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권 파괴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있다. 이름에 '보호'라는 말이 들어가니까 뭔가 '지켜주는' 느낌이 들고, 특히 주거 약자를 보호하는 법률이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풍긴다. 하지만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절대로 주거 약자를 보호하는 법률이 아니다. 이 법이 제정되기 전과 비교할 때 보증금 보호에 진일보한 건 틀림없다. 소액 보증금 보호 조항이 있어 소액 보증금을 보장 받을 가능성을 높이고 있고, 대항권 조항과 확정일자 제도 도입을 통해 보증금을 떼일 가능성을 줄인 것은 사실이다. 정함이 없는 계약이나 2년 미만의 계약은 2년으로 본다는 규정도 나름 의미가 있다. 하지만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의미는 딱 여기까지다.
주거권을 파괴하는 무시무시한 조항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2년 조항이다. 임대차보호법 6조에 있는 '묵시적 계약' 규정이 그것이다. 좀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관련 조항을 살펴보자.
6조 1항 : 임대인이 임대차 기간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1개월 전까지의 기간에 임차인에게 갱신 거절의 통지를 하지 아니하거나 계약 조건을 변경하지 아니하면 갱신하지 아니한다는 뜻의 통지를 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 기간이 끝난 때에 전 임대차와 동일한 조건으로 다시 임대차한 것으로 본다.
임대인이 계약 끝나기 1개월 전에 계약 해지 통보를 하지 않으면 자동 연장된다는 내용이다. 이게 보기에는 세입자를 위한 것 같아 보이지만, 속살을 뒤집고 보면 세입자의 '강제 이주'를 합법화한 어마어마한 조항이다. 이 조항에 따라 임대인이 계약 끝낸다고 통보하면 그것으로 상황 끝이다.
세입자는 계약 기간이 다가오면 소리 없이 떤다
세입자는 어제도 오늘도 계약 기간이 다가오면 소리 없이 떤다. 마음이 쿵쾅쿵쾅 해지고 간이 콩알만 해지고 속이 바짝바짝 탄다. 임대인에게 연락이 오지 않을까 해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계약기간이 다가오면 일부러 전화를 피한다. 임대인과 얼굴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멀리 가 있는 사람도 있다. 바로 이 '묵시적 계약' 조항 때문이다.
유럽에 있는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세입자는 한 집에서 평생 살 수 있다. 사람들은 이를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법률로 엄격히 규정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머물고 싶을 때까지 머무는 것이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대한민국처럼 법으로 강제 이주 규정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는 원하는 곳에 머무는 권리, 곧 주거권 보장을 당연한 가치로 여기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임대인 보호법이자 주거권 파괴법일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전·월세를 관리, 조정하는 안전장치가 전혀 없어서다. 차량으로 말하면 교통법규도 안전벨트 규정도 없다는 것이다. 관련 규정을 보자.
주택임대차보호법 7조 :
당사자는 약정한 차임이나 보증금이 임차주택에 관한 조세, 공과금, 그 밖의 부담의 증감이나 경제 사정의 변동으로 인하여 적절하지 아니하게 된 때에는 장래에 대하여 그 증감을 청구할 수 있다. 다만, 증액의 경우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따른 비율을 초과하지 못한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령 8조 1항 :
법 제7조에 따른 차임이나 보증금(이하 "차임등"이라 한다)의 증액청구는 약정한 차임등의 20분의 1의 금액을 초과하지 못한다.
이게 바로 5% 증감 청구 조항이다. 그런데 대법원 판례에 따라 이 조항은 임대차 계약 기간 동안만 적용되고 임대차 계약이 끝나면 적용되지 않는다. 대법원이 이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임대차보호법 6조에 규정되어 있는 2년 규정 때문이다. 법에서 2년 계약 후 계약 연장의 칼자루를 임대인에게 부여했기 때문에 세입자는 어떤 항변권도 행사할 수 없는 것이다. 임대인에게 '무한한 자유'를 보장하고 세입자에게 '무한한 복종'을 강요하는 법적 근거다. 따라서 주택임대차보호법의 '2년 조항'을 없애지 않으면 세입자의 주거권은 유린당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세입자들은 많이도 희생했다. 역대 정권의 경기 부양과 부동산 부양 정책의 희생양이 되었다. 임대인의 무한 탐욕의 먹잇감이 되었다. 다주택자들은 주택을 매점매석해서 폭리와 갈취를 일삼았지만 국가는 이를 막기는커녕 임대인들의 횡포를 묵인하고 조장했다. 이제는 세입자의 설움을 끝내야 한다.
