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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여성은 왜 한국 화장품을 좋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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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중국 여성은 왜 한국 화장품을 좋아할까?

[한인희의 중국 역사의 뒤뜰] 중국 고대 미녀들의 화장

중국 사람들이 한국 화장품에 열광하고 있다. 한국산 화장품이 중국 내 화장품 수입 분야를 제패할 것이라는 예측들이 나오고 있다. KOTRA를 인용한 보도 내용은 이렇다.

"KOTRA 칭다오 무역관과 KOTRA 베이징 무역관이 중국 내 자료를 분석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9월 누계 기준, 중국의 화장품 수입 시장 1위는 프랑스, 2위는 한국이 차지했다. 하지만 올해 한국 화장품은 전년 동기 대비 236.2%의 증가율로 일본과 미국을 제치고 2위에 올라섰다. 하반기 큰 폭의 중국 수출 증가세를 보인 한국이 사실상 올해 1위에 올라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보고서에 따르면 1~9월 누계 기준, 중국의 한국으로부터의 화장품 수입은 4억8923만 달러로 화장품 수입시장 점유율은 22.4% 수준이다."

현재 중국인들이 한국 화장품을 선호하는 일은 잘 알려진 일이다. 그 결과 한국의 아무개 화장품 회사의 주가가 천정부지로 올랐다. 한국인의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왜 한국 화장품을 이렇게 선호할까? 영화나 드라마에 기반을 둔 한류의 역할, 같은 동양인 피부에 맞는 화장품이라는 인식, 지리적 인접성이 크다고 분석한다.

화장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2010년 1월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린 자료에는 약 5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하지만 대체로 인류가 화장을 시작한 것은 기원전 7500년 전 이집트로 보고 있다. 화장품의 영문 'cosmetic'이라는 단어는 '우주의 질서와 조화'를 나타내는 그리스어 'kosmos'에서 유래했다. 즉, 얼굴과 몸 전체를 조화롭고 아름답게 가꾸는 화장이라는 행위를 우주의 순리와 질서를 따른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 중국의 봉건 사회에서도 한국의 화장품이 인기였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오히려 중국 화장품을 한국인들이 좋아했다.

한국의 전통 사회에서는 스스로를 '소중화'라 자처하며 '대국'에서 생산되는 화장품을 오히려 역수입했던 역사가 있었다. 동지사(冬至使) 등 사절로 가는 인편에 한국의 귀부인들은 몰래 중국산 화장품을 부탁했다. 당시 한국에게 중국은 세계의 중심이었다. 중국의 것은 무엇이든지 좋아했다. 하물며 <열하일기>를 쓴 박지원은 "중국은 화장실도 좋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현재 중국의 화장실을 사용해본 여행자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리라. 이 모든 것은 '중국'을 통해 세상을 보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렇다면 궁금하다. 우리 선조들이 그렇게 선호하던 중국 미녀들은 어떤 화장품을 썼을까? 화장법은 무엇이었을까? 복잡 미묘한(?) 화장술을 어떻게 다 이야기하겠는가마는 몇 가지만 살펴보자.

중국 화장의 역사

중국에서 화장을 시작한 기록은 일찍이 상주(商周)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화장과 관련 갑골문에서 '목(沐)'자를 주목한다. 이 글자를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얼굴을 씻는다"로 해석한다. 1000년 전의 일이다. 상나라 때부터 여성들은 이미 연지(胭脂)를 찍었다. 주나라에서는 여성들이 널리 얼굴에 분칠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하얀 얼굴이 미의 기준이었다. 상주 시기의 화장은 주로 궁중의 부녀자들이 선호했으나 춘추 전국 시기에 이르면 평민들 사이에서도 유행하기 시작했다.

고대는 농업 사회였다. 자급자족의 시기였다. 화장품의 재료는 당연히 자연에서 구했다. 자연의 식물, 동물의 유지, 향료 등이었다. 이러한 원료를 끓이거나 발효시키고 여과를 한 다음 분쇄해서 사용했다. 고대 중국 여인네들의 화장재료를 살펴보자.

첫째 향분(香粉)이다. 중국 고대 부녀자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화장 재료였다. 쌀가루를 빻아 분으로 사용했다. 그 밖에도 거(粔)가 있었다. 쌀가루와 꿀을 섞은 일종의 팩이었다. 세월이 흐르자 단순한 쌀가루는 이미 여성들의 미를 추구하는 욕구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여성들은 쌀가루에 천연의 향료나 향을 첨가해 사용했다. 이때 사용된 향은 주로 난초나 정향(丁香 : 라일락)이었다.

