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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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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섬을 탈출하는 방법] 로빈슨 크루소는 어떻게 섬을 탈출했을까?

먼 훗날 20세기를 회고하는 역사학자라면 독일 나치의 아돌프 히틀러를 분명히 최악의 지도자로 평가하겠죠. 그런데 그만큼이나 박하게 평가할 지도자가 한 명 더 있습니다. 바로 2013년 4월 8일 세상을 뜬 영국의 전 총리 마거릿 대처입니다. 그렇습니다. 어쩌면 그는 히틀러만큼이나 세상을 더 끔찍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습니다.

"사회 따위란 없다. 오직 남자와 여자인 개인이 있을 뿐이다." "대안 따위는 없다."

대처가 내뱉은 이런 말은 '신자유주의'라는 그럴듯한 이념으로 포장되어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사이에 현실 사회주의가 참담한 민낯을 드러내며 속절없이 무너지면서(1989~1991년) 신자유주의에 더욱더 힘이 실렸죠. 덕분에 우리는 국가-기업-개인할 것 없이 뿌리째 신자유주의형으로 바뀌길 강요당했습니다.

그 끔찍한 결과가 한국 사회에 깊은 상흔을 남긴 1997년 외환 위기입니다. 1990년대 후반 동아시아를 강타한 위기를 '제대로' 신자유주의에 투항하지 못한 후진국의 통과의례로 규정하며 비웃었던 제1세계(미국, 유럽 등)는 딱 10년 뒤(2008년) 괴물의 아가리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이른바 '글로벌 금융 위기'의 끝은 아직도 보이지 않습니다.

정말로 신기한 일은 이렇게 세계가 결딴날 위기에 처했는데도 정작 신자유주의의 힘은 약해질 줄 모른다는 것이죠. 이 땅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보수(?) 지도자는 여전히 대처를 추종하고, 그들을 욕하는 수많은 사람마저도 "대안 따위는 없다"고 되뇌며 지금 이 순간에도 각자도생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2015년 세밑에 나온 <섬을 탈출하는 방법>(조형근·김종배 지음, 반비 펴냄)은 바로 이런 답답한 상황에 작은 균열이라도 내보려는 몸부림으로 보입니다. 이 책은 대안은 "있다"고 답합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대안은 "아주 많다"고요. 그리고 반신반의하는 독자에게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관련 기사 : 병신년에는 "제발 같이 살자!")

그 가운데는 현실 사회주의, 독일의 사회적 시장 경제, 스웨덴 복지 국가 들처럼 인류가 실험해본 대안도 있고 사회적 경제, 기본 소득처럼 실험 중인 것도 있습니다. '참여 계획 경제'처럼 거친 구상만 있는 대안도 있습니다. 조형근 박사(한림대학교 연구교수)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면서 하나씩 그 대안을 점검하면서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는 사실이 있습니다.

대안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한두 마디로 쉽게 평가하는 스웨덴 복지 국가의 역사 속에는 굶주림과 헐벗음에 지친 스웨덴 인민의 고통과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는 진보-보수 정치인의 고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스웨덴의 현실에 뿌리내린 좀 더 나은 '사회'를 구현하려는 끝없는 시행착오와 고군분투가 있었죠.

그런 점에서 우리는 어쩌면 좀 더 치열해져야 할지 모릅니다. 2016년의 대한민국을 탈출하는 방법을 더 늦기 전에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죠. <프레시안>이 반비 출판사와 함께 <섬을 탈출하는 방법>을 먼저 읽은 이들의 독후감을 싣는 이유입니다. 자유기고가 노정태 씨가 첫 번째 독후감을 썼습니다.

로빈슨 크루소는 어떻게 섬을 탈출했을까?

▲ <섬을 탈출하는 방법>(조형근·김종배 지음, 반비 펴냄). ⓒ반비
<섬을 탈출하는 방법>을 펼쳐본다. 서문에 로빈슨 크루소가 언급되어 있다.

