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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속 미세 플라스틱이 바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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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속 미세 플라스틱이 바다에?

[함께 사는 길] 플라스틱과 멀어지기

지금 쥐고 있는 펜, 마시고 있는 테이크아웃 커피, 열심히 쳐다보고 있는 모니터, 경쾌하게 두드리는 키보드, 앉아 있는 의자와 책상, 환히 방을 밝히고 있는 조명. 당장 내 눈에 보이는 이 물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제각각의 색깔과 모양을 가졌지만 이 모든 것들은 바로 가볍고 싼 플라스틱이다. 인류 역사상 획기적인 발명이자, 환경오염의 주요한 문제점을 낳은 플라스틱은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온갖 곳에 포진해있다.

그렇다면 열심히 플라스틱을 분리수거하면 되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뚜렷이 눈에 보이는 저 매끈한 플라스틱들 말고 또 다른 플라스틱이 드넓은 바다에 포진해있다. 마술도, 마법도 아닌데 보이지 않는다니. 게다가 분리수거장이 아니라 바닷속에 있다니. 엄연히 우리 주변에서 버젓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그 보이지 않는 플라스틱이란 건 대체 무엇일까.

보이지 않는 플라스틱은 바로 매우 작은 플라스틱 입자를 일컫는 '미세 플라스틱'이다. 0.001~5밀리미터(㎖) 정도로 머리카락 두께와 비슷하거나 더 작은 수준이니 육안으로 관찰하기란 어려운 그야말로 '보이지 않는 플라스틱'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 미세 플라스틱이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장소는 모든 생물의 근원이자 모든 생물의 부유물을 떠안는 바다이다.

한국 바다 미세 플라스틱 오염도 세계 최고

바다로 흘러가는 수많은 플라스틱 덩어리들은 계속되는 분해를 통해 미세 플라스틱으로 변해간다. 작은 플랑크톤들은 미세 플라스틱을 섭취하고, 물고기들은 그러한 플랑크톤을 섭취한다. 이미 체내에 미세 플라스틱이 가득한 물고기를 바닷새들은 물론 인간이 섭취하게 된다. 먹이사슬 속에서 미세 플라스틱은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하는 것이다. 결국 인간이 만든 플라스틱이 다시 인간에게로 돌아오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꼴이다.

지구 상 어떤 생명체도 플라스틱을 소화할 수는 없기 때문에 미세 플라스틱이 먹이사슬에 합류하는 순간 문제는 시작된다. 미세 플라스틱이 대체 얼마나 위험한지 따지자면, 얼마나 위험할지 모르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다소 모호한 답을 내릴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세 플라스틱은 바다에서 이동과정 중 바다에 흘러들어 간 잔류성 유기오염물질을 자석처럼 흡착하면서 생물의 체내에 축적된다. 뿐만 아니라 매우 작은 미세 플라스틱의 입자는 체내 세포막까지 침투할 수 있다. 그런데 미세 플라스틱에 대한 문제제기와 연구는 불과 10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 모든 예측과 위험 가능성은 정확한 해답과 해결방법이 미비해, 당장 위험이 가시화된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편 얼마 전 한국의 바닷속 미세 플라스틱 오염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조사 결과가 보도되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유류유해물질연구단의 조사에 따르면, 거제 해역의 바닷물 1세제곱미터(㎥)에는 평균 21만 개의 미세 플라스틱 입자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싱가포르 해역의 100배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가 사는 주변에도 이미 엄청난 미세 플라스틱이 포진해있는 것이다. 다행히 남해안의 미세 플라스틱 오염의 주범으로 지적되어온 스티로폼은 현재 관련 법안의 상정과 대체 물질 사용 등으로 나름의 개선안을 마련해가는 중이다. 그런데 최근 미세 플라스틱 오염의 또 다른 용의자로 떠오른 것은 스티로폼도 페트병도 아닌 화장품이다.