둘째는 눈썹 그리기(黛眉)였다. 얼굴에 분을 바르고 다음 단계가 눈썹 그리기였다. 눈썹 그리기에 사용하는 재료는 대석(黛石)이라는 광물질이었다. 청흑색의 염료였다. 이것은 서역에서 들어왔다. 대(黛)는 염료를 뜻하기도 하고 눈썹을 그리는 방법에도 함께 사용한 글자다. 대석을 벼루에 갈아서 사용했다. 가루를 낸 다음 물을 첨가해 그것으로 눈썹을 그렸다. 즉, 먼저 눈썹을 다듬은 다음에 눈썹을 그렸다. 어떤 여자들은 기존의 눈썹에 불만이 있어 밀어버리고 다시 그리기도 했다. 이러한 방식은 현재까지도 이어져온다.

셋째, 입술 바르기(朱脣)다. 립스틱에 사용하는 붉은색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 특징을 지닌다. 먼저 색깔은 기본적으로 붉은 색이었고, 그 다음으로 기름이고, 그 다음으로는 향이었다. 고대의 립스틱은 주사(朱砂)와 같은 홍색 안료와 동물의 유지가 혼합된 상태의 연고에 향료를 삽입하여 사용했다.

넷째는 연지(胭脂)다. 연지는 고대 부녀자들의 필수 화장품이었다. 연지는 서역으로부터 수입되었다. 제조 방법은 천연적인 방법을 사용하였다. 연지는 처음에는 홍남화(紅藍花)에서 채취했다. 찧거나 찌는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다. 연지는 홍남화 외에도 꽃가루나 과일을 사용하기도 했다. 때로는 석류화를 사용했다. 립스틱에 사용한 재료는 "자광염금(紫礦染錦 : Butea Gum Tree)을 제일로 쳤고, 붉은 꽃잎과 산 석류꽃을 그 다음으로 쳤다."

다섯째는 매니큐어이다. 중국에서는 단구(丹蔲)라고 했다. 손톱에 물을 들이는 것이다. 단구라는 의미는 단(丹)은 붉다는 의미이고, 구는 육구(肉蔲 : Nutmeg)를 의미한다. 손톱에 물을 들이는 방법도 주로 천연 색소를 사용했다. 봉선화를 주로 사용했다. 고대 여자들의 손톱에 물들이는데 가장 많이 사용한 식물이다.

명대에 구우(瞿祐)라는 사람이 쓴 <전등신화(剪燈新話)>에서 "섬섬옥수 손톱에 붉은 물을 들이려면 금분에 담아 야간에 봉선화를 찧는다"라고 했다. 봉선화 꽃을 따서 찧은 다음 손톱위에 놓고 싸서 대략 3일이 지나면 손톱에 연홍생의 물이 든다. 현재 매니큐어가 화학 약품 냄새가 난다면 봉선화는 전혀 냄새가 없다. 이렇듯 중국 고대의 화장품 재료는 전체적으로 대부분 천연 재료를 사용했다.
 
중국 고대의 화장법

그렇다면, 화장법은 어떠했을까? 중국 전통 사회 미녀들의 화장 방식은 다양한 방법을 썼다.

첫째 화전(花鈿)이 있다. 화전은 다른 표현으로 화자(花子), 면화(面花), 첩화(첩花)라고도 불렀다. 눈썹과 이마 사이에 붙이는 장식이다. 화전의 기원은 남조(南朝)의 송무제(宋武帝) 시기 딸 수양 공주(壽陽公主)가 매화를 이마에 올려놓으면서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매화 화장' 혹은 '수양 화장법'이라고 불렀다. 송대에 이르러 매화화장법이 크게 유행하였다. 이러한 화장법은 당나라 때까지 유행하였다.

화전은 무엇을 가지고 만드는가? 금박을 잘라 만들기 하고 때로는 종이, 물고기 비늘, 차유화병(茶油花餠)으로 만들기도 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매미의 날개도 사용했다. 격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화전의 색깔은 홍색, 녹색, 황색 등이 있었다. 화전의 형식은 매화상(梅花狀) 이외에도 작은 새, 작은 고기, 작은 오리 모양을 만들어 붙였다.