이제는 지속 거주권을 보장하고 임대료 조정 관리 제도를 도입해서 세입자도 한 곳에 10년, 20년 정착해서 살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임대료 폭등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임대인을 무한 권력을 쥔 한없이 낯선 존재로 느끼지 않고 상생할 수 있는 사람으로 느낄 수 있도록 사회를 운영해야 한다.
주거권이 파괴된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세입자의 삶은 참담하다. 인구의 반에 이르는 사람들의 삶이 고통 받는데 통합된 대한민국, 더불어 사는 대한민국, 상생하는 대한민국이 가능하겠는가?
새정치민주연합이 주장하는 것처럼 현재 2년제를 4년으로 연장하는 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하고 주거권 유린을 지속할 수 있도록 방치하는 것이다. 새정치연합 내에서 혁신한다, 혁신에 실패했다 말이 많은데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민생 정책의 혁신이 빠졌기 때문이다. 혁신의 요체는 정책의 혁신이다. 민생정책의 혁신 없는 혁신은 앙꼬 없는 찐빵이다.
공공 임대주택 공급 비율, 프랑스 수준으로 높여야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임대차보호법 개정과 더불어 공공 임대주택을 적어도 프랑스와 영국, 스웨덴 수준으로 공급해야 한다. 이들 나라의 공공 임대주택 비율이 17-18%에 이르는데 비해 대한민국은 5%밖에 안 된다. 아주 어렵게 사는 극소수의 사람들만 공공임대주택에 들어가고 대다수의 서민에겐 그림의 떡이라는 말이다.
새누리당은 지난 총선 공약으로 2018년까지 공공 임대주택을 매년 20만호씩 확보하겠다는 '120만호 공공 임대주택' 공급을 내걸었다. 새누리당과 의원들은 당선되자마자 그 공약을 내팽개쳤지만, 공약대로 실천되었다면 대한민국의 주거권과 주거환경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었을 것이다.
주거권 유린 사회에 종지부를 찍을 때다
우리는 새누리당이, 박근혜 대통령이, 국토부가 뭘 안하고 공약을 안 지키고 정치를 엉망으로 한다고 울분을 토한다. 특히 술자리에서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진다. 하지만 그 울분이 행동으로 전환되는 경우는 드물다. 이제는 그러한 태도와 행동 양식부터 바꾸어야 할 때다.
주거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가? 주거권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지만 나서서 행동하는 사람은 적다. 소수의 열혈 시민의 나섬도 중요하겠지만, 주거 문제로 고통받는 2300만 세입자 대중과 집은 있지만 자식은 세입자로 분가시켜야 하는 80%의 국민, 은행에 잔뜩 빚을 지고 집을 산 뒤 밤낮으로 안절부절 못하는 은행 세입자들, 1급 발암 물질이 막 나오는 지하 거주자, 고시원 등의 열악한 환경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 집이 없는 홈리스, 집을 눈뜨고 빼앗기는 뉴타운 거주자, 용산 화상 경마장처럼 주거권을 침해하는 시설 건립에 고통받는 사람들, 건강 위해 시설 설치로 고통 받는 밀양 주민들이 한데 뭉쳐야 한다. 뭉치면 주거권을 누릴 것이고, 흩어지면 손자 때까지 영원히 고통받을 것이다.
한국의 주거 행복 지수는 34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24등을 달리고 있다. 좋은 건 등수가 낮고 나쁜 건 등수가 높은 대한민국이다. 이제 손에 손 잡고 이웃끼리 수다를 열심히 떨고, 두 명만 모이면 주거권을 외치자. 함께 힘 모아 지역 모임을 만들고, 지역에 적을 두고 있는 국회의원과 지자체장과 관료들을 압박하자. 선거를 통해서 본 떼를 보이자. 주거 당사자는 굉장히 힘세다. 다만 힘을 행사 하지 않아서 문제다. 자신의 정체성 찾기가 먼저다. 함께 모여서 수다 떨다 보면 주거 당사자로서 정체성은 찾아질 것이다. 맘 놓고 수다를 떨자. 뭉쳐서 힘을 보여 주자!
(최창우 전국세입자협회 대표는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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