"로빈슨 크루소가 섬에 정착하기로 결심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일까? 집을 짓고 울타리를 치는 일이었다. 그는 혼자인 채로도 사적 소유의 관념을 실천하는 인간형이었다." (5쪽)

<섬을 탈출하는 방법>은 혼자만의 섬에 갇혀서도 '경제적 판단'을 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 로빈슨 크루소의 세계관을 넘어서야 한다고, "섬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무수히 많다"(10쪽)고 역설하는 책이다.

이 책의 제목은 대단히 훌륭하다. 책의 전체 내용 뿐 아니라 그 책을 만들어낸 저자의 세계관까지 함축적으로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로빈슨 크루소는 홀로 섬에 갇힌 자, 말뚝을 박고 울타리를 치고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며 심지어 노예를 부리기까지 하는 "근대적 개인이자 제국주의 침략의 원형"(5쪽)이다. 그러므로 '섬을 탈출'한다는 것은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사회적, 공동체적 만남의 장을 열고, 그러한 바탕 위에서 새로운 경제적 지평을 모색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내용을 살펴보자. 이 책은 사회학자 조형근이 팟캐스트 <시사통>에서 진행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조형근은 총 10회에 걸쳐서 <시사통>의 진행자 김종배와 함께 '대안 경제'의 이론과 실제를 살펴보는 대화를 나누었고, 그 기록을 정리하여 책으로 엮었다. 책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는데, 1부에서는 총론격인 1장을 지나 2장에서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를 곱씹고, 3장에서는 독일의 사회적 시장 경제를, 4장에서는 스웨덴의 복지 국가 모델을 살핀다. 2부는 현실에서 본격적으로 시행되지 않거나, 적어도 지배적인 위치에 오르지는 못한 대안 경제의 이론들이 소개된다. 사회적 경제,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마이크로크레딧, 기본 소득, 참여계획경제 등이 그 내용을 이루고 있다.

특히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계획 경제'라는 금단의 용어를 꺼내고 있다는 것이다. 해당 팟캐스트를 몇 편씩 드문드문 들어왔던 나로서도, 책으로 다시 읽으며 깜짝 놀라고 말았다. 구소련의 몰락 이전까지는 우파 혹은 대한민국 전체로부터 금기시되었고, 현실 사회주의가 실패로 돌아간 다음부터는 좌파들 스스로가 입 밖에 꺼내지 않았던 그 개념이, 이 책의 핵심이다.

"생뚱맞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참된 민주주의가 뒷받침되었을 때만 진짜 계획경제가 실현될 수 있습니다. 매우 중요한 주제라서 앞으로도 줄기차게 되풀이할 생각입니다. 경제는 결코 경제 자체로만 구성되거나 작동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에서는 공황이나 실업, 양극화 같은 수많은 폐단이 일어납니다. 그 원인을 미시적으로 따져보면 아주 다양하겠지만, 근본 원인은 바로 절대적인 사유 재산권에 기반을 둔 자본가의 경제력 독점입니다." (73쪽)

"참된 민주주의가 뒷받침"되어야 경제가 올바로 작동한다는 이야기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소위 '경제 개혁 법안'의 통과를 위해 1000만 명의 서명을 받겠다는 박근혜 대통령 역시 고개를 끄덕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진짜 계획 경제가 가능"하기 위해 "참된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하면 논의는 달라진다. 이 책은 겉모습만 보면, 그리고 목차의 중요 내용만 보면, 쉽고 말랑말랑한 '대안' 몇 개를 던져놓고 고민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진지하게 '자본주의 너머'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페이지를 계속 넘겨보면 그 사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기존에 국내에 소개되었고, 비교적 널리 알려진 대안 경제 이론과 사례를 일주한 후, 저자는 마지막 10장에서 다시 참여계획경제의 이상을 논한다. 다른 모델들은 자본주의 '안의' 것들인 반면, 참여계획경제는 자본주의 '바깥의', 혹은 그것을 완전히 넘어서는 것이다.

