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우리는 북한이 최근 보여준 대남 전략을 다시 복기해 볼 필요가 있겠다. 어떤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와중에는 전체의 틀이 잘 보이지 않지만, 사안이 어느 정도 일단락되고 나서 지나온 일을 돌이켜보면 전반적인 윤곽을 파악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8.25 합의' 이후를 돌이켜보면
최근의 남북관계에서 이번 당국회담까지 이어진 단초가 된 사건은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황병서 총정치국장 사이에 이뤄진 '8.25 합의'이다. '8.25 합의' 이후 남북 간에는 10월 말 이산가족 상봉이 있었고 남북 노동자 축구대회(10/28~10/31)와 남북 종교인대회(11/9~11/10) 등 민간 방북의 활성화 흐름이 있었다. 둘 다 '8.25 합의'에 따른 북한의 대남 유화조치, 다시 말해 북한 입장에서는 남한에 대해 일부 양보를 하는 조치로 해석할 수 있는 현상들이었다.
북한이 일부 양보를 했다면 반대급부를 챙기려는 계산법이 작용했을 터인데, 북한은 어찌된 일인지 우리 정부가 지난 9월 말 당국회담을 제안한 지 2개월 가까이 아무 답변을 보내오지 않다가 지난달 말에야 당국회담 실무접촉에 응했다. 그 사이 당 창건 70주년 행사와 류윈산(劉雲山)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의 방북, 이산가족 상봉 등 굵직한 현안들이 있었다고 하지만, 10월 말 이산가족 상봉이 끝나고도 한 달 가까이 아무 응답이 없었던 것을 보면 북한은 애초 당국회담을 하겠다는 생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어차피 회담을 해 봤자 박근혜 정부에게서 무엇인가를 얻어내기는 쉽지 않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 측의 회담 제의에 북한이 응답하지 않는 모양새가 계속되자, 북한에게는 대화를 회피한다는 부담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남한의 대결주의적 태도가 문제라고 지적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결국, 북한은 큰 기대를 가지지 않은 채 자신들이 원하는 금강산관광 재개를 남한 정부가 수용할 것인가를 시험하는 도구로 남북 차관급 회담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처음부터 남북회담에 북한이 큰 의지를 가지고 나온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당국회담을 통해 무엇인가를 얻어가겠다는 기대도 없으면서 왜 10월 말 이산가족 상봉은 허용한 것인가 라는 의문이 남는다. 이산가족 상봉은 북한에게 부담이 가는 일인데 말이다. 이 부분은 김관진-황병서 회담에서 남한의 확성기방송을 중단시키기 위해 양보한 수단으로 봐야 할 것 같다. 목함지뢰 사건으로 인한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남한과 전쟁을 할 능력은 안 되고 대북 확성기방송은 중단시켜야 하는데, 북한이 줄 수 있는 주요한 카드 중의 하나가 이산가족 상봉이었던 셈이다.
이상의 사안을 다시 종합적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김관진-황병서 회담 당시 북한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시키는 수단 중의 하나로 이산가족 상봉을 양보했다. 하지만, 북한은 당국회담을 해 봤자 얻어갈 것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10월 말 이산가족 상봉 이후에도 '8.25 합의'에 명시된 당국회담에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우리 측의 회담 제의에 북한이 답하지 않고 있는 것이 북한이 대화에 미온적인 것처럼 비춰지자 북한에게는 부담감이 생겼고, 결국 큰 기대 없이 북한이 원하는 금강산관광 재개를 남한 정부가 들어줄 의향이 있는 지를 알아보기 위해 당국회담에 응하는 선택을 했다. 회담이 결렬됐지만 이제 북한은 남한의 대화 제의에 답을 하지 않았다는 부담에서 벗어났고, 남한의 성의 부족을 비난할 명분을 얻게 됐다.
남북 간 고위급 회담이 결렬되고 연말인 데다가 내년 초부터는 남한이 총선 정국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남북관계가 당분간 진전의 계기를 마련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당분간 상황 관리를 잘하면서 내년 중·하반기쯤 다시 찾아올 관계 진전의 기회를 준비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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