둘째, 고대의 립스틱(연지)은 구지(口脂), 순지(脣脂)라고도 했다. 붉은 적색으로 입술에 발랐다. 연지를 넣은 통도 호사스러웠다. 상아로 만들기도 했다. 립스틱을 사용하는 방식은 다양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작은 입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즉 '앵두같이 작은 입'이라는 표현들이 많다. 과거 미녀의 기준은 눈은 크고 코는 오뚝하고 얼굴은 참외 씨 같이 가름하고 앵두 입술이어야만 했다. 그러나 당 헌종 원화(元和) 연간 이후에는 투루판의 영향으로 복식과 화장은 이른바 '우는 모습의 화장' '눈물 흘리는 화장법'이 일시 유행하기도 했다. 당나라 시기 연지는 자단색이 유행했다. 자단색은 자홍색이다. 이 색깔은 지금도 유행하는 립스틱 색깔이다.

셋째, 부분(傅粉)으로 얼굴에 분을 바르는 것이다. 여성들의 가장 보편적인 화장법이다. 당서의 기록에 따르면 당 현종은 매년 양귀비 자매들에게 화장 비용을 별도로 하사했다. 100만 냥까지! 분바르는 것은 "흰 사람을 더욱 희게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미백의 의미다. 그런데 고대 사람들은 화장은 도덕 수양과 관계를 지었다. 그래야 수준 있는 화장이었다.

동한의 채옹(蔡邕)은 "거울로 자기 얼굴을 볼 때 심령이 깨끗한지 여부를 고려해야하고, 분을 바를 때는 마음의 안녕과 평화를 고려해야하며, 분을 더 바를 때는 심령이 더 광채 나게 해야 한다. 머릿결이 윤택 나도록 할 때는 자신의 심령을 순화해야하며, 빗질을 할 때는 마음의 순서를 생각하고, 쪽을 틀어 올릴 때는 자신의 심령이 바른 지를 살피고, 귀밑머리를 다듬을 때는 자신의 마음이 정숙한지를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넷째, 액황(額黃)이다. 아황(鴉黃)이라고도 한다. 이마 사이에 황색의 화장품을 바르는 것이다. 이러한 화장 방식은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방식이다. 처음 시작은 남북조 시기에 시작되어 당나라 시기에 유행했다. 이러한 화장 방식은 불교의 유행과 관련이 있었다. 남북조 시기 불교가 중국에 들어왔고 부녀자들은 도금된 불상에서 힌트를 얻은 화장법이다. 당나라에 이러한 화장법이 유행해 송대까지 이어졌다. 귀족 부녀자들은 귀밑머리에는 진주가루를 바르기도 했다.

다섯째, 눈썹 그리기(畫眉)다. 눈썹그리기는 중국에서 가장 자주 보이는 화장법이었다. 이러한 방식은 전국 시대에 처음 시작했다. 굴원(屈原)은 <초사(楚辭)> '대초(大招)'에서 "분은 백색이고 대는 흑색이다"고 했다. 여기서 대흑(黛黑)은 바로 눈썹에 검을 색을 칠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나라 시대에 이미 보편화되었다.

후대에는 비취색으로 눈썹을 그리기도 했다. 특히 궁정에서 크게 유행했다. 이러한 비취 눈썹의 유행은 검은색보다 도드라져 부녀자들이 좋아했다. 성당(盛唐) 시기에 이르러 눈썹을 넓고 짧게 그리는 것이 유행했다. 마치 계수나무 잎사귀 혹은 나방의 날개와 같았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눈썹 그리기 방법은 당나라 때에만 16가지가 있었다.

화장 비용은 얼마나 들었을까? 당 현종은 이들의 화장품 값을 충당하기 위해 귀족들의 숨겨진 토지에서 세금을 챙겨 수백만 냥의 '사금고'를 이용하기도 했다. 궁녀들의 화장품 값도 수백만 냥이었다. 당 현종 시기 후궁만 4만 명이었으니 그 비용이 얼마였을까? 명대 후궁들의 지분(脂粉) 값만 40만 냥이었다. 청대 7품의 관리의 봉급은 은자 4~5냥 정도였으니 후궁들의 아름다움을 위해 황제의 사금고가 바닥이 날 지경이었다. 오죽하면 청대에 들어오면서 후궁들의 경비를 절감하느라 골몰했을까?

아름다움을 위해 쓰는 비용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한국 화장품이 중국에서 이름을 떨치는 것을 보니 중국도 부자가 되어 가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중국 선인들이 화장도 수양과 연관 지었던 것을 보면 화려한 겉모습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때가 된 것은 아닌지. 한중 간에 역사의 역전을 국력이 아니라 미에서 발견하는 아이러니를 다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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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희

건국대학교 국제학부에서 가르치며, 한중사회과학학회 회장과 KU 중국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다. 대만 중국문화대에서 중국 근대 정치사 연구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대 중국의 영웅들>을 비롯한 다수의 저서와 <중국 외교사> 시리즈 및 <대만 현대 정치사> 등 20여 권의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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