"그동안 다룬 모델들은 모두 실제 사례에 기반한 겁니다. 이번에는 다릅니다. 상상에 기반한 모델입니다." (357쪽)

사회 담론의 중심이 정치에서 경제로 옮겨진 후, 진보 진영에서는 강박적으로 '실현 가능한 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조바심에 휩싸였다. 현실 사회주의는 실패했고 이상향을 상실한 진보는 신자유주의의 파고를 막아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짓눌렸다. '우리에게는 사회민주주의만으로도 충분히 비현실적인 목표'라고 외치며, 그렇게 한국의 진보 진영은 불가능한 꿈을 꾸던 시대를 화급하게 폐기하였지만, 물론 현실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섬을 탈출하는 방법>은 바로 그 죄책감을 극복한, 혹은 최선을 다해 우회한 책이다. 다시 한 번 '불가능한 꿈'과 "상상에 기반한 모델"을 제시한다. 이러한 선택은 일단 관념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현실적'인 모델만을 강조해왔던 지난날의 진보 진영이 꾸준히 발언권을 잃어왔던 것을 생각해보면, 차라리 지금으로서는 비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현실적인 의미를 지닐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 덕에 책은 한결 읽기 쉬워졌다. 지금까지 국내에 수입되었던 '실현 가능한 모델'들을 떠올려보자. 얼핏 들으면 좋은 이야기 같지만 대체 그걸 지금 이 나라에서 시행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 그냥 경제가 잘 나가면 되는데 왜 굳이 사회적 기업 같은 번거로운 것을 활성화해야 하는가?

외환 보유고에 신경 써도 모자랄 판에 무슨 지역 화폐 타령인가? 이 모든 파편적인 논의들은, "이전 사회주의와 현재 자본주의의 문제를 동시에 극복"(356쪽)하는 참여계획경제라는 이데아에 비춰볼 때, 제 자리를 찾는다. 저자가 전적으로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책을 읽는 독자로서는 그렇게 이해하게 된다는 말이다.

바로 그 점이 <섬을 탈출하는 방법>에 신선한 가치를 부여한다. 물론 참고 문헌 목록을 보면 참여계획경제 역시 이미 국내에 소개된 바 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진입 장벽을 최대한 낮춘 책에서, "당장의 실현 가능성 여부는 잠시 접어두고 대담한 상상력을 한번 발휘해보자"(357쪽)며, 좌파와 우파 양쪽에서 거부당하고 있던 '계획 경제'의 이상을 다시 들이미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현실 속에 존재했던, 이미 한 번 가능하다는 것이 확인되었던 '대안'을 찾아 헤매던 시절이 지나,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장기 침체를 눈앞에 둔 이 시점에, 어떤 '이상'이 제시된 것이다.

나는 그 이상에 동의하지 않는다. 풀뿌리 참여 계획 경제와 지역 토호들의 예산 나눠 먹기의 경계선이 어디인지도, 이 책만 읽어서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은 기존의 대중적 진보 경제 서적에 비해 확연히 명료한 이상적 지향을 제시하고 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차별성을 지닌다. '아 그래, 독일 모델도 좋고 스위스도 좋고 네덜란드도 바람직한데 뭐 어쩌자는 거야?'라는 볼멘소리가 독자인 나의 내면에서 불거져 나오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잃어버렸던 이상의 힘이다.

로빈슨 크루소는 섬을 탈출하지 않기로 작정함으로써 28년을 더 살아남았고 결국 섬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오히려 자본주의의 구성 요소인 법치주의와 계약주의 등을 끝까지 밀어붙일 때 자본주의가 '변증법적'으로 극복될 수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계속 섬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꾸고, 다른 생존자를 찾아내고 규합하기 위해 골몰하고 있을 것이다. <섬을 탈출하는 방법>은 그러한 시도 중 가장 최신의 것이며, 동시에 고전적인 의미에서 '진보적'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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