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는 안 될 법'.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인성교육진흥법에 대해 헌법학자 출신 김승환 전북교육감이 반대 의사를 분명하게 밝혔다. 각 시도 교육감 가운데 인성교육진흥법에 대한 입장을 공개적으로 피력한 것은 김 교육감이 처음이다.
김 교육감은 인성교육진흥법에 대해 '교원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악법'으로 규정했다. 이 법을 통해 교원들의 인성 관련 연수 의무 시간을 정하는 한편 인성 전문가를 사설 기관을 통해 따로 양성하도록 한 것은, 교사가 인성 전문가가 아님을 교육부가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아울러, 과거 유신 시대 탄생한 윤리 교육처럼, 인성교육진흥법도 국민을 국가에 순응하는 인간으로 만들기 위한 시대착오적인 발상에서 나온 법이라며, 전면 재검토할 것을 주장했다. 헌법학자로서 견해도 덧붙였다. 인간의 인성은 국가나 법이 침입할 수 없으며, 침투하려는 시도 자체가 헌법 위반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다음은 <프레시안>이 지난 27일 김 교육감과의 전화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권력자들, 아이들 탓하기 전에 자성하는 모습 보여야"
프레시안 : 인성교육진흥법의 취지와 배경부터 살펴보자. 이 법안이 처음 제기된 계기가 된 사건이 2012년 대구 학교 폭력 중학생 자살 사건이었다. 학교 폭력, 청소년 자살 문제에 대한 근본 예방책을 마련하자는 취지였다. 이후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승객들을 버리고 떠난 이준석 선장을 보며 인성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는 게 법안을 만든 이들의 입장이다. 그래서 이 법은 '이준석 방지법'으로도 불린다. 입법 취지에 동의하는가. 이 법이 학교 폭력,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들을 방지할 수 있다고 보나.
김승환 : 인성교육진흥법의 입법 동기로 대구 학교 폭력 사건과 세월호를 거론하는 게 과연 맞을까. 이에 대한 문제 제기부터 필요하다. '이 시대의 아이들이 문제구나' 라고 접근한 것 자체가 문제라고 본다. 사안의 본질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성이 문제라는 지적은 맞지만, 과연 누구의 인성이 문제인지는 정확히 따져 봐야 한다. 저는 이 두 가지 사안에서 문제가 된 인성의 주체는 아이들이 아닌 어른이라고 생각한다.
학생들끼리 하는 다툼은 성장 과정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 다툼을 학생들이 서로 지혜롭게 해결하도록 도와주는 게 어른의 몫이다. 저는 학교 폭력의 원인이 학생들에게만 있다고 보지 않는다. 아이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나타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폭력의 원인을 사회가 제공한다는 얘기다.
이 사회의 어른이라 하는 권력자들이 먼저 자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순서다. 지금 권력자들은 세월호 참사로 죄 없이 죽은 아이들의 영혼에 대해서, 그 아이들의 부모에 대해서, 순직한 교사에 대해, 또 살아남은 학생에 대해 과연 어떻게 대하고 있나. 그들은 자신의 죄에 대해 인정하고 있나. 그러고서 입법 동기라며 세월호 사건을 들고 나오는가. 매우 부도덕하다.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법을 발의한 분들은 이준석 선장의 행동이 이기적이고 무책임했다고 한다. 그게 문제라고 한다. 그런데 그런 무책임한 인간상은 권력 구조 속에서 너무나 많다. 도대체 이 나라 권력자 중 누가 자기의 잘못된, 부도덕한 행위에 대해 책임졌나. 국민들은 본 적이 없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사람들 의식 속에 만연해있다고 봐야 한다. 선장 개인의 인성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인성은 기본권, 국가 개입은 헌법 위반"
프레시안 : 인간 본성인 인성을 법으로 강제할 수 있느냐도 논쟁이다.
김승환 : 사전적 정의와는 별도로, 인성이라는 개념이 과연 법률 개념으로 확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저는 인성이 법률 개념이라고 하는 법학자를 본 적이 없다. 인성이 내면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손으로 잡히거나 인식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인성은 획일화시킬 수도 없고, 어떤 인성을 가지라고 할 수도 없다. 한 교실에 스무 명의 학생이 있다고 한다면, 스무 명의 인성은 제각각 다르다.
그렇다면 헌법에서는 인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우선, 우리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고 밝히고 있다. 인간은 존엄하다는 선언이다. 헌법은 인간을 존엄한 존재로 보며 내심 영역에 인성이 존재한다는 것 정도는 인정한다.
