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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예고된 파리 테러, 한 번으로 그칠까?

[기자의 눈] "파리 테러 사태의 진짜 주범은 IS가 아니다"

'11.13 파리 테러 사태'는 이미 예고됐던 '프랑스판 9.11 테러 사태'였다. 프랑스 정보기구 관계자들은 몇 달 전부터 "9.11 사태 수준의 테러 공격이 아직 발생하지 않은 것은 순전히 운"이라고 시인했다. 이번에도 심각한 테러 공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첩보 수준의 경고가 바로 사건 하루 전 이라크 정보당국으로부터 제공됐으나, 큰 효과는 없었다. 프랑스 정보당국의 해명은 "매일 그런 수준의 첩보를 제공받아왔다"는 것이었다.

프랑스 정부는 '테러 공격 계획'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누가 제공해주지 않는 한 '9.11급 테러 사태'가 파리에서 일어나기까지 사실상 기다린 것이나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심지어 AP 통신 보도에 따르면, 테러 현장 용의자 8명 중 자살폭탄 테러로 '순교'하거나 사살되지 않고 유일하게 달아난 용의자 살라 압데슬람을 국경 검문 과정에서 체포할 기회가 있었으나, 그가 탄 차량을 그대로 통과시켰다.

살라 압데슬람은 최소 89명의 희생자를 발생시킨 파리 10구 바타클랑 콘서트홀 테러에 사용된 검은 색 폭스바겐 폴로 차량을 자신의 이름으로 빌려 사건 현장에 버리고 갔다. 프랑스 경찰이 이 사실을 알았지만, 신원 미상의 2명과 함께 다른 차량을 이용해 프랑스 국경을 넘어 벨기에로 도주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당시 국경 수비대원들은 운전자의 신분증만 확인하고 통과시켰다.


▲ 파리 테러 사건 직후 파리 북부에 있는 샤를 드 골 국제공항에 군인들이 경계를 서고 있다. ⓒAP=연합뉴스

테러 방지법 만들면, '정신이상자 세력'이 줄어들까

이미 세계 최강대국 미국은 9.11 사태 직후 기다렸다는 듯 아프가니스탄 전쟁, 그리고 이라크 전쟁을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주도하며 테러 세력의 발본색원에 나섰으나, 14년이 지난 지금 처절한 실패로 판명이 났다. 하물며 '자유로운 분위기'를 자부하는 프랑스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치를 역량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미국은 9.11 테러의 주모자라는 오사바 빈라덴을 어렵게 제거하고 알카에다를 무력화시켰다고 자화자찬했으나, 지금 테러 세력은 이슬람국가(IS)라는, 사실상 거대한 영토를 장악한 국가급 조직으로 확대됐다.

그렇다면 파리에서 영문도 모르고 죽어간 수많은 젊은이들처럼 테러에 의한 희생자들이 다시 생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IS를 척결하고, 시민들의 자유 등 기본권을 제한하는 한이 있더라도 강력한 '테러방지법'이나 '애국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면 되는 것일까?

현재 프랑스 정부도 그렇고, 한국 정부나 여당의 정치인들도 덩달아 이런 주장을 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가 파리 테러 사태에 대한 보복이라면서 한 것은 IS 본거지로 불리는 시리아 북부 지역 락까에 대한 '과시성 공습'이었다. IS 근거지가 있는 시리아 공습에 미국의 동맹국으로는 가장 먼저 나선 프랑스가 자신의 수도를 강타한 '보복 테러'를 막지도 못한 것을 보면 이 정도가 '가능한 가장 강력한 보복'일 수도 있다.


또 프랑스의 극우세력을 중심으로 "기승전 무슬림'의 논리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모든 것이 무슬림 탓이라는 것이고, 그러니 무슬림 난민을 결코 받아들이지 말고, 그래야 다시는 난민을 가장한 테러조직원들이 유럽에 발을 디디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파리 테러 사태가 '쇼크독트린'을 관철시킬 호재로 악용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쇼크독트린은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을 때 시민들의 공포를 이용해 지배세력을 위한 체제를 강화시키는 수법을 말한다.

흔히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무차별 살상'을 하면, "정신이상자의 소행"이라는 식의 진단 같지 않은 진단으로 넘어간다. 과연 탈레반도 고개를 숙이고 들어갈 정도로 IS가 거대집단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원인을 두고, "정신이상자가 이상하게 급증하고 있다"는 진단만 내리면 그만일까?

서방권에 대한 이슬람권의 분노와 적개심에 주목하는 전문가들은 파리 테러의 진짜 주범은 프랑스 정부 등 미국이 주도하는 '대테러 동맹'을 지목하고 있다. 그러니 앞으로 한국에서 서울 강남 쇼핑몰에서 IS의 자살폭탄 테러가 터져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는 것이다.

IS가 저지른 파리 테러의 배후가 '대테러 동맹'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는 이렇다. 미국과 영국 정부가 뒤늦게 "실수였다"고 시인한 이라크 전쟁으로 이라크 주민 수백만명이 살상됐다. 또한 4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시리아 내전은 서방과 러시아, 그리고 이슬람 종파전쟁의 대리전 성격을 띠면서 지금까지 수십만 명의 희생자와 수백만 명의 난민을 쏟아내고도 해결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 이렇듯 수백만 명의 무슬림 난민이 발생하게 만든 원인 제공자로서 유럽은 자유롭지 않다.

유럽이 중동 난민이 대량 발생한 원인 제공자라고 해도 수백 만명의 난민을 유럽이 모두 수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또한 난민 유입 차단으로 테러를 원천봉쇄하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대테러 동맹' 비용을 난민 지원에 쓴다면…


개발도상국의 성공적인 개발정책의 현실적 해법을 제시한 것으로 잘 알려진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지난 2일 <가디언> 기고문에서 "난민이 대량으로 발생하는 원인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삭스 교수는 "무조건적인 난민 수용정책은 무모하지만, 국경 통제강화 방안 역시 실패할 것"이라면서 "난민 원인제공 국가들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나아가 삭스 교수는 "난민문제의 근본 원인은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등의 (독재) 정권을 교체하기 위한 미국과 서방의 외교정책이 반복적이고 대규모로 실패했다는 점에서 비롯됐음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삭스 교수의 관점은 테러와의 전쟁의 해법으로도 원용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테러세력 원천봉쇄와 발본색원을 위한 체제정비가 아니라, '대테러 동맹'이라는 천문학적인 전쟁비용을 들여 오히려 테러세력에 끊임없이 자양분을 공급해온 정책을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테러 전쟁에 투입할 자금을 수많은 희생자와 난민으로 고통받는 중동을 위한 지원자금으로 제대로 써야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테러와의 전쟁이 종식될 희망이라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파리 전략연구재단의 특별고문 프랑수아 아이스부르는 지난 14일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테러의 주범이 IS이니 그 근거지를 공습하고, 나의 적의 적은 나의 친구이니 IS의 적인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나의 친구라는 논리가 힘을 얻을 것 같다"면서 "불행하게도 이렇게 간단한 논리가 복잡한 상황을 해결하는 좋은 정책이 되지는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파리 테러 사태의 정교함으로 볼 때, 또한 프랑스 자체가 이 사태의 근원이라는 점에서 일회성에 그칠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경고하면서 "이런 관점을 고려한 총체적인 대응을 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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