 화폐적 가치로 전환하는 힘이라고 말할 수 있다(Nitzan and Bichler 2009, 325). 그래서 닛잔과 비클러(2004, 19)는 "사유재산 제도는 전적으로 그리고 오로지 배제(exclusion)의 법령이며 권력의 문제"라고 강조하며, 이런 본성을 가치론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화폐로 표현되는 자본주의적 가치가 유용한 사용가치를 사회적으로 만들어 내는 산업 활동이 아닌, 산업을 배타적으로 장악해 내는 자본가들의 권력에 기초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자본주의의 가치체계가 피지배계급인 노동자의 언어가 아니라, 지배계급인 자본가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가치체계가 산업 활동과 무관하지는 않지만, 생산 그 자체가 아니라 생산과정을 배타적으로 통제하는 데 기초하고 있다는 말이다. 권력자본론에서는 자본주의의 모든 지표들은 '생산함수'가 아닌 '권력함수'의 결과물들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자본주의적 가치의 원천을 사회적 생산과 재생산 과정을 방해할 수 있는 자본가들의 능력, 즉 베블런이 말한 전략적 사보타주(strategic sabotage)에서 찾는다.
베블런(Veblen 1923, 65-6)은 자본가들의 사보타주가 첫째, 산업 생산이 기계에 의존하게 되면서, 사회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기계적 과정(mechanical process)처럼 유기적으로 통합됨으로써 어느 한 부분에서의 생산 중지가 사회 전체에 파급효과를 낳을 수 있는 물질적 기초에 근거하고, 둘째, 산업 시설과 자연 자원에 대한 사적 소유권의 보장을 통해 소유자들에게 합법적으로 부여된 공동체의 생산 활동을 중지할 수 있는 권리에 근거한다고 말한다. 거시적 차원에서, 즉 자본 일반과 공동체와의 관계에서 전략적 사보타주는 사회적 생산을 일정 수준 이하로 제한하는 역할을 한다. '과도한' 생산이 이루어지면 자본가들의 통제력이 줄어들 위험이 있고, 가격 하락 압력이 동반되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공동체의 생산 능력을 일부러 낮잠 재워야 한다. 예를 들어, 특허권이나 지식소유권을 국내외에서 강제할 수 없다면, 이른바 지식경제로 불리는 산업은 이윤을 거의 내지 못할 것이다. 복제품이 넘쳐나, 사지 않고 이용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권력자본론의 입장에서 보면, 자본가들에게 이상적인 조건인 이른바 골디락스는 거시적으로 사회의 생산 잠재력에 '적절한' 수준의 제한을 가해 이루어진다(그림1 참조). 이는 미시적인 차원에서 한편으로 다른 자본가들이 자신의 사업영역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제약하고,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들을 생산과정에서 배제시켜 일하지 못하게 만드는 힘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식으로 사회적 생산 과정의 길목을 막고 받는 '통행세'가 이윤이다. 실제로 현대 자본주의에서 자본가들은 이윤을 위해 "약탈적 가격 책정, 공식적·비공식적 공모, 광고, 배타적 계약 체결 등의 직접 제한과 함께, 특허권·저작권법, 정부의 편파적인 산업 정책, 차별적인 조세 감면, 합법적 독점체, [반노동적] 노동 입법, 교역 및 투자 협정 혹은 장벽 등의 더 포괄적인 정치적 수단 (물론 폭력·군사력을 포함해) 등 개인 차원부터 전 지구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다종다기 한 방식들을 총동원해" 사보타주를 행사하고 있다(Nitzan and Bichler 2009, 247).
이런 시각에서 접근하면, 설비투자의 조절, 실업, 유연 노동(비정규직화), 대기업에 의한 중소기업의 수탈 등 한국의 진보 진영에서 말하는 양극화 성장의 지표들이 가리키는 생산 활동에 대한 방해는 자본이 차등적 이윤을 얻기 위한 일상 활동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산업 활동에 대한 제한이라는 자본의 본성 측면에서 '영미식 주주자본주의'와 '동아시아 국가 주도 자본주의'의 차이는 전혀 없다. 사보타주는 타른 자본을 사회적 생산과정에서 배제하는 능력으로서, 한국의 지배적 자본인 재벌 그룹들은 사보타주의 대표적 산물이다. 권위주의적 정권하에서 정치인-관료와의 분배 연합을 형성하면서, 특정 생산 활동에 대한 배타적 투자 권리를 획득하고, 보호주의를 통해 외국자본의 시장 진입을 차단하며 성장했다. 또한, 특혜 대출, 특혜 환율과 이자율, 등 타 자본들과의 차별되는 권리를 향유하였다. 이를 장하준 같은 신제도주의자들은 국가 차원의 합리적 기획을 통한 국익의 극대화라고 미화하지만, 그 본성은 전면적 생산 활동에 대한 제한을 통해 지배적 자본이 차등적으로 축적할 수 있도록 국가권력이 지원을 제공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신자유주의적 개혁, 혹은 국가 주도 자본주의에서 시장 주도 자본주의로의 전환은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단절(structural break)이라기보다는 기저에 깔린 자본주의 권력양식의 진화로 봐야 한다.
그렇다고 1997년 위기를 겪었지만 한국 사회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위기 이후 지배적 자본의 사회적 사보타주가 노골화되고, 그리하여 사회 양극화가 심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현상이 '생산적 실물자본'에서 '투기적 금융자본'으로 주도권이 넘어가서 생겨난 것은 아니다. 지배적 자본의 사회적 배제 행위가 위기 이후에 더 강하게 체감되는 이유는 차등적 축적 체제의 변화하는 본성 때문이다.
1)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은 <한국경제 긴급 진단> 보고서를 통해 "한국경제에 울리는 4가지 경고음"으로 "잠재성장률의 하락의 장기화와 고착화", "중국 위험 현실화",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 "세계 최하위 수준의 노사협력" 등을 꼽으며, 규제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엔진이 덜덜거리는데 도로에서 차가 멈춰 서면 손쓸 방도가 없다. 수리를 맡기든가 새 차로 갈아타야 한다"라고 한국 경제 상황을 고장난 자동차에 비유하면서, "이대로 가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38년 0%대로 추락한다"고 위기론을 설파했다. <조선비즈>, "한국경제, 고장난 차 같아... 규제철폐 특단 대책 필요"(2014.11.17.) 참조.
2) 김승원, 최상명, "경제성장·소득분배 사회지표 간의 관계분석을 통한 성장 중심 거시경제정책 평가", <동향과 전망> 제91호(2014년 여름호), 한국사회과학연구소, 286쪽.
3)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의 <쾌도난마 한국 경제>(2005)와 김상조, 유종일, 홍종학 등의 <한국 경제 새판짜기>(2007), 이병천(엮음)의 <세계화 시대 한국 자본주의: 진단과 대안>(2007) 참조.
4) 최근 논의에 관해서는 유종일(엮음)의 <박정희의 맨얼굴>(2011), 김상조의 <종횡무진 한국 경제>(2012), 장하준·정승일·이종태의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2012), 이병천의 <한국 경제론의 충돌>(2012), 장하성의 <한국 자본주의>(2014) 참조.
5) 안현효·류동민,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의 전개와 이론적 대안에 관한 검토", <사회경제평론> 제35호(2010); 주상영, "진보적 성장 담론의 현황과 평가", <사회경제평론> 제41호(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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