헌법은 인성을 기본법으로 보장한다. 우리 헌법은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 종교의 자유를 인정한다. 그리고 또 하나가 인격권이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도 한다. 행복 추구권을 통해 인격의 자유가 발현된다는 게 헌법학계의 지배적 견해이고, 이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이기도 하다. 인간 인성을 기본권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헌법에서는 그 인성이 인간의 내부 영역에 머무르는 한, 국가는 개입해선 안 된다는 개입 불가의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인간의 인성은 국가나 법이 침입할 수 없는 공간이고, 침투하려는 시도 자체가 헌법 위반 행위가 될 수 있다.
프레시안 : 인성교육진흥법에서 예, 효,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등을 핵심 가치로 내세운다. 이런 가치들을 교육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보나.
김승환 : 강제력만 없다면, 핵심 가치들을 내세울 수는 있다고 본다. 그런데, 수직적인 가치들이 많다. 수평적인 가치는 확장돼야 하지만, 수직적 가치를 강조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일이다. 어른과 아이, 국가와 인간 등 전통적인 관계에서 항상 수직적인 가치들이 우선돼왔다. 국가가 말하면 따라야 했다. 그런데 국가가 말하는 것을 다 따를 순 없다. 정당한 것이어야 따르는 것이다. 그게 국민 주권의 원칙 아닌가.
프레시안 : 반대 목소리가 커지자, 이 법안 마련을 주도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등 단체들이 '해외에서도 인성 교육을 한다'며 설득에 나섰다.
김승환 : 해외에서 인성 교육을 한다? 금시초문이다. 만일 해외 선진국에서 그런 시도가 있다면, 그런 시도를 하는 사람은 그 사회에서 지성인들의 비판의 화살을 피할 수 없을 거다.
"교사들도 인성 교육 대상자? 교원 인격권 침해"
프레시안 : 11월 시행 규칙이 만들어져야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있겠지만, 기존 교과 과정과 겹치거나 교원 업무가 늘어나는 등 현장에서 애로 사항이 있을 거란 우려도 있다.
김승환 : 인성교육진흥법이 교육 현장에 끼치는 파장은 매우 클 거라고 본다. 긍정적 파장이 아닌 부정적 파장이다. 이 법률은 교원을 바라보는 시각이 굉장히 독특하다. 교원도 인성 교육의 대상자로 보고 있다. 연간 4시간 이상 연수를 받도록 규정해놓았다. 이 법의 논리대로라면, 지금 인성 교육도 안 된 사람들이 아이들 앞에 서 있다는 얘기가 된다. 국가 권력이 법률을 통해 교사들이 인성에 문제가 있다고 선언하는 거나 다름없다. 이것이야말로 교원의 인격권을 정면으로 침해한 것 아닌가. 이 지점에서 굉장히 문제적이라고 본다.
인성 전문가도 만들어내겠다고 한다. 그것도 사설 기관이 양성한다. 교사가 인성 전문가가 아니란 얘긴가. 그렇게 만들어지는 인성 교육 전문가라는 이들은 교사보다 나은, 완벽한 존재들일까. 그런데도 교원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인성 교육 전문가를 따로 교실에 투입하겠다는 건 잘못된 발상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 헌법을 선포하던 당시 등장한 국민 윤리 교육이 떠오른다. 윤리 교육의 목적이 국민들 사상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데 있었다. 국가가 시키는 대로 잘 따르는 인성을 갖도록 교육했다. 인성교육진흥법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역사 되돌리기'를 하고 있다. 이 법이 국민 개개인의 인성 파괴 수단으로 작동이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프레시안 : 학교가 오로지 입시 중심으로 운영되는 상황에서 인성 교육이란 게 가능한지를 묻는 이들도 있다.
김승환 : 교육부가 주도하는 우리나라 교육에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다. 철저하게 중앙 집권식으로 획일화된 교육 과정이다. 엄청나게 많은 수업 일수와 시수를 부과하고, 교과서에도 엄청나게 많은 양을 집어넣는다. 교과서 폭력이고 교육 과정 폭력이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진도 맞추기도 벅차다. 인성 교육을 우선할 수 없는 환경이란 얘기다. 우리 아이들에게, 교사들에게 죄를 짓는 행위다. 교과서 한 장 펼칠 때마다 학습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라 혐오도가 움직인다.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교과서 양을 가볍게 하고 난도를 낮춰 학생이나 교사나 큰 부담을 느끼지 않고 교과서를 바로 볼 수 있도록 하는 작업부터 필요하다.
프레시안 : 교육감이 느끼기에, 교육부 주도의 교육과정에 또 어떤 문제들이 있나.