▲ 외국의 한 환경단체가 조사해 발표한 화장품에 들어있는 미세 플라스틱 양. ⓒ5GYRES

미세 플라스틱 클렌징 제품 하나=1ℓ 페트병 28개


촉촉하고 부드러운 화장품과 플라스틱은 영 어울리지 않는 조합으로 보인다. 그러나 각질 제거제를 사용할 때에 만져지는 까끌까끌한 작은 알갱이나 치약 속에 보이는 알갱이를 떠올려보자. 그 작은 것들이 바로 미세 플라스틱이다. 최근 여성환경연대가 국내 유통·판매되고 있는 바디워시, 클렌저, 스크럽 종류를 대상으로 미세 플라스틱 함유 여부를 조사한 결과, 400개 이상의 제품이 미세 플라스틱을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타깝게도 치약의 경우 전 성분 표시 의무제가 아닌지라, 미세 플라스틱 함유 여부조차 알 수 없는 실정이다.) 길거리에서 흔히 만나는 이른바 로드샵 화장품 브랜드들은 물론, 유명한 백화점 브랜드나 순한 성분을 내세우는 브랜드에서도 어김없이 미세 플라스틱 성분이 발견되었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클렌징 제품 하나에서만 무려 35만여 개의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된 경우도 있다. 이러한 제품을 사용한다면 1리터(ℓ) 용량의 페트병 28개를 바다에 내버리는 것과 다름없다.

아무것도 모른 채 미세 플라스틱 화장품들을 계속 사용한다면 결국 매일 세수하고 양치하는 사소한 행동조차 미세 플라스틱을 바다로 방출하는 위험한 행동이 된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제품을 사용해야 할까? 무엇이 미세 플라스틱인지 제대로 성분을 알고, 해당 성분이 함유되지 않은 제품을 선별해서 사용해야 한다.

이토록 수많은 미세 플라스틱 화장품이 범람하는 와중에 다국적 화장품 회사들은 뒤늦게나마 미세 플라스틱 사용을 단계적으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유니레버'(Unilever)가 2015년까지 자사의 모든 제품에서 미세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에 이어 존슨앤존슨(Johnson&Johnson), 로레알(Loreal), 러쉬(LUSH), 피앤지(P&G), 더바디샵(Thebodyshop) 등이 이를 약속한 상태이다. 미세 플라스틱의 대체재로 호두나 코코넛 등의 껍질과 바다 속에서 빠르게 생분해되는 PHA 등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 차원에서는 미국의 일리노이, 뉴욕, 캘리포니아 주에서 미세 플라스틱 금지 법안이 통과되거나 상정 중이며, 유럽 해양환경기본법(MSFD)은 미세 플라스틱을 쓰레기로 규정하고 유럽 전역에서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있다.

위험한 미세 플라스틱과 멀어지는 법

위험한 미세 플라스틱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근본적으로 일상 속에서 플라스틱과 멀어지는 것은 어떨까? 용기재활용연구소(CRI)에 따르면 1년간 미국에서 사용되는 일회용 용기 중 750억여 개가 페트병 혹은 폴리에틸렌 병으로, 이 중 4분의 1만이 재활용된다고 한다. 일상에서 플라스틱을 사용하고 분리수거하는 것이 재활용으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플라스틱 종류는 바다로 흘러들어 간 쓰레기 중 58%를 차지할 만큼 수없이 생산되고 버려진다. 재활용되지 못하고 바다로 흘러가는 플라스틱은 미세 플라스틱 알갱이로 분해된다. 페트병 하나만 하더라도 450년 후에야 완전히 분해되는데, 이는 인류 역사에서 지금까지 생산되고 버려진 플라스틱이 여전히 이 지구 상에 남아 있다는 의미이다. 게다가 페트병 뚜껑을 삼키고 소화관이 막혀 사망하는 앨버트로스 새들까지 즐비하니, 미세 플라스틱을 포함한 플라스틱 자체가 생태계를 틀어막는 마개가 되고 있는 셈이다.

특히 한국은 세계 1위의 플라스틱 소비량을 기록하고 있다. 커피 한 잔을 사마시더라도 플라스틱보다 스테인리스 텀블러나 머그잔을, 맛있는 반찬은 맑은 유리에, 오래 두고 쓸 가구는 튼튼한 나무로 삼는 것이 어떨까. 플라스틱을 대신할 수 있는 대체재는 매우 많고, 조금 불편할지라도 더욱 건강한 삶을 만들 수 있다. 먹이사슬의 최하위에 자리 잡은 미세 플라스틱이 우리에게 미칠 영향은 그야말로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나의 피부를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화장품과 편리하고 가벼운 일상을 안겨준 모든 플라스틱은 우리를 배반하고 공격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나 자신과 여러 생물들, 드넓은 저 바다를 괴롭히는 플라스틱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한 한 명 한 명의 실천이 절실하다.
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바로 가기 : <함께 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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