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독일 뮌헨 대학 사회학 교수로 초빙된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 제목의 강연에서 직업 정치가의 자질에 대해 논한 바 있다. 베버는 "사람이 심정윤리라는 준칙 아래에서 행위를 하는가…아니면 (예측 가능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책임윤리의 준칙에 따라 행위를 하는가에 관해 끝없는 대립”의 상태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베버에 따르면, 정치가는 심정윤리와 책임윤리의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야당 리더십이 약화한 이유
베버는 "이 세상의 어떠한 윤리라 할지라도 다음과 같은 사실, 즉 '선한' 목적을 달성하려면 우선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수단, 최소한 위험한 수단을 사용해야 하며, 좋지 못한 부작용의 가능성과 개연성까지 각오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회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심정윤리에 따라 행동하는 종교 지도자와 달리 정치 지도자는 필연적으로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정치가가 아무리 진정성을 가지고 인간적인 성품을 가지고 있어도 나쁜 결과(경제위기, 불평등, 선거의 패배)를 만든다면 실패한 정치가가 될 수밖에 없다.
현재 한국 야당이 처한 위기의 근본적 원인은 '책임윤리'를 가지려는 정치 지도자가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대표를 자임하고 공동체의 목표를 설정하고 구체적 수단을 실행하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그 정당에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최근 진보성향과 야당성향의 유권자들이 투표율이 낮아지고 있다. 그들은 지역주의 정당 체제와 소선거구제에서 자신들의 대표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투표장을 외면한다.
그러면 어떻게 야당은 자신의 지지자를 다시 모을 것인가? 반공주의에 맞서기 위해 천안함 폭침을 인정하고 '안보 정당'을 외치고 군복 있고 군대에 가는 것일까? 아니면 지역주의를 완화하기 위해 박정희 묘지에 참배하고, 지역 개발 공약을 내세우고,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지지하는 것일까? 아마도 이런 전략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기울어진 운동장론'의 패배주의
야당의 불리한 조건으로 야권이 총력을 다 해도 패배한다는 '기울어진 운동장'론은 야당의 면죄부가 되었다. 그러나 기울어진 운동장론은 패배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오류를 반복하고 있다. 영남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고, 보수적 언론 지형이 압도적 힘을 발휘하고, '북한 위협'이 존재하는 조건에서 만년 야당이 유지될 것이라는 주장은 숙명론과 패배주의에 불과하다.
최근 '인구 고령화'가 야당에 불리하다는 주장도 또 다른 결정론에 빠지고 있다. 나이가 들면 보수화된다는 연령(cohort) 효과는 증명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진보성향이 강한 80년대 세대의 경험이 칼 만하임이 말한 '세대(generation)'의 효과를 만들 가능성이 있다. 또한 높아지는 교육 수준에 비해 고학력 실업의 증가는 정치적 폭발력을 가지는 요소이다. 증가하는 빈부 격차, 중산층의 몰락은 야당에 새로운 대안을 요구한다.
야당은 권위주의 정부가 압도적 힘을 가질 때 4·19혁명과 6월 민주화 운동으로 정치의 돌파구를 열었다. 또한 1998년과 2002년 대선에서 앞서 말한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승리를 거두었다. 구조적 제약을 돌파하는 정치적 의지가 없다면 변화는 불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정치적 리더십의 요체는 바로 전략이다.
현재 야당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정치 전략'이다. 이념 갈등과 지역 갈등에 의해 결정되는 사회 갈등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통합진보당 해산과 같은 이념 갈등에 휘말리거나 박정희 묘지 참배와 같은 탈지역주의 전략은 야당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 정치를 지배하는 지역주의 정당 체제 대신, 새로운 계층 균열에 따른 사회 갈등을 조직해야 한다. 증가하는 불평등, 실업, 빈곤을 해결할 수 있는 적극적인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최근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 당선, 스웨덴 사민당의 뢰프벤 총리의 집권, 캐나다의 트뤼도 총리의 승리는 이러한 정치 전략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상대에 유리한 아젠다(의제) 대신 자신에게 유리한 아젠다로 선거를 주도해야 한다.
정당은 사회의 균열을 이해하고 최대한 많은 유권자를 정치적 지지자로 결집시켜야 한다.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산층과 서민층이 원하는 요구를 정당 정책과 선거 공약을 선택해야 한다. 그들은 비정규직, 청년실업, 조기퇴직, 주거불안, 자녀교육, 노후연금에 대한 구체적 대안을 원한다. 그들이 절실히 원하는 문제를 대변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도덕성과 진정성을 강변해도 유권자는 외면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는 다수의 지지를 받을 수 있지만, 총선 전략으로 선택한다면 오히려 난관에 부딪힐 것이다. 오히려 이념논쟁은 여당에 사회·경제적 불만을 잠재울 수 있는 효과적 카드가 될 수 있다.
구체적 정책 대안을 제시해야
2012년 대선에서 여당은 야당의 핵심 공약인 '경제 민주화'와 '복지국가'를 가로챘지만, 야당은 피부에 와 닿는 이슈를 제기하지 못했다. 오히려 안보 불안으로 야당을 공격해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야당 지지자에게 지역과 세대의 정체성에 호소하는 전략으로는 한계가 있다. 최근 야당이 제기한 공허한 '경제 정당'과 '민생 정당'도 마찬가지이다. 정부와 대기업이 주도하는 알맹이 없는 '창조 경제'를 비판하지 못하고, 적극적 산업 정책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를 만나고 경제 정당을 말한다면 누가 귀를 기울 것인가?
유권자들은 기초연금, 국민연금, 임금 피크제, 청년 실업, 공정한 조세 등 사회 문제에 더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요구한다. 덮어놓고 여당을 비난하거나 막연하게 '사회적 타협 기구'를 제안한다고 야당의 책임을 다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유권자는 사회·경제적 차원의 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구체적 대안을 듣고 싶어 한다. 유권자의 의식은 변하고 있는데, 야당의 선거 전략은 과거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 지도자의 비전
현대 정치학의 통찰력을 제공한 피렌체 출신 사상가 마키아벨리는 "지도자의 능력이 공동체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이 오해하듯이 마키아벨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권력을 장악하라고 말한 적은 없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1532)에서 "군주된 자는, 특히 새롭게 군주의 자리에 오른 자는, 나라를 지키는 일에 곧이곧대로 미덕을 지키기는 어려움을 명심해야 한다. 나라를 지키려면 때로는 배신도 해야 하고, 때로는 잔인해져야 한다. 인간성을 포기해야 할 때도, 신앙심조차 잠시 잊어버려야 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군주에게는 운명과 상황이 달라지면 그에 맞게 적절히 달라지는 임기응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마카아벨리는 "할 수 있다면 착해져라. 하지만 필요할 때는 주저 없이 사악해져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결코 마키아벨리는 사리사욕을 위한 권모술수를 강조한 것은 아니다. 그는 말했다. "군주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 나라를 지키고 번영시키는 일이다. 일단 그렇게만 하면, 그렇게 하기 위해 무슨 짓을 했든 칭송받게 되며, 위대한 군주로 추앙 받게 된다." 공동체를 운명을 좌우하는 지도자의 막중한 책임과 개인의 권력욕과 구분해야 한다. 그러나 나라를 지키고 번영시키는 전략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공동체는 커다란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안타깝지만, 현재 야당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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