김승환 : 교육부가 툭하면 교과 과정에 외부 교육을 집어넣는다. 생뚱맞은 기관에서 교육을 한다. 미래창조과학부에서 소프트웨어 교육을 진행한다고 한다. 대체 이런 게 왜 필요한가. 그런가 하면 예전 이명박 정부 때는 '녹색 성장'이라는 교과서를 만들고, 핵발전소가 안전하다는 등의 내용을 그 안에 포함시켰다. 인성 교육이라는 것도 21세기 학교 현장에서 하기엔 너무 시대착오적이다.
"태어나선 안 될 법, 버려야"
프레시안 : 인성교육진흥법 입법 예고 후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이 대입 전형에서 인성 관련 항목을 두겠다는 것이었다. 이후 인성 관련 사교육이 팽창하자 교육부가 결국 이같은 계획을 접었다. 대신 내신에서는 반영할 수 있도록 했다. 사교육 시장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한 것 같다.
김승환 : 사교육판이 이미 들썩이고 있다. 교육부가 대입에 반영 않겠다고 입장을 바꿨지만 내신이 있는 한 사교육 시장이 사라지지 않을 거다. 교육부가 사교육과 관련해 어떤 대책을 들고 나오든 사교육 시장은 여전할 거다. 교육부가 아마 획일화된 지침을 들고 나올 테지만, 각 시도교육청에 법적으로 강제할 수는 없다. 각시도교육청이 자체적으로 대응을 해야 할 것으로 본다.
프레시안 : 당장 내년 1학기부터 교육 과정에 반영된다. 그 전에 각 시도교육청은 관련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어떤 계획이 있나.
김승환 : 아직 세워놓은 계획이 없다. 우선, 개정이 시급하단 생각부터 든다. 입법 예고 나오고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만 하고 있다가 당장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니 전북교육청 차원에서 어떻게 대처할지를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인성교육진흥법에 대한 전북교육청의 기본 입장은, 태어나서는 안 될 법이라는 것이다. 이 법은 시간이 흐를수록 엄청난 혼란을 초래할 것이고, 교사들의 인격권을 파괴할 것이고, 아이들의 인성을 오히려 해치는 그런 흉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미 언급했듯 위헌 소지도 있다는 점에서 반대한다. 법률이 제정됐다고 무조건 해야 하나. 때로는 법률을 만들어도 바꾸거나 버릴 수 있다. 이 법이 시행되고 시간이 흐를수록 학교 교육 현장에 혼란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 점을 교육부가 알아야 한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교육감이 생각하는 인성 교육이란 무엇인가?
김승환 : 인성은 인간의 본성이다. 규격할 수도 국가권력이 개입할 수도 없다. 인성은 학교 교육에서 특정 교과나 교육 프로그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수업 시간이든 쉬는 시간이든 모든 교육 활동 속에서, 아이들 자신도 모르게 피어나는 것이다. 인성은 결국 인간 개개인의 자기 책임 하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인성 교육이라는 것은, 제 방식대로 인성을 가꾸는 인간을 옆에서 도와주는 것, 그 정도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재선 후 1년이 지났다. 시도교육감 통틀어 가장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성과와 아쉬운 점을 하나씩 꼽아달라.
김승환 : 저는 인간의 자존감을 굉장히 존중한다. 내가 관할하는 영역 내에서 사람들에게 지시하고 명령하는 게 아니라,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의 자존감을 세워준다. 그리고 아이들 교육은 교사가 한다고 생각한다. 다행히도 이런 저의 생각이 교육 현장에 많이 파급이 된 것 같다. 현장 교사분들이 '우리 교육감은 불필요한 간섭을 않는 사람이고 아이들 교육은 우리에게 권한과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주신다. 이게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감사한 일이다.
아쉬운 점은 교사들의 공문 업무를 줄여주지 못한 점이다. 저는 우리나라 교원들이 참 안쓰럽다. 아이들 가르치는 일만 해도 시간이 부족한데, 온갖 일이 쏟아진다. 미국 연방 정부가 학교에, 교사들에게 공문 내는 경우가 있나? 없다. 미국에 가면 교무실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컴퓨터 켜고 공문 처리하는 교사들도 없다. 그런데 우리 교사들은 날마다 공문 처리를 한다.
국가와 교육청 차원에서 교사들의 숨통을 열어주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지난 임기에 이어 이번에도 열심히 노력을 한다고는 했지만 그 점에선 여전히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지 않는다. 교육부가 계속 공문을 내리고, 국회가 계속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한 어쩔 수 없다. 이 부분에선 희망이 없는 나라다. 도교육청 차원에서라도 공문 필터링 기능을 더 